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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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덤벼라 소고기! 포쿡이 있다
“ 광 화 문 에 가 면 뭘먹지?” 세상의 모든 맛집이 다 모인 것 같지만, 딱히 한 끼의 만족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시내 한복 판. 이곳에서 맛과 분위기와 또 포만감까지 완벽하게 채워줄 맛집을 찾아냈다. 더욱이 고대 교우가 운영한다니 이 아니 반가울까. 그 세렌디피티는 디 타워 3층에 자리한 ‘포 쿡’. 알고 보니 광화문 점 한 곳만이 아니라 상암, 왕십리, 건대 등등 능력이 되어야 살아남는 맛 거리에 직영점들이 이미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내공있는 식당이다.이 식당의 주인 추동윤(사회92) 교우를 만나보았다. 산뜻한 외모와 착한 얼굴로 겸손이 그의 컨셉인 듯 자기 자랑을 절제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일 뿐입 니다.”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취재가 길어질수록 음식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뭐라 말하지 않아도 배어나온다.돼 지 고 기 를 직 접 가 공 하 는 C K (Central Kitchen)을 통한 엄격한 재료에 대한 기준, 그리고 매번 압력밥 솥에 지은 새 밥을 서빙하는 한 끼 밥에 대한 철학. 영업시간 내내 주방 안에 달구어져 있는 숯 그릴을 이용한 슬로우 푸드 개념으로 만들어 내는 소고기보다 더 맛있는 돼지고기 스테이 크, 그리고 함부로 새 메뉴를 넣기 보다는 늘 있는 메뉴에 내실을 기하느라 고민하는 자세까지 ‘잘되는 맛집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증명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이것저것 성공 비법을 물어봐도 계속 배시시 웃으며 ‘그저 열심히 하다 보니’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오히려 사업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과 스포츠 얘기에 눈이 더 반짝인다. 아마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음식이라 더 따뜻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엔젤링 가득한 생맥주 한 잔을 곁들여 남다른 비쥬얼만으로도 입에서 군침이 ... [2017-12-15](Hit:1124)
크림슨 서재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 별들이 보인다 /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정진규, 〈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문학세계사, 1990.지난 9월말 정진규(국문58) 시인이 별세했다. 정진규 시인은 1988년부터 25년간 월간 《현대시학》의 주간을 맡아 사실상 혼자서 잡지를 만들어 왔다. 열악한 재정 속에서도 시 전문지 《현대 시학》이 30년 가까이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정진규 시인의 공이다. 그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최정례(국문 74), 조정권, 최승호, 이덕규 등 걸출한 시인들을 배출했다. 스스로 어둠이 되어 별들을 낳았다. 연말연시의 흥겨운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고대인들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 별들을 낳은 고인의 삶을 보며 따듯한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김선형 기자 [2017-12-15] (Hit:341)

손님도 주인도 함께 행복해지는 곳
대학 1학년 봄, 명동 에서 회전초밥이란걸 먹어본 적이 있다.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 하는 감탄과 더불어 비싸서 몇 접시 못 먹고 들어온 그날 밤, 자려고 누우니 천장에서 회전 초밥 접시가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 ‘행 복한 스시’에 가니 그날의 아련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이렇게 착한 가격에 이렇게 신선하고 푸짐한 스시라 니. 경영학과 김현모(83) 교우가 직접 양질의 수산물을 수입해서 그 신선한 식재료로만 만들어 운영하는 ‘행복한 스시’를 찾았다. 동원 그룹에 10여년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수산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우리 시장에 좋은 식재료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노력하던 끝에 수산물 수입 전문업체를 설립하고, 그 회사에서 수입하는 생선으로 식당을 낸 걸 보면, 그의 올곧은 성격만큼이나 한우물 파기의 내공이 느껴진다. 대만산 틸라피아 라는 생선을 수입하면서 한때 왜곡된 보도로 고전했던 수입 수산물 시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데 일조한 공으로 감사패까지 받은바 있는 김현모 대표의 철학을 물으니 ‘올바른 먹거 리로 행복하게 더불어 살기’ 라는 심플한 답을 내놓는다. 그 때문에 그의 고대 사랑은 유별나 다. 이미 오래 동안 경영대 동기회 대표를 맡아 네트워크를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으며, 학번 동기회 수석 부회장 및 고대 이름을 가진 많은 모임들 에 큰 역 할 을하고 있 다 . 그의 이메일 주소에 있는 502020이란 숫자의 의미를 물으니 2020년에 50만명에게 그가 공급하는 식사를 먹일 수 있는 꿈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행복한 스시의 초밥은 그래서인지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우선 어이없게 푸짐하다. 밥을 덮는 두툼하고 신선한 생선 덕분에 스시보다는 생선 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점심식사 한끼로 든든 하니 낮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 [2017-11-15](Hit:614)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청춘이었다
최수지(불문14) 학생기자 가을이 성큼 다가오면서, 학교 주위가 부쩍 왁자지껄해졌다. 오랜만에 석탑 동산을 찾아 온 반가운 손님들 때문이다. 모교 방문 축제가 열리면서, 한 때 안암을 채웠던 그리운 목소리들이 다시 캠퍼스에 모였다. 비록 십 수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와 참살이길의 모습은 변했을지라도, 동기들과 함께했던 대학시절의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 덧씌워지는 모양이다. 지금은 잔디로 뒤덮인 중앙광장에서 공을 차던 일이나 이전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 다던 참살이길에 가방을 던져놓은 채 부리나케 술집으로 사라졌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교우들의 목소리에는 그 시간 들에 대한 그리움과 고려대학교에서 빛나는 청춘을 보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뿌듯함이 담겨있었다. 이전에는 학교가 지겹게만 느껴졌었기에 안암 곳곳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선배 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떠날 때가 다가올수록 캠퍼스가 다르게 느껴졌다. 수업에 늦어 단풍이 예쁘게 진 다람쥐길을 뛰어갈 일도, 중앙광장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맥주 한캔을 기울일 일도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나도 몇 십 년 뒤에는 기억 속 모습과 달라져버린 학교를 찾아 추억을 더듬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근처 술집 앞을 지나다 보면, 문 너머로 지난 회포를 푸는 교우들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동기들의 모임이란 학벌주의의 온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손가락질을 받기 쉽다. 한 집단 안에서 공부했다는 소속감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끈끈한 우애가 학벌주의라는 그늘 아래 부끄러운 감정인 양 퇴색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모교방문 축제와 같은 동기 모임을 통해 학우들은 잊고 지내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 그 때의 추억들을 꺼내보기도... [2017-11-15](Hit:503)

조선왕가 아기 태 담은 항아리, 15세기 분청사기 세련된 아름다움 보여줘
모교박물관 소장 분청사기인화문 태항아리는 왕실 아기 태를 담은 내항아리(오른쪽)와 이 항아리를 담은 외항아리 (왼쪽)가 한 벌이다. 김상덕(역교84) 모교 박물관 학예부장1960년대 어느 날 고려대학교박물관에 교환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한 전화니까 빨리 받으라고. 전 화기가 귀한 시절이라 모든 전화는 대학본부 총무과 교환실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기 무슨 도자기 같은 게 있으니까 와서 한번 봐달라는 건설 현장 인부의 전화였다.그 현장이 바로 우리 대학 자연계 캠퍼 스, 일명 ‘애기능 캠퍼스’ 경계에 있는 건설 현장이었다. 지금의 신공학관 옆의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곳이다. 이런 우연한 기회로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하게 된도자기가 국보 제177호로 지정된 왕실의 아기 태를 담아 보관한 항아리 ‘분청사기 인화문태항(粉靑沙器印花文胎缸)’이다.출토지 자연계캠퍼스, 길지임을 입증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태를 태어난 아기의 생명의 근원으로서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히 다루었다. 특히 왕실의 태는 국운이 달렸다하여 매우 특별히 관리했 다. 일단 왕실에서는 출산이 다가오면 태실도감을 설치해 전국의 명당을 찾아 태를 봉할 장소인 태실지(胎室地)를 정했 다. 일반적인 절차는 출산 직후 태를 즉시 항아리에 담아 산실 안에 미리 점지해 놓은 길한 방향에 안치해둔다. 길일을 택해 태를 깨끗이 씻은 다음 작은 항아리인 내항아리 밑에 동전 한 개를 깔고 그 위에 비단으로 싼 태를 넣어 밀봉 한다. 이를 더 큰 항아리인 외항아리에 흰솜을 채운 뒤 그 속에 밀봉한 내항아리를 넣었다. 이 특별한 항아리가 바로 태항아리인 것이다.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고려 대학교박물관 소장 태항아리는 발견 당시 내항아리가 짚망태기에 넣어져 외항아리에 담겨져 있었는데 고운 흙이 3분의 2쯤 차 있었다고 한다... [2017-11-15](Hit:732)

<자명고> '일흔 살' 고대신문
금교돈(교육79) 편집위원 조선미디어 씨에디터 대표이사 우리는 고대신문 기자였다.우리는 ‘동인(同人)’이라 부른다. 가족보다, 친구 보다, 연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우(戰友)’라고도 부른다.전사(戰士)처럼 세상과 부딪히며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어리바리 신입생 시절, 풍선처럼 떠 있다가 풍선처럼 1년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1980년 고대 신문과의 조우. 장학금, 활동비에 군침 흘리며 친구와 입사 시험장에 들어섰다. 친구는 왔던 길로 돌아나가고 나 홀로 직진한 그 길은 외길이었다.37년 동안 헤어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한 ‘운명적 수렁’이었다.고대신문은 학교 안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하지만, 강의실이 아니라 홍보관 2층 편집실이었다. ‘소주 나발식’으로 시작된 고대신문 기자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1980년 대한민국을 휩쓴 칼바람은 편집국에도 그대로 몰아쳤다. 선배들은 오뉴월 개혓바닥처럼 흐물흐물해진 심신을 ‘기사 퇴짜’와 시국 논쟁, 음주와 ‘빠따’로 벼려 주었다.서울시청에 자리 잡은 계엄사 신문 검열단은 빨간 사인펜으로 ‘불온 기사’를 도려냈다. 신문은 기사가 삭제된 자리를 비워둔 채로 발행됐다. 나름의 거친 항변이었다. 그 신문을 보려고 학생들은 홍보관 수위실 앞에 장사진을 쳤고, 그 비화(秘話)를 들으려고 친구들은 편집실로 찾아왔다.기자 생활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있을 즈음 휴교령이 떨어졌다. 탱크와 군인들이 교문을 가로막 았다. 편집실과 강의실로 가는 길이 막히자 우리는 주점에 진을 쳤다. 비루한 세상을 탓하며 날마다 폭음했다.그로부터 37년, 일흔 살이 된 고대신문과 마주한 다. 고대가 내 마음의 고향이라면, 고대신문은 내 청춘의 고향이다.고희(古稀)의 고대신문은 최고(最古), 최초, 최고(最高)라는 타이... [2017-11-14](Hit:714)

친구의 부엌으로 놀러오세요!
  식탁을 준비하는 엄마의 등 뒤에서 아이 들은 늘 묻곤 한다.“오늘 반찬 뭐예요?”엄마는 늘 식구의 입맛대로 요리를 준비 하시고, 그 밥상을 받은 우리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초가을 햇살에 선선한 바람이 살랑 거리는 양재천 길 모퉁이에서 그런 식당을 만날 수 있었다.한식 퓨전요리 식당‘부엌98’이다.농생물학과 85학번 박증아 교우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이미 ‘테이스티 로드’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는 맛집이 다. 까다로운 미식가들의 품평을 받는 양재천 식당가에서 이미 5년간 자리를 잡았다는 걸로 맛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을까?‘부엌98’은 말 그대로 놀러간 친구집 식탁처럼 친근하지만, 잠깐 시계 소릴 멈추고 커튼을 내린 채 한잔의 낮술에 취하고 싶기도 한 그런 공간이 다. 인공 감미료가 단 1그램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맛과 정성어린 재료들로 만들어 낸 눈부터 즐거운 요리들.물잔 하나도 도예가의 손을 빌린 묵직 하고도 고급스런 그릇에 담아내는 주인의 미감.오랫동안 보석상을 경영했다는 박증아 교우의 세련된 감각으로 장식된 심플한 인테리어의 실내에 앉아 함께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취재를 온 것이 아니라 소녀같은 미소의 친구를 만나러 온 것 만 같다. 박 교우는 호농회(농구 써클) 동아리 선후배 이외에도 많은 고대 선후배들이 입학 30주년 행사 이후 많이 찾 아 주어 고마 움을 전하고 싶단다. 문득 털털한 성격의 박교우의 손을 잡아본다. 보석을 취급하던 고왔던 손이 이젠 직접 부엌일을 하다 보니 투박하게 마디가 잡히지만 그래서더 자부심이 생긴단다.메뉴는 멍게비빔밥에서부터 치즈 해물도리아, 일본식카레까지 같은 식탁에서 한식과 양식을 한꺼번에 맛볼수 있으며 따라서 술도 와인부터 막걸 리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그냥 박 교우 자신이 그야말로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만 허... [2017-10-10](Hit:1027)

세계 과학자들이 주목한 ‘혼천시계’, 궁궐 복원의 밑그림 ‘동궐도’
조선 궁궐 전모를 담고 있는 동궐도. 일제가 파괴한 궁궐 복원의 기초자료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1934년 본관 준공시 3층 한 편의 작은 도서 실에서 출발했다. 이후 뜻있는 분들의 기증과 박물관의 전문적인 발굴, 수집, 구입 등을 통해 현재 고고·역사·민속·서화·도자· 현대미술·교사(校史)자료에 걸쳐 1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국내 대학은 물론 세계 어느 명문대학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훌륭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이중 국보 3점과 보물 4점, 중요 민속자료 2건, 등록문화재 2점이 문화재로 그리고 유진오 헌법초 안과 안재홍 미군정문서 등 2건이 국가지정기록물로 등록됐다.  1만원권 지폐에 도안한 혼천시계 조선과학 우수성 세계에 입증해1930년대 초창기 박물관 출발에 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당시 인촌 김성수 선생은 보성전문 30주년기 념사업으로 민족 성금으로 도서관 건립을 추진해 전국에서 기부금을 모금 했다. 경향 각지 심지어 해외에서도 성금이 답지 했다.이 소식을 들은 고창에 사는 안함평 여사가 김성수 선생댁을 방문하여 토지문서를 전달하고 그 재산을 보람 있게 써달라고 인촌 선생에게 일임했다.알고 보니 주막업을 하며 근검절약해서 모은 전재 산이었다. 인촌 선생은 그아름다운 뜻을 길이 활용 하기 위해 그 토지를 재원 으로 우리나라 여성민속품을 수집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에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다량 유출되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결심이었다.이후 1937년 도서관이 준공되자 인촌선생은 일부 공간에 역사 민속품을 보관하는 참고품 진열 실을 두었다. 솔선하여 본인 소장의 민속품과 골동품도 기증하 였다. 이 때 기증된 골동품 중에 현재 국보 230호 지정된 혼천시 계(渾天時計)가 있다... [2017-10-10](Hit:791)

교가<校歌>가 사라진다
김기용(국문96) 편집위원 동아일보·채널A 기자 돌이켜보면 고려대학교 모임의 마지막은 늘 교가 (校歌)였다. 참살이길에서 신나게 응원을 펼치다 가도 끝에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교가를 불렀다.이모집, 고모집, 부산집 등에서 막걸리 수 십 통을 먹고 나서도 끝끝내 교가를 부르고서야 헤어졌다.고등학교 동문회에서도 고교 교가를 부르고 그 다음에 꼭 고대 교가를 불렀다. 선배들이 그렇게 알려줬고, 선배들은 그 앞 선배들한테 그렇게 배웠 다. 이 전통이 사라질 리 없다는 믿음 때문에 ‘교가를 모르는 고대생은 없다’고 확신했었다. 대한민 국에서 교가를 아는 대학생이 고대생말고 어디 있으랴. 고대생들이 가진 다른 여러 장점들과 결합 해 “고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말을 자연 스럽게 들었다. 나름 큰 자부심이었다. 적어도 2017년 정기 고연전날까지는 그랬다.2017년 9월 23일, 고연전 사상 처음으로 다섯 종목 전체 패배를 당했다는 충격보다도 어린 후배 들이 교가를 모른다는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연(緣)이 있는 16학번, 17학번 후배들 앞에서 “북 악산 기슭에 우뚝 솟은 집을 보라. 안암의 언덕에 퍼져나는 빛을 보라”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러 줬다. 어린 후배들은 무슨 노래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 후배들만 우연히 모르는 게 아니었 다. 이들은 지금까지 참살이길에서 수십 차례 응원을 했고, 고연전을 수차례 따라다녔는데도 단한 번도 교가를 부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교가를 모른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교가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예전엔 고연전이 끝날 때 응원단 주도로 교가를 불렀다. 고대생 모두가 부르는 교가는 늘 우렁찼 다. 고대생들은 경기가 끝나도 교가를 다 부를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연세대학교도 교가를 불렀지만 소리가 작았다. 1996년 3월 농구장에서 도 그... [2017-10-10](Hit:813)

<자명고> 고대박물관 소장 어보 반환 논란에 대해
김상덕(역교84) 편집위원모교 박물관 학예부장 지난 7월 조선왕실 어보(御寶) 2점이 한미정상회 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대통령 전용기에 실려 고국 으로 돌아왔다. 이 2점을 포함해 지난달 18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다시 찾은 조선왕실 어보’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전시와 관련해한 정치인이 “서울 소재 모 대학 박물관에서 어보 2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가에 반환하지 않으면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서 ‘모 대학 박물관’은 바로 고려 대학교박물관이다.어보는 조선의 왕과 왕비, 세자, 세자빈에게 왕실의례를 통해 올려진 인장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국새(國璽)와 다르지만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사후엔 종묘에 봉안되었는데 한국전쟁 기간에 수십 점이 분실됐다. 모교 박물 관은 현재 1404년 태종비 원경왕후 금보 1점과 1676년 현종비 명성왕후 옥보 1점을 소장하고 있다. 1961년 구입한 기록이 있다. 문화재보호법은 1962년 제정됐다. 모교 박물관의 어보 소장에 법적 하자는 없다. 그런데도 자진 반납, 강제 몰수 등의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고려대학교박물관은 1934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대학 박물관이다. 당시 고창의 안함평 여사가 인촌 김성수 선생댁을 방문해 토지문서를 전달하며 보람 있게 써달라고 당부했다. 안 여사가 주막 업을 하며 근검절약해 모은 전재산이었다. 인촌은그 토지를 재원으로 우리나라 여성민속품을 수집 하기로 결정했다.인촌은 보성전문학교 신축 도서관에 유물 전시 공간을 만들고, 솔선하여 본인 소장의 골동품도 기증했다. 그 중엔 현재 국보 230호로 지정된 혼천시계가 있다. 혼천시계에 부착된 혼천의가 우리 들이 매일 보는 1만원권 지폐에 도안된 그 혼천의 이다. 모교는 1962년에는 박물관 전용건물을... [2017-09-15](Hit: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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