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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선회는 일식이 아니라 한식입니다
미식가들이 맛집으로 꼽는 해초록. 서울 대치, 삼성동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작 본점이 부산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회집은 바닷가에 있어야 제맛인 듯 해초록의 자연산 회는 마치 포말처럼 싱싱하다.임갑희(원예73) 교우는 기우는 가계를 꾸리기 위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1982년 부산에 삼오정이라는 한식당을 열었다. 대충 하는 게 싫어서 요리 연구가 황혜성 선생에게 궁중요리를 배우고, 부경대 생선회 전문가 과정도 이수했다. 이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어설픈 일본 흉내를 내지 않는 진짜 한식으로서의 회를 내놓을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지은이름도 초록빛 바다 ‘해초록’이다. 살아있는 자연산 재료만을 쓰다 보니 가격이 비싸다는 평도 듣긴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단골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접시 바닥이 비칠 듯 맑고 투명한 생선회로 초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 아이디어도 독특하다. 상으로 솥째 들고 와 퍼주는 고슬고슬 뜨거운 밥에 막 김장독에서 꺼낸 듯한 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어서 얹어먹으니 결코 화려하거나 젠체하는 격식뿐인 밥상이 아니라 진정한 한국인의 밥상이란 생각이 든다. 김치가 하도 맛있어 여쭤 보니 ‘해파란’이라는 브랜드로 김치 사업도 시작하셨단다. 김치가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만들어 진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직접 만들기로 한 것. 김치는 너무 싱겁지 않게 적절한 염도가 있어야 톡 쏘는 탄산 맛이 난다고 한다. 정말 옛날에 먹던 톡 쏘는 그 김치 맛이다. 부군(정외과67)과 아드님(통계97)도 교우이며, 고대 외식교우회 회장도 맡고 계시니 어디서나 늘 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임 교우. 직원들에게 슬쩍 대표님의 장점을 물으니 ‘흉내 낼 수 없는 넘치는 열정’ 이라는 답이 돌아온다.이미 인터뷰 내내 간파하고 감탄한 바라 놀랄 것도 없... [2018-04-16](Hit:746)

<자명고> 고대 교문에는 왜 문패가 없을까
김경훈 (농학81) 편집위원민주신문 편집국장 얼마 전 짤막한 뉴스에 시선이 멈췄다. 68년만에 국방부가 위수령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치안유지에 군 병력을 동원하는 위수령은 계엄령과 다르다. 위수령은 자치단체장 요청으로 발령되지만, 계엄령은 국회 동의를 얻어야 선포된다. 1970~80년대 몇 차례 위수령으로 바리케이드가 처졌던 고대 교문은 독재타도와 민주쟁취의 이정표였다. 열린 교문은 자유의 활화산, 닫힌 교문은 억압의 표상이었다.위수령 폐지 뉴스에 눈길이 간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위수령으로 교문이 굳게 닫혔던 시대상황이 다시금 떠올랐다. 다음은 ‘고대 교문에는 왜 문패가 없을까’ 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고대 교문(정문)은 1971년 12월 준공됐다. 개교 60주년 다음 해인 1966년 국민들의 성금으로 학생회관 뒤에 제대로 된 교문을 세웠다. 당시 300만원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5년 후 대운동장이 들어서자 기존 모양에 크기를 확대해 지금의 자리에 새로 세웠다. 교문에서 보면 본관이 정면으로 보이게끔 설계했다. 세종캠퍼스 교문도 서울캠퍼스와 같은 모양이다.대문은 입구이자 출구다. 새끼 호랑이들이 입학해 어엿한 호랑이로 성장해 사회로 나가는 통로다. 동양문화에서 대문은 안과 밖, 음과 양, 성(聖)과 속(俗)을 모두 포함하고 구분해준다. 고대 교문 앞 대로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은 성북구 안암동과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나뉜다. 교문 맞은편 제기5구역은 지금 재개발이 한창이다. 지역민과 상생하고 캠퍼스 위상과 조화를 이루기를 고대한다.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고대 교문에는 왜 문패가 없을까’ 오탁번 교우(영문64)도 1994년 펴낸 시집 ‘겨울강’에서 서울대나 연세대 교문엔 동판 문패가 있지만 고대는 없다고 읊었다. 그러나 문패는 없지만 영혼은 있다고 했... [2018-04-16](Hit:460)

<자명고> 高大 이야기
송수근(영문78)편집위원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경기 자체도 감동적이었지만 수준 높은 경기를 치르기까지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뒷 이야기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가슴 뭉클해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종목은 여자 컬링이 아니었나 싶다. 대표팀 대부분이 태어나고 자란 작은 시골마을 경북 의성군. 마늘 이야기 말고는 딱히 떠올릴 것이 없었던 의성이 마늘소녀들의 활약으로 컬링의 성지가 되었다. 새롭게 쓴 컬링 이야기로 자칫하면 인구감소로 소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의성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이야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펼쳐 든 조간신문이나 방송에서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하루 종일 누군가와의 만남이나 SNS 등 매체를 통해서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접하고, 전달하고 또 관심 있는 이야기를 찾아 헤맨다.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추잡한 이야기도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다.이야기 하는 인간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고 한다.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1999년에 낸 저서 ‘호모 나랜스’에서 이 말을 처음 소개하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 하기를 원하고 이야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인류의 미래는 정보화 사회의 태양이 지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이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앞으로 세상을 떠받치는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공동체 결속을 강화한다. 이야기는 공통의 가치를 확인하고 공통의 문화라는 매듭을 단단히 매어 서로를 결속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야기는 공감을 통해 우리를... [2018-03-14](Hit:436)

우동이 작품이 되는 곳
“깜짝 놀랄 맛을 보여드릴게요.”필자를 만난 박봉수 대표가 제일 처음한 말이다. 널따란 대접에 담겨져 나온 면발을 한 젓가락 맛보는 순간, “어!”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말 처음 경험하는 비주얼과 맛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동은 ‘가락국수’지 우동이 아니란다. 국수와 수제비가 엄연히 다른 요리이듯 우동 역시 완전히 다른 하나의 작품이다. 적어도 이곳에서 맛본 우동은 그랬다.오사카에서 태어나 휘문고, 고려대 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일문과 96학번 박봉수 교우는 지금은 야탑동 본점과 서초동에 ‘수타우동 겐’이라는 분점을 경영하는 젊은 오너셰프이다. 나고야에서, 삼성에서 프로 선수로 뛰었지만 정작 그의 가슴을 뛰게 한 건 야구보다도 선친 때부터 만들어 왔던 우동 만드는 일이었다. 면을 직접 숙성시켜 하루 전에 실온에서 잠재우고, 봉으로 수차례 밀어내는 과정은 다이아몬드 마운드 위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또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던지고 때리는 야구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운동을 했다는 그의 손이 마치 악기의 현(絃)을 다루기라도 하듯 희고 고와서일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요리사라기보다 장인과 마주앉아있는 것만 같다.왜 상호가 ‘겐’이냐고 물으니 면이 절대 구부러지지 않고 악기의 현처럼 똑바르게 펴져야 목 넘김이 좋다는 걸 의미한단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우동 만드는 생각뿐이니 손님이 끊길 리가 없다. 취재하는 오후 세시에도 손님들이 줄을 이어 들어오며 소근거린다. “맛집이야, 맛집. 너무 맛있어.”그런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조심스레 물으니 ‘버티기’라는 답을 준다. 10년 동안 고비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만든 우동 맛을 믿고 무조건 기다렸다. 결국 그 우직한 기다림이 답을 준 것일까. SNS에서 검색을 해보면 온통 호평뿐이다.AI니 4차 산업이니 하며 진화하는... [2018-03-14](Hit:726)
크림슨 서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착취한다. 자기 착취는 기만적인 자유의 느낌을 동반하는 한에서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피착취자이기도 하다. 착취는 지배없이 관철된다.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109~110쪽.한병철(금속공78) 베를린예술대 교수의 《피로사회》는 자본주의를 ‘성과사회’로 규정하고, 현대인이 겪고 있는 피로에 주목했다. 여기서 피로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착취의 징표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맞아 한병철 교우의 이 책을 다시 뒤적인다.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온 시간의 여유가 삶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피로를 강요하진 않을지…. 이 풍요로운 피로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나를 한번 들여다본다. 김영완 기자 [2018-03-14] (Hit:394)

마음의 고향 태화관의 추억, 타이허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교가의 이 가사는 늘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지만 특히 ‘타이허’식당의 대표 장치평(경영79) 교우에게는 고대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고향이다.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경영하던 짜장면 집에서 철가방을 들었다고 한다. 방직회사 직원, 상사맨, 음식 사업을 거쳐 다양한 삶의 굴곡을 맛보았던 그는 2006년에 시작한 태양광사업의 발전에 힘입어 2009년에 법인을 설립했고 작년 5월 지금의 식당이 있는 태화빌딩을 준공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돕던 중국집 이름이 ‘태화관’이었고 그 이름의 중국발음이 ‘타이허’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낭만적 향수가 느껴지겠지만, 한국 땅에서 화교라는 신분으로 그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질곡들이 찡하게 와 닿는다. 졸업 후 다른 동기들과 달리 국적 때문에 취업의 제한까지 받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를 품위 있게 지켜주었던 힘은 ‘고려대학교’라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경영대 겸임교수로 출강할 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경영관에 ‘장치평 라운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고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식당의 지하 공간에는 8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큰 연회장이 있다. 수시로 선후배들이 작고 큰 행사를 열수 있도록 음식은 물론 공간까지 준비해놓은 장 교우의 마음이 넉넉하기 그지없다. 호텔 주방에서 40년을 조리한 경력의 그의 화교 친구가 만들어 내는 전가복은 정말 ‘값지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흔하디흔한 미끈한 해삼이 아니라 힘찬 돌기가 눈에 띠는 진짜 해삼, 완도에서 공수하는 싱싱한 활 전복, 향긋한 송이까지 재료의 신선하고 순수한 맛에 집중하자는 원칙 때문에 어떤 인위적인 간을 느끼기가 어렵다. 상상할 수 있는 재료의 맛 그대로에 가장 ... [2018-02-14](Hit:936)

‘고대법대’는 법대 그 이상이었다
전용호(국문86) 편집국장1920년 6월 25일자로 창간한 《개벽》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종합잡지였다. 천도교청년회에서 발행해 민족주의 성격이 강했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논설과 기사도 적극 게재했다. 문학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근대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잡지였다. 1926년 8월 폐간될 때까지 숱한 검열과 탄압을 받았지만, 매호 평균 8000부 판매를 기록할 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컸다. 《 개벽》이 한국 근대사회의 형성에 끼친 영향은 인문사회학자들의 중요한 연구과제이다.이 《개벽》의 창간 주역이자, 편집인, 발행인을 맡아 끝까지 활동하며 근대 잡지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가 차상찬(보전법과6회) 교우이다. 교우회보 편집국장이 된 후 그가 교우라는 사실을 알고 몹시 반갑고 놀라웠다. 그는 왜 보전 법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 보전 강사로도 활동한 그가《개벽》 편집자로서 숱한 고난의 길에 헌신할 수 있었을까. ‘보성전문’과 ‘보전 교우들’에 대해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계기였다.모교의 역사는 ‘고대법학’의 역사와 함께한다. 한국 근대법학의 역사이기도 한‘고대법학’은 이제 법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된다. 언제나 시대 변화에 앞장서온 모교가 한국 법학의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 기대한다.다만, 차상찬의 예에서 보듯이, ‘고대법학’은 단순한 법조인양성소가 아니었다.법대 교우들은 법률가의 길을 가든 아니든, 우리 역사 굽이굽이에서 법률 실무가 이상의 역할을 담당했다. 몇몇 사람을 거명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만큼, 수많은 ‘고법’ 출신들이 이 나라 역사의 주역이었다.‘법대생’들이 재학시절 담당했던 역할까지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법전원생들이 재학하는 동안 ‘자유, 정의, 진리’의 고대정신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만... [2018-02-14](Hit:704)

고대인의 공간 - 정문 소나무길
SK미래관 공사로 도로통행이 어려워지자 정문에서 학생회관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던 소나무숲에 새로운 길 만들어졌다. 이곳에 자리잡은 100그루의 소나무는 2004년,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이상일(상학57) 고대경제인회장의 기증으로 심어졌다. 오래 전 선배가 심어놓은 사랑의 나무가 후배들에게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글 이정훈 기자 [2018-02-14](Hit:478)
<자명고> 소소한 이야기
김미경(독문83)편집위원방송작가1982년 겨울, 세상물정 모르고 걱정 없이 살던 스무 살의 나는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었다. 주머니 속의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늘 라면이냐 짜장밥이냐를 결정하는 주사위를 던지는 게 일이었지만, 결국 점심을 건너뛰고 당시 학교 앞에 유행처럼 번지던 카페라는 곳에서 좋아하는 팝송을 DJ에게 신청하는 호사를 누리며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금언을 실천하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었다. 그 흔한 14K 졸업반지도 신청하지 못해 마음속에 바람이 휘잉 지나가던 졸업 즈음, (주)대우에서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 여사원 공채라는 시혜를 베풀었다. 구름떼처럼 몰려가 시험을 치른 나와 내 친구들 중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그 경쟁률이 얼마나 어마어마했었는지 가늠이 된다.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뽑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취직용 영어책 보다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훨씬 가까웠던 때이니 ‘고대쯤 나왔는데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자세로 취업에 임했던 것 같다. 그 후, 그냥 놀거나 공부를 더 할 형편이 아니었던 터라 정말 수도 없는 회사에 원서를 보냈었다. 하지만 나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남자 동기들이 추천서를 두 세장씩 들고 골라서 입사하는 걸 부럽게 지켜보면서, 지원서를 보낸 그 많은 회사들의 거절의 편지가 담긴 우체통을 닳도록 열어 보면서 얼마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었는지. 그렇게 몇 달을 기다려 처음으로 입사한 곳은 을지로의 한 작은 출판사였다. 2층 편집실로 향하는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오르던 첫 출근의 설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이제 대학 졸업을 앞 둔 아들은 스물세 살 첫 출근을 하던 당시의 나보다 나이가 많다. 영어도 제법... [2018-02-14] (Hit: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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