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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열린 자세로 자주 교류해야
이상출 태백교우회 총무 총무직을 맡게 된 계기는?태백교우회에서 총무일을 맡아 보시던 김용근(물리67) 교수님이 95년도에 돌아가신 후부터 총무직을 지금까지 계속 맡고 있다. 실무자로서 어려움이 있다면?아무래도 젊은 교우들을 발굴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태백의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인구가 줄면서 교우들을 발굴하기가 힘들어졌다. 모교를 졸업한 후 태백 지역으로 취직하는 젊은 교우들이 거의 없다. 교우회에 바라는 점은?옛날에는 같은 교우라고 하더라도 학부 출신인지 대학원 출신인지 무슨 과를 나왔는지 등을 심하게 따졌다. 이제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부담 없이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교우들이 평소에도 자주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 [2018-07-12](Hit:43)

젊은 교우들의 진입 창구 있었으면
김지혜 화성교우회 총무 교우회를 알게 된 계기는?한 선배님께서 화성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고대생들을 파악해 달라고 부탁하셨고, 그 인연으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취업 후에도 연락이 와서 자연스럽게 모임에 나오게 됐다. 실무자로서 어려움이 있다면?젊은 교우들이 많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젊은 교우들이 교우회에 들어올 수 있는 계기나 접촉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하다. 자생적으로 교우들이 모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교우회에 바라는 점은?지역 교우회 행사 시 기념 케이크나 현수막의 모양, 색깔, 양식 등에 있어서 교우회 표준 양식과 매뉴얼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2018-07-12](Hit:47)

네트워킹 강화 위해 노력하겠다
홍정건(의학65) 교우가 6대 미주지부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미국에 있는 홍 교우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회장이 된 소감을 말해 달라막중한 일을 맡게 돼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해서 미주지부연합회를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시카고 지역과 의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회장이 돼 영광이고, 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할 것입니다.  본인을 간단히 소개하면?1971년에 모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에 새로운 세계인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수련을 마치고 시카고 북부 교외에서 개업하여 37년째 재활의학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주지부연합회는?2008년 출범해 올해로 10년이 됐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애틀랜타, 워싱턴 D.C., 댈러스 등 미국 내 각 지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올해로 6차 총회를 맞게 됐으며, 6대 미주지부연합회 회장으로서 임기 중 전 미주 지역 간 네트워킹 강화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이번 총회에 대한 소감한 학교의 동창회가 정기적으로 전 미주 차원에서 모임을 가지고, 이렇게 결속이 잘 되는 단체는 단연 우리 고려대학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제6차 미주지부연합회 총회는 미국 전역에서 모인 100여 명의 교우들이 111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모교가 추구하는 고대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가 돼 좋았습니다.김민주 기자 [2018-07-12](Hit:48)

융합·특성화로 세종캠퍼스만의 연구·교육 역량 높아지고 있어
모교 세종캠퍼스가 도약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지난 2015년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던 세종캠퍼스. 3년이 지난 지금, 2018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자율개선대학’ 평가를 받아 정원감축 제한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향후 3년 동안 일반재정지원(연간 30~90억 규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세종캠퍼스의 혁신과 캠퍼스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9월에 세종부총장으로 취임, 세종캠퍼스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안정오 부총장에게 세종캠퍼스만의 역량과 비전을 들어봤다.세종부총장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감은 어떠신지요?세종부총장에 취임하고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 준비와 구조개혁 안정화 작업 등으로 지난 1년을 보내고 나니, 10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1980년에 설립된 세종캠퍼스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이제는 모든 대학들이 부러워하는 캠퍼스가 됐습니다. 저는 우리 캠퍼스가 연구를 잘 하도록 기반을 다지고, 구성원들과 교우들이 모두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 캠퍼스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합니다. 또한 보다 국제화된 캠퍼스를 만들어 행정도시인 세종시의 이름에 걸맞은 캠퍼스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세종캠퍼스가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습니까?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대학으로서 재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 비전 2025 “창의교육 - 실용연구 대학, 미래 100년을 개척하는 제2의 창학”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특성화 계획을 수립해 ‘ICT융합 및 NEXUS-BIO융합’을 특성화 선도 분야로 선정했고, 이의 달성을 위해 2017학년도 학사구조 전면개편 및 캠퍼스 정원조정을 실시했습니다. 학생지원 분야에서도 사회적 요구와 교육 수요자 니즈에 부합하는 비교과 프로그램(학습역량 강화 프로그램, 진로 및 상담, 취창업지원) 운영... [2018-07-12](Hit:43)

수십년 동안 매주 만났던 ‘고일회’ 친구들 고맙고 그리워
서 교우의 1945년 학생증.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교명을 빼앗긴 수난기의 학생증이다.금천구의 한 요양병원. 서복섭 교우는 아들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왔다. 2년 전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서 교우는 교우회비 제도가 생긴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회비를 냈다. 그런데 2016년부터 연회비를 내지 못했다. 그해에 서 교우는 요양병원에 들어왔고, 교우회보를 받아보지 못하면서 회비 지로도 받지 못했던 것.호적상 1924년이지만 실제로는 1923년 출생으로 96세이다. 1943년 보성전문에 입학해 1946년 졸업했다.소화 연호의 경성척식경제학교 학생증“입학 첫 해엔 학교수업을 잘 받았어요. 그 뒤론 인천 조병창에서 소총 만드는 일에 동원됐어요. 나는 전기과에서 일했는데, 동원됐지만 기술 배워서 나가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전시체제가 되면서 일본은 학생들에게 교련교육을 강화하고 근로동원을 강제했다. 조병창에 이어 관공서에 동원됐다.“집집이 다니면서 누가 사는지, 직업이 뭔지 조사하는 일이었어요. 전시 소개 작업을 위한 조사에 학생들을 동원한 거죠.”서복섭 교우는 당시 학생증(신분증명서)을 보여줬다. ‘소화 20년,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일제는 1944년 4월 교명을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변경했다. 소화 20년은 1945년. 새벽이 오기 직전 가장 어둡듯, 광복이 오기 전 교명조차 빼앗긴 수난의 흔적이 새겨진 학생증이었다.매주 월요일 점심은 ‘고일회’와 함께마침내 광복이 왔다. 4년제로 승격하며 교명이 고려대학교가 됐다. 학제 변동에 따라 1943년 입학생들은 ‘보전39회’로 졸업하거나 학부로 편입해 1949년에 졸업했다.교우회장을 역임한 김원기(정치45), 모교 총장서리를 지낸 김진웅(법학45) 교우는 학부 편입을 선택했다. 6선 국회의원이자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수상자인 이중재(... [2018-07-12](Hit:46)

재학시절 무의촌 진료에서 느낀 감동, 이주노동자에게 전합니다
  이주노동자 환자를 진료하는 김 교우.  주말에 무료 진료를 기다리는 이주노동자들.지난달 3일 개교 113주년 기념식 및 고대인의 날 행사에서 교우회가 수여하는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김창덕 교우. 그는 모교 의과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이주노동자 무료진료기관 ‘라파엘 클리닉’의 대표이사로서 진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소외된 이웃에게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보내는 김 교우를 찾았다. 사회봉사상 수상 소감을 부탁드립니다먼저 이런 큰 상을 받게 돼서 매우 기뻤습니다. 사실 이 상은 그동안 함께 봉사활동을 해온 동료, 학생 등 주변의 많은 분들 덕분이며, 단지 제가 대표로 받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봉사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데도 제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어렵고, 아픈 이주노동자들을 열심히 도와드리라는 격려로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 무료진료 봉사를 하게 된 계기와 진료 현황은?저는 2003년 1월 창립 7년을 맞이한 라파엘클리닉에 합류했습니다. 환자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 격주 일요일 오후 진료만으로는 진료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져 창립멤버인 서울대 안규리 교수와 김전 교수로부터 고려대 의과대학 팀의 합류를 제안 받았습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모교 의료진 및 의과대학 학생들(가톨릭 학생회)과 약학대 학생들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와 고대가 격주로 진료를 진행하고, 고대 학생들은 평균 스무 명 가량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환자들의 건강상태는?매주 일요일 평균 300여 명 이상의 환자들이 이곳에 방문합니다.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진료건수 순위가 고혈압성 질환, 치과질환, 당뇨병, 대사성 질환, 순환기계 질환, 소화기계 질환 등으로 나타납니다. 라파엘 클리닉을 찾는 환자... [2018-06-12](Hit:118)

“내가 보증하니 보내줘!” … 전쟁 중 생명 구해준 보전교우 잊지 못해
1923년생, 96세의 조성복 교우를 노원구 월계동 자택에서 만났다.“1941년 입학해서 1943년 9월에 졸업했어요. 3년 과정인데, 전시체제라 일제가 수업연한을 6개월 단축했지요. 38회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졸업식도 하고 학교에서 취업 알선도 해줘서 동기들이 관청이나 회사에 들어갔지요.”일제가 수업연한을 단축한 건 장병 수급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성복 교우는 경기도청 토지계량과에 근무했다. 도지사가 일본 사람인데 다행히 징병 얘기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시청 옆 부민관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곤 징병을 권유했다. “도청 근무시절 보전에서 체육을 가르치던 이병학 선생이 토지관계로 오신 적이 있어요. 직원들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데, 이 선생이 너희들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호통을 치고 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보통 관청에 오면 굽실거리게 되는데 일본 사람들한테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곤, 역시 기개가 살아있다고 생각했어요.” 보전에서 민족사상 배워 교육자가 됐다조 교우는 함경도 북청 출신이다. 함흥고보를 나와 보전에 입학했다. 관계나 법조계로 나갈 수 있어 법과를 택했다. “유학가거나 경성제대 들어간 후에 보전이나 연전은 마지막에 가는 거라 솔직히 열등감이 없지 않았어요. 막상 들어가니까, 민족사상이 또렷하고 교수님들을 통해 식민지가 된 조국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유진오 박사가 헌법을 가르쳤는데 ‘너희들 졸업하면 학교를 세워라, 인재를 양성해라’ 그런 말을 자주 했지요. 그 영향으로 도서관에서 페스탈로치 전집을 읽게 됐고 광복 후 교육자로 평생을 살았네요.”조 교우는 광복 후 중등학교 교사가 됐다. 대광중고에서 30여년 재직했고 대광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보전 졸업장이면 취직할 수 있었고, 나중에 문교부에... [2018-06-12](Hit:137)

아이들이 즐겁게 꿈을 ‘키’우며 놀 수 있게 ‘돕’습니다
 감정표현하기 수업.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를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아이.공부가 싫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유니스트(울산 과기대)를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보고 모교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전공보다는 마케팅에 흥미가 많아서 직접 마케팅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 영유아 대상 방문교육 스타트업 키돕(kidop) 대표 김성미(컴퓨터12) 교우의 이야기이다. 어린이에게 꿈이란 놀이 같은 것?키돕은 과학수사, 가드닝, 감정표현 등, 영유아를 대상으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해 학부모로부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미술을 전공하셨던 어머니와 체육을 전공하셨던 아버지는 저를 낳고 공부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공부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아요.”김성미 교우가 처음부터 교육관련 창업을 목표로 스타트업에 뛰어든 건 아니지만, 그녀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키돕의 교육방식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녀의 부모는 공부보다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그림 그리기, 피아노 등의 악기 연주, 승마 등의 체육활동, 말하자면 공부 빼고는 다해 봤다. 그리고 김 교우는 어릴 때부터 독서도 좋아했다.“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때 아마 제가 처음 꿈을 가졌던 것 같아요.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하지만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고, 피아노 연주자도 되고 싶었습니다.”꿈은 매번 찾아왔다. 즐거운 것들은 모두 그녀의 꿈이 됐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벽 앞에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그녀는 공부를 꽤 잘했다. 그녀의 발목을 잡은 건,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23시까지 꼼짝없이 학교에서만 보내는 게 싫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마음껏 놀았다고 한다... [2018-05-16](Hit:217)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는 부시맨 닥터
마다가스카르 한국인 의사 이재훈(의학86) 교우. 이 교우는 2005년 마다가스카르로 넘어가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벌써 13년 째 그곳에 살고 있지 만, 힘들기보다는 말라가시(마 다가스카르 사람)들이 더 걱정 된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오지를 찾아 나서고 있다.“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프리카 선교 의사였습니다.”이재훈 교우가 중학생 시절, 자신의 신앙에 의심이 들었을 때가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진지했던 그는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모교 의학과에 입학했고 2005년 드디어 약속의 땅 아프리카 마다가스카 르로 떠나게 된다.“생각보다 많이 열악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500여 명의 의사가 우리나라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마다가스카르에는 6개의 의과대학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의사를 배출하는 곳은 단 2곳.전문의 과정을 거치기에도 교육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 게다가 인구 천 명당 의사의 수는 0.16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도시에 몰려있다.환자 치료 위해 때론 노숙도“오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된 수술을 받으려면 차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서 2~3일, 그리고 차로 도시까지 이틀, 도착해서 진료를 받기까지의 기간을 합치면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이재훈 교우의 말에 따르면 치료를 받기 위해 돈을 빌려 도시를 찾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돌아가서도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고된 환경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 되고야 만다. 그래서 이 교우는 진료조차 받기 어려운 오지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를 구매해 오지 진료를 떠난다. 어떤 곳은 밤낮을 달려 3일이 걸리는 경우도... [2018-05-16](Hit:218)

최초의 고대출신 학술원 원장, 학계 최고 권위자로 모교 명예 드높이다
대한민국학술원은 1954년에 창설됐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우리나라 학술발전에 큰 공적을 남긴 학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국내외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학술기관으로 대한민국학술원법에 규정돼 있다. 그리고 학술원 창립 64년만에 최초의 경영학 전공, 최초의 고려대 출신 회장이 선출됐다. 바로 김동기(상학54·모교 경영대 명예교수)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문학도에서 경영학의 길로김 회장은 학창시절 잡지나 교내 학예지에 시와 수필을 투고하면서 문학도의 길을 꿈꿨다. 그러나 중학교 4학년 때 6·25가 발발했다. 전란을 피해 안동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급하게 떠나느라 식량과 돈을 충분히 챙기지 못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미군부대 행정서기까지 갖은 고생을 했다.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면서 국민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경험한 김 회장은 조국의 경제 재건에 힘을 보태고자 문학도의 꿈을 접고 경영학을 택했다. 그리고 1954년 모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김 회장은 유진오 총장이 김 회장에게 수석 입학을 축하하는 의미로 금파커 만년필을 수여하며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 군, 국적을 바꿀 수는 있어도 교적은 바꿀 수 없다. 한 번 고대인은 영원한 고대인이다.” 김 회장과 모교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2003년 안동고 교정에서 열린 김동기 교수 시비제막식.한국 유통근대화의 선구자모교에서 수학하고 뉴욕대 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친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미국식 물류관리를 소개한 《현대유통기구론》과 《한국의 물류산업》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물류의 과학화, 자동화, 체계화, 협업화에 많은 공헌을 했다. 마케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미국식 마케팅을 처음으로 도입한 해외 유학파의 한 사람이다. 첫 저서인 《... [2018-04-16](Hit: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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