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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학은 현실을 다룰 때도 완벽한 구조 추구해야
오탁번 교우는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했다.왼쪽은 6권으로 간행된 오탁번 소설전집.소설가 오탁번은 다소 생소하다.시인이자 모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인 오탁번(영문64) 교우가 지난달에 시집도 아니고 논문집도 아닌 소설전집을 펴냈다. 《오탁번 소설》(태학사)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이번 소설은 등단작 <처형의 땅>부터 2010년에 발표한 <반품>까지, 6권에 걸쳐 60여 중단편이 실려 있다.물론 오탁번 교우가 이번에 처음 소설집을 내는 것은 아니다.《저녁연기》(1985), 《겨울의 꿈은 날줄 모른다》(1988) 등의 창작집을 냈지만, 절판됐다. 이번 소설집은 기존 소설집에 실렸던 소설을 포함, 그동안 간간히 발표했던 소설들을 묶었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은 전집의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소설가 오탁번으로서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신춘문예 3관왕이 쓴 응원가교우회관 준공기에도 이름남겨오탁번 교우는 1966년에 동화, 1967년에는 시, 1969년에는 소설 부문으로 등단하는 등 신춘문예 3관왕으로 모교뿐 아니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4학년 때 고대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고연전을 대비해 학생처에서 새로운 응원가를 모집했는데, 학생처장이었던 윤세창 교수가 응모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가 시인이니까 작사를 하라고 부탁했다.”오 교우는 1967년 그해 “나가자 폭풍같이~”로 시작하는 고대생의 애창곡 ‘응원의 노래’를 작사했다. 하지만 현상금을 받지 못했다는 오탁번 교우는 나중에 국어교육과 조교수로 부임했을 때 김상협 총장에게 작사료를 요청했다고 한다.“그때 총장님이 그 노래 때문에 학생들이 데모를 하도 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작사료는 노래를 부른 학생들한테 받으라고 하더라.”아닌 게 아니라 그가 작사... [2019-01-14](Hit:781)

장애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당장 만나’야 할 팟캐스트
“이 팟캐스트를 통해 사람들이 짜릿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지체장애인 신홍윤(사회13) 교우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당장만나’는 지난해 말 세상에 나왔다. 막 시작한 ‘당장만나’, 첫 화밖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부 및 기관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한국장애인개발원이 제작하는 ‘당장만나’는 ‘당신이 장애인을 알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시각장애인 이현학씨와 함께 ‘당장만나’를 진행하는 신홍윤 교우는 이 팟캐스트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그래서 장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팟캐스트 스튜디오 모습. 왼쪽부터 게스트 김원영 변호사, 이현학·신홍윤 진행자.여덟 살에 찾아 온 사춘기“사춘기는 나와 다른 사람이 다르다는 인식이 생겼을 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제가 여덟 살 때, 장애인이라는 자각을 처음 했어요.”신홍윤 교우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유를 물어봤다. 남들처럼 걷지 못하는 이유가 지체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이었다. 찾아온 건 우울감 그리고 사춘기였다. 하지만 반항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바꿔나갔다. 애써 밝게 생활했고, 중고등학교 내내 반장을 도맡으면서 꿈을 키웠다. 대학도 다니고, 유수 기업에 취업도 했지만 그에게는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었다.“스스로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은 장애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죠. 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을 풀지 않고서는 말이죠.”서관 엘리베이터를 아시나요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취업도 했지만, 응어리가 남아있었다.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수능을 준비하면서, 자기 전에는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목록들을 버킷리스트처럼 정리해나갔다.“... [2019-01-14](Hit:1718)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습니다”
영화 <증언>에서의 한 장면. 직장내 성희롱을 다루면서 피해자를 향한 다양한 시선들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지난 10월 제주여성영화제에서 요망진 작품상을 받은 작품 <증언>의 감독 우경희(미디어07)교우. 그녀의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아직 두 편의 단편 영화만을 선보였지만,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색깔은 현실에 천착할수록 더욱 영롱하게 빛난다. 올해 단편영화계 화제작 <증언><증언>은 서울국제영화제 아시아 경선, 런던한국영화제 초청, 칠곡영상콘텐츠공모전 우수상 등 올 한해 단편 영화계에서의 큰 수확이다. 영화의 내용은 경력증명서를 받기 위해 전 직장을 찾는 주인공 혜인의 이야기이다.혜인은 사실 경력증명서를 핑계로 과장에게 떼인 돈 6만7600원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돈은 돈대로 받지못하고 오히려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하는 오 대리에게서 증언을 부탁받는다.“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것을 영화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피해자이면서도 오히려 두려워해야 했던 우리의 이야기이자,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어긋나는 시선과 목소리를 담다우경희 교우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목격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언제나 남아있던 의문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우경희 교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를 통해 드러낸다. 바로 ‘용기’이다. 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답이 아니기에 이 영화는 빛이 난다.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 이분법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피해자를 향한 어긋난 시선들이 설득력있게 교차되면서 영화의 주제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현실적이다.“영화는 삶의 바닥까지 반추하고, 또 반추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나오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우 교우는 현실 속에 소외돼 ... [2018-12-19](Hit:1776)

“발굴 현장 개방하고 시민이 문화재와 놀 수 있는 환경 만들겠다”
현직 언론인 출신 최초로 문화재청장에 취임한 정재숙 교우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났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경복궁이다.지난달 26일 남북 최초로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공동등재되자 문화재청장 정재숙 교우(가운데)가 북한측 장명호 대표(왼쪽)와 인사를 나누며 기뻐하고 있다.2019년 설립 20돌을 앞두고 문화재청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수험생들이 그동안 쌓아온 능력을 성인이 돼 세상에 공개하듯, 문화재청은 20년간 응축했던 저력을 국민에 공개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청이 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그 변화의 선두에 정재숙 교우가 앞장섰다.문화재, 이젠 보존에서 활용으로“국토 전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해서 우리 곁에 둔 일들이 국민들에게 홍보가 안되고 있는 점이 아쉬웠어요. 이제는 그동안 쌓아온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재를 국민들이 쉽게 이해해서 누릴 수 있게 만들어야죠.”취임 후 근 3개월이 지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정 교우는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청을 강조했다. 어떤 계획들이 있는지 묻자 발굴현장 공개와 궁궐의 개장범위확대 등을 꼽았다.“문화재 담당기자를 하면서 수백년의 시공이 엮이는 발굴 현장의 모습에 빠져들었어요. 앞으로는 현장을 칸막이로 차단하지 않고 유리덮개 등을 설치해서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발굴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문화재 발굴이라는 것이 생활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얼마전에 발굴된 조선 시대의 수류탄 비격진천뢰의 발굴 현장의 경우에는 유튜브로 생중계가 되기도 했어요. 또 창덕궁에 가면 희정당이 있어요. 희정당은 100년 전에 근대 문화가 들어와서 외국 문물과 우리 문물이 섞일 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요. 건물은 우리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내부는 테이블, 의자, 카페트 등 서양식으로 꾸며졌거든요... [2018-12-19](Hit:1243)

한반도는 생명공동체,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
직접 재배한 배추밭 앞에 선 정성헌 교우.정성헌(정외64) 한국DMZ평화 생명동산 이사장은 진보 진영의 원로로 불린다. 모교 재학당시 한·일어업협정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가 투옥됐다. 1970년대 들어서는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다 1998년 인제에 한국 DMZ평화생명동산을 만들고 지금까지 평화생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새마을운동중 앙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 지금, 인터뷰를 위해 평화생명동산을 찾았을 때도 정 교우는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남북 평화 국면에 대한 소감은?평화가 정착 되기 위해서는 남측이 잘 해야 한다. 북한은 자신감이 없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핵무 기에 집착한 것이다. 그러니 자신감이 있는 남한이 주도적으로 잘해서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리고 벌써부터 돈 이야기가 나오는데, 남북의 평화협력도 한반도의 생명공동체에 바탕을 둬야 한다.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장사 이야기부터 나오면 되겠나.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맡았는데?운동이라는 것은 그 사회가 당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대에 시작됐다. 그때는 절대 가난이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옛날 운동을 그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 100일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3000여 명을 만나서 이야기했다. 대부분이 생명·평화·공경 운동으로의 전환에 찬성했다.사회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모교에 입학했을 때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고대인들은 정말 우리나라가 잘되기를 바랐고 그 선봉에 고대가 있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덕분에 좋은 친구 선후배들을 많이 만나 세상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모교에서의 생활이 큰 영향을 줬다.모교... [2018-11-16](Hit:1777)

“우리는 지금도 ‘여성이 으뜸’인 세상을 꿈꿉니다”
오랜만에 모교 교정을 찾은 김재원(왼쪽), 이정숙 교우부부. 아래는 두 교우의 시집.  “그러고 보니 우리가 고대에서 만난 지 올해로 60년째가 됐네요.” 김재원(영문59), 이정숙(국문59) 교우는 1959년 모교에 입학하면서 만났다. 김재원 교우는 국문과로 입학했다가 2학년 때 영문과로 옮겼다. 그는 모교에 입학하던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문>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신동엽의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와 동반 당선이었다. 대전사범학교를 나온 이정숙 교우는 문학에 대한 꿈으로 교직 진출 대신 모교 국문과에 진학했다. 두 사람은 함께 글을 쓰다가 일찍부터 캠퍼스커플이 됐고, 지금도 시인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저항시인이 《여원》 발행인이 되다‘천재 소년 시인’으로 주목받으며 등단했던 김재원 교우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재학시절엔 고대신문 학생기자로, 고대문화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시는 주로 현실에 밀착한 작품이었다. 1962년 경향신문에 발표한 시 <당분간>에서 그는 “헌법 대신에/조치법으로 다스리는 5월이여/총을 들어 너만 혁명이고/피 흘렸지만 맨주먹이라/헌법전문에도 우리는 의거냐?”라며 4·19혁명의 역사적 행방을 묻고 있다. 1964년 발표한 <입춘에 묶여온 개나리>는 시인 김수영으로부터 “제정신을 갖고 쓴 시”라는 고평을 받았다. “남편이 시를 쓰고 나면 이상하게 곧바로 북한 대남방송에 나오거나 일본에서 발행되던 한양이라는 잡지에 실렸어요. 그래서 정부 기관에 자꾸 끌려가니까 늘 불안했지요.” 이정숙 교우 말처럼 김재원 교우는 시로 인해 여러 번 고초를 겪었다. 그가 대표청년위원이었던 청년문학가협회가 19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 [2018-10-12](Hit:2086)

“주문 받은 옷 현장에서 맞춰주고, 사료와 간식도 챙겨줍니다”
뜻밖의 기회로 체육입시학원을 열게 됐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IT업계에 뛰어들었다. 체육과 출신답게 현장이라는 필드에서 창업을 향해 동분서주했다. 전력질주를 하기도 했고, 세상의 태클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일어서는 것만 생각했다. 현재 반려동물 전문 소셜커머스 ‘펫프렌즈’를 운영하고 있는 김창원(사회체육03) 교우.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12호점까지 열었던 체육입시학원 대표“새내기 여름 방학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체육입시 과외를 했습니다. 그런데 과외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늘어나서 결국 한 달 만에 학원을 차리게 됐죠.” 김창원 교우의 남다른 교육방법이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사로잡았다. 학원 시간 이외에도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PC방도 함께 갔다. 독서실에 다녀온 학생들과 야식도 함께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줬다. “학생들에게는 ‘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해야 할 것을 알려줬죠. 함께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학원에 들어온 아이 중에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김 교우는 채찍질보다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줬다. 입시도 중요했지만, 인성교육도 중요했다.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한 달이 지날 무렵에는 학원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체육입시학원은 현재 12호점까지 개설됐다.1시간 만에 배달해주는 펫프렌즈승승장구하던 김창원 교우였지만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건 아니었지만, IT계열에 대한 도전이었다. “사실은 무작정 IT쪽 창업을 꿈꾸었습니다. 두렵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시작은 단순했다. IT계열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 그렇게 김 교우는 서울에 무작정 올라왔다. 50여 개의 앱에이젼시(스마트폰 앱... [2018-10-12](Hit:1492)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바로 야구, 노력이 나를 키웠다
잠실야구장 LG트윈스 프로야구단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용택 선수.지난 6월 23일 잠실구장.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팀이 5대 7로 지고 있던 4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박용택 교우가 타석에 들어섰다. 박 교우는 느린 커브를 받아쳐 오른쪽 외야 펜스까지 굴러가는 2타점 2루타를 때렸다. 박 교우의 2319번째 안타. 37년 프로야구 역사상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박 교우의 안타는 모두 전설이다. LG의 전설에서 프로야구의 전설로 우뚝 선 박 교우가 새 역사를 쓴 곳, 그리고 다가오는 정기고연전에서 모교 선수들이 새 역사를 쓸 잠실구장에서 박 교우를 만났다.꾸준한 노력이 기록의 비결“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노력하는 점에 있어서는 지지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졌고, 그런 몸을 스스로 잘 관리했기 때문에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죠.”기록 달성의 소감과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 교우가 답했다. 박 교우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교를 선택한 이유도 훈련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교우가 이렇게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도 크다.시작부터 인생을 걸었던 야구박 교우가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다. 체격이 좋고 운동도 곧잘했던 박 교우는 야구를 해 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어린 마음에 막연히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농구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는 항상 ‘야구를 시작한다는 건 놀이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야구로 가정을 꾸리고 네 인생이 야구가 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있고 그럴 결심이 서면 이야기하라’고 하셨어요”예측불가능함이 야구의 매력“아무리 강팀이라도 시즌 승률이 7할을 넘기기 힘... [2018-09-19](Hit:2021)

여요 ‘휘종 좌상’으로 북경을 움직이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덕기 교우는 이날 특별강연을 진행했다(왼쪽). 휘종 좌상(높이22.3㎝)의 정면 모습. 지난달 19일 중국 북경에 위치한 한 미술관에서 중국 북송시대에 번조됐던 자기 여요(汝窯)에 관한 책《 여요신론》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중국의 유수한 도자기 연구자들, 수집가들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는 중국 진출 1세대 한인 기업가 김덕기(농경제70) 교우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제가 소장하고 있는 여요, ‘휘종 좌상’에 대한 관심은 이번 중국 연구가의 책《 여요신론》 표지 사진으로 실렸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기념회에서 화제가 된 ‘휘종 좌상’은 북송, 휘종시대에 만들어진 여요다. 여요는 중국 5대 명요에 뽑힐 만큼 아름다운 자태와 더불어 희소성이 높은 자기다《. 여요신론》을 집필한 조청운 연구가는 김교우의 소장품이 단연 국보급에 버금가는 여요라며, 김 교우의 안목을 높이 평가했다.《 여요신론》에는 김덕기 교우의 논문 ‘여요가 고려청자에 미친 영향’이 실리기도 했다.김덕기 교우는 1996년 중국 청도로 넘어가 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부터 5년 동안 청도교우회장을 맡았다. 중국에 넘어간 계기는 사업 확장이었지만, 그전부터 김 교우와 중국은 맞닿아 있었다.“대학시절부터 한학과 서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시회와 포럼을 다녔고 관련 잡지들도 보면서 나름 고예술학 분야를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더 넓은 예술품 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눈에 들어오는 작품을 보면, 만든 사람이나 유족을 만나 작품의 가치를 함께 이해하면서 소중한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 교우가 모집한 수집품들은 작은 박물관을 이룰 만큼이 됐다.“부산에 팔금산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도자기, 금동기, ... [2018-09-19](Hit:2325)

판화 작업 앞에서는 항상 새내기 같습니다
대상 수상작 <Freshman>(40×30㎝). 민 교우는 입학30주년 모교방문축제에서 느낀 감흥을 작품화 했다. 영국 스파티크 판화 스튜디오에는 현재 ‘온 페이퍼 2018 국제판화공모전’ 수상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공모전에는 48개국 267명의 판화가들이 작품을 냈지만, 전시의 영예를 얻은 작품은 11작품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작품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민경아(축산84) 교우의 <Freshman>이다. 홈커밍데이 그리고 <Freshman>“입학30주년 홈커밍데이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새내기 때처럼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이번 국제판화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Freshman(새내기)>이다. 민 교우는 지난 2014년 입학30주년 홈커밍데이에 참가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인 것처럼 반갑고 즐거웠다. 졸업하고 26년만의 만남이었지만 새내기 때의 설렘이 컸다. 그녀는 이날 이후 고려대를 주제로 몇 개의 소품을 제작했고, <Freshman> 또한 이 시리즈의 일환이다. “서관의 시계탑이 있고 그 앞에 학교 마스코트인 호랑이가 있습니다. 호랑이를 선택할 때 민화를 차용했는데, 호랑이의 표정은 마치 호기심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뭔가 귀여운 새내기같은 느낌이 날 거에요. 첫 입학 그리고 홈커밍데이에서의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익숙함에서 낯섦을 발견하는 순간들<Freshman> 작품을 통해 민경아 교우의 판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교우들에게는 고려대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다른 맥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묘한 배치로 느껴질 것이다. <Freshman>에서 호랑이 머리 위에는 왕관과 달팽이가 놓여있는데, 이러한 점들은 관객들을 그... [2018-08-17](Hit: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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