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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융복합 학문 역량 강화로 세종캠퍼스만의 브랜드 만들겠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세종캠퍼스는 지난 2015년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 전면적인 학사구조 개편을 단행해야 했던 아픔을 이겨내고, 2018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에서 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제 세종캠퍼스는 새로운 미래를 써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때마침 내년 2020년은 세종캠퍼스 설립 40주년을 맞는 해이다. 올해 9월 취임한 김영(토목공84) 세종 부총장에게 세종캠퍼스의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취임 소감 부탁드린다2002년에 교수로 취임해, 17년을 세종캠퍼스와 함께 했습니다. 기획처장, 세종산 학협력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나름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종부총장 자리에 앉아보니 새롭게 다가옵 니다. 세종부총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세종캠퍼스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 니다. 주말이 언제인지도 모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세종캠퍼스 구성원과 지역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서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가겠습니다.취임사에서 ‘소통과 협력’을 강조했는데?4차 산업혁명과 학령인구 감소로 여러 대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합니다. 세종캠퍼스는 교수·학생·교직원이 함께 참여하는 ‘참여와 소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위원 정원을 두 배 증원해 소통강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전공 간의 소통과 협력을 위해 유사전공단위로 묶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단과대가 참여하고 교외 기관과 협업할 수 있는 융합연구포럼이 그 예입니다.‘공동캠퍼스 입주 계획’과 ‘KU세종 융합연구 포럼 출범’에 대해 말씀해달라세종특별자치시는 행정 중심도시로서, 42개의 중앙행정기관, 19개의 국책연구 기관이 들어와 있습니다. 2024년에는 국내... [2019-11-19](Hit:16)

역경을 피하지 않고 맞서온 것이 고대인으로서 자랑스럽다
2015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영수 교우의 작품 ‘도시이야기5’.“왼쪽 다리를 약간만 당겨 주세요. 아주 약간만. 오른손은 조금 더 안쪽으로 넣어주 시구요. 조금만 더요.” 김영수 교우가 부탁 한다. 손발의 위치를 바꾸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이 쉽지 않다. 김영수 교우는 ‘진행성근육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전신의 근육이 조금씩 위축되는 병이다. 붓을 쥐기가 힘들어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15년간 구필로 그린 그림 들을 모아 여섯번째 개인전을 열었다.‘진행성근육이영양증’이라는 희귀질병“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이 아직도 기억나요. 날씨가 정말 화창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거에요. 나만 다른 세계 에서 걷고 있는 것 같았죠” 김 교우는 2학년 때부터 몸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종합검진을 받고 서야 자신이 특별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는 병의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 방법도 모른다며 비타민 같은 것을 많이 먹으라고만 했다. 건축설계회사에 입사했지만, 점점 약해지는 몸으로 직장 생활을 버티기 힘들었다.아르바이트 하며 그림공부 했지만…“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고등 학교 때는 미술부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죠. 하지만 당시에는 미술을 하려면 집안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오전에는 그림 공부를 오후에는 누나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림은 오수환(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교수에게 배웠다. 어느 화가의 전시회에 찾아가서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고 소개 받았다. 그러던 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3년 동안 미국에서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얼마되지 않아 붓을 쥘 수 없게 됐다.절망 딛고 구필화가로 일... [2019-11-18](Hit:6)

“사람들의 눈을 잘 맞췄던 아나운서로 기억되고 싶어요”
강다솜 교우는 모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다른 꿈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유년시절부터 재밌게 들어온 ‘라디오’. 사람들과 소통하는 DJ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됐다.“라디오를 마무리 할 때, 연인과 헤어진 기분이었어요.”라디오는 꿈이자 연인강다솜 교우는 2015년부터 올해 3 월까지 꿈꿔오던 라디오 <잠 못 드는 이유 강다솜입니다>를 진행했다. 그녀의 방송은 주로 새벽 시간대. 어깨에 많은 짐을 짊어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서로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을 했다.한 번은 심야시간 편의점에서 근무 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이후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한 번 더연락이 왔고, 라디오를 듣던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넥타이 색도 골라주고 응원도 해주었다. 강교우는 그 분이 결국 취업에 성공하고, 연수원에 가는 길에 방송으로 또 문자를 보낸 일화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했다.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통해 소통하는 순간들이 강 교우에겐 너무 소중하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며 라디오가 끝나니 마치 실연당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정통뉴스는 물론 뉴미디어, 유튜브까지“정통뉴스에 다시 돌아온 것은 정말 영광이죠. 그동안 MBC뉴스에 업다운이 많았 는데, 좋은 뉴스를 선보이고 싶어요.”강다솜교우는 올해 7 월부터 다시 <MBC뉴스데스크> 주말앵커로 복귀했다. 그녀만의 따뜻함과 여유로움으로 안정된 진행력을 선보이고 있다.정통뉴스는 물론 20대를 위한 짧은 뉴스 컨텐츠 미디어인 <14F>에서 맏언니로 활약 중이다. 20대의 시각을 고려하며 젊고 역동적인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심 하고 있다. 바퀴벌레를 보면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화가 ... [2019-11-18](Hit:18)

스스로에게 자유를 준다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림책 작가이자 출판사 북극곰 대표인 이루리 교우는 자신을 ‘그림책 마니아’라고 소개했다. 그림책은 원래 어른을 위한 책“그림책을 읽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이지 어린이가 아니에요.”이 교우의 설명에 따르면 어린이는 그림책에서 의미가 아니라 이미지를 경험한다. 그림을 통해서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에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이 교우가 운영하는 그림책 작가 양성과정에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림책을 보다가 감동을 받은 부모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림으로 영혼을 구하는 의사가 되다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교우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았다. “의과대학을 가지 않고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제가 소설에 재미를 들여서 책을 많이 읽고 있었는데요, 소설을 읽다 보니 사람에게는 생명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술을 통해서 구원할 수 있는 영혼의 생명이 있었던 것이죠.”어렵게 모교에 진학한 이 교우는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모교 사회교육원(현 평생교육원) 아동독서지도사 양성과정 강의를 맡으면서 새롭게 그림책을 접했다. 쉽고 재미있으면서 깊이도 있는 그림책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소설을 포기하고 그림책에 빠져 살았다. 신문사에 그림책의 서평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41세가 되던 해에 남은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며 그림책 전문 출판사 ‘북극곰’을 설립했다. 출판사의 첫 책이자 이 교우의 첫 작품인 ‘북금곰 코다’는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11개 나라로 수출됐다. 2014년에는 본인이 만든 책뿐만 ... [2019-10-17](Hit:39)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김훈 교우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해 말하고 있다. 아래는 그의 소설 《칼의 노래》, 《남한산성》과 올해 출간한 산문집 《연필로 쓰기》.웅장한 스케일의 글을 디테일하게 쓰고 있다. 그런 글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내가 쓴 글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내적 한계가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굉장히 조심하는 것이, 절대로 수다를 떨지 않는 것이다. 나의 생애 속에서 내가 검증할 수 없고, 내 생애로 확인할 수 없는 단어를 절대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 희망, 꿈, 미래 이런 단어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그런 단어들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소설가로서 참 불행이다. 앞으로는 그런 단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칼의 노래》 첫 문장이 생각난다‘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인데, 나는 나의 글에 의견이 들어가는 것을 극히 꺼린다. 사실만을 가지고 쓰는 글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어와 동사만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나의 꿈이다. 처음에는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고 썼다. 며칠 후에 ‘꽃이 피었다’로 고쳤다. 그렇게 표현을 바꾸고 나니까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문장에 어느정도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피었다’는 것은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을 진술한 것이다. ‘꽃은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다가 그것을 들여다보는 나의 주관적 정서가 들어간 것이다. 나는 무자비한 객관성만 가진 문장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쓸 때마다 이런 것을 따지다보면 금방 지친다.역사문제를 다룬 작품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역사소설을 4개 썼다. 내가 쓴 역사소설들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 역사 그 자체는 없다. 인간만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가지고 《칼의 노래... [2019-10-16](Hit:76)

월곶의 꿈을 인큐베이팅하는 스타트업 “빌드”
한때 월곶은 신도시라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1996년 매립지 위에 지어진 월곶 신도시는 1997년 IMF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도로 하나를 사이로 아파트와 모텔촌이 마주보고, 바닷가 쪽으로는 빈 상가들이 방치돼 있었다. 도시의 특색을 이야기 하자면, ‘글쎄’하고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 월곶. 그러나 월곶의 모퉁이에서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 도시재생의 키워드는 문화월곶은 작은 하구를 두고 위로는 인천, 아래로는 배곧 신도시와 마주보고 있다.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는 월곶이지만 가족을 위한 문화공간이 부족하다. 월곶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엄마와 아이에게 월곶은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 도시재생 스타트업 ‘빌드’ 부대표 임효묵(지교04) 교우와 창업자들이 월곶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빌드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공간’이라는 가치 아래 설립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화의 사각시대인 이곳에서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모교 지리학과를 입학하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부동산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임효묵 교우는 잘나가던 부동산 전문 신탁회사를 그만두고, 빌드의 창업멤버로 합류했다. 그를 빌드로 이끈 것은, 4년 직장생활 동안 끊임없이 되물었던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빌드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저희는 2016년 9월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빌드 1호점 바오스앤밥스를 오픈했습니다.”시청에서 용역사업으로 시작했던 빌드는 법인 설립과 함께 직영 사업점들을 오픈했다. 1호점인 ‘바오스앤밥스’는 ‘예스키즈존’을 내세우며, 아이와 엄마가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이어 2017년에는 2호점인 카페 ‘월곶동책한송이’, 작년에는 3호점 실내놀이공간 ‘바이아이’를 연달아 열었다. ... [2019-10-16](Hit:74)

최동욱의 ‘세 시의 다이얼’은 지금도 “LIVE ON”
최동욱 교우의 자택에는 음향기기를 비롯한 전문 방송장비들이 갖춰져 있다. “우리에겐 항상 젊음이 있습니다. 즐겨 듣는 노래, 그때 그 시절 즐겨 들은 노래, 우리 함께 나눕니다.” 인사동 한 찻집에 시그널 뮤직 ‘That Happy Feeling’이 흘러 나온다. 55년 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그의 목소리가 오늘도 오후세 시를 알린다. 국내 첫 DJ이자 당시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최동욱 (국문55) 교우의 ‘세 시의 다이얼’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국민 라디오 프로그램 ‘세 시의 다이얼’팝송을 소개하고 전화나 엽서를 통해 신청곡을 틀어줬던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세 시의 다이얼’. 이 프로그램은 66년 부터 문화공보부 청취율 조사 3년 연속 1 위를 기록했다.“청취자들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라디오를 듣기 위해 수업을 빼먹다 혼났던 일, 몰래 듣다가 혼난 일, 자신의 엽서 신청곡이 방송을 타면 연예인이 된 것 같았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있었죠.”팝송에 빠져들었던 고등학생 시절의 최교우처럼, 그를 통해 시청자들이 팝송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오후 세 시가 되면 전국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최 교우는 고등학교 때 토니 베넷의 ‘Because of You’를 만나게 된다. 친구들이 팝송을 따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노래에 이끌렸다. 이것이 최 교우 음악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에는 클래식 합창단을 만들었고, 입학식에서 교가를 부르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그는 종로 일대에 위치해 있던 뮤직홀들의 단골 손님이기도 했다. 화신백화점 3층에 있었던 ‘메트로’, 종로 2가의 ‘뉴월드’ 등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곳에서 그는 음악에 대한 식견을 키워갔다.“멘트 없이 주로 음악만 틀어줬습니다.팝송에 얽힌 이야기, 가사가 담... [2019-09-23](Hit:64)

“똑똑하게 연기한다”
김현목 교우는 사실 중학생 때엔 가수를 꿈꿨다. 부모님의 반대로 예고 대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재수 후 입학한 모교에서 김 교우는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동기들, 미래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가진 동기들을 보며 혼자 주눅 들곤 했다. 동아리 ‘소울메이트’에서 자신을 발견하다그런 그에게 진정한 대학생활을 알려준 것은 중앙 뮤지컬동아리 ‘소울메이트’였 다.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스스 로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동아리원들과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엠티도 가고 고연전에도 갔다.졸업 후엔 한 극단에 들어갔다. 극단 막내생활은 체력적으로도 고된 일이었지만, 연극 공연기간에만 급여를 받으니 금전적 으로 매우 힘들었다. 2주 분의 출연료로 10주를 버텨야 했다. 극단 활동을 이어나 갈지 고민하면서 속으로 꿈꿔왔던 뮤지컬 오디션에 계속 지원했다. 수차례의 오디션 끝에 뮤지컬 ‘꽃신’에 최종 합격했다.연출, 감독 등 전문가 그리고 뮤지컬계선배들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웠다고 한다. 자연스레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은 강해졌다. 그런데 전국 순회공연을 마칠 때쯤 연출가는 김 교우의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며 매체연기를 제안했다. “첫 작품을 마치고 앞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다짐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매체연기를 제안 받으니 처음엔 서운하기도 했어요.” 쉼 없이 연기하는 성실한 배우무대연기 경험밖에 없던 김 교우는 막상 매체연기를 하려니 겁이 났다고 한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선 프로필을 제출해야 하는데 연극영화과 전공자도 아니고 경험도 없어 닥치는 대로 연기했다. 필모그래 피를 쌓기 위해 비전공 대학생 동아리 작품부터 예술고등학교 학생 작품까지 지원했다. 한 달 동안 단편영... [2019-09-23](Hit:87)

우수연구자 영입 확대해 세계 수준의 연구역량 보여주겠습니다
대학의 연구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모교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력을 갖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진한(지질76,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교우가 지난 3월 모교의 연구 분야를 전담하는 연구부총장에 취임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달 31일, 본관 3층 연구부총장실에서 만난 이 부총장은 내년 BK21 4단계 사업단 선정을 위해 우수 연구자 특별채용 면접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연구부총장 취임소감과 역할은?‘노력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따른다’는 제 철칙대로 임기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고대의 연구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란 믿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연구부총장은 모교의 연구, 창업, 산학협력 관련 분야를 총괄하며, 연구기획본부, 연구처, 산학협력단 등의 부서를 전담합니다. 물론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교무부총장과 협의하며 타 부서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모교의 연구역량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면?모교는 올해 QS 세계대학평가에서 세계83위를 기록하며 국내 최고 사립대학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학문분야별 평가에서도 행정·경영·기술·토목 등 인문사회와 이공계 분야가 균형있게 상위권에 랭크됐고, 생명과학·의료·인문학 분야에서 우수 교수진을 보유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연구의 질적평가와 국제연구협력에서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연구비 규모와 확대 계획이 궁금합니다모교는 정부와 민간지원 연구비 총액이 지난해 총 300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3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중 약 80%는 정부가 지원하는 대형 연구과제입니다. 그 중 하나인 BK21플러스사업에 모교는 현재 22개 사업단, 7개 사업팀이 선정돼 연간 약 228억원을 지원받았습니다. 내년에 4단계 사업이 시작되는데, 지속적인... [2019-08-14](Hit:102)

“의뢰인 마음에 공감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서울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2017년 모교 로스쿨을 졸업한 김신해(로스쿨6회) 교우는 올해 4월, 변호사가 됐다. 바이올린을 켜던 김신해 교우가 변호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이제 그녀는 법조인으로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바이올린 켜는 변호사가 되기까지“엄마와 시장에 가는 길에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나도 배워보고 싶다고 그랬대요.” 김신해 교우가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건 유치원생일 때다.이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않은 김신해 교우는 입시 끝에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 김 교우는 스승인 김영욱 서울대 기악과 석좌교수를 만나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교수님은 바이올린 활을 잡는 법부터 악보와 작곡가마다의 연주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셨어요. 교수님을 만나고 제 연주의 깊이와 테크닉의 완성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하버드대 썸머스쿨과 펜실베니아대 윈터스쿨에도 참여한 김신해 교우는 해외에서 적응하는데에도 바이올린의 역할이 컸다고 이야기한다. 오케스트라에서 멜로디를 담당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기에 김신해 교우는 하버드 썸머스쿨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을 수 있었다. “세계 어디에가도 바이올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들더라고요.”김 교우는 현재도 음악하는 법조인모임에 꾸준히 참여한다. “악기로 학부까지 마치고 온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전공한 변호사라고 하면 한 번에 기억해주시더라고요. 바이올린을 켠다는건 제가 지니고 있는 특별함인 것 같아요.”로스쿨 입학 후 유급의 벽에 좌절하기도 김신해 교우는 서울대 학부생 시절 바이올린 전공을 하는 동시에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가족들이 회사를 경영해 어릴적부터 경영과 관련된 사안과 가까이 했던 영향이... [2019-08-12](Hit: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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