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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별함에 특별함을 더하다
김정응(신방81) 편집위원FN executive search 부사장 / 브랜딩컨설턴트2018 고연전이 끝났다. 응원의 함성이 아직도 귓전을 울리고 뒤풀이의 감격이 가슴속에서 요동친다. 안암골 호랑이와 신촌의 독수리는 매년 9월 혹은 10월에 전쟁 같은 축제를 즐긴다. 호랑이 고대인이라면 누리는 특별함이다. 필자는 거기에 특별함 하나를 더 누린다. 바로 응원가 때문이다. 우리 고대 응원가는 모두가 절창(絶唱)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으뜸은 <지야의 함성>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이던가? 처음 이 응원가의 포효를 접할 때 말 그대로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이 응원가 가사를 읊조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존심’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힘들고 서러웠던 시절에 자존감이 별로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에 다름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 응원가는 나의 자존감 세우기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곳곳의 인생 승부 처에서 나의 자존심을 걸고 또한 고대의 자존심을 걸며 분발했다. <지야의 함성>을 부르면서 말이다.“크림슨의 붉은 정열과 철쭉꽃의 곧은 함성은/우리 모두의 자존심으로 영원토록 간직하여라/우리 모두의 자존심으로 영원토록 간직하여라” 고교대학총동창회(청주고, 고려대) 발족을 위한 창립총회준비위원이 되어 일을 한 적이 있다. 동문 선후배들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는데 그만큼 진통도 계속되고 있었다. 창립총회의 화룡점정인 슬로건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단상의 메인 화면을 장식하기 때문에 총회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 때 <지야의 함성> 응원가를 되새겼다. 동문들에게 자존감을 자극하는 문구가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우리 고대인들이 잘 아는... [2018-10-12](Hit:27)

김회봉 교우의 ‘엉클통 김밥’
먹거리 천국 제주에서 김밥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교우는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신화월드 단지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단장된 푸드몰 안에 <엉클통 김밥>이라는 특이한 상호가 눈에 띈다. 2014년 노형동에서시작한 엉클통 김밥은 이제 ‘제주 3대김밥’을 검색하면 당당히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바로 그 체인점을 제주에서 일궈낸 사람이 김회봉(역교87) 교우이다. 다소 마르고 하얀 얼굴이라 얼핏 시인같은 이미지인데다가《 흙돼지 탄생설화》라는 책까지 내미는 걸로 보아 범상한 김밥집 사장님은 아닌 듯 하다. 제주 돼지 같은 좋은 재료를 음식에 넣어 어린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직접 기획한 동화책이다. 우선 김밥부터 맛보고 얘기를 시작하자는 걸 보니 자신감도 대단하다. 엉클통에서 사용하는 3대 재료가 있다. 구좌 흙당근, 추자도 참굴비, 그리고 무항생제 제주 돼지가 그것. 깨끗하고 믿을만한 핵심재료에 집중하는 것이 김밥맛의 비결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한줄에 만원이나 하는 굴비 김밥은 예사 김밥이 아니다. 담백한데 의외로 촉촉하며 굴비 살이 제대로 씹힌다. 여기에 더해 그는 제주의 특산물인 메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제주산 메밀과 제주산 톳을 넣어 만든 메밀 떡볶이도 직접 개발해서 인기를 끄는 자랑거리다. CJ 외식사업부에서 일했던 15년 경력, 거기에 학창시절 응원단에서 얻은 리더십과 다이나믹한 성격에 호기심 넘치는 김 교우는 제주 소상공인들을위해 제주시청에서 운영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로컬푸드 분야에서 이사겸 사무국장으로 4년째 봉사하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이다. 게다가 엉클통은 이미 제주에서 중소 우수 프랜차이즈로 지정되어 2차에 걸쳐 8천만원이나 지원을 받은바 있다. ‘돈보다는 보람’을 좇는다는 말에 진정성이 엿보이는 건 그가 그렇게 봉사하며 공부하는 사업가... [2018-10-12](Hit:44)

우리 청춘의 영원회귀, 정기고연전
김영완(심리06) 선임기자 럭비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한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표정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흥겨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론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 얼굴들을 보자니 학생은 학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청춘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걸 보니 말이다. 2006년, 부푼 기대를 안고 입학했던 새내기가 있다.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군제대 후 다시 입학한 고려대. 당시 나이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던지 쉽게 동기들과 친해지지 못하다가 사발식을 함께 겪고 나서 격하게 친해졌다. 이후에는 함께 뭉쳐 다니게 됐는데, 내 첫 고연전도 빠질 수 없다. 막 카메라 세계에 빠졌던 터라, 필름카메라를 들고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 생각하며, 동기들과 선배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동기들과 만들었던 앨범이나 SNS에서는 그 사진들을 찾을 수 없다. 그저 내 기억 속에서 동기들의 표정이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는 게 전부다. 물론 그때의 묘한 감정들도 뒤섞여 있기는 하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걸 못하는 숫기 없는 나였지만, 뷰파인더를 통해서는 동기들과 마음껏 그리고 몰래 눈을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동카메라여서, 밝기도 맞지 않았을 테고 역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사진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고연전이 끝나고 찾아간 사진관에서 필름이 제대로 꽂히지 않아 찍히지 않았다는 말에 허무해지기는 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동기들이 궁금하다. 양교 럭비선수들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다보니, 추억을 꺼내게 됐다. 고대인이라면 혹은 연대인이라면 누구나 고연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에서 ... [2018-10-12](Hit:44)

[자명고] 100세 시대의 교우회
정윤석(국문 76) 편집위원장강남대학교 석좌교수나는 지난해에 환갑을 넘겼다. 1957년 생으로 소위 베이비붐 세대의 앞부분에 속한다. 내 또래가 대체로 그랬듯이 나 또한 유년시절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고, 1962년부터 1981년까지 20년간 진행된 경제개발계획 시대에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갇혀 허접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자라서 어렵사리 대학을 다녔다. 졸업후 사회에 몸을 던져 경제 활동에 참여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부모가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으니 나는 어느 새 ‘할배’가 되었다. IMF 경제위기를 잘 넘기며 정년이 바짝 닥쳐오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30여 년 꽉 부여잡고 다니던 직장의 끈이 어느 날 한순간에 똑 떨어졌다. 그러고는 마땅한 후반기의 삶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백수로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래서 서글픈가 하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진 않다. 회한 없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나를 지지하는 가족이 있고 서로 의지하며 아름답게 늙어갈 친구들이 있고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만큼 넉넉하진않아도 노후를 보낼 경제력도 된다. 통계청은 최근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베이비붐 이후 출생자 수가 90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넘나드는 해가 20년이나 지속되었으니 필연적인 일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육아 부담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리는 데 반해 평균수명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서 인구 절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급속히 늙어가고 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다. 그때가 이르면 우리의 후대는 정년 60세에 은퇴해서 죽기까지 40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2018-09-19](Hit:59)

‘고대만인보’를 쓰는 시간
전용호(국문86) 편집국장 올해 5월 교우회는 창립 111주년을 기념해 교우회관 1층에 교우회 역사자료 전시실인 ‘역사라운지 1907’을 개관했다. 전시자료를 검토하면서 본 오일철(보전법과12회) 교우 작성 교우회 총회 회의록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일철 교우는 1917년 보성전문에 입학해 1919년에 졸업했다. 그는 졸업 후 보성전문학교 서기라는 직책으로 근무하면서 교우회 서무 또는 간사 역할을 했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꼼꼼한 서기이자 간사였다. 1922년 5월 보전교우회 제16회 정기총회부터 1949년 제41회 정기총회 때까지의 회의록을 남겼고, 이 회의록은 교우회 역사 서술에 매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됐다. 이 시기에 열린 교우회 총회는 정기총회, 임시총회, 정기총회 속회, 임시총회 속회 등 총 41회인데, 이 중 제24회 정기총회(1931년 4월)만 김재영(보전상과 21회) 교우가 작성하고 그 외 회의록은 오일철 교우가 작성했다. 그는 회의 참석인원, 시간과 장소, 발언자의 이름과 발언 내용, 동의와 재청을 한 사람의 이름, 개회 및 폐회 시간 등 회의록이 갖춰야 할 모든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기록했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교우회 100년사 보전시절 기술은 자칫 공백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25동란 중 납북되어 생몰연도조차 알 수 없는 오일철 교우의 회의록을 보면서, 나는 교우회보에 게재하는 기사 하나 하나가 훗날 교우회 역사의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무겁고 엄숙한 마음이 된다. 지난 6월호와 7월호에 ‘보전교우 인터뷰’를 실었다. 보전교우를 만나 왜 보성전문을 선택했는지, 처음 교정에 들어설 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잊을 수 없는 은사 이야기와 졸업 후 만난 선후배 이야기 등 학교와 관련된 경험을 듣고 기록해두... [2018-09-19](Hit:65)

권영진 교우의 ‘뉴브호텔’
맛보다는 분위기라고 호텔식당을 찾았다가 지갑을 도난당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면 호텔뉴브의 그랑뉴브 뷔페식당을 가보라. 겉만 거창하고 이용객을 압도하는 호텔이 아니라 소박하게 머물고 싶은 잠자리와 먹고 싶은 식당이 있는 곳이다. 뉴브호텔을 경영하는 서문과 86학번 권영진 교우를 만나 보았다. 서비스업의 첨단에 있는 호텔을 경영하는 오너답게 댄디하고 세련된 몸가짐이지만, 그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전형적인 고대인이다. 재학시절 서문과 원어 연극반의 기획을 맡아온 터라 기획하고 후원받는 일은 자신이 있단다. 그의 품위 있지만 호탕한 웃음을 함께 나눠보면 그저 나부터라도 믿고 후원할 수밖에 없을 듯 기분이 좋아진다. 그랑뉴브는 셰프와 서버들이 대부분 이태리 요리학교 ICIF출신들이니 굳이 수준을 따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아주 콤팩트한 음식들이 딱 감각적인 맛으로 예쁜 그릇들에 담겨져 있다. 특히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맛을 낸 비빔밥은 외국인들도 매우 좋아하는 맛이라 인기가 무척 많다. 허나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합리적인 가격이다. 출근할 때는 뉴브호텔앤브런치 카페에서 셰프가 직접 구운 케익을 곁들여 커피를 마신다. 퇴근할 때는 선릉역에 내려 2분만 걸어 호텔에 들러 운동이나 마사지, 사우나 후 식사에 포함된 무제한 생맥주를 한잔 하더라도 가격이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다. 저렴하다고 질이 떨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스테이크에서부터 디저트 하나까지 전부 직영으로 직접 만들어 낸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외부에서 납품받는 음식이 없다는 건 합리적 가격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최고급의 호텔을 만들겠다는 권교우만의 철학이다. 다음 모임을 예약하고싶어 물으니 이미 풀 부킹이 되어 있다. 좋은 건 소비자들이 더 먼저 아는구나싶어 마음이 흐뭇했다. 이미 고... [2018-09-19](Hit:113)

교우갤러리
<황야(荒野), 타는 목 마름으로!> - 홍윤(경제81) 교우 9천년 생명을 이어온 죽지 않는 계곡, Death Valley. 미국 10대 Great Photo Locations에 늘 들어가며 경기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의 국립공원. 그곳에 가면,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서있는 곳이 가장 소중 하다는 생각을 재차 다짐 하게 하는 장소. 또한, 탄성과 함께 Camera를 꺼낼 수 밖에 없는 곳. 이런 척박한 땅에도 생명은 언제나 끈질기에 존재 합니다. 세워 놓은 제 차에서 나오는 ‘아침이슬’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제 양 눈가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2018-09-19](Hit:60)

<자명고> 아시안게임을 기다리며
강재형(영문82) 편집위원MBC 아나운서 국장사무실 서가에 무심한 듯 표지를 드러내고 있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네시아를 주목하라》였다. 인도네시아를 주목하라, 주문대로 주목하고 나니 ‘아재 개그’가 떠올랐다. 곁에 있던 후배에게 ‘인도네시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한 그에게 ‘핵과 항공모함 보유국인 강대국 인도를 무려 넷이나 합한 나라이기 때문’이라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 넷이야’?” 돌아온 답은 한술 더 뜬 것이었다. “아, 인도… 지금 네 시에요” - 그때 시각이 오후 6시 즈음이었다(자카르타와 서울의 시차는 2시간). 인도네시아 현지 중계팀의 일원다웠다.오랜 시간 서가에 누워있던 ‘인도네시아’를 다룬 책이 눈길을 끈 이유는 아시안 게임에 관심이 쏠려서 일 것이다. 썰렁한 ‘아재 개그’를 주고받은 그날, ‘아시안게임 중계팀 워크숍’이 있었고,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 발대식’이 전날 있었으니까. 아무려나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의 이모저모를 훑어보며 인도네시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인도(양)의 섬들(nesia)’의 뜻인 그 나라를 ‘줄 풀린 진주 목걸이’라 한다는 것.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는 약 1만 8000개 섬으로 이뤄진 자원 부국,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전략 요충지여서 붙은 별칭이라는 것.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국이라는 것, 내가 태어나던 해 자카르타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는 것….아시안게임을 가장 많이 치른 나라는 태국. 우리나라는 다음으로 많은, 세 번을 개최했다.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여름-겨울 올림픽, 축구 월드컵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 냈기에 ‘아시안게임 정도야~’ 싶은 게 현실이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남... [2018-08-17](Hit:113)
8월이 오면
8월이 오면위맹량(농화58·시인)8월이 오면타임머신을 타고 고향에 돌아간다우리마을 동각 앞마당에 모여징과 꽹과리 우렁찬 농악소리모두가 흥겨워 춤을춘다벌거숭이 일곱 살 소년도아리랑 춤을 춘다아버지는 오늘이해방된 날이라고 했다무더운 하늘아래모두다 한 마음 되어노래하고 춤추는데놀라운 고함소리 하나농악을 멈추라고 한다한 순간 적막이 흐르고 ...그는 외쳤다"여러분 나는 벙어리가 아닙니다"목 메인소리분노와 회한의 눈물이 이슬처럼 맺힌다언제부터인가우리 동네에 들어와 걸인 행세를 하며살아왔던 벙어리 아저씨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가기 싫어못들은 척 귀를 막고 벙어리로 살아온 것이다오늘이 있기까지 온갖 괄시와천대를 받으며 허기와 절망속에귀와 입을 봉해버린 세월들일제의 잔혹한 식민정책강제로 창씨개명하고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할 수 없었던 암흑의 시대이것이일곱 살 소년의 생생한 기억8. 15 해방 !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결코 지울 수 없는생생한 우리 역사의 파노라마. [2018-08-16] (Hit: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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