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Home > 교우회보 > 인터뷰

인터뷰

<div align=left>교우회를 방문해 워싱턴지부 역사를 들려주는 권동환 교우.

“같은 교문 나온 우리, 선배 존경하고 후배 사랑해야”
지난 9일 열린 모교 ‘개교 제109주년 기념식 및 고대인의 날’행사에서 교우회가 선정한 모범지부중 한 곳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교우회이다. 현재 회장은 정주영(수학67) 교우가 맡고 있지만, 이날 행사장에는 워싱턴지부 원로 교우인 권동환(정치49) 교우가 참석해 주선회 교우회장으로부터 모범지부상을 받았다. 권 교우는 지난 4월 초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날 행사 참석을 위해 국내에 머물렀다. 권 교우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교우회장을 역임한 故정세영(정치49) 회장과 같은 과 동기이다. 정세영전 교우회장과 나눈 우정 “숙부께서 보전을 다니셨기 때문에 난 일찍부터 고대를 원했어요.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갖고 입학했는데, 전쟁이 나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대구 피난 시절에 나하고 정세영 회장이 같이 하숙을 얻어 공부했지요.” [2014-05-13](Hit:13021)

<div align=

“고대인의 자부심으로 모교를 빛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체육교육과 09학번 김연아입니다. 저는 작년에 졸업을 한 뒤로 정말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졸업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네요.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날이 개교 109주년 기념식이자 고대인의 날이라 더욱 뜻 깊은 것 같습니다. 고대인으로서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저는 며칠 전 18년 피겨스케이팅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습니다. 저는 이제 스물다섯 살에 불과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얼음 위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니 여러 추억들과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하고 즐겁고,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은 날들이었습니다. 오늘 저에게 모교에서 ‘자랑스런 고대인상’을 주셔서 저에게는 더 없는 영광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어린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과거 수상자 분들께 누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제게 너무도 과분한 상을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피겨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제게 격려와 축복을 해주시는 큰상으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라는 응원으로 여기겠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에서 은퇴해 사회인의 첫발을 내딛는 저는 자랑스런 고대인상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고대인으로서 고려대학교의 기상과 명예를 높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런 영광스런 상을 주신 교우회장님을 비롯한 고려대학교 교우 선후배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05-13](Hit:12683)

“공공극단으로서 공익목적의 연극을 하겠다”
지난 해, 서울시극단 최초의 여성극단장으로 김혜련(영문66) 교우가 부임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연극인으로서의 정신과 예술감독으로서의 의견을 밝혔다. 서울시극단 사무실의 벽면에는‘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란 문구가 적혀있었다. 서울시극단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서울시극단은 세종문화회관 산하단체 중 하나로 서울시를 대표하는 극단입니다. 양질의 공연으로 서울 시민들의 문화향유에 기여합니다. [2014-04-11](Hit:12753)

<div align=left>한병철 교우(왼쪽)가 지난달 24일 국내 독자들과 만나 투명사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투명사회는 신뢰사회가 아닌 새로운 통제사회
재독 철학자 한병철(금속공78,베를린예술대학 교수) 교우의 철학서는 현대에 만연한 우울증이 긍정성 과잉이 불러온 자기 착취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성과사회’다. 과거의 사회가 금지(“해서는 안 된다”)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인 긍정의 사회다. 이사회에서는‘성공하라는것’이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한 긍정의 정신이 성과에 집착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만든다. 그러한 자아는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좌절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24쪽) 독일지성계를 흔든 2010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는 독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 , 과 같은 주요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실었다. 초판은 2주 만에 매진되었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국내 독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2012년 3월에 처음 소개된 이 책은 2014년 1월 현재 29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의 출간 이후에 OO사회라는 제목의 책들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다. [2014-04-11](Hit:12797)

<div align=left>25년간 <현대사학> 주간으로 재직하며 간행한 책들 앞에 선 정진규 교우.

자연으로 돌아온 시인의 행복, “삶은 시, 시는 삶”
석가헌(夕佳軒)에 머문 지 7년. 50년 만의 귀향이었다. 묘지기생활 또한 7년이다. 이곳은 정진규(국문58) 교우의 조상인 우의정 정홍순의 효심에 감복해 정조가 하사한 땅이다. “아버지와 큰형님이 돌아가시면서, 내가 맡게됐다”는 정 교우는 선대의 묘를 관리하며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br> 정 교우는 1988년부터 2013년까지 시 전문 월간지주간을 25년간 역임했다. 자연에서 배운 자연스러움 어린시절 석가헌 근처 임야가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연못에서 연꽃을 관찰하거나 산에서 뱀을 갖고 놀기도 했다. “학교에서 글쓰는 시간에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를 잘해냈다고 말이다. 그 칭찬이 지금의 인생까지 이끈셈이다.” 정진규 교우는 서예도 즐긴다.“서예는 시 쓰는 과정의 일부다. 큰 종이를 두고 춤을 추며 붓으로 글을 쓰면 그야말로 초월적인 시가 탄생한다.”40년 넘는 서예내공은 그의 호를 딴 경산체(絅山體)와‘먹춤’을 만들어냈다. 그의 마지막 먹춤은 모교에서 열린 조지훈 시비 제막식 때였다. 정 교우 예술의‘사상’은 율려(律呂)다. 이는 음양오행을 기초로 한다. 관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고향에서 인연을 만나다 [2014-04-11](Hit:12863)

의대 유급생, ‘세계과학기자연맹’회장이 되다
여유있는 말투와 재치있는 농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막힘없이 긴 얘기를 풀어나가는 김 교우의 모습에선 흰 가운을 입은 냉철한 의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손목에 채워진 것은 하루 운동량과 수면시간 등을 기록해 분석해 주는 최신식 헬스케어 웨어러블 디바이스였다. 의학과 사회 트렌드를 융합해 몸소 실현해 보이는 그의 직업은‘의학전문기자’였다. 취미로 신문 읽던 유급생 김철중(의학82) 교우는 모교 의대에 입학해 2년간 유급했다. 아들 3형제 중 누군가는 꼭 의사가 되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김 교우는 의대에 입학했지만,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공부에만 매진해도 어려운 전공 학문은 제쳐두고 연극반에 들어가 활동하며 술과 유희, 사회에 대한 푸념으로 시간을 흘려 보냈다. 낭인같은 삶을 중앙도서관에서 소설과 신문읽기로 보낸 경험은 훗날 김 교우가 기자 활동을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내가 신문기자로 발길을 돌린 원천은 중앙도서관에 있다”라고 말하는 김 교우는 본과 3학년이 되어서야 전공 공부에 매진했다. 주변에 의사가 된 동기들을 보며 자존심이 상하고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란다. 학교를 졸업하고 인턴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딴 김 교우는 군의관으로 입대해 의대 교수를 꿈꿨다. 하지만 군의관 시절 예상치 못하게 생긴 시간적 여유는 오히려 그를 언론 공부에 매진하게 만들었다. 제대 후 학교로 돌아간 김 교우는 언론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입학 인터뷰를 받았다. 당시 언론대학원장은 의사가 찾아온 경우는 처음이라며, 인간적인 충고와 함께 김 교우를 돌려 보냈다. 하지만 결심이 변하지 않고 6개월 후 다시 찾아간 결과 수석으로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의대에 있을 때는 장학금을 면제 받더니, 언론대학원에 가서는 입학금을 면제 받았... [2014-03-13](Hit:13137)

예술로 활기찬 서울, 문화로 행복한 시민을 꿈꾸다
2004년 서울특별시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서울문화재단’이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서울시가 설립한 재단 법인으로 4본부 27개의 팀으로 운영되는 서울문화재단은 문화예술 창작 환경을 조성하고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 서비스를 기획하여 서울 시민들의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12년 3월부터 ‘서울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재직중인 조선희(독문78) 교우를 만나 서울문화재단의 발전사항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울문화재단은? 전문 문화예술계를 활성화하고 창작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 ‘예술창작 지원’및 ‘문화예술 보편화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서울시 산하의 문화예술 기관입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주력하는 사업은?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이러한 지원을 위해선 공모를 받고요, 지원(정기)사업은 일년 중 대부분의 계획이 봄철에 이뤄지기 때문에 접수가 끝나고 현재 심사가 이뤄지는 중요한 시기 입니다. 서울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역할과 직결되기 때문에 최대한 공정하게 이뤄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부문별로 무용,음악,연극,시각예술,전통예술,문학,다원예술,일반예술로 나뉘며 그밖에 예술 교육 사업 및 창작공간을 운영하는 사업도 합니다. [2014-02-13](Hit:12875)

<div align=left>공모전 입상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한 KUDOS 창립 멤버들이 환히 웃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마진용 교우, 김태성 학생, 이혁진 교우.

“열정을 갖고 도전하다 보니 스펙은 저절로 따라왔어요 ”
창설 3년여 만에 총 135개의 공모전에서 입상하고 누적 2억 4000만 원의 상금을 받은 공모전 학회가 있다. 바로 실전마케팅공모전 학회 KUDOS(Korea University Dream Orien ted Society, 이하 쿠도스)의 이야기다. 쿠도스는 2010년 ‘틀을 깨는 사고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실전 마케팅 전문가가 된다’는 비전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까지 롯데, 두산, 현대오일뱅크, 외환카드 등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등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고 있는 명실공히 모교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학회다. 다양한 전공, 입체적인 관점 경영학과 학생들이 대부분인 타 공모전 학회와 달리 26개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 것이 그들의 차이점이자 공모전 입상의 비결이다. 쿠도스는 공모전을 준비하는 팀을 꾸릴 때, 주어진 과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 할 수 있느냐를 우선 생각한다. 각자의 관점에서 주제에 대해 조사하고 토론하면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보려 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비전인 ‘틀을 깨는 사고’가 묻어 나오는 듯 했다. 도전하며 성장하는 인생 학회를 만든 계기에 대해 물어보자 학회 창립자 이혁진(영문03) 교우는 우연한 기회에 도전한 공모전에서 느꼈던 쾌감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를 고민하던 중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한다. “강의실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친구들과의 토론에서 배우고 전국의 대학생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2014-02-13](Hit:13407)

<div align=left> 서울고검 집무실에서 만난 조희진 교우.

대한민국 65년 역사상 첫 여성 검사장
예순다섯 해. 1948년에 탄생한 대한민국 검찰에서 첫 여성 검사장이 탄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모교 법학과 81학번 조희진 교우가 지난해 12월 19일 발표된 검사장급 이상 간부인사에서 서울고검 차장검사에 발탁됨으로서,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금녀의 지위’로 남아있던 곳에 오르게 되었다.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급 직위는 전국 2,000여 명의 검사 중에 오직 49명의 검사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조 교우가 걸어온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에는 ‘여성 1호’라는 수식어가 함께 한다. 법무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차장검사, 지청장의 자리에 임명된 첫 여성이 바로 조희진 교우다. ‘유리천장’을 뚫고 ‘여성 1호’타이틀을 독식한 조 교우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성검사의 길 외롭지만 당당히 걷다 하지만 조 교우는 그러한 관심이 달갑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성정책 담당관이 되면서 동기들에 비해 4~5년 빨리 과장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그 외로움의 시간이 조 교우에게는 본인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순간이었고, 고민이 거듭될수록 검찰 내,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성이 불모지인 국가기관에서 여성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선도적인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2014-01-15](Hit:13027)

“올해는 내 인생의 특집을 연출할 시기”
14권(단독 저서)의 책을 썼고, 90년대를 평정하는 예능 프로를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최민수, 박명수와 함께 예능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강단에도 섰고, 2장의 앨범을 취입했으며 방송사 사장도 역임했다. 교수님, 작가님, 사장님, PD 등 어떤칭호를 붙여도 그에겐 어색함이 없다. 올해로 입학 40주년을 맞는 주철환(국문74) 교우. 환갑이 된 올해에 직함은 프리랜서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며 보통 남자다. 흔하지 않은 기회를 틈타 햇볕이 따사로운 겨울 어느 날 그를 만났다. “make a difference” “선배님께서 제작하신 프로그램 중 제일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뭔가요?…”주 교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이런 질문은 좀 그래요. 뭐가 제일. 어떤게 가장. 왜 자꾸 순위를 매기지?… 이런 어법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그래서 다음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기자의 손에 들린 준비해간 질문지 30여개는 대부분‘가장’, ‘제일’, ‘최고로’, ‘하나만’과 같은 순위 매기기식 질문이 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남들은 수학을 풀면서 골머리를 앓고, 또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주 교우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에 차이를 인정하려 애썼다. 수학을 푸는 대신에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생을 공부했다. 아름다운그대는‘젊은이’ [2014-01-15](Hit:12914)
이전 다음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