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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육은 대학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
“교육부총장 제도가 생겼던 것은 미래지 향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 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인재 발굴과 선발, 교과과정과 비교과과정, 국제교류 등 교육의 역할이 더욱 세분화되고, 중요해진 까닭에 교육을 다시 종합적으로 디자인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길성(사회75) 교육부총장은 지난 10 여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없고, 변화에 무뎌지면 어떤 조직이든 살아남기 힘들 다면서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창업 열풍과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바뀌고 있다. 박 부총 장은, 대학 최고 가치인 교육의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합지능 키워 미래 선도할 인재 양성최근 모교는 입학처 대신 인재발굴처로 명칭을 바꿨다. 박 부총장에 따르면, 논술을 폐지하고, 고교추천제와 면접을 강화하 며, 잠재력과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2018년 입시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대학 교육 역시 달라지고 있다. “대학 교육은 이제 학생들에게 자기설계 역량, 문제해결 능력, 합리적 결론 도출 등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복합지 능을 키워줘야 합니다.”근육이 저절로 생기지 않듯 사고하는 훈련을 통해 지적 근력을 키워야 한다. 박길성 부총장은 이러한 점에서 대학 교육의 자율성에 주목했다. 관련된 예로, 2년전 염재호 총장은 3무(無)정책을 실시했다. 출석체크·상대평가·시험감독 폐지가 골자다. 박 부총장은 3무정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교육의 다양성으로 자율성 확대 “제도가 문화로 공유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반 강제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동료들과 경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3무정책과 같은 제도들이 문화로 공유되어진다면, 학생들이 자율성 속에서 스스... [2017-06-14](Hit:31)

대학연구, 학교 담 너머로 발을 내딛다
대학에서 연구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모교 부총장 제도가 교무부총장과 행정대외부총장직 에서 교육부총장과 연구부총장의 구성으로 개편된 지 2년이 지났다. 지난 두 해 동안, 모교는 비약적인 발전과 변화를 거듭 했다. 한 걸음 앞에서 모교의 로드맵을 그려내는 이관영 연구부총장을 만났다.  따로 또 같이, 연구 역량 강화 “올해에는 연구비 3000억 시대를 열 것입니다. 올 5월까지만 하더라도 투자받은 연구비가 1500억이 넘습니다. 이 추세 대로 라면 올해는 반드시 3000억을 넘길 것이고, 내년에는 또 이보다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주로 정부로부터 제공되는 연구비를 투자받기 위해서는 좋은 연구진과 탄탄한 기획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연구 비는 그 자체로 연구의 경쟁력을 의미한 다. 모교는 근 3년간 정부 연구비 상승폭 보다 높은 연구비 상승폭을 유지해 왔다. 앞으로도 충분히 연구비 상승의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모교가 새로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집단 연구다. 이 부총장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모교는 개인 연구에 비해 집단 연구 분야가 취약했다. 2015년 신설된 연구기획본부는 모교 교 수들의 집단 연구 기획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연구에서 사업까지, 대학의 자립이관영 연구부총장에 따르면 본교 예산은 1조 이상, 등록금 수익은 3000억 이하로 등록금만으로는 운영이 턱없이 버거운 실정이다. “대학이 나중에 어떻게 자립 하느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제는 대학이 더 이상 등록금을 통해 얻는 수익만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학은 수익을 창출하는 곳으로 변모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박사의 2/3가 대학에 있는 상황에서는 대학이 새로운 가치 창출을 해 내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도 없고, 대학... [2017-06-14](Hit:38)

예능 프로그램, 제겐 종합선물세트 같아요
12일 동안 함께 촬영하며, 더 끈끈해지고 돈독해진 스태프들과 함께 한 단체사진. 가운데 캡모자를 쓴 사람이 이진주 PD. 얼마 전 익숙한 듯 낯선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막을 내렸다. 방영되는 두 달 내내 많은 사람들에게 바쁜 일상 속 쉼표를 선사 했던 ‘윤식당’. 배우들이 해외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꽃보다○○’시리즈나, 시골 마을에 가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줬던 ‘삼시세끼’같은 프로그램과 얼핏 비슷하면서도 열대해변 앞에서 한식당을 연다는 포맷은 신선했다. 모든 게 느릿느릿 흘러가는 길리 섬의 풍광을 보며 사람 들은 저마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느꼈다. ‘윤식당’은 분당 최고시청률이 16.7% 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 그램이 끝난 뒤, 이 교우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제 인지도가 올라갔다던가 그런 걸 크게 실감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연락이 올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 전화를 받고 신기했죠. 저는 편집실에서만 살던 사람 인데,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 니다.”  단순한 재미보다 출연자 감정 따라가는 예능언젠가부터 예능의 시대가 시작됐다. 예능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면서, 프로를 기획·연출하는 예능 PD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 중에서도 나영석 PD는 독보적인 존재다. 이진주 교우는 나영석 PD 밑에서 예능의 모든 것을 배웠다. 그녀 스스로도 행운이었다고 말할 만큼, 예능 PD 를 희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이었다. 이진주 교우는 처음부터 PD를 희망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저는 사실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언론 사를 지망했는데 다 안됐죠. 그러다가 엠넷에 음악피디로 지원을 하게 됐어요.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당시에는 채용되고 인턴과정이 있었는데 예능국... [2017-06-14](Hit:35)

법치주의 확산 40년 인생, 내 뿌리는 고대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서 만난 김인섭 교우. 뒤쪽의 수많은 법전이 김 교우의 삶을 말해준다. 2017 자랑스러운 고대인상김인섭(행정55) 교우 해방직후의 시기, 초등학생이었던 추풍령 두메산골 ‘촌놈’은 마을에 5일장이 서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접할 수 있는 책이라곤 일본영웅전을 번역한 책이 전부라는건 언제나 아쉬웠다. 이는 오히려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위인이 되겠 다는 다짐을 어린 마음에 싹틔웠다. 촌놈은 어느새 80살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노인은 만 40년의 세월동안 암행 어사 박문수 같은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법조인으로 고군분투했다. 평생에 걸쳐 법치주의를 추구했던 법조인, 김인섭 교우다.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인 김인섭 교우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 선정된 것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저보다 뛰어난 교우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받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 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것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학교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 니다.”  돈이 아니라 가치를 쫓아 달려온 법률가 김인섭 교우는 1961년 고등고시 사법과를 합격한 후, 법관 18년, 변호사 22년 총만 40년의 기간을 법조인으로 살아왔다. 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법관 재임기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과 거의 일치해 예상치 못한 어려 움이 있었다. 강단 있고, 소신 있는 판사로 유명하던 그는 돌연 변호사로 전향했 다. 하나의 길 위에서 안주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김인섭 교우는 지난 40년의 세월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법조인... [2017-05-19](Hit:82)

학생들에게 사랑 받는 의학교육자, ‘의사 외교관’으로 국위 선양도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활짝 웃고 있는 박 교우.2017 자랑스러운 고대인상박경아(의학68) 교우 박경아(의학68)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가 2017년도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 교우는 전공인 해부학분야에서의 학문적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의대 교수로 37년간 재직하는 동안 학생교육에 혼을 쏟아 학생들이 뽑는 ‘올해의 교수 상’을 3번이나 받았으며, ‘제1회 연세의대 알렌의학교육상’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 최우수 강의 교수’에도 선정되어 학내에서 ‘잘 가르치는 교수’로 정평이 나 있다. 박 교우는 제30대 세계 여자의사회 회장을 역임하며 글로벌 역량까지 과시했다. 교우회는 박 교우가 모교의 명예를 빛낸 것을 치하하는 의미로 박 교우를 2017년도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수상자로 선정 했다.  -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우선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수많은 졸업생들 중에서 이런 큰 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제가 연세의대에서 활동을 잘했던 것이 수상자로 선정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탈수 있는 상이란 상은 거의 다 받았습니 다. 학술상을 시작으로, 최우수 강의상, 우수업적교수상, 그리고 올해의 교수상을 무려 세 번 받았습니다. 2013년 처음 만들어진 알렌 의학 교육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고려대 출신으로서 연세대에서도 누구 에게도 지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고대인상도 제가 고려대 출신 으로서 연세대에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고대 덕입니다.“  - 교우님의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 [2017-05-19](Hit:94)

“내가 가진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통해 모교 발전 계속 돕겠다”
이수동 교우는 “주변 사람들이 ‘연고전’이란 용어를 쓰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연전’이라 고쳐 부르게 한다”고 했다.2017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이수동(산공69) 교우 서글서글한 눈매, 여유 있는 손짓, 좋은 풍채까지…. 지난 2일 모교 인촌기념관 에서 만난 이수동 미국 STG 회장은 한 눈에 봐도 성공한 기업가 모습이었다. 이수동 교우가 움직이는 발걸음마다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런 그가 기자에게 건넨 첫 마디는 ‘회 장님’ 포스와는 거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교우는 “고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힘쓰고 있다”며 “주변 사람들이 ‘연고전’이란 용어를 쓰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연전’이라 고쳐 부르게 한다”고 말했다. ‘고대’를 말하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소감이 어떠십니까.“국내외에서 활동하는 30만 교우를 대표한 상을 받게 돼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경영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 달라는큰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업 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제가 가진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통해 모교의 발전을 계속해서 돕겠습니다.”  - 2004년 장한 해외고대인상, 올해 2월 자랑스러운 공대인상에 이어 자랑스러운 고대인상까지 수상하셨습니다. 이 같은 수상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이전부터 해왔던 모교와 조지워싱 턴대 양교 사이의 가교 역할을 더 충실히 맡아 달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 두 나라간 교육적인 파트너십을 강화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주기를 바라는 의미로 교우회에서 이 같은 상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 교우님께서는 모교와 조지워싱턴대 사이의 가교를 ... [2017-05-19](Hit:91)

‘4·18’ 매개로 재학생과 더 많이 만나겠다
“1960년은 한 번 정권에 찍히면 가족에게도 피해가 오던 시절이었지. 시위에 앞장서기 망설여지는 때였어.” 박규직(상학59) ‘4월혁명고대’ 회장은 4·18 의거 당시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 내내 인자하게 웃던 박규직 회장의 눈빛도 이때만큼은 진지하고 또렷해졌다.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교 학생들은 ‘새 시대’를 위해 앞장서 길거리로 나섰다. 학생들이 모인 4월 18일에 현승종 모교 학생처장이 교문에서 “나를 밟고 가라”며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감옥에 갈 것이라 예상해 목욕재계하고 담배를 여러 갑 챙겨온 학생도 있었다. 박규직 회장은 “민족대학인 고대 구성원이 누구보다 앞장서 시위에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며 “시위 후에 받을 불이익에 대한 불안감도 컸었지만,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그것을 감수하고 길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뤄낸 혁명치고 이를 기리는 단체가 늦게 만들어진 편입니다.(‘4월혁명고대’는 지난 2009년에 만들어졌다.)“고대생들은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어요. 이 때문에 오히려 자중하고 겸손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타 대학에서 4·19혁명 직후부터 많은 단체를 만들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한 것일 뿐, 내세울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렇다면 2009년에 단체를 만들게된 배경은 무엇입니까.“4·18 의거 정신의 계승 때문입니다. 단체를 만들어 어떤 이익을 취하거나 우리의 업적을 뽐내려던 것이 아니에요. 4·18 당시 주역이었던 고 이기택(상학57) 선배가 주축이 돼 4·18 의거의 정신과 역사를 후배들에게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입니다.”- 후배들은 4·18을 마라톤 행사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선배들의 혁명 정신을 계승하실건가요.“후배들이 지금보다 좀 더 진지하게 4·18의 뜻을 기... [2017-04-14](Hit:215)

<아세아문제연구소> 아연 60주년, 고대가 키운 세계적 연구소
한국 최초 대학부설연구소 오는 6월 기념행사 예정   모교 아세아문제연구소 60주년 기념 로고.모교 아세아문제연구소(이하 ‘아연’)가 오는 6월 17일, 설립 60주년을 맞는다. 아연은 1957 년 한국 최초의 대학부설 연구 소로 창설된 이후 동아시아 지역 연구를 위한 인적·물적 연구 인프라를 구축해 오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동아시아종합연 구소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이종화 소장을 만났다. “특별히 60주년이어서 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 니다. 다만 연구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연이 걸어온 역사와 연구결과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작년 9월 준비 위원회를 구성해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연은 “새로운 60년,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 로”라는 제목으로 6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학술분 야, 국제교류, 학문후속세대 양성 등을 주제로 오는 6월 15일(목)부터 17일(토) 까지 기념행사를 모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 예정이다. 먼저 학술분야. “아연의 발자취가 담긴 3권의 책이 발간됩니다. 연구소의 60년사, 연구소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 연 구소의 중요한 자료들을 담았습니다. 또한 한국을 뛰어넘어 국제적인 연구 소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 영 문 학 술 지를 발간할 예정입니다. 중국 북경대, 일본 와세다대 등 5개국, 5개 대학이 참여하며 고려대가 중심이 되어 아시아가 협력하는 공동체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아연은 창립 초기부터 지역학 연구기관으로 독보적 위상을 정립했다. 연구소의 학문적 역량 역시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성장 했다. 60주년 행사에서 국제교 류가 중요한 이유다.“동아시아의 학문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동아시아의 갈등 과 협력에 ... [2017-04-13](Hit:222)

“도시 틈새에서 버티고 자라는 풀, 우리 모습과 닮아있죠”
풀은 사방에 있다. 너무 익숙해서 가끔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되지만, 어디에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풀이 있다. 그리고 여기 풀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꽃이 아니고 나무가 아닌, 그저 풀. 다양한 방식으로 잡초를 담아낸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묻게 된다. 왜 하필 풀인가요?  동양사를 거쳐 서양미술로김제민 교우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모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서울대 서양미술학과에 입학했다. 미대 동기들 보다 7년 늦게 시작한 셈이다. 모교를 졸업하고 떠났던 베이징에서 1년간 어학연수 생활을 했다. 그 기간동안 앞날에 대한 고민끝에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칭찬을 많이 듣긴 했지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뒷심이 떨어져서 망치는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집에서 만화를 많이 그렸어요. 학교 미술하고는 방향이 달랐던 거죠. 지금 하는 작업들도 드로잉적인 것이 더 강해요. 저는 차곡차곡 쌓아서 구조를 만드는 회화보다는, 제가 이입하고 싶은 감정을 순간적으로 캐치해서 담아내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이 소재와 연결돼작품에는 작가의 전 생애가 담긴다. 삶의 경험들이 세계를 보는 기준을 만들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품에 담긴다. 김제민 교우는 초·중·고 시절을 수유동에서 보냈다. 매일 북한산을 보며 자라서 그랬 는지, 자연에 대한 친숙함은 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풀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아니예요. 자꾸 풀을 그리게 되다 보니제 스스로 왜 풀을 그리는가 생각을 하게된 거죠. 풀이란 소재는 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이국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다. 유년시절 잠깐 미국에서 자란... [2017-04-13](Hit:223)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내면을 열어 보세요
월호스님(이동준·토목76)대한불교조계종 행불선원장불교방송 라디오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진행자《아무도 너를 묶지 않았다》, 《리셋》 등 저술.“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들이 시작점이었죠.”누구에게나 각자의 고통과 고뇌가 있다. 사람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위 환경을 바꿔보기도 하고, 힐링 멘토들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월호스님(이동준·토목76)은 말한다. “대기업에 취직해 나름의 삶을 살아가던 중 가까운 주변사람들의 잇따른 죽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회의감이랄지……, 그렇게 1여 년의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스님이지만, ROTC와 군복무를마치고 대기업에 취직도 했었던 이동준교우는 갑작스레 찾아온 지인들의 죽음으로,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일까? 죽음은 무엇일까? 다양한 질문들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교우는 스스로의 고민들에 작은 해답들을 찾아 갔다. 그리고 이과정은 불교와 맞닿아 있었다. 그에게 불교의 ‘선’은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의심과 질문 속에서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것. 이 교우는 동국대학교 선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쌍계사에 출가했다. 그리고 그의 고뇌와 수행, 그리고 깨달음을 공유하기 위해 월호스님으로서 행불선원을 운영하고 있다.‘참나’, 평정심의 자리“많이 힘든 세상이죠. 경제 침체, 취업 문제 각 세대마다 저마다의 고통이 있을 것 입니다.” 월호스님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고통의 주체는 누구일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으로 구분을 하지만, 이것 이전에 본마음(성품)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정말 내가 아픈 것인가? 아니라면 누가 아픈 것인가?... [2017-03-15](Hit: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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