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Home > 교우회보 > 인터뷰

인터뷰

재미 있을려면 재미에 대한 환상 버려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 교우는 손에 PDA를 들고서 나타났다. "강의준비는 물론이고 인터넷 정보검색이 되므로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심심해할 때마다 농담을 찾아서 바로바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라며 PDA 예찬론을 펼치는 김 교우. 대다수의 사용자들처럼 PDA를 전화번호부나 스케줄 검색용으로 사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일반적인 물건을 재치있게 사용해 효율성을 극대화 시킨다. 이처럼 센스 있는 삶을 몸으로 실천할 줄 아는 김 교우는 국내 최초의 여가학 전문가으로 유명하다. 모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문화심리학의 실용적 통합영역으로 여가학의 필요성을 절감해, 지난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가학의 정착을 위해 노력중이다. 현재 김 교우는 명지대학교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休man 경영연구원'을 설립해 기업을 상대로 강연과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와 방송에서 오늘도 김 교우는 '휴(休)테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최근 집필한 「휴테크 성공학」에도 이러한 김 교우의 21세기형 자기경영 전략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2004-06-10](Hit:25523)

구삼열 교우 인터뷰
17년 경력의 코리아 헤럴드지 및 미국 AP통신 기자. 한국인 최초 유엔 직원으로서 유니세프 홍보처 부처장, UN특별기획국 국장을 역임한 구삼열 교우. 글로벌 리더로 정평이 난 그가 지난해 12월부터 아리랑TV 사장으로 임명돼 대내외적으로 남다른 기대와 관심을 새롭이 모으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반갑게 기자들을 맞이해 주는 구 교우는, 첫마디부터 모교에서 겪었던 따스한 추억거리를 늘어놓았다. "고대는 끈끈한 정이 가득한 곳이었지. 남이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격려해줄 줄 아는 그런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야." 라고 말하는 구 교우. 그는 고대에서 소박함과 순박한 스타일을 배우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었으며 이는 인생의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법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이례적으로 기자의 길을 택한 구 교우. 여기에는 그의 남다른 글로벌 의식이 작용했다. 재학시절 구 교우는 특히 국제관계에 관심이 많았으며 영어를 잘해 튀는 학생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한 영어실력은 '영어'하면 '구삼열'이라는 동의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대단했었다. 때문에 당시 유진오 총장의 통역관으로서 총장실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와세대와 최초로 교류할 당시, 그는 구자신 총학생회장과 함께 학교를 대표해서 갔던 학생 중 한 명이었으며,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마닐라에서 있었던 국제회의를 갈 수가 없게 되자 교무과에서 교수님께 편지를 써 주는 등 학교측의 배려를 받기도 했었다.외교관이 되고자 했으나 코리아 헤럴드 기자를 하게 되면서 구 교우는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자신이 쓴 기사로만 정당하게 평가받기 때문에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는 구 교우. 코리아 헤럴드를 거쳐 미국AP통신에서 국제문제 전문기자, 남유럽 로마 특파원 등을 맡아 세계 ... [2004-06-04](Hit:21341)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고대다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으로 서울산업대 총장으로 취임해 남다른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윤진식 교우. 서울산업대 교수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돼 지난 3월 26일자로 대통령 임명을 받아 취임한 윤 교우는 ‘아직은 학교 일을 파악하는 단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업무를 보고 받는 윤 교우의 모습에서 앞으로 학교 발전을 위한 확실한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의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해나가는 치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총장이 된 소감에 대해 윤 교우는 “공무원이 장관이 될 수는 있지만, 총장이 되기는 쉽지 않기에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산자부 장관 당시부터 대학교육에 관심을 가져왔었는데, 이번 기회로 30여 년의 공직생활동안 느낀 것을 대학에서 실천하게 됐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2004-05-06](Hit:22361)

안중근 연구소장 송찬규
평생을 살아오며 단 5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의미에서 단 한순간도 후회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宋瓚圭 교우야말로 인생을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뛰어난 경영인으로서 제1의 인생을, 외국어학도와 사회활동으로서 제2의 인생을 보낸 뒤 86세라는 나이에 안중근 연구가로서 누구보다도 알차게 제 3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宋교우.宋교우는 1954년부터 40년 동안이나 교우회에 몸담아 교우회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인촌동상건립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교우들을 찾아 모금활동을 벌이는 등 인촌동상 건립에 힘쓴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宋교우가 최근에는 안중근 연구소를 세워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설파하는 등 안중근 정신을 강조하고 있어 민족고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宋교우를 찾아뵌 곳은 경기도 이천의 양지원 농장에 세워진 안중근 연구소. 길게 늘어뜨린 수염과 백발에도 불구하고 청년과도 같이 씩씩한 모습을 한 宋교우는 젊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안중근 정신을 쏟아 부어,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이곳을 열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를 단지 이등박문 처단자로서만 아는 것이 아쉬운 일이야.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은 세계평화론과 연결되지. 그는 진정한 인권·평화주의자였어”라고 거듭 강조하는 宋교우의 얼굴에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2004-04-10](Hit:26174)
처음으로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