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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맛집기행 [30]] 박경찬 교우의 ‘연남전야’연남동 전 익는 밤

등록일 : 2019-06-11 조회 : 49

“그냥 막걸리를 좋아해서 안주로 부침을 먹기 위해 합정동까지 나가곤 했었죠. 그러다가 이럴게 아니라 직접 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엉뚱하지만 꽤 그럴 듯한 발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는 박경찬(서문83) 교우는 주로 공덕시장으로 전을 먹으러 다녔는데, 미리 만들었다 덥혀주는 그 레디메이드가 참 싫었다. 전이란 모름지기 잔치 음식이다. 고소한 기름 냄새, 함께 부치며 수다 떠는 아낙네들의 입담, 한 장 한 장 부쳐져 나오는 전을 가장 뜨거울 때 한 점씩 찢어먹는 재미. 그런 맛이 없는 전은 매력을 잃은 그저 기름기 그득한 정크 푸드일 뿐이다.
예쁜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연남동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따라 꼬불꼬불 걷다 보면 어디선가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온다. 작은 플리마켓, 이국적인 찻집, 수공예 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젊은이들의 거리에 등불도 낭만적인 ‘연남전야’의 입간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인장은 83년 당시 같은 과 여학생들 뿐 아니라 문과대 여학생들의 가슴까지 설레게 했던 외모의 주인공. 지금도 굽실거리고 숱 많은 그레이의 머리카락과 온유한 미소가 그의 한때의 영화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식당 이외에도 그가 운영하는 ‘coffee be’라는 카페는 연남동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봤음직한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역시 커피를 좋아해서 열었을 뿐이라는 그의 겸손한 말에서 획일적인 체인점을 싫어하는 그만의 고집이 느껴진다.
연남전야의 자랑거리는 맛있는 전과 마리아주를 이루는 막걸리다. 유통기한 일주일 이내의 신선한 막걸리를 준비해 놓고 손님으로 오는 친구를 반기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줄 손님을 모시기도 한다. 연남전야의 주 메뉴는 기름을 최소로 해서 적당한 온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혀내는 육전이다. 홍어전도 자신이 있으나 젊은이들이 그 냄새를 싫어해 포기한게 내심 서운하다. 신선한 육회는 막걸리와 궁합이 맞으니, 전집에 빠져서는 안 될 메뉴다.
취재가 부끄럽다고 손사래 치다가도 소문난 사당동 전집이 무슨 재료를 쓰는지 알고파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사연을 말할 때는 사업가로서의 강단이 느껴지고, 연남동 젊은 식당 주인들이 정작 끼니를 못 챙겨 먹는 게 안쓰러워 이곳을 점심 식사 장소로 썼다는 말을 할 때는 사회사업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리를 즐기지만 제일 잘 만드는 음식은 거창하지 않은 밑반찬들이란다. 그의 조용한 말투와 미소처럼 장식과 가식이 없는 꼭 필요한 밑반찬이 어쩐지 그의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둑어둑해지는 여름날 저녁, 퇴근길에 시원한 막걸리에 뜨거운 호박전 한 쪽이 그립다면 주저 없이 연남전야의 문을 밀어 보시라. 오픈 주방에서 전을 지지고 있을 중후한 50대의 멋진 신사와 막걸리 한잔과 덕담 한마디씩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름 밤이 마구마구 익어 갈 수 있을 테니.

김미경(독문83) 편집위원·방송작가

 

연남전야 02-336-9664
서울 마포구 동교로38길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