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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한 시인 문태준 교우
시인 문태준(국문89) 교우가 지난 10일 제21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그맘때에는' 외 15편이다. 소월시문학상심사위원회는 10일 "수상작 '그맘때에는'은 하늘에서 놀던 잠자리 떼가 사라졌다는 지극히 범상한 관찰로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찾아들 이 지상에서의 공허를 예사롭지 않게 유추해냈다"며 "서정시의 정도를 보여주는 문태준의 시편들은 새로운 시대 서정시의 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70년 경북 김천 출생인 문 교우는 모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또한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수런거리는 뒤란''맨발' 등이 있다. 문 교우는 현재 불교방송 PD로 재직 중이다. 이번에 문 교우가 소월시문학상 대상으로 받을 상금은 1500만원이며, 시상식은 이상문학상·김환태평론문학상 등과 함께 11월 중에 열린다. [2006-04-13](Hit:22446)

건물이 아프면 저를 찾아주세요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이 건물에 문제가 있으면 건축구조엔지니어를 찾아야 합니다” 김영식(건축공88)C·S구조엔지니어링 이사는 건축사와 건축구조엔지니어가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건축사가 건물의 디자인을 맡는다면 건축구조 엔지니어는 건물의 뼈대를 설계한다. 즉 지진이나 태풍, 집중호우 등에 견딜 수 있는 건물구조를 설계하는 기술자다. 예컨대 내부 벽이나 철골조를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이냐를 결정한다. 특히 건축물이 흔들리거나 붕괴 가능성이 보이면 각종 진단기기를 동원해 문제점을 찾아낸다. 건물의 병증을 진단하는 의사인 셈이다. 김 교우는 올해로 건축구조엔지니어가 된 지 10년이다. 건축구조엔지니어에게 주는 건축구조기술사 자격증은 2002년에 땄다. 건축구조기술사 자격시험은 건축관련 학부를 졸업하고, 7년 이상 실무경험을 가져야 응시할 수 있다. 의사가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야 전문의 자격증을 따는 것과 똑같다. 그만큼 건물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김 교우는 "건축구조엔지니어는 설계와 시공, 품질 등 건축구조 전반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는 종합 엔지니어”라고 설명했다. 디자인 측면이 강한 건축사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지금까지는 건축사가 건축구조기술사 업무를 겸했지만 건축구조기술사가 점점 많아지면서 역할을 분담하는 추세다. 건축구조엔지니어가 최근에 생겨난 직업은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건축사와 구분이 모호했을 뿐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이 바로 건축구조엔지니어였다. [2005-08-29](Hit:20814)

한국신문상 수상 채희창 교우
"입소문을 듣고 왔는데 정말 대단하군. 정말 잘하고 있는 일이다. 학자, 교수들이 못하는 일을 기자들이 하고 있다.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소문 듣고 찾아와서 보니 정말 좋은 기사네요. 저널리즘은 이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선정적인 폭로성 기사보다는 나라의 근본과 역사를 생각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잃어버린 기록을 찾는 작업도 해주고요." [2004-11-05](Hit:22152)

해외석탑제 성공적으로 이끈 유재현 뉴욕교우회장
지난 8월 28, 29일 뉴욕에서는 모교의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외석탑제가 성대히 열렸다. 참석한 교우들 가슴 가슴에 고대의 자부심과 긍지와 벅찬 감동을 안겨준, 해외교우들의 한마당 잔치이기도 했던 해외석탑제가 이처럼 훌륭한 행사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 행사의 준비부터 끝날 때까지 솔선수범, 진두지휘하며 열정을 불살랐던 한 교우가 있었다. 바로 유재현(농경제62) 교우다. [2004-10-14](Hit:23874)

젊은 고대인의 파워, 모교 발전에 쓸 터 곽승준교우
최근 모교가 국내 최초로 CRO과정을 개설, 대외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본 과정을 개설하는데 있어 소리 없이 주역을 맡아온 인물이 있다. 80학번 소장학파 교수로서, 오는 9월부터 시작될 CRO과정 주임교수를 맡게 된 곽승준 교수가 바로 그 화제의 인물이다. 곽 교수는 CRO 과정 설립 계기에 대해 ‘그 동안 산학협동 등을 통한 학교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수요자 중심의 맞춤교육을 실시하고자 어윤대 총장님의 뜻을 받들어 만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2004-08-18](Hit:24415)

명성에 연연 않고, 민생정치에 주력 박성범 교우
80년대, 버버리 코트자락을 휘날리면서 KBS 유럽 특파원으로서 동분서주하며 유명세를 떨쳤던 박성범(사학60) 교우. 9시뉴스 앵커로서도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그가 지금은 17대의 국회의원으로서 민생 안정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박 교우는 본지 기자들을 반갑게 맞아 주며 모교 재학시절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학과 60학번인 그는 유감스럽게도 모교에서 짧은 재학시절을 보내야 했다. [2004-08-05](Hit:33247)

내가 가는 길이 한국 여검사의 역사다
'대한민국 최후의 금녀구역'이라는 검찰에 고대출신 첫 여성부장이 탄생했다. 조희진 교우(법학81)는 지난 6월7일 의정부지청 형사4부장으로 발령받았다. 1948년 검찰이 설립된 후 무려 56년만의 첫 여성부장이다. 검찰에 여성 간부가 나오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검찰이 남성중심 사회라는 것을 반증한다. 검찰은 범죄자를 다루는데다가 일이 많아 야근이 다반사고 술(특히 폭탄주)을 많이 마신다. [2004-07-05](Hit:22867)

재미 있을려면 재미에 대한 환상 버려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 교우는 손에 PDA를 들고서 나타났다. "강의준비는 물론이고 인터넷 정보검색이 되므로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심심해할 때마다 농담을 찾아서 바로바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라며 PDA 예찬론을 펼치는 김 교우. 대다수의 사용자들처럼 PDA를 전화번호부나 스케줄 검색용으로 사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일반적인 물건을 재치있게 사용해 효율성을 극대화 시킨다. 이처럼 센스 있는 삶을 몸으로 실천할 줄 아는 김 교우는 국내 최초의 여가학 전문가으로 유명하다. 모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문화심리학의 실용적 통합영역으로 여가학의 필요성을 절감해, 지난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가학의 정착을 위해 노력중이다. 현재 김 교우는 명지대학교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休man 경영연구원'을 설립해 기업을 상대로 강연과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와 방송에서 오늘도 김 교우는 '휴(休)테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최근 집필한 「휴테크 성공학」에도 이러한 김 교우의 21세기형 자기경영 전략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2004-06-10](Hit:25500)

구삼열 교우 인터뷰
17년 경력의 코리아 헤럴드지 및 미국 AP통신 기자. 한국인 최초 유엔 직원으로서 유니세프 홍보처 부처장, UN특별기획국 국장을 역임한 구삼열 교우. 글로벌 리더로 정평이 난 그가 지난해 12월부터 아리랑TV 사장으로 임명돼 대내외적으로 남다른 기대와 관심을 새롭이 모으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반갑게 기자들을 맞이해 주는 구 교우는, 첫마디부터 모교에서 겪었던 따스한 추억거리를 늘어놓았다. "고대는 끈끈한 정이 가득한 곳이었지. 남이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격려해줄 줄 아는 그런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야." 라고 말하는 구 교우. 그는 고대에서 소박함과 순박한 스타일을 배우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었으며 이는 인생의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법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이례적으로 기자의 길을 택한 구 교우. 여기에는 그의 남다른 글로벌 의식이 작용했다. 재학시절 구 교우는 특히 국제관계에 관심이 많았으며 영어를 잘해 튀는 학생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실력은 '영어'하면 '구삼열'이라는 동의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대단했었다. 때문에 당시 유진오 총장의 통역관으로서 총장실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와세대와 최초로 교류할 당시, 그는 구자신 총학생회장과 함께 학교를 대표해서 갔던 학생 중 한 명이었으며,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마닐라에서 있었던 국제회의를 갈 수가 없게 되자 교무과에서 교수님께 편지를 써 주는 등 학교측의 배려를 받기도 했었다.외교관이 되고자 했으나 코리아 헤럴드 기자를 하게 되면서 구 교우는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자신이 쓴 기사로만 정당하게 평가받기 때문에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는 구 교우. 코리아 헤럴드를 거쳐 미국AP통신에서 국제문제 전문기자, 남유럽 로마 특파원 등을 맡아 세계 ... [2004-06-04](Hit:2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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