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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조국을 염원했던 학도병, 민족사학 품에 안기다월례강좌회 최고령 107세 임용목(정치45) 교우

등록일 : 2015-06-15 조회 : 12680

1909년생, 올해 나이 107세. 인터뷰 요청차 전화했을 때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리던 임용목 교우의 목소리는 나이가 의심될 정도로 정정했다. 임 교우의 이력은 107이란 숫자만큼이나 특별하다. 일제감정기 학도병으로 끌려가 산전수전을 겪었다. 역사의 산증인으로 학도병을 대표해 직접 전쟁수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기적적으로맞은 조국 해방 1년 만에 조국 품으로
임용목 교우는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중 학도병으로 징집돼 중국 전선으로 끌려갔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그곳에서 임 교우의 분노는 커져갔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싸우는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모두가 잠자고 있던 어느 날 아침, 허공에 대고 막사에 총을 갈겼지. 그렇게 총살당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해방 소식이 들려온 거야”사고를 조금만 일찍쳤다면 자신은 그대로 죽었을 것이라며 그는 껄껄 웃었다.

해방 뒤 조선 학도병들은 일본군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아무런 연고 없는 중국 땅에서 조국이 자신들을 불러주길 기다렸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다. 참다못한 임 교우는 직접 동료들은 이끌고 상해행 열차를 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1년 만에 조국 땅을 밟았다. 1946년 6월의 일이었다.

유일한 민족사학 모교 문을 두드리다
고향에 돌아온 임 교우는 보성전문이 고려대학교가 되어 2학년 편입생을 모집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게된다. “당시만해도 인재가 부족해 전에 다니던 학교 학생증만 보여줘도 입학을시켜줬어. 서울대도 그랬지. 그런데 특별하게 고대만 귀국자를 대상으로 입학시험을 쳤어.”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임 교우가 모교를 고집했던 건 민족학교란 단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현상윤 총장이 나이도 많은데 왜 지원했냐고 물었지. 그래서 보성전문이 민족이 세운 대학이기에 이 학교에 꼭 들어가야겠다고 대답했어”입학한지 7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임 교우는 일류 대학으로 성장한 모교가 정말로 자랑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생계문제로 결석 많았던 학생 60년 뒤 월례강좌회 개근상을 타다
어렵게 모교에 입학했지만 오롯이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했기 때문이다. 막노동부터 장돌뱅이까지, 손에 잡히는대로 일을 했다. “사실 학교를 포기했지. 그때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어요. 졸업이라도 할 수 있게 출석을 대신 해주겠다고 말하는데, 정말 나중에 학교에 가보니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출석이 채워져 있더라고. 난 지금도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재학생 시절 학교를 자주 찾지 못한게 한이었을까. 임 교우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이 되면 모교를 찾는다. 교우회관에서 진행되는 월례강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 교우는 하루도 빠지지않고 강좌에 참석해 월례강좌회로부터 ‘진짜’개근상을 받기도했다.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 발로 걷지 못할 때까지 다니고 싶어.”

이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