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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고 싶었다”학병수기 <중국에서의 일본군 내무생활기> 발췌

등록일 : 2015-06-15 조회 : 12487

아, 꿈에도 잊지 못할 1944년 1월 31일 우리 학도병 모두의 마음이 착잡했던 그날의 밤이여. 우리들이 용산역에서 야간열차를 탄 것이 그 날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우리 동지들을 태우고 달리고 있는 이 북행열차는 압록강을 건너 안동을 지나고 청도를 거쳐서, 중국 본토인 양주에 도착했다.

우리 조국강토를 폐허화해가면서 그들의 전쟁전초기지화하고, 우리의 전국학도들마저 최후의 한사람까지도 싹 쓸어서 전지로 끌어갔다.

그때만 해도 일본군이 중국대륙을 의기양양 석권해 들어가고 있을 즈음이다. 하루에 100리나 되는 장정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으니 배가 너무나도 고팠고 조갈이 나서 중국인이 논벌에 마구 퍼다 버린 똥물을 논바닥에 엎드려 먹고 있노라면 일본인 병사가 내 궁둥이를 걷어차면서 제지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물을 마시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나도 모르게 마셨다.

일본군이 부락을 점령하면 식량을 약탈하고 부녀자가 보이면 중년의 부녀자이건 아니건, 사정없이 농락한다. 그자리에서 살해하는 것은 다반사로 하고 있다. 어떻게 잔인하게 살해해 버리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후에 찾아올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일본군을 증오하며 그 자리에서 소리 나지 않는 총이라도 있다면 쏘아서 죽여 버리고싶은 심경이다. 그러나 참아야지, 우리 조선인이 남의 나라 전쟁에 뛰어들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 때문에 싸우다 죽어야 하는지, 목표도 없는 이 전쟁을 이겨내는 것은 오직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야 하고 그래서 조국광복을 보기 위한 염원에서였을것이다.

세월은 흘러서 1945년 8월 15일. 뜻밖에 일본 천황의 특별담화 방송이 전파를 타고 중국 전투지역에까지 울려 나오던 날. 우리 학병들은 마음속으로 얼마나 환호하고 마음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온 국민이 꿈에 그리던 해방된 조국을 찾았으니 벌써 마음은 고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오오, 조국 광복이 찾아오던 그날이여, 내 어이 잊으랴.

임용목 교우 학병수기 전문은 <일제침략의 증언>(서울언론인클럽, 2001)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