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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법치주의 확산 40년 인생, 내 뿌리는 고대

등록일 : 2017-05-16 조회 : 1134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서 만난 김인섭 교우. 뒤쪽의 수많은 법전이 김 교우의 삶을 말해준다.

 

2017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김인섭(행정55) 교우

 

해방직후의 시기, 초등학생이었던 추풍령 두메산골 ‘촌놈’은 마을에 5일장이 서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접할 수 있는 책이라곤 일본영웅전을 번역한 책이 전부라는건 언제나 아쉬웠다. 이는 오히려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위인이 되겠 다는 다짐을 어린 마음에 싹틔웠다. 

촌놈은 어느새 80살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노인은 만 40년의 세월동안 암행 어사 박문수 같은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법조인으로 고군분투했다. 평생에 걸쳐 법치주의를 추구했던 법조인, 김인섭 교우다.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인 김인섭 교우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 선정된 것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저보다 뛰어난 교우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받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 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것이고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학교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 니다.” 

 

돈이 아니라 가치를 쫓아 달려온 법률가 

김인섭 교우는 1961년 고등고시 사법과를 합격한 후, 법관 18년, 변호사 22년 총만 40년의 기간을 법조인으로 살아왔다. 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법관 재임기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과 거의 일치해 예상치 못한 어려 움이 있었다. 강단 있고, 소신 있는 판사로 유명하던 그는 돌연 변호사로 전향했 다. 하나의 길 위에서 안주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김인섭 교우는 지난 40년의 세월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법조인은 절차와 평등을 중시하며, 국민들이 마음 놓고 성장할 수 있도록 법적 토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법관시절에는 유신헌법 때문에 그런 여건이 되지 않아 고독과 청빈을 벗으로 삼고 평생을 지내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이런 여건 아래에서는 그조차도 이루어질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자유롭게 법치주의를 추구할 수 있는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암행어사 박문 수를 사표삼아, 변호사를 하되 돈 버는 변호사가 아니라 가치를 쫓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세계화로 인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분야가 새로이 생겨나는 당시의 상황 에서, 법률가는 개인의 기본권 보호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인과 무역인 역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법조인들이 이와 관련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 습니다. 따라서 증가하는 법률가의 책무에 맞춰 다양한 분야에 특화된 법률가를 양성하고자 태평양 법무법인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공존과 토론 

인터뷰 내내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두 단어는 ‘공존’과 ‘토론’이었다. 김 교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함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통합해 나가는 수단이 토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방식이고, 생활 그자체입니다. 저는 한국의 법적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달려온 지난 세월동안 이를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법조인들이 남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토론을 통해 좁혀갈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려 노력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이를 통해 완성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같은 존재, 고대 

김 교우는 군복무기간 1년 6 개월을 포함한 6년여 간의 대학생활 기간 동안 학교공부, 가정교사생활, 고시공부를 동시에 수행했다. 대학생활의 로망을 즐기기에는 촉박한 시간이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학시 절의 추억과 모교에서 만난 인연은 언제나 어린 시절 여읜 아버지를 대신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학부생 시절 가정교사생활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것부터가 고대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검찰총장이셨던 분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는데 촌놈이 뭘 알아서 그렇게 좋은 집에서 가정교사생활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가정교사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받았습니다. 모교 은사님의 소개로 하게 된 일이 아니었 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은사님들께서 보실 때 시골에서 상경해 열심히 공부 하는 모습이 예뻐 보이셨나 봅니다. 항상 제가 가진 포부를 이룰 수 있을 거라며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고대와 은사님들은 제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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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섭 교우의 저서들. 김 교우의 자서전(왼쪽)과 최근 발간된 한국 역사학 인문서적.

 

초심을 잃지 않게 해준 고대정신 

이어 김 교우는 초심을 잃지 않고 40년간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고대에서 배운 고대정신 때문이라며 재학시절을 추억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 국의 법치주의 구현만을 위해 오롯이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제 뿌리에 고대에서 배운 민족정신, 고대정신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저는 고대 민족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항상 그 터전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김인섭 교우는 앞으로 모교가 교우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 자신이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 다고 말을 마쳤다. 평생을 걸어온 법조인의 삶과 모교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인터뷰였다. 

김은지 기자 


김인섭 교우는…
1961년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1980년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설립하여 한국형 로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 국내 3 대 로펌으로 성장시켰다. 현재는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 및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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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22주년 기념식에서 김 교우가 퇴임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2008년 열린 굿 소사이어티 토론회. 굿 소사이어티는 김인섭 교우가 2004년 설립한 ‘포럼 19-21’을 모태로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가치확산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