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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공자 글쓰기의 뒤늦은 발견

등록일 : 2019-07-12 조회 : 166

이한우(영문81) 편집위원

논어등반학교장

 

‘문청’을 동경한 적도 없고 심성도 정감이 풍부하기보다는 무덤덤한 편이라 글쓰기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던 적은 없었다. 대학원 시절 철학 공부를 하면서도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좋아했지 문체가 뛰어난 글을 볼 줄 아는 안목조차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30년 가까운 언론인 생활을 하는 동안 글쓰기를 직업으로 했으면서도 글쓰기 혹은 글의 힘은 잘 몰랐다.

뜻밖에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공자(孔子)에게서다. 2007년부터 공자 공부에 뛰어들어 한문 독해를 다 익히고서 원문으로 읽게 된 공자의 글쓰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마 이 말에 대해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공자가 도덕 이야기야 잘 했겠지만 글쓰기를 잘 했다고?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공자 이해 수준은 얕고 낮다. 무엇보다 수많은 오역(誤譯)들이 이런 부끄러운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논어’를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구절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다. 이 말은 미리 말하자면 사람다워지려고 열렬하게 애쓴다는 뜻의 문(文)을 배워서 그것을 늘 힘써야 하고 이를 ‘정말로[亦]’ 기뻐하라는 말이다. 지(之)는 지시대명사로 학(學) 뒤에 목적어가 빠져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문(文)이다.

즉 한나라 때 제왕학 텍스트였던 ‘논어’라는 책의 첫 머리에 이 글이 실린 이유는 바로 임금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권력과 재물을 모두 소유한 임금이라고 해서 거기에 만족한 채 더 이상 사람의 도리를 배우기를 멈춰서는 안 되고 자신을 낮춰 새로운 도리를 배우는데 힘쓰고 부지런히 익히기를 대충대충이 아니라 ‘정말로[亦]’ 기뻐할 때라야 비로소 그런 임금 곁에 스승의 역할을 할 수있는 사신(師臣)이 나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함축적인 문장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지도 없고 그것을 시간 날 때마다가 아니라 때때로 익히라고 하고 첫 문장에 느닷없이 영어의 also에 해당하는 ‘또한’이 나와서야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공자가 직접 쓴 글 중에《주역(周易)》을 알기 쉽게 풀이하는 계사전(繫辭傳)이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주역》을 풀이하는 책을 쓰느라 이 계사전을 꼼꼼하게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 옮기던 도중 수시로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뜻을 함축하면서도 명확하고 알기 쉽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공자의 글쓰기는 한 마디로 절절함[切]이라고할 수 있다. 써야 할 글은 반드시 쓰고 불필요한 글은 한 마디도 쓰지 않는 것이다. 학이시습지(學 而時習之)의 지(之)는 바로 이런 절절한 글쓰기를 배우라는 말이다. 물론 절절한 말하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오역으로 인해 그런 뜻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