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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들이 즐겁게 꿈을 ‘키’우며 놀 수 있게 ‘돕’습니다
 감정표현하기 수업.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를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아이.공부가 싫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유니스트(울산 과기대)를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보고 모교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전공보다는 마케팅에 흥미가 많아서 직접 마케팅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 영유아 대상 방문교육 스타트업 키돕(kidop) 대표 김성미(컴퓨터12) 교우의 이야기이다. 어린이에게 꿈이란 놀이 같은 것?키돕은 과학수사, 가드닝, 감정표현 등, 영유아를 대상으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해 학부모로부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미술을 전공하셨던 어머니와 체육을 전공하셨던 아버지는 저를 낳고 공부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공부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아요.”김성미 교우가 처음부터 교육관련 창업을 목표로 스타트업에 뛰어든 건 아니지만, 그녀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키돕의 교육방식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녀의 부모는 공부보다는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그림 그리기, 피아노 등의 악기 연주, 승마 등의 체육활동, 말하자면 공부 빼고는 다해 봤다. 그리고 김 교우는 어릴 때부터 독서도 좋아했다.“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때 아마 제가 처음 꿈을 가졌던 것 같아요.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하지만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고, 피아노 연주자도 되고 싶었습니다.”꿈은 매번 찾아왔다. 즐거운 것들은 모두 그녀의 꿈이 됐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벽 앞에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그녀는 공부를 꽤 잘했다. 그녀의 발목을 잡은 건,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23시까지 꼼짝없이 학교에서만 보내는 게 싫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고 마음껏 놀았다고 한다... [2018-05-16](Hit:33)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는 부시맨 닥터
마다가스카르 한국인 의사 이재훈(의학86) 교우. 이 교우는 2005년 마다가스카르로 넘어가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벌써 13년 째 그곳에 살고 있지 만, 힘들기보다는 말라가시(마 다가스카르 사람)들이 더 걱정 된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오지를 찾아 나서고 있다.“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프리카 선교 의사였습니다.”이재훈 교우가 중학생 시절, 자신의 신앙에 의심이 들었을 때가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진지했던 그는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모교 의학과에 입학했고 2005년 드디어 약속의 땅 아프리카 마다가스카 르로 떠나게 된다.“생각보다 많이 열악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500여 명의 의사가 우리나라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마다가스카르에는 6개의 의과대학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의사를 배출하는 곳은 단 2곳.전문의 과정을 거치기에도 교육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 게다가 인구 천 명당 의사의 수는 0.16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도시에 몰려있다.환자 치료 위해 때론 노숙도“오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된 수술을 받으려면 차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서 2~3일, 그리고 차로 도시까지 이틀, 도착해서 진료를 받기까지의 기간을 합치면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이재훈 교우의 말에 따르면 치료를 받기 위해 돈을 빌려 도시를 찾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치료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돌아가서도 빌린 돈을 갚기 위해 고된 환경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 되고야 만다. 그래서 이 교우는 진료조차 받기 어려운 오지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를 구매해 오지 진료를 떠난다. 어떤 곳은 밤낮을 달려 3일이 걸리는 경우도... [2018-05-16](Hit:29)

최초의 고대출신 학술원 원장, 학계 최고 권위자로 모교 명예 드높이다
대한민국학술원은 1954년에 창설됐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우리나라 학술발전에 큰 공적을 남긴 학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국내외에 대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학술기관으로 대한민국학술원법에 규정돼 있다. 그리고 학술원 창립 64년만에 최초의 경영학 전공, 최초의 고려대 출신 회장이 선출됐다. 바로 김동기(상학54·모교 경영대 명예교수)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문학도에서 경영학의 길로김 회장은 학창시절 잡지나 교내 학예지에 시와 수필을 투고하면서 문학도의 길을 꿈꿨다. 그러나 중학교 4학년 때 6·25가 발발했다. 전란을 피해 안동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급하게 떠나느라 식량과 돈을 충분히 챙기지 못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로 직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미군부대 행정서기까지 갖은 고생을 했다.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면서 국민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경험한 김 회장은 조국의 경제 재건에 힘을 보태고자 문학도의 꿈을 접고 경영학을 택했다. 그리고 1954년 모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김 회장은 유진오 총장이 김 회장에게 수석 입학을 축하하는 의미로 금파커 만년필을 수여하며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 군, 국적을 바꿀 수는 있어도 교적은 바꿀 수 없다. 한 번 고대인은 영원한 고대인이다.” 김 회장과 모교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2003년 안동고 교정에서 열린 김동기 교수 시비제막식.한국 유통근대화의 선구자모교에서 수학하고 뉴욕대 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친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미국식 물류관리를 소개한 《현대유통기구론》과 《한국의 물류산업》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물류의 과학화, 자동화, 체계화, 협업화에 많은 공헌을 했다. 마케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미국식 마케팅을 처음으로 도입한 해외 유학파의 한 사람이다. 첫 저서인 《... [2018-04-16](Hit:116)

“줄기차게 싸워온 35년 역사,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야죠”
박시백 화백이 지난달 30일 홍대앞 카페에서 만화 《35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300만부가 넘게 팔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박시백 교우가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으로 다시 돌아왔다. 박 교우는 일제강점기 35년을 5년 단위로 나눠 1권 ‘1910-10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2권 ‘1916-1920 3·1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3권 ‘1921-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을 출간했다. 나머지 4, 5권은 2018년 말까지, 6, 7권은 2019년 말까지 완간하는 것이 계획이다. “학교에서 배운 몇 명의 애국자, 매국노만 생각했는데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선조들이 아주 의연하고 줄기차게 싸워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알리는 것이 《35년》의 목표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책장 넘기기를 수월하게 하기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왜 일제강점기 35년을 작품대상으로 했나?일제강점사가 지금과 멀지 않은 역사이고, 현대사와도 굉장히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우리 역사에서 35년이라는 역사가 식민지였기 때문에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역사로 기억되는데, 비록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식민지가 되긴 했지만 참으로 줄기차게 싸워온 해방 투쟁의 역사라고 인식을 전환하고 싶었다.2권 제목 ‘3.1혁명’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굉장히 갈등했던 부분이다. 원래는 3.1항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역사 선생님들과 의견을 교류한 뒤에, 표지 만들고 거의 마지막 교정 단계에서 혁명으로 바꿨다. 우리가 4.19혁명을 미완의 혁명이라고 표현하듯이 혁명의 성격을... [2018-02-14](Hit:290)

뉴스를 디자인하다,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인터뷰를 위해 교우회관을 방문한 신유진 교우(왼쪽). 신 교우가 미국 이민정책과 이민자 수 추이를 시각화한 월스트리트 저널 지면(가운데). 신 교우가 사회 문제를 분석하고 디지털시각화 방법을 공부했던 뉴욕대학교 졸업식에서 친구가 석사모를 씌어주고 있다(오른쪽).신문지나 TV를 보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든지 뜨끈뜨끈한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웹 기반 뉴스들은 이제 지면을 벗어나, 분량, 그래픽, 포맷 등 형식의 제한이 없는 백지 위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여지없이 드러낼 수 있다. 현재 더월스트리트 저널 그래픽 팀에서 멀티미디어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신유진 교우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사용자와 데이터가 상호작용하는 뉴스“뉴스를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통해 보고 듣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수 있는 뉴스웹 환경을 구성하는 작업 입니다.”그녀가 담당하는 디자인 작업은 단순히 사진이나 그래프 등시각적인 디자인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사 안에서 화면에 들어오는 특정내용에 따라 음성 등의 효과음, 그래프의 수치 등이 실시간으로 제공되도록 웹환경을 구축해야 할 때도 있다. 신유진 교우는 이렇게 사용자와 기사, 정보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웹 뉴스를 인터랙티브(온 라인 그래픽 뉴스)라고 소개한다.그녀가 기획했던 프로젝트 중에 하나인 ‘Coming to America’는 이민과 관련된 정책이나 주요한 사건들과 합법적 이민자 수와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보여 준 인터 랙티브이다. 기사를 보기위해 손이나 마우스로 화면을 움직이면, 주요 키워드 제시와 함께 이민자 추이의 변화가 함께 나타나는 식이다.“실제 이 작업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 니다. 데이터를 발견해 분석하고, 이민자의 수와 정책들 간의 관계가 근거가 타탕 한지 조사도 해야 했습니다.”그녀는 이외에도 ... [2018-01-12](Hit:412)

우리는 ‘케이 유’씨, 4대째 고대 가족
2015년 정기고연전 응원에 함께한 유태우(왼쪽부터), 유창진 교우와 유현동 군. 유태우 교우는 고등학생인 아들과 정기전 자원봉사단으로 활동했다. 지난 10월말, 원로교우 한 분이 편집국을 방문했다. 교우회보 10월호 표지사진에 자신의 아들이 나왔다며 몇 부 더 가져가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월례강좌 회원인 유창진(경영56) 교우였다. 아들 유태우(교 육87) 교우는 입학30주년을 맞아 결성된 87학번 응원단으로 정기고연전에서 응원 전을 이끌었다. 교우회보 10월호는 정기전 사상 유례없는 참패에도 열심히 응원한 87응원단을 표지사진으로 게재했다.“손자도 올해 고대에 입학했어. 그래서 우린 4대째 고대가족이야.” 유창진 교우가 말했다. 유창진 교우의 선친 유달로(보 전법학25회) 교우는 1932년 졸업생이고, 손자 유현동 군은 올해 전자및정보공학과 17학번 입학생이다.개교 112주년인 모교의 긴 역사를 생각 하면 틀림없이 4대 교우가족이 나올 때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교우회보에서 이를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3대가족상 수상 가족이 4대가족으로유창진 교우가족은 1991년 제정된 제1회 고대가족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 작고한 유달로 교우는 시상식에 함께 오를 수없었지만, 그 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장본인 이기도 하다. 유태우 교우는 할아버지에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할아버지와 고려대, 이렇게 관련된 기억이 없어서 때로는 아쉽기도 합니다.”유태우 교우는 할아버지와 모교에 함께와 본 적이 없다. 3대가족상을 받은 가족 답게 유태우 교우가족은 개교기념일 행사 때마다 모교를 찾는데, 5월 5일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다.“5월 5일은 할아버지의 기일입니다. 학교 행사에 갈 때, 묘소에 들렀다가 갑니다.”아버지 유창진 교우를 따라 할아버지 묘소를 갈 때 자... [2017-12-15](Hit:496)

꽃 패턴그래픽으로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디자인하다
성수동에 위치한 마리몬드라운지에서 포즈를 취하는 윤홍조 대표.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꽃할머니 프로젝 트’를 진행하고 있는 브랜드 기업 마리몬 드. 마리몬드는 꽃 패턴그래픽을 이용,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소개한다. 또한 패턴 그래픽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의 판매 수익 중 50%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단체에 기부도 하고 있다.사회적 기업 마리몬드 대표 윤홍조(경영 05) 교우는 오늘도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 회에 참여해 사회문제에 귀기울이고 있다.할머니들과 처음 만난 날의 숙제윤홍조 교우는 2010년 모교 인액터스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다. 인액터스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주는 비영리 활동을 말한다. 그가 처음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서 진행됐다. 윤 교우는 이곳에서 위안부 할머 니들을 만나게 된다.“지금 생각하면 부채의식이 생겼던 것같아요. 위안부 문제에 쉽게 분노하고 쉽게 잊었던 모습, 그리고 할머니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을까하 는….”이러한 고민들은 윤 교우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창업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윤 교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고민하면서 점차 할머니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2012년 10월 25일에 회사를 설립했다. 꽃 패턴을 이용한 디자인 제품으로 얻은 수익의 일부분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단체에 기부하는 것. 현재의 마리몬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회사 설립 후 3개월 동안 고객들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던 이유는 무엇일까?디자인에 콘텐츠를 담다“다음해 3월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었어 요. 막연하게 성과를 내야한다는 생각에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제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제품을 보여주는 그래... [2017-11-15](Hit:596)

60년만에 보는 고연전
신일균(법학49) 교우 고연전 열린 동대문구장서 6.25소식 접한 후 처음올해 잠실 경기장에는 60년 만에 고연전을 관람한 교우가 있다. 신일균(법학49) 교우가 그 주인공이다.1950년 6월 25일, 그날 동대문운동장에서는 고연전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 다. 전반전 하프타임이 끝나고 양교 학생들은 열띤 응원을 펼치며 후반전을 기다렸 다. 경기는 좀처럼 재개되지 않았다. 이윽고 장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나운서가 38 선이 뚫렸다며 전투가 벌어 졌다는 거야. 학생들에게 경기를 못하니 빨리 집에 돌아 가라고 그랬어.” 신 교우는 경기장을 나와 돈암동에 위치한 하숙집까지 걸었다. 밤늦게 집에 도착하자, 하숙집 주인이 그를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곧 휴교령이 떨어졌다. 신교우는 학도병으로 전투에 참여하다가, 이후 고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학을 기다렸다. 53년에 복교했으 나, 고연전을 볼 기회는 없었고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50년 당시 응원 연습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신일균 교우. 함께 공부했던 교우 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나니 이제 추억을 공유할 친구들이 없어 슬프다고 한다.신 교우는 매 경기를 진지하게 관람하며, 선수들을 마음 깊이 응원했다. 승리의 기쁨을 즐기지는 못했으나, 신 교우에게 새로운 추억이 더해진 것은 분명하다.  김지원 기자 [2017-10-10](Hit:660)

어르신 세대의 경험과 지혜, ‘메모로’ 통해 남겨주세요
세대공감 인터뷰 활동 ‘메모로’ 국내 도입한홍영란(교육77)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서로 다른 세대가 각자의 시간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시간. ‘메모 로(MEMORO, 일명 ‘기억의 은행Bank of Memories’)’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다. 메모로는 2007년 이탈리아 에서 시작했으며 한국은 일본에 이 어 아 시 아 국 가 두 번 째 로 2014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홍영란(교육77)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은 메모로를 국내에 도입하고 정착되게 한 주역이다. 충북 진천 한국교육개발원에서홍 교우를 만나 메모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메모로’가 무엇인지?‘메모로’란 라틴어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에 요. 기억을 저장하는 은행 개념 으로 볼 수 있죠. 메모로의 기본 적인 컨셉은 60대 미만의 인터뷰 어가 60대 이상의 어르신을 인터 뷰하고 그 동영상을 웹사이트에 저장하는 거에요. 저는 이런 메 모로가 두 가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공감,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의 축적이라는 거에요. 특히 기억의 축적이 라는 측면에서 메모로가 훗날 하나의 구전 역사의 창고 역할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사회에 역사의 격변이 많아 이런 기억의 축적이 갖는 의의가 더크다고도 생각해요. -현재 국내에서 ‘메모로’가 어떻게 활용되는지?제가 교육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와의 접촉이 쉬운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라는 인프 라를 통해서 메모로 활동을 보급 하고 확산할 수 있었죠. 학교에 서는 가정, 윤리 교과목의 수행 평가나 동아리 활동, UCC대회 이런 세 가지 방법으로 메모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메모로 연구학교도 있었고, 재작년 교육부의 행복교... [2017-09-15](Hit:836)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선 의사의 간절한 외침
남궁인 교우는 “글로 전해지는 감정보다 아름다운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글쓰는 의사남궁인(의학02) 교우 하루에 100권이 넘는 책들이 출간되는 출판시장에서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글 쓰는 의사’로 통하는 남궁인 교우(의학02)는 2016년 출간한 첫 번째 책《만약은 없다》와그 후 1년 만에 낸 두 번째 책 《지독한 하루》가 모두 베스트 셀러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비정상회담’, ‘말하는 대로’, ‘비 디오 스타’ 등 방송계에선 요즘 그를 섭외하기 위한 열기로 뜨겁다. “책 한권 내보는 게 소원이었 는데 사람들한테 읽힐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 감사한 마음만큼 사회적 책임감도 많이 느낍니다.”  외면 받는 현실을 말하다남궁인 교우의 책에는 피 터지는 의료현장에서 매일같이 생사의 갈림길을 마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힘든 하루와 우울한 감정이 날것 그대로 담겨있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응급실’이라 는,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던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회의 여러 문제를 알리기 위해 남궁인 교우는 글을 쓰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스토리펀딩, 의학 칼럼 기고, 세계 최대 아동 구호 비정부 기구 세이브 더 칠드런 홍보대사 등. 죽음과의 끈질긴 사투를 마치고 응급실을 벗어나 시작되는 그의 또 다른 하루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일분 일초가 숨 가쁘게 돌아간다. “제 글은 제가 응급실에서 늘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현실이죠. 스토리펀딩은 의료사각지대에 대해 알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해달라는 글을 쓰는 거예요. 많은 분들께서 돈을 모아주셔서 감동적이었어요.”  두 ... [2017-09-15](Hit: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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