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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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리통 문화에 대하여
노시훈(신방88) 여행작가 “소리통~ 소리통~~ 선배님~ 선배님~~ 저희가~ 저희가~~” 이것은 일명 ‘소리통’. 무료주점 문 앞에 당도한 기차놀이 행렬이 리더의 선창에 따라 목청껏 악을 써대는 일종의 떼창이다. “선배님! 저희가 오늘 이런 사연을 말씀 올리니 술을 한잔 따라주십시오.” 사연은 다양하다. “오늘 고연전에 아깝게 져서 내년에 꼭 승리하기 위해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기차놀이를 너무 열심히 했더니 목이 마르고 힘이 빠져 막걸리가 마시고 싶습니다. 오늘 함께하는 연대 친구들에게 고대 선배님의 후배 사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연을 다 외치면 주점을 연 선배가 그 자리에서 후배에게 술을 한 잔씩 건네거나 빈 자리가 있다면 주점 안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이 유쾌한 퍼포먼스는 각설이 타령을 연상케 한다. 각설이와 비교했다고 해서 소리통 후배들을 술 구걸꾼에 비유한 것은 아니다. 술을 얻는 바로 그 과정을 보며 각설이타령의 흥겨운 가락과 유쾌하고 당당한 해학을 떠올린 것이다. 고연전 자원봉사단에 처음 참석하면서 ‘무료주점’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었다. 선배라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마련한 공짜 술자리. 후배 입장에선 술을 어떻게 얻어먹을 것인가? ‘실례지만 들어갈 자리 있나요?’, ‘혹시 여기 무료주점 맞나요?’ 술 한잔 못 사 먹을 형편도 아닌 요즘 후배들이 이런 어색한 과정을 거치며 무료주점에 앉으려고 할까? 형식적인 인사야 있더라도 선배에 대한 고마움이 과연 자연스럽게 전달될까? 이건 모두 괜한 염려였다. 달라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기꺼운 축제가 되는, 이렇게나 수준 높고 해학적인 소통 수단이 준비돼 있음은 얼마나 반갑고도 놀라운가? 지난 10월 6일 참살이길을 가득 메운 우리 후배들은, 무료주점이라는 정물에 소리... [2018-11-16](Hit:232)

정상원 교우의 ‘르 꼬숑’
화가는 그림, 연주자는 악기로 자신을 표현다면 ‘르 꼬숑’ 정상원(식공 97) 셰프의 언어는 바로 ‘음식’이다. 미술을 원했지만 포기했고, 무늬만 생명과학도였지 늘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탐구로 청년시절을 보낸 그는 프랑스를 좋아해서 불어를 배우고 책을 읽고 그림을 보러 다닌 경험들을 고스란히 그의 요리 속에 녹여냈다. 샹송이 흐르는 소박하고 차분한 ‘르 꼬숑’의 실내에 들어서면 마치 프랑스 시골 가정집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곧 아주 특별한 메뉴책이 건네진다. 두 달마다 테마가 바뀌는 메뉴책의 사진과 감성 어린 글들, 그리고 다양한 스토리가 붙여진 예쁜 요리들이 모두 정 셰프의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다. 신 메뉴가 만들어져 손님들에게 서빙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음번 메뉴가 준비된다. 재료를 고르는 방식도 재미있 다. 정읍 귀리로 만든 소르베, 곡성 송화버섯이 들어간 라따뚜이, 안동 사과 타르트. 프랑스 지역의 특징과 가장 비슷한 곳을 찾아가 농장주를 직접 만나 그의 눈빛을 보고 재료를 구입한다. 결국 그만의 느낌을 입힌 ‘프랑스에도 없는 프랑스식 요리’가 탄생된다. 음식은 눈으로 보며 혀로 느끼는 예술이라는 말답게 먹으면서도 계속 다음 디쉬가 기대된다. 안 어울릴듯한 재료들로 완벽한 맛을 재창조한 요리들을 맛보자니 마치 발레에서 한쌍의 파드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과한 비유일까? 그가 주방에 붙여놓은 모토인 “서로에게 상상할 권리를 주자.”라는 글귀를 이해한다면 필자가 왜 르 꼬숑의 요리를 그렇게 표현하는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정치인들을 비롯 김태희, 예지원, 김희애 등 유명 연예인들이 사랑하는 맛집 셰프 정 교우는 11월에 KBS의 새로운 요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고 한다. 방송을 타니 으쓱해 할만도 하련만, 고객들의 요구 수준만큼 자신도 성장하며,... [2018-11-14](Hit:325)

정기고연전과 대학 스포츠의 방향
김수인(사학73)스포츠 칼럼니스트 경남고 4번 타자로 1973년 고교 야구 슈퍼스타였던 김용희(행정74, 前 롯데-삼 성-SK 감독)는 필자의 초·중·고·대학과 육군까지 후배로 엄청난 인연을 갖고 있다. 1973년 11월말 학교 정문 건너편을 가고 있는데 김용희와 마주쳤다. “아, 용희야 반갑다. 어쩐 일이고?” 김용희는 대답없이 씨익~웃었다. 그를 둘러보니 덩치가 아주 좋은 두명(아마 고대 럭비 선수)이 김용희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김용희를 스카우트하려던 연대의 손길을 뿌리치기 위해 그는 입학시험 때까지 합숙소에 감금(?)당하고 외출시에는 선배들 두명이 번갈아 그를 보호했다.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등 인기 종목은 고교 스타 플레이어를 데려가기 위해 양교는 기상천 외한 수법을 썼다. 하지만 이젠 고교 우수선수들이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팀으로 진출하는게 관례가 돼 ‘스카우트 경쟁’이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 정기고연전 승패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신입생 스카우트에서 거의 결정이 났다. 지금은 선수들의 전력이 평준화된 상태에서 어느 학교가 훈련 시스템을 잘 갖추고, 평소 지원을 얼마나 잘 해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훈련 시스템은 해당 종목의 감독 능력에 좌우되므로 감독을 잘 뽑는게 매우 중요하게 됐다. 감독 선임과 팀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 연대에 비해 열악하니 2년 연속 참패를 당했고 앞으로도 이긴다는 보장이 별로 없다. 염재호 총장은 필자와 같은 학번이어서 그의 취임초에 “스포츠관련 자문을 해주겠다”고 했으나 한번도 필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내년초 누가 총장이 될지는 모르지만, 취임후에는 정기전이나 대학 스포츠 전반에 관한 TF(테스크 포스트)팀을 운영해 스포츠에 관한 전반적인 방향과 대책 수립에 힘써야 한다.... [2018-11-14](Hit:266)

교우갤러리
<소망> - 박정진(간호75) 교우창의문에서 시작된 가파른 오르막길. 수백 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섰을 때 한눈에 들어온 것은 육백년 세월을 굳건히 버텨온 오랜 도성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그 성곽 위에 세워진 경비초소가 역사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어서 이 땅에도 평화가 와서 경비초소 대신 본래 모습인 망루가 세워질 날을 고대해 본다. [2018-11-14](Hit:203)

특별함에 특별함을 더하다
김정응(신방81) 편집위원FN executive search 부사장 / 브랜딩컨설턴트2018 고연전이 끝났다. 응원의 함성이 아직도 귓전을 울리고 뒤풀이의 감격이 가슴속에서 요동친다. 안암골 호랑이와 신촌의 독수리는 매년 9월 혹은 10월에 전쟁 같은 축제를 즐긴다. 호랑이 고대인이라면 누리는 특별함이다. 필자는 거기에 특별함 하나를 더 누린다. 바로 응원가 때문이다. 우리 고대 응원가는 모두가 절창(絶唱)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으뜸은 <지야의 함성>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이던가? 처음 이 응원가의 포효를 접할 때 말 그대로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이 응원가 가사를 읊조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존심’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힘들고 서러웠던 시절에 자존감이 별로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에 다름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 응원가는 나의 자존감 세우기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곳곳의 인생 승부 처에서 나의 자존심을 걸고 또한 고대의 자존심을 걸며 분발했다. <지야의 함성>을 부르면서 말이다.“크림슨의 붉은 정열과 철쭉꽃의 곧은 함성은/우리 모두의 자존심으로 영원토록 간직하여라/우리 모두의 자존심으로 영원토록 간직하여라” 고교대학총동창회(청주고, 고려대) 발족을 위한 창립총회준비위원이 되어 일을 한 적이 있다. 동문 선후배들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는데 그만큼 진통도 계속되고 있었다. 창립총회의 화룡점정인 슬로건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단상의 메인 화면을 장식하기 때문에 총회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 때 <지야의 함성> 응원가를 되새겼다. 동문들에게 자존감을 자극하는 문구가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우리 고대인들이 잘 아는... [2018-10-12](Hit:268)

김회봉 교우의 ‘엉클통 김밥’
먹거리 천국 제주에서 김밥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교우는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을 가득 안고 신화월드 단지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단장된 푸드몰 안에 <엉클통 김밥>이라는 특이한 상호가 눈에 띈다. 2014년 노형동에서시작한 엉클통 김밥은 이제 ‘제주 3대김밥’을 검색하면 당당히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바로 그 체인점을 제주에서 일궈낸 사람이 김회봉(역교87) 교우이다. 다소 마르고 하얀 얼굴이라 얼핏 시인같은 이미지인데다가《 흙돼지 탄생설화》라는 책까지 내미는 걸로 보아 범상한 김밥집 사장님은 아닌 듯 하다. 제주 돼지 같은 좋은 재료를 음식에 넣어 어린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직접 기획한 동화책이다. 우선 김밥부터 맛보고 얘기를 시작하자는 걸 보니 자신감도 대단하다. 엉클통에서 사용하는 3대 재료가 있다. 구좌 흙당근, 추자도 참굴비, 그리고 무항생제 제주 돼지가 그것. 깨끗하고 믿을만한 핵심재료에 집중하는 것이 김밥맛의 비결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한줄에 만원이나 하는 굴비 김밥은 예사 김밥이 아니다. 담백한데 의외로 촉촉하며 굴비 살이 제대로 씹힌다. 여기에 더해 그는 제주의 특산물인 메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제주산 메밀과 제주산 톳을 넣어 만든 메밀 떡볶이도 직접 개발해서 인기를 끄는 자랑거리다. CJ 외식사업부에서 일했던 15년 경력, 거기에 학창시절 응원단에서 얻은 리더십과 다이나믹한 성격에 호기심 넘치는 김 교우는 제주 소상공인들을위해 제주시청에서 운영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로컬푸드 분야에서 이사겸 사무국장으로 4년째 봉사하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이다. 게다가 엉클통은 이미 제주에서 중소 우수 프랜차이즈로 지정되어 2차에 걸쳐 8천만원이나 지원을 받은바 있다. ‘돈보다는 보람’을 좇는다는 말에 진정성이 엿보이는 건 그가 그렇게 봉사하며 공부하는 사업가... [2018-10-12](Hit:339)

우리 청춘의 영원회귀, 정기고연전
김영완(심리06) 선임기자 럭비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한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표정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흥겨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론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 얼굴들을 보자니 학생은 학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청춘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걸 보니 말이다. 2006년, 부푼 기대를 안고 입학했던 새내기가 있다.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군제대 후 다시 입학한 고려대. 당시 나이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던지 쉽게 동기들과 친해지지 못하다가 사발식을 함께 겪고 나서 격하게 친해졌다. 이후에는 함께 뭉쳐 다니게 됐는데, 내 첫 고연전도 빠질 수 없다. 막 카메라 세계에 빠졌던 터라, 필름카메라를 들고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 생각하며, 동기들과 선배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동기들과 만들었던 앨범이나 SNS에서는 그 사진들을 찾을 수 없다. 그저 내 기억 속에서 동기들의 표정이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는 게 전부다. 물론 그때의 묘한 감정들도 뒤섞여 있기는 하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걸 못하는 숫기 없는 나였지만, 뷰파인더를 통해서는 동기들과 마음껏 그리고 몰래 눈을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동카메라여서, 밝기도 맞지 않았을 테고 역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사진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고연전이 끝나고 찾아간 사진관에서 필름이 제대로 꽂히지 않아 찍히지 않았다는 말에 허무해지기는 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동기들이 궁금하다. 양교 럭비선수들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다보니, 추억을 꺼내게 됐다. 고대인이라면 혹은 연대인이라면 누구나 고연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 속에서 ... [2018-10-12](Hit:242)

[자명고] 100세 시대의 교우회
정윤석(국문 76) 편집위원장강남대학교 석좌교수나는 지난해에 환갑을 넘겼다. 1957년 생으로 소위 베이비붐 세대의 앞부분에 속한다. 내 또래가 대체로 그랬듯이 나 또한 유년시절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고, 1962년부터 1981년까지 20년간 진행된 경제개발계획 시대에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갇혀 허접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자라서 어렵사리 대학을 다녔다. 졸업후 사회에 몸을 던져 경제 활동에 참여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부모가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으니 나는 어느 새 ‘할배’가 되었다. IMF 경제위기를 잘 넘기며 정년이 바짝 닥쳐오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30여 년 꽉 부여잡고 다니던 직장의 끈이 어느 날 한순간에 똑 떨어졌다. 그러고는 마땅한 후반기의 삶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백수로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래서 서글픈가 하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진 않다. 회한 없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이 있으며 무엇보다 나를 지지하는 가족이 있고 서로 의지하며 아름답게 늙어갈 친구들이 있고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만큼 넉넉하진않아도 노후를 보낼 경제력도 된다. 통계청은 최근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베이비붐 이후 출생자 수가 90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넘나드는 해가 20년이나 지속되었으니 필연적인 일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육아 부담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리는 데 반해 평균수명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서 인구 절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급속히 늙어가고 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다. 그때가 이르면 우리의 후대는 정년 60세에 은퇴해서 죽기까지 40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2018-09-19](Hit:341)

‘고대만인보’를 쓰는 시간
전용호(국문86) 편집국장 올해 5월 교우회는 창립 111주년을 기념해 교우회관 1층에 교우회 역사자료 전시실인 ‘역사라운지 1907’을 개관했다. 전시자료를 검토하면서 본 오일철(보전법과12회) 교우 작성 교우회 총회 회의록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일철 교우는 1917년 보성전문에 입학해 1919년에 졸업했다. 그는 졸업 후 보성전문학교 서기라는 직책으로 근무하면서 교우회 서무 또는 간사 역할을 했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꼼꼼한 서기이자 간사였다. 1922년 5월 보전교우회 제16회 정기총회부터 1949년 제41회 정기총회 때까지의 회의록을 남겼고, 이 회의록은 교우회 역사 서술에 매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됐다. 이 시기에 열린 교우회 총회는 정기총회, 임시총회, 정기총회 속회, 임시총회 속회 등 총 41회인데, 이 중 제24회 정기총회(1931년 4월)만 김재영(보전상과 21회) 교우가 작성하고 그 외 회의록은 오일철 교우가 작성했다. 그는 회의 참석인원, 시간과 장소, 발언자의 이름과 발언 내용, 동의와 재청을 한 사람의 이름, 개회 및 폐회 시간 등 회의록이 갖춰야 할 모든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기록했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교우회 100년사 보전시절 기술은 자칫 공백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25동란 중 납북되어 생몰연도조차 알 수 없는 오일철 교우의 회의록을 보면서, 나는 교우회보에 게재하는 기사 하나 하나가 훗날 교우회 역사의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무겁고 엄숙한 마음이 된다. 지난 6월호와 7월호에 ‘보전교우 인터뷰’를 실었다. 보전교우를 만나 왜 보성전문을 선택했는지, 처음 교정에 들어설 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잊을 수 없는 은사 이야기와 졸업 후 만난 선후배 이야기 등 학교와 관련된 경험을 듣고 기록해두... [2018-09-19](Hit: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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