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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강좌] 인권연대 기획강좌 ‘3월 1일의 밤’3.1운동, 민족과 대표와 정치를 넘어

등록일 : 2019-06-12 조회 : 169

권보드래
모교 국문과 교수

박은식은 독립운동지혈사에서 사망자 수를 7509명으로 기록했다. 일본헌병경찰대에서는 사망자 수를 553명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그간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사망자 수와 일본헌병경찰대에서 기록한 사망자 수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질문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3.1운동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대표적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이런 3.1운동은 ‘대표의 정치’ 로 요약할 수 있다. 3.1운동을 살펴보면 평범한 농민이 자기가 세계적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마땅히 대표가 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대표로 나서 운동을 이끈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1 운동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3.1운동을 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이런 시선의 변화는 3.1운동이 혁명으로서의 효과를 가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종의 죽음 때문에 촉발된 움직임을 과연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을 통해 민족·민주·공화주의에 대한 문제가 한국에 굳건히 뿌리내리게 됐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메이지 유신은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신해혁명은 실패했지만 혁명으로서의 원동력을 잃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3.1운동을 통해 민주주의, 공화주의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과 고종의 죽음 때문에 촉발된 것을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 두 가지 부분이 자주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 실패한 혁명이고 무엇이 성공한 혁명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정리 신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