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Home > 교우회보 > 월례강좌

월례강좌

[석탑강좌] 석탑인문아카데미 ‘도스토옙스키의 자유·정의·진리’《죄와 벌》을 통해 본 자유·정의·진리

등록일 : 2019-07-11 조회 : 112

석영중(노문77)

모교 노문과 교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잔인하지만 돈이 많은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 자기처럼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해 훌륭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도끼를 가지고 전당포에 가서 노파를 살인하고, 장면을 목격한 노파의 여동생까지도 죽이게 된다.

우선 ‘정의’의 측면에서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아 빈곤에 처한 100명의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의 살인이 분배와 처벌이라는 정의의 원칙에는 부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정의의 실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분노가 곧 정의는 아니다. 모든 정의의 출발점은 사랑이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시간을 이해하고 제대로 체화하는 것이 ‘진리’에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소설 속에 배치해뒀다. 시간은 양으로 측정되는 크로노스의 시간과 얼마나 풍요롭게 시간을 채웠는가로 정의되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구분된다. 라스콜니코프의 살인 앞에는 ‘한탕 심리’가 있었고 이는 한정된 시간 안에 빨리 무엇인가를 완성하려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해석할수 있다. 반면 친구인 라주미힌은 빨리 무엇을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이 ‘자유’다.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통해 비범한 초인에게는 살인을 포함한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초인사상을 확인해 보려고도 했다. 자신이 초인인지 아닌지 시험해보고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도끼를 집어든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존재감에 대한 집착을 보였지만 궁극의 자유는 존재감에 대한 집착도 넘어서는 것이다. 궁극의 자유를 위해서는 억제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 《 죄와 벌》을 통해 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정리 신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