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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언어로 남을 보편언어와 ‘사소한 부탁’의 문장들

등록일 : 2018-08-13 조회 : 588

《과학과 문학》김인환(국문65)/수류산방/2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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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탁》황현산(불문65)/난다/1만4000원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체스》에는 기이한 체스 대결 이야기가 나온다. 대결자 중 하나는 무수한 실전을 통해 일인자에 오른 체스챔피언이고, 다른 하나는 어렸을 때 이후로는 체스를 둔 적이 없지만 오랜 연금 시간 동안 우연히 얻은 체스교본을 통째로 외워버린 사람. 평론가 김인환과 황현산이 이번에 나란히 출간한《과학과 문학》《사소한 부탁》은 어쩐지 저 대결을 닮아있다. 그러니까 김인환의《과학과 문학》은 일종의 ‘바둑교본’ 같은 것이고, 황현산의 글들은 ‘명인기보’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정석과 실전이 그러하듯, 두 글들은 스타일에서는 다르지만 궁극과 핵심에서는 겹쳐있다. 김인환은 이번에 평생 공부했던 것들 중에 알곡만을 추슬러서 ‘경전’ 같은 글을 묶었고, 황현산은 그 경전을 대중에게 전하는 탁발승같은 언어로 가득 찬 산문집을 냈다.

전형의 조각들로 빚어진 철학적 문장들
김인환의《 과학과 문학》에 실린 총 9편의 글은 경제학, 수사학, 문학, 심리학, 과학, 미술, 영화는 물론 고전과 현대를 종횡무진 하지만, 확장하기보다는 간추리고 또 추려서 만든 ‘말씀’같은 글이다. 그 단단한 ‘말’들은 평생의 공부와 사유라는 ‘사실성’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숭고하기까지 하다. 김인환은 이 책에서 ‘수학과 물리학과 경제학은 모두 물질에 근거하는 전형(언어)의 체계들’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김인환의 평생공부에 대한 전형의 체계들을 담고 있지 않을까싶다.
김인환은 비평을 공부하려는 후학들에게 항상 소쉬르의 언어학과 마르크스의 경제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라는 삼각형을 잊지 않기를 당부했는데, 이
책에는 평생 강조하셨던 그 문법의 핵심이 들어있다. 가령, ‘과학공부와 문학공부’에서 아도르노의 수필론을 들어 문학이 데카르트의 근대 학문의 네 가지 규칙을 어떻게 격파하는지를 설명할때, 화이트헤드를 들어 과학과 미학의 하나됨을 강조할 때, 토착주의(조선주의)와 서구주의를 경계하고 자기의 근본문제에서부터 출발하기를 당부할 때, 후설과 데카르트, 들뢰즈, 데리다를 들어 개인의 의식과 역사가 어떻게 ‘근원적 어긋남’ 속에서 다른 미래로 향할 수 있는지를 강변할 때, 우리는 여전히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다시 반복되는 그 ‘말씀’에 깃든 진정과 진리를 부인할 수 없다.
대중에게는 불친절한(이 책의 난해함은 현학이 아니라, 최소언어만을 담으려는 저자의 의도에서 온다), 철학적인 문장들은 김인환의 ‘전형’의 편린들을 담고 있으나 곳곳에서 전진하면서도 머물며 고심하는 현존재로서의 저자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김인환 사유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는 ‘전형과 욕망’은 소설의 전형과 언어와 노동의 변증법, ‘비개입과 평등공리’가 어떻게 현실과 문학, 정신분석에서 어떻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글을 완독하면, 체계없이 흐르는 듯한 이 에세이 이면에서 냉정하고 치밀하게 분석하는 문학과학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적 언어로 담아낸 사유와 함의
황현산의《사소한 부탁》은 《밤이 선생이다》(2013)의 후속작에 해당하는 산문집이다. 첫번째 산문집에 쏟아졌던 찬사, 가령 “어깨동무하고 보폭 맞추는 행동”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된다.
칼럼과 시평들의 성격이 그러하듯 이 책에 묶인 짧은 글들은 2013년에서 2017년까지의 우리일상의 어느 지점들과 맞닿아있다. 거의 모든 글들이 언제나 구체적인 ‘현재’를 염두에 두지만, 그의 문장은 그 현실에 머물지 않고 생의 기억과 프랑스 고전을 줄줄이 호출하여 마술같은 형상들을 빚어낸다. 조근조근 말하듯 풀어놓는 이야기는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하고, 소설이나 영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잘 들어보면 그 안에 우리가 현재 서 있는 ‘대지’를 정확히 지목하는 사유와 항의가 들어 있다.
이러한 황현산의 글은 그가 언급한 ‘종합적 언어’를 닮아있다. (황현산은 영화 ‘컨택트’를 분석하면서 이 영화의 외계인 언어는 인간의 언어의 선조성과는 달리 ‘동시성’, 즉 ‘두 말 하지 않는 입과는 달리 두 말 이상을 하는’ 마음의 언어를 닮아 있다고 언급한바 있다.) 즉 서문에서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라고 쓴 바로 그 종합적 언어의 현현이 아닐까.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탐나는 것은, ‘만주 오리찜’이라든가 “아니 곤반불레로 국한번 끓여 먹은 적 없는 것들이 왜 저희들 마음대로 별꽃이야”
‘키가 크다’를 ‘열쇠가 크다’라고 고치라는 한글프로그램 등과 조우하면서 획득한 저자의 경험, 유일무이한 그 체험과 기억들이다. 이 책의 글들이 시평이라 읽고 치워버릴 글들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 시류’를 황현산의 문학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로 단단히 붙잡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투표의 무의식’에는 난초분을 가꾸는 무의식과 투표의 무의식, 역사의 무의식이 묵직하게 빛나고 있고, ‘악마의 존재방식’에는 보들레르의 시와 부패한 한국자본주의, 세월호의 신음과 무뎌진 마음이 단말마처럼 묶여있다.
김인환의 저 보편언어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의 문장들은 ‘매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그 사소함’처럼 우리가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불후의 언어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집필하는 중에 황현산 선생님의 작고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의 광대한 글들을 다 헤아리지 못한 후학으로서, 큰 스승을 잃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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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독문87)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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