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Home > 교우회보 > 칼럼

칼럼

<자명고>4차산업혁명시대 高大의 변화
정진택(기계공79) 편집위원모교 공과대 학장·기계공학부 교수 무술년 새해를 맞아 모교는 113년, 교우회도 111 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됐다. 역사 적으로 우리학교를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대학, 또는 최초의 근대식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그 긴 역사가 21세기에도 남다른 경쟁력이 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배출됐고 다양한 전공의 적지 않은 교수들이 봉직하고 정년하였다. 배출된 교우들도 사회 각층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조직과 국가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끼쳐왔다. 또한 교무처를 비롯한 각 부처에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됐고 그 결과물들이 산출되어 왔다. 그 중에는 당연히 학교를 발전시킨 성공도 있고 가슴 아픈 실패사례도 있다. 그런데그 모든 결과물들이 손실 없이 쌓여져 있고 체계 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을지는 의문이다. 비록 쌓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무조건 긍정적인 경쟁력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자랑하는 긴 역사가 의미 있는 경쟁력이 되려면 그동안 쌓여 있는 경험과 자료들을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새롭게 시작된 무술년에도 4차산업혁명이란 화두는 지속될 것이다. 작금의 디지털 혁명은 산업 구조는 물론 사회 전반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 디지털 혁명 시대를 이끄는 주요 기술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 기술, 얻은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통신기술, 모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 데이터 기술,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AI 기술 등 크게 4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즉 모든 기술이 데이터(자료)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어떤 조직이든 의미 있는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어야 이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이제는 생산되는 데이터를 수동적으로 쌓아놓는 것 뿐만아니라 유의미한 데이터를 능동적으 로 수집하는 ... [2018-01-12](Hit:1113)

‘서궐도’ 밑그림으로 복원되는 조선궁궐, 경희궁을 아시나요?
모교 박물관 소장 ‘서궐도안(西闕圖案)’(위 사진). 가로 402㎝, 세로 127㎝ 크기로 1800년대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아래는 서궐도안을 범본으로 동궐도 채색을 참고해 복원한 채색 서궐도(서울역사박물관 소장). ①은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으로 2002년 그림 속 자리에 복원됐으며, ②는 숭정문, ③은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자리엔 구세군회관이 세워져있어, 복원된 문은 현재 숭정문 앞에 있다.고려대학교박물관을 찾은 단체 관람객에게 대표 유물인 국보 동궐도를 설명하다 보면 종종 “그러면 서궐도 있겠네요? 서궐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친 궁역이 동궐임을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서궐은 잘모른다. 그만큼 우리 기억 속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었다.서궐은 경희궁 별칭, 가장 훼손 심한 궁궐흔히 서울을 ‘궁궐의 도시’라고 한다. 경복 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의 5대 궁궐이 대표적이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생소한 궁이 경희궁인데 이를 일명 서궐이라 부른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동궐과 대비된 별칭이기도하다.현재 교보문고 빌딩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서대문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고 바로 옆에 약간의 비탈길 도로 위로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이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안 보이는 위치에 있다.우리의 궁궐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파괴를 당했지만 경희궁만큼 기구한 운명을 지닌 궁도 없을 것이다. 현재 흥화 문, 숭정전 등 7동의 건물이 복원되었지만 궁이라고 할 정도의 모습은 전혀 느낄 수없다. 안내판도 경희궁이 아닌 경희궁지 (慶熙宮址)라 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경희궁은 광해군 때인 1620년에 창건 되었다.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 으나 1760년 영조 때 경희궁으로 개... [2018-01-12](Hit:1024)

홍콩에서 ‘한참’ 가실래요?
홍콩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팔색진미세트(왼쪽 사진). 코차이나 이종석 대표(오른쪽 사진)는 자신의 인생이 모교 입학30주년 행사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교우모임에 적극적이다.지난해 7월 31일 홍콩 방송국 TVB의 인기 음식 소개 프로그램 온식반단(搵食飯團) 촬영 후 홍콩 연예인들과의 기념사진.‘홍콩’ 하면 떠오르는 건 쇼핑과 먹거리이다. 전 세계 비즈니스 인구들이 몰려들어 세계화 된 지오래된 홍콩의 까오룽 반도. 그중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침사추이에서 바다를 따라 동쪽 으로 이동하다 보면 유명한 샹그 리라 호텔을 만날 수 있다.이번 달에는 바로 그 옆 건물 엠파이어 센터에 자리한 한국 식당 ‘한참’을 방문했다. 요리라면 내로라하는 홍콩에서 순수한 맛으로만 교포보다 현지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 2호점까지 문을연 ‘한참’을 경영하는 이종석(통계85) 교우를 만나보았다.식당에 들어가니 식사 시간이꽤 지난 낮 시간인데도 홍콩 현 지인들과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서울에서도 못 보던 비쥬얼로 개발된 팔색진미세트는 그대로 한국으로 가져가 도입해도 성공을 거둘 것 같은 창의적인 아이템이다.한국에서도 먹고픈 팔색진미세트드라이에이징으로 숙성시킨 고급의 고기 맛, 홍콩에서 한국인 주방장이 가장 많이 일하는 한인 식당이라는 점도 자랑할 만할 뿐더러, ‘한참’ 이라는 브랜드 로고는 캘리그래프계에서 매우 잘 알려진 강병인 서예가의 글씨라고 하니, 작은 곳까지 신경을 쓴 오너의 섬세함이 엿보인다.이종석 교우는 ‘고대를 빼고 나 면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고대사랑이 지극하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IBM 전무로 일하던 그의 인생은 모교입학 30 주년 행사 전과 후로 나뉜다. 동기 골프회 부회장, 합창단 솔리스트 등 그가 중심이 되어 치러낸 고대의... [2018-01-12](Hit:775)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
최남숙(신방88) 편집위원 EBS수능교육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30대 혹은 40대 혹은 50 대… 혹은 80대에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50대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고 조직에 몸담은 연수로 치자면 20년을 훌쩍 넘겼다. 만 시간 법칙이 라고 했던가. 한 분야에 전문가로 통하려면 만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고 하던데 그렇게 치자면 난 ‘조직에서 살아남기’ 노하우에 달인의 경지여야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서툴다.오해를 할까봐 미리 밝히면, 나는 그동안 회사 일이 재미있었다. 보람도 느꼈고 나름 성과도 냈다. 이런 내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압박감에 시달 리고 있다. 새.로.운.시.작.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내 회사 생활은 축구 경기로 치면 후반 20분쯤 된다. 이때쯤 축구 감독은 선수 교체를 통해 경기 속도나 흐름을 바꾼다. 내 회사 생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직에서 떨려나는 기분이 아닌 설레는 기분으로 회사 문을 나서려면 난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까.100세 인생이 저주가 아닌 선물이 되려면 난도대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인지. 오늘은 플랜A를 생각했다가 내일은 플랜B를 생각하고 도무지 정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플랜A든 플랜B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이런 나날들을 보내던 중 지난 11월 15일간 핀란드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다. 발길 끊긴 듯한 눈쌓인 숲 속에 새 조차 날지 않고 물결마저 일지 않는 겨울 호수. 모두가 정지된 듯한 자연 속에 오직내 숨소리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하는 북국의 대자연에 파묻혀 있었다.귀국해 여행 여운이 남아 있던 차에 핀란드하면 추천하는 <카모메 식당>이라는 오래된 일본 영화를 보았다. 핀란드에서 주먹밥 파는 일본 여 성들 이야기다.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달째 파리... [2017-12-15](Hit:718)

고산자로 북쪽끝 고려대박물관에서 김정호의 서울지도를 보다
고대박물관 소장 수선전도 목판, 가로 67.5㎝, 세로 82.5㎝(왼쪽). 수선전도 인쇄본(오른쪽,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은 고대박물관 목판 수선전도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목판본 지도로 1864년에 다시 판각하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려대학교 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커먼 나무판 한 점이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언뜻보면 볼품없는 판자처럼 보이지만 이는 보물 제853호로 지정된 수선 전도(首善全圖) 목판이다.‘수선(首善)’이란 말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고교화지행 야(故敎化之行也) 건수선자경사시(建首 善自京師始) 요내급외(繇內及外)” 즉 “옛날 교화를 행할 때에는 모범을 세우되 경사로부터 시작했으니 안에서 밖으로 미친 것이다”라고 한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경사’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 또는 왕이 사는 곳으로 나라의 도읍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나라의 도읍을 수선지지(首善之 地)라 표현했다. 따라서 수선은 본보기가 되는 가장 좋은 땅이란 뜻으로 조선에서도 서울을 일컫는 말로 썼다.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 계는 1394년 개경에서 한양(漢陽)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다음 해인 1395년 한양을 한성(漢城)으로 개칭하였다. 1910년 일제 강점기 경성(京城)으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조선시대 수도의 공식 명칭으로 한성이 쓰였다. 조선시대 서울지도의 명칭은 수선전도을 비롯하여 한양도·한성도·경 조도·경성도·도성도 등 약 20종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김정호가 그린 서울지도 목판 정밀한 아름다움 고스란히 살아있어수선전도 목판은 고산자 김정호가 1824년에서 1834년 사이에 제작한 서울지도를 찍던 목판이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 미국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 등 국내 외에 인쇄된 수선전도가 널리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우리 박물관 소장 수선 전 도 목 판... [2017-12-15](Hit:766)

덤벼라 소고기! 포쿡이 있다
“ 광 화 문 에 가 면 뭘먹지?” 세상의 모든 맛집이 다 모인 것 같지만, 딱히 한 끼의 만족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시내 한복 판. 이곳에서 맛과 분위기와 또 포만감까지 완벽하게 채워줄 맛집을 찾아냈다. 더욱이 고대 교우가 운영한다니 이 아니 반가울까. 그 세렌디피티는 디 타워 3층에 자리한 ‘포 쿡’. 알고 보니 광화문 점 한 곳만이 아니라 상암, 왕십리, 건대 등등 능력이 되어야 살아남는 맛 거리에 직영점들이 이미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내공있는 식당이다.이 식당의 주인 추동윤(사회92) 교우를 만나보았다. 산뜻한 외모와 착한 얼굴로 겸손이 그의 컨셉인 듯 자기 자랑을 절제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일 뿐입 니다.”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취재가 길어질수록 음식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뭐라 말하지 않아도 배어나온다.돼 지 고 기 를 직 접 가 공 하 는 C K (Central Kitchen)을 통한 엄격한 재료에 대한 기준, 그리고 매번 압력밥 솥에 지은 새 밥을 서빙하는 한 끼 밥에 대한 철학. 영업시간 내내 주방 안에 달구어져 있는 숯 그릴을 이용한 슬로우 푸드 개념으로 만들어 내는 소고기보다 더 맛있는 돼지고기 스테이 크, 그리고 함부로 새 메뉴를 넣기 보다는 늘 있는 메뉴에 내실을 기하느라 고민하는 자세까지 ‘잘되는 맛집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증명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이것저것 성공 비법을 물어봐도 계속 배시시 웃으며 ‘그저 열심히 하다 보니’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오히려 사업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과 스포츠 얘기에 눈이 더 반짝인다. 아마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음식이라 더 따뜻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엔젤링 가득한 생맥주 한 잔을 곁들여 남다른 비쥬얼만으로도 입에서 군침이 ... [2017-12-15](Hit:1149)
크림슨 서재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 별들이 보인다 /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정진규, 〈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문학세계사, 1990.지난 9월말 정진규(국문58) 시인이 별세했다. 정진규 시인은 1988년부터 25년간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아 사실상 혼자서 잡지를 만들어 왔다. 열악한 재정 속에서도 시 전문지 《현대 시학》이 30년 가까이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정진규 시인의 공이다. 그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최정례(국문 74), 조정권, 최승호, 이덕규 등 걸출한 시인들을 배출했다. 스스로 어둠이 되어 별들을 낳았다. 연말연시의 흥겨운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고대인들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 별들을 낳은 고인의 삶을 보며 따듯한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김선형 기자 [2017-12-15] (Hit:365)

손님도 주인도 함께 행복해지는 곳
대학 1학년 봄, 명동 에서 회전초밥이란걸 먹어본 적이 있다.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 하는 감탄과 더불어 비싸서 몇 접시 못 먹고 들어온 그날 밤, 자려고 누우니 천장에서 회전 초밥 접시가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 ‘행 복한 스시’에 가니 그날의 아련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이렇게 착한 가격에 이렇게 신선하고 푸짐한 스시라 니. 경영학과 김현모(83) 교우가 직접 양질의 수산물을 수입해서 그 신선한 식재료로만 만들어 운영하는 ‘행복한 스시’를 찾았다. 동원 그룹에 10여년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수산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우리 시장에 좋은 식재료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노력하던 끝에 수산물 수입 전문업체를 설립하고, 그 회사에서 수입하는 생선으로 식당을 낸 걸 보면, 그의 올곧은 성격만큼이나 한우물 파기의 내공이 느껴진다. 대만산 틸라피아 라는 생선을 수입하면서 한때 왜곡된 보도로 고전했던 수입 수산물 시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데 일조한 공으로 감사패까지 받은바 있는 김현모 대표의 철학을 물으니 ‘올바른 먹거 리로 행복하게 더불어 살기’ 라는 심플한 답을 내놓는다. 그 때문에 그의 고대 사랑은 유별나 다. 이미 오래 동안 경영대 동기회 대표를 맡아 네트워크를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으며, 학번 동기회 수석 부회장 및 고대 이름을 가진 많은 모임들 에 큰 역 할 을하고 있 다 . 그의 이메일 주소에 있는 502020이란 숫자의 의미를 물으니 2020년에 50만명에게 그가 공급하는 식사를 먹일 수 있는 꿈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행복한 스시의 초밥은 그래서인지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우선 어이없게 푸짐하다. 밥을 덮는 두툼하고 신선한 생선 덕분에 스시보다는 생선 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점심식사 한끼로 든든 하니 낮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 [2017-11-15](Hit:660)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청춘이었다
최수지(불문14) 학생기자 가을이 성큼 다가오면서, 학교 주위가 부쩍 왁자지껄해졌다. 오랜만에 석탑 동산을 찾아 온 반가운 손님들 때문이다. 모교 방문 축제가 열리면서, 한 때 안암을 채웠던 그리운 목소리들이 다시 캠퍼스에 모였다. 비록 십 수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와 참살이길의 모습은 변했을지라도, 동기들과 함께했던 대학시절의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 덧씌워지는 모양이다. 지금은 잔디로 뒤덮인 중앙광장에서 공을 차던 일이나 이전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 다던 참살이길에 가방을 던져놓은 채 부리나케 술집으로 사라졌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교우들의 목소리에는 그 시간 들에 대한 그리움과 고려대학교에서 빛나는 청춘을 보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뿌듯함이 담겨있었다. 이전에는 학교가 지겹게만 느껴졌었기에 안암 곳곳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선배 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떠날 때가 다가올수록 캠퍼스가 다르게 느껴졌다. 수업에 늦어 단풍이 예쁘게 진 다람쥐길을 뛰어갈 일도, 중앙광장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맥주 한캔을 기울일 일도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나도 몇 십 년 뒤에는 기억 속 모습과 달라져버린 학교를 찾아 추억을 더듬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근처 술집 앞을 지나다 보면, 문 너머로 지난 회포를 푸는 교우들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동기들의 모임이란 학벌주의의 온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손가락질을 받기 쉽다. 한 집단 안에서 공부했다는 소속감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끈끈한 우애가 학벌주의라는 그늘 아래 부끄러운 감정인 양 퇴색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교방문 축제와 같은 동기 모임을 통해 학우들은 잊고 지내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 그 때의 추억들을 꺼내보기도... [2017-11-15](Hit:536)

조선왕가 아기 태 담은 항아리, 15세기 분청사기 세련된 아름다움 보여줘
모교박물관 소장 분청사기인화문 태항아리는 왕실 아기 태를 담은 내항아리(오른쪽)와 이 항아리를 담은 외항아리 (왼쪽)가 한 벌이다. 김상덕(역교84) 모교 박물관 학예부장1960년대 어느 날 고려대학교박물관에 교환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한 전화니까 빨리 받으라고. 전 화기가 귀한 시절이라 모든 전화는 대학본부 총무과 교환실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기 무슨 도자기 같은 게 있으니까 와서 한번 봐달라는 건설 현장 인부의 전화였다.그 현장이 바로 우리 대학 자연계 캠퍼 스, 일명 ‘애기능 캠퍼스’ 경계에 있는 건설 현장이었다. 지금의 신공학관 옆의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곳이다. 이런 우연한 기회로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하게 된도자기가 국보 제177호로 지정된 왕실의 아기 태를 담아 보관한 항아리 ‘분청사기 인화문태항(粉靑沙器印花文胎缸)’이다.출토지 자연계캠퍼스, 길지임을 입증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태를 태어난 아기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히 다루었다. 특히 왕실의 태는 국운이 달렸다하여 매우 특별히 관리했 다. 일단 왕실에서는 출산이 다가오면 태실도감을 설치해 전국의 명당을 찾아 태를 봉할 장소인 태실지(胎室地)를 정했 다. 일반적인 절차는 출산 직후 태를 즉시 항아리에 담아 산실 안에 미리 점지해 놓은 길한 방향에 안치해둔다. 길일을 택해 태를 깨끗이 씻은 다음 작은 항아리인 내항아리 밑에 동전 한 개를 깔고 그 위에 비단으로 싼 태를 넣어 밀봉 한다. 이를 더 큰 항아리인 외항아리에 흰솜을 채운 뒤 그 속에 밀봉한 내항아리를 넣었다. 이 특별한 항아리가 바로 태항아리인 것이다.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고려 대학교박물관 소장 태항아리는 발견 당시 내항아리가 짚망태기에 넣어져 외항아리에 담겨져 있었는데 고운 흙이 3분의 2쯤 차 있었다고 한다... [2017-11-15](Hit:797)
다음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