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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공자 글쓰기의 뒤늦은 발견

등록일 : 2019-07-12 조회 : 94

이한우(영문81) 편집위원

논어등반학교장

 

‘문청’을 동경한 적도 없고 심성도 정감이 풍부하기보다는 무덤덤한 편이라 글쓰기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던 적은 없었다. 대학원 시절 철학 공부를 하면서도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좋아했지 문체가 뛰어난 글을 볼 줄 아는 안목조차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30년 가까운 언론인 생활을 하는 동안 글쓰기를 직업으로 했으면서도 글쓰기 혹은 글의 힘은 잘 몰랐다.

뜻밖에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공자(孔子)에게서다. 2007년부터 공자 공부에 뛰어들어 한문 독해를 다 익히고서 원문으로 읽게 된 공자의 글쓰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마 이 말에 대해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공자가 도덕 이야기야 잘 했겠지만 글쓰기를 잘 했다고?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공자 이해 수준은 얕고 낮다. 무엇보다 수많은 오역(誤譯)들이 이런 부끄러운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논어’를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구절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다. 이 말은 미리 말하자면 사람다워지려고 열렬하게 애쓴다는 뜻의 문(文)을 배워서 그것을 늘 힘써야 하고 이를 ‘정말로[亦]’ 기뻐하라는 말이다. 지(之)는 지시대명사로 학(學) 뒤에 목적어가 빠져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문(文)이다.

즉 한나라 때 제왕학 텍스트였던 ‘논어’라는 책의 첫 머리에 이 글이 실린 이유는 바로 임금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권력과 재물을 모두 소유한 임금이라고 해서 거기에 만족한 채 더 이상 사람의 도리를 배우기를 멈춰서는 안 되고 자신을 낮춰 새로운 도리를 배우는데 힘쓰고 부지런히 익히기를 대충대충이 아니라 ‘정말로[亦]’ 기뻐할 때라야 비로소 그런 임금 곁에 스승의 역할을 할 수있는 사신(師臣)이 나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함축적인 문장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지도 없고 그것을 시간 날 때마다가 아니라 때때로 익히라고 하고 첫 문장에 느닷없이 영어의 also에 해당하는 ‘또한’이 나와서야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공자가 직접 쓴 글 중에《주역(周易)》을 알기 쉽게 풀이하는 계사전(繫辭傳)이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주역》을 풀이하는 책을 쓰느라 이 계사전을 꼼꼼하게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마쳤다. 옮기던 도중 수시로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뜻을 함축하면서도 명확하고 알기 쉽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공자의 글쓰기는 한 마디로 절절함[切]이라고할 수 있다. 써야 할 글은 반드시 쓰고 불필요한 글은 한 마디도 쓰지 않는 것이다. 학이시습지(學 而時習之)의 지(之)는 바로 이런 절절한 글쓰기를 배우라는 말이다. 물론 절절한 말하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오역으로 인해 그런 뜻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