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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5] 이응노 ‘등나무’ (1940년대 초)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는 자신의 30대 시절을 ‘자연물체의 사실주의적 탐구시대’로 구분했다. ‘등나무’는 그의 30대 후반 작품으로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대문을 통해 들여다 본 한옥집의 풍경을 그렸다. 한 때는 살림규모가 제법 컸을 것 같은 기와집에 할머니가 어린 두 손자를 돌보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낡은 집에는 어울리지 않게 비현실적으로 화사하게 핀 등꽃과 어울려 묘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통 동양화법과 서예적 기법을 기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응노는 일본 유학에서 서양화 기법을 체득했고, 40대 이후엔 반추상적인 표현에서 사의적(思意的) 추상, 서예적 추상 표현으로 나아갔다. ‘등나무’는 이응노 작품세계의 중간 부분이자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의미 깊은 작품이다. 현재 고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19-07-11](Hit:60)

홍성업, 이영미 교우의 ‘베이글 101’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꼭 여러 번 본 듯한 사람이 있듯, 처음 가본 장소인데도 낯설지 않고 푸근한 공간이 있다.일산의 브런치 레스토랑 <베이글101>이 그렇다.활짝 열어 놓은 테라스에서 불어오는 살랑대는 바람과 잘 어울리는 실내의 푸른 화분들, 자연스레 놓여있는 앤티크 가구들과 소품. 무엇보다 집에서 요리 잘 하는 이모가 정성스레 만들어 준 듯한 브런치 메뉴들과 수제 빵, 쿠키, 그리고 방점을 찍는 음료들까지. 어디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없다.일산의 새 명소 <베이글 101>은 홍성업(경영 80), 이영미(언론홍보대학원) 교우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 레스토랑이다. 홍성업 교우의 아버님은 홍일식 13대 총장님, 어머니는 고대 14,15대 여자 교우회장이셨던 故 김상민 선배님이시다. 홍 교우의 집안은 형, 누나 등 가족들이 모두 고대 출신이라 제1회 고대 가족상을 수상하기도 한 명실상부한 고대 가족이다. 그는 입학 하자마자 찾아간 응원단실에서 응원가를 부르며 뜨거운 마음으로 청춘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현대 그룹에 입사, 임원을 끝으로 퇴직 후, 다양한 사업에서 그의 번뜩이는 재치는 빛이 났다. 새로운 걸 만들어 내고, 남이 하지 않은 걸 해보는 게 그의 주특기. 고려대에 중국 유학생을 처음 유치하는 일도 그가 해낸 일이었단다.KBS 아나운서 출신인 단아한 미모의 사모님이 내온 패션푸르트 쥬스는 씨가 오도독 씹히는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홍 교우는 <베이글 101> 옆에 <상상 그 이상> 이라는 수제 맥주 펍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각각 풍미가 다른 수제 맥주를 탭으로 따라 마시는 스타일인데, 준비된 안주가 별로 없다. 제대로 진짜 맥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은 맥주 맛만으로 찾아온다는 원칙에 충실한 것. 15가지의 선별된 맛있는 맥주만이... [2019-07-11](Hit:189)

<자명고> 고려대학교의 나무 이야기
김상덕(역교84) 편집위원모교 박물관 학예부 겸 기록자료실 부장2016년 시작된 SK미래관 신축공사로 중앙광장에서 학생회관 쪽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교문 서쪽 담장주변의 나무 숲 속에 우회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임시 보행로에 불과한 숲길이 뜨거운 햇빛을 막아줌은 물론 꽤 운치가 있다. 올해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받은 이상일(상학57) 일진그룹 회장이 2005년 개교 100주년기념으로 기증한 100그루 장송 덕분이다. 숲속 길을 걸어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넓다. 산 속 고찰을 찾아가는 길 같다. 현재 안암캠퍼스에 나무는 관목류를 포함 약 60만 그루가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이 될 만한 나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교목으로 잣나무를 선정한 것은 1968년 5월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상록수인 잣나무는 영어로 ‘Korean Pine’이니 ‘Korea University’인 교명과도 일맥상통하는 탁월한 선정이 아닐 수 없다. 선정 당시 기념행사로 잣나무를 상징적인 공간에 심었다면 지금쯤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나무가 되었을 텐데 잣나무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최근 스토리텔링이 될 만한 나무가 생겨 앞으로 기대가 된다. 명순구(법학81)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보성전문 초창기 수송동 교사 사진 속의 한 나무가 현 조계사 대웅전 앞의 500년 수령의 회화나무임을 밝혀냈다. 2017년 겨울 조계사 경내에서 ‘회화나무 종자 분양’ 행사가 있었다. 종자는 고대농장에서 싹을 틔우고 묘목으로 키워 현재 법학관과 교내 일부 건물 주변에 식재했다. 회화나무는 학문과 선비를 상징하는 ‘학자나무(學者樹)’로 불리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궁궐, 서원, 향교 등에 많이 심었다.이 외에 얘깃거리가 될 만한 나무들이 있다. 대한제국 황실 문장은 황실 가문의... [2019-06-12](Hit:87)

박경찬 교우의 ‘연남전야’
“그냥 막걸리를 좋아해서 안주로 부침을 먹기 위해 합정동까지 나가곤 했었죠. 그러다가 이럴게 아니라 직접 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엉뚱하지만 꽤 그럴 듯한 발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는 박경찬(서문83) 교우는 주로 공덕시장으로 전을 먹으러 다녔는데, 미리 만들었다 덥혀주는 그 레디메이드가 참 싫었다. 전이란 모름지기 잔치 음식이다. 고소한 기름 냄새, 함께 부치며 수다 떠는 아낙네들의 입담, 한 장 한 장 부쳐져 나오는 전을 가장 뜨거울 때 한 점씩 찢어먹는 재미. 그런 맛이 없는 전은 매력을 잃은 그저 기름기 그득한 정크 푸드일 뿐이다.예쁜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연남동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따라 꼬불꼬불 걷다 보면 어디선가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겨온다. 작은 플리마켓, 이국적인 찻집, 수공예 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젊은이들의 거리에 등불도 낭만적인 ‘연남전야’의 입간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인장은 83년 당시 같은 과 여학생들 뿐 아니라 문과대 여학생들의 가슴까지 설레게 했던 외모의 주인공. 지금도 굽실거리고 숱 많은 그레이의 머리카락과 온유한 미소가 그의 한때의 영화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식당 이외에도 그가 운영하는 ‘coffee be’라는 카페는 연남동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봤음직한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역시 커피를 좋아해서 열었을 뿐이라는 그의 겸손한 말에서 획일적인 체인점을 싫어하는 그만의 고집이 느껴진다.연남전야의 자랑거리는 맛있는 전과 마리아주를 이루는 막걸리다. 유통기한 일주일 이내의 신선한 막걸리를 준비해 놓고 손님으로 오는 친구를 반기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줄 손님을 모시기도 한다. 연남전야의 주 메뉴는 기름을 최소로 해서 적당한 온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혀내는 육전이다. 홍어전도 자신이 있으나 젊은이들이... [2019-06-12](Hit:124)

인권연대 기획강좌 ‘3월 1일의 밤’
권보드래모교 국문과 교수박은식은 독립운동지혈사에서 사망자 수를 7509명으로 기록했다. 일본헌병경찰대에서는 사망자 수를 553명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그간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사망자 수와 일본헌병경찰대에서 기록한 사망자 수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질문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3.1운동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대표적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이런 3.1운동은 ‘대표의 정치’ 로 요약할 수 있다. 3.1운동을 살펴보면 평범한 농민이 자기가 세계적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마땅히 대표가 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대표로 나서 운동을 이끈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1 운동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3.1운동을 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이런 시선의 변화는 3.1운동이 혁명으로서의 효과를 가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종의 죽음 때문에 촉발된 움직임을 과연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을 통해 민족·민주·공화주의에 대한 문제가 한국에 굳건히 뿌리내리게 됐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메이지 유신은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신해혁명은 실패했지만 혁명으로서의 원동력을 잃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 3.1운동을 통해 민주주의, 공화주의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과 고종의 죽음 때문에 촉발된 것을 혁명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 두 가지 부분이 자주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 실패한 혁명이고 무엇이 성공한 혁명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정리 신유경 기자 [2019-06-12](Hit:133)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4] 김환기 ‘월광’ (1959년)
캔버스에 유채/ 60x92cm  김환기(1913-1974)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가이자 가장 세계적인 화가 중 한 명 이다.1930년대 구성주의적 추상을 시작으로 1950년대에는 백자와 십장생, 산과 달을 소재로 동양적인 느낌을 근간으로 한 반추상화 작업을 하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기하학적 추상을 거쳐 점묘 추상회화로 나아갔다.김환기의 1959년작 ‘월광’은 작가 특유의 푸른색이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달과 산의 형상과 어우러지고 있다. 산허리의 빨갛고 파란 두 개의 직사각형은 화면에 생동감과 리듬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원과 직선으로 표현한 조형요소가 작가 특유의 추상으로 나타났지만, 달 아래 산등성이 풍경을 그려 놓은 우리네 전통적 산수화를 투영한 듯 다가오는 작품이다.이 작품은 지난달 30일부터 8월 21일까지 천안 갤러리아 센터시티 특별전에 대여 전시되고 있다. 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19-06-11](Hit:93)

선수단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전력약화 개선할 시스템 만들어야
모교 5개부 선수들은 올해 정기전 승리를 위해 전지훈련과 연습경기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열린 모교와 와세다대 럭비 교류전. 지난 2년간 정기고연전에서 모교는 연이어 패했다. 모교 체육 관계자들은 2년 연속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올해 정기고연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고대 체육인들의 결집체인 고우체육회 사무총장으로서 최근 몇 년간의 모교 체육계 실상을 지켜보며 느낀 바를 말하고자 한다.우선 전력약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던 코치 수 축소를 원래대로 돌리고 전지 훈련 기간을 조금 늘린 것은 다행이다.2015년 이후 코치와 선수단 인원편성을 줄였던 학교는 새로운 총장 취임 후 정기 고연전의 중요성을 느끼고 많은 변화와 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하다.그러나 한 두 해의 패배 만회를 위한 임시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전력이 약해진 근본적인 이유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대책을 수립할 수있다. 필드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선수의 미래, 그리고 교우와 재학 생을 포함한 전체 고대가족의 자긍심이 앞으로 나올 개선책에 달려있다.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학교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쌓인 문제들로 인해 올해 정기고연전 전망도 밝다고 할 수는 없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2017년과 2018년 정기고연전 참패 이후 매년 각 부의 부장 교수들이 두 번씩 이나 일괄 사퇴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사표 수리가 안 됐다는 이유로 이들은 감독 재계약 평가 등의 업무를 또 수행했 다. 그 과정에서 상임위원회 면접과 논의로 결정된 감독이 단 한 명의 부장교수의 횡포와 고집으로 결과가 뒤집어진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정기전과 5개부 소속 연맹 대회에서의 부진 원인을 지도자와 선수들 에게... [2019-05-15](Hit:139)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 [3] - 이중섭 ‘꽃과 노란 어린이’ (1955년)
종이에 펜과 유채/ 15 x 22cm 이중섭은 생전에는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풍족하지 않았던 그의 삶 가운데서도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는 각별하였고, 피란생활이었을지언정 가족들끼리 한데 모여 살았던 서귀포에서의 짧은 순간을 일생 동안 그리워하곤 했다.‘꽃과 노란 어린이’는 이중섭이 두 아들을 생각하며 특별히 많이 그렸던 아이들 그림 중 하나다. 꽃과 나비의 크기에 비해서 아이들은 벌레처럼 작아서 탐스럽게 핀 꽃 주변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노는 요정들 같아 보인다.박물관 소장 작품 중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는 작품이라 지금은 잠시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박물관 3층 현대미술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19-05-14](Hit:150)

‘여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
손미나(서문92)인생학교서울 교장전 KBS 아나운서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였다. 당시 마드리드는 바스크 분리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폭탄을 터뜨리던 상황이 었다. 어느 날 폭탄이 터져 남들이 다 도망갈 때, 언제 이런 구경을 하겠나 싶어서 그 현장을 지켜봤다. 보고 와서 친구들에게그 현장을 생생히 설명해줬다.그 때 내가 말하는 재주가 있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참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그렇게 아나운서의 꿈을 꾸고 KBS에 입사했다. 당시 ‘기차 타고 세계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하게 됐다. 아프리카 지역을 갔는데, 수습 기간이어서 PD 가 시키는 일은 다 했다. 타조 등에 매달려보기, 악어 농장에서 악어 때리기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프로그램이 방송된 후에는 나를 특이하게 생각한 PD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나를 MC로 썼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9 시 뉴스도 진행하게 됐다.누군가는 탄탄대로라고 여겼 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앞으로할 일이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몰디브로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가 했던 말은 충격이었다. “나는 너가 아직 누구인지 모르겠다. 네이야기에는 항상 ‘일’이 들어있 다. 너는 지금 행복하니?”돌아보니 나는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일과 삶의 불균형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일을 멈췄을때 실패할까봐, 낙오될까봐 항상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회사에 돌아와서 9시 뉴스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바르셀로나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규격화된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었 다.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 다. 복직한 뒤에는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책으로 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2019-05-14](Hit: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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