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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을 알려면 고려대학을 보게 하라”
조지훈 선생은 교가 가사에서 고려대학교를 ‘마음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오른쪽은 선생이 쓴 호상 비문.금년 5월 17일은 우리의 큰 스승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선생의 5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가 향년 만 48세로 유명을 달리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특히 우리 고려대학 사람들이 그를 못 잊어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의 고매한 인품과 순수하고도 절실했던 우리 “고려대학 사랑” 때문이리라.선생이 운명하기 하루 전, 1968년 5월 16일, 지병인 기관지 확장 증세가 다시 악화되어 메디컬센터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단숨에 병원으로 달려갔다.당시 지훈은 나의 지도교수이자 민족문화연구소의 소장이였고, 나는 동 연구소의 총간사직을 맡아 보던 30대 초반의 시간강사였다. 병실에 들어서니 지금은 공업용으로만 쓰이는 긴 폭탄 모양의 산소통이 세워져 있고, 거기에 산소 호흡기를 연결시켜 놓은 채 침대위에 반듯이 누워 계셨다. 선생의 손을 덥석 잡는 순간 따끈한 촉감이 느껴졌던 것은 높은 신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종 직전 들은 지훈의 유언잠시의 침묵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더듬더듬 하시던 말씀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지금 중단되고 있는 《한국문화사대계》를 어떻게든 꼭 완간해야 하네. 자네는 해낼 수 있을거야… 그리고 우리 민연(민족문화연구소-필자주)을 반드시 크게 키워서 앞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이 고려대학을 와서 봐야 한국을 알게 되고, 고려대학을 찾아오는 사람이 우리 민연을 와서 봐야 비로소 한국과 고려대학의 진면목을 알게 되도록 말이야….”사실 이 두 가지 유언은 평소에 여러번 당부하던 말씀이다. 그러니까 이날의 유언은 내 손을 꼭 잡고 다시금 강조하는 뜻 이였으니, 나로서는 새삼 비창(悲愴)한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 [2018-05-16](Hit:13)

그 어려웠던 ‘법인의 비인격화’, 이제야 깨닫습니다
1958년 기업경영연구소 창립식. 김효록 교수(두 번째 줄 앉은 이들 중 오른쪽 두 번째)가 초대 소장으로 설립을 주도했다.“법인의 비인격화”라는 용어는 내게 아픈 추억을 지금까지도 남긴 말이다. 대학 1학년 때 고 (故) 김효록 교수의 저서 《상학개론》의 서문에 등장했던 용어인데 김 교수께서 서문을 가지고 장시간 강의를 하셨다.서문에 있는 용어를 진지하게 설명하셨지만 나는 “법인”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더더욱 “비인격화”까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러나 시험지를 받아 보니 “법인의 비인격화에 대하여 논하라”는 문제였다.나는 결국 F학점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아 고생하는 부모님께 도움을 주려던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머지 과목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카르텔” 또는 “트러스트” 그 후에는 “신디케이트” 등은 사회악이라고 배우기까지 했지만 “법인의 비인격화”에 대해서는 내가 단문해서인지 몰라도 어느 학자나 어느 책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용어로 그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졸업했고 이제까지 살아왔다. 나이 팔순을 바라보며 법인이란 사람이 아닌 기업 또는 단체에 인격을 부여하여 법적으로 인간처럼 대우를 하여 인격체인 개개인과 같이 인정한다는 것으로 개념을 정리했다. 고매한 인격을 가진 개인이 있는 한편 저질의 인격을 가진 인간도 있다. 다른 부문은 제쳐두고 우선 돈을 버는데 고상하게 버는 사람과 못되게 버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법인도 제대로 된 인격(법인 문화)을 갖출 수 있고 비인격화 되어 그야말로 막된 법인으로 변모할 수 있다. 요즘 경영학을 전공한 분들도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공공연히 정의하는 것을 듣는다. 비인격적이 되어도 괜찮다는 말로 들리니 씁쓸하다.고 김효록 교수님은 이런 못된 현상을 내다보고 “... [2018-05-16](Hit:60)

모든 방송인의 사표, 30년 간 묘소 참배 이어온 아나운서들
출신 학교를 불문하고 해마다 5월 5일 묘소참배를 이어온 아나운서 후배들이 30주기인 올해 마지막 추모행사를 가졌다. 앞줄 앉은 이들 중 맨오른쪽이 이규항(국문57) 교우, 그 바로 뒤에 선 이가 이계진 교우. 1958년 기업경영연구소 창립식. 김효록 교수(두 번째 줄 앉은 이들 중 오른쪽 두 번째)가 초대 소장으로 설립을 주도했다.“한국의 영원한 아나운서! 영원한 고대인!” 우리는 고(故) 인천(仁泉) 장기범(張基範) 선생을 그렇게 부른다. 선생께서는 이 땅에 JODK방송의 첫 전파가 퍼진 해인 1927년 5월에 출생하여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1988년 3월에 타계하셨다. 그 세월 꼽아보니 겨우 환갑을 누리셨다. 하지만 선생의 짧은 생은 100세 장수자보다도 값졌으니, 평생 자기 관리에 엄정하고 올곧으셨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는 아름답게 빛났다. 대한민국의 대표 아나운서로서 선생의 방송은 이미 시대를 넘나들며 거울삼을 만큼 표준이었으며, 선비 같은 처세는 출세와 영달에 눈길을 주지 않았고 평생 개인을 위한 사사로운 도모나 이익을 추구함이 없으셨으니 후배들의 존경의 대상이셨다. 선생을 가슴 깊이 흠모하는 후배들은 그런 선각자이며 지사적인 인품의 선배를, 타계하신 1988년 그해부터 올해 2018년 5월 추모일까지 30년 동안 김포 월곶면에 유택을 만들어 모시고 해마다 추모의 정을 나누었으니 아름답다 하겠다. 그러나 그동안 세태는 매우 달라졌으니, 조직문화의 변화가 컸고 사회의 가치와 민심도 변한 터라 더 이상의 인위적 모임의 의미를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 그런 판단으로 올해 30주년을 끝으로 추모 모임을 마감하기로 하였으니 안타깝다. 더욱이 선생을 따르던 아나운서들도 이제는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됐고 어느덧 7,80세를 넘어 기력이 예전만 못하니 이 ... [2018-05-16](Hit:21)

“교우회보라는 정신의 광장 위에 교우회관이 세워졌습니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본보 편집위원을 역임한 지섭 교우가 창간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물리적인 광장을 만들기 전에 이념과 이념이 서로 교류하는, 형이상학적인 광장을 만들자는 게 우리 뜻이었어요. 그래서 1970년 2월경 교우신문발간준비위원회를 만들어 5개월 이상의 준비 끝에 창간호 12면을 발행했습니다.”지섭(경제57) 본보 창간 편집위원은 교우회보를 ‘정신의 광장’, ‘형이상학적인 광장’이라고 표현했다. 1970년 8월 5일자로 창간한 교우회보는 창간 당시부터 편집위원 제도를 도입했다. 창간 편집위원은 조남조(정외57), 최규장(정외57), 지섭, 손주환(법학58), 변인식(국문58), 김원국(정외58) 등 6명이었다. 지난달 15일 편집위원 동인회 총회를 주관한 손주환 회장은 조남조, 지섭 교우가 참석한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 창간 편집위원 중 최규장, 변인식, 김원국 교우는 타계했고, 생존한 3명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는 지섭 교우는 마침 귀국했다가 행사에 참석했다. 지 교우는 창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73년 유엔 근무를 위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틈틈이 선후배들과 교류했지만, 교우회보 공식 행사에 참석한 것은 73년 이후 처음이다.“삼각동 어딘가 당시 김덕은 교우회 이사장 개인 사무실 같은 데서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갔어요. 석탑건립위원회라고, 교우회관 건립 기금을 모으자는 자리였어요. 그런데 모금을 하려면 교우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로터리 같은 것, 정신적인 광장이 먼저 만들어져야 교우회관이라는 물리적인 광장을 세울 수 있다는 게 젊은 교우들의 생각이었어요.”지섭 교우는 당시 보사부 전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언론계, 학계, 문화계 등에 종사하는 젊은 교우들이 교우회보 창간 준비작업에 참여했다. 조정남(정외64... [2018-04-16](Hit:38)

대학 동창회보의 영역 개척한 교우회보 주역들 한자리에
축하케이크 커팅. 왼쪽 네 번째부터 조정남 본보 초대 편집국장, 손주환 전 동인회장, 홍일식 전 모교 총장(왼쪽 사진). 행사를 마친 후 ‘교우회보 파이팅’을 외치는 참석자들. 인사말을 하는 정윤석 신임회장과 정 회장의 76학번 동기회 합창단의 축하공연.  고대교우회보 편집위원 동인회(회장=손주환·법학58) 총회 겸 ‘고대교우회보의 밤’ 행사가 지난달 15일 교우회관에서 열렸다.이날 행사에는 손주환 동인회장, 홍일식(국문55) 전 모교 총장(초대 동인회장), 조정남(정외64) 본보 초대 편집국장을 비롯해 70여 명이 참석했다.고대교우회보 편집위원 동인회는 본보 전현직 편집위원 모임으로 1977년 결성됐다. 1970년 8월 5일자로 창간한 교우회보는 창간 당시부터 편집위원 제도를 도입해 각계 전문가들이 회보의 기획 방향과 편집 스타일에 대해 자문을 하고 있다. 편집위원들은 매달 발행된 회보를 평가하고 다음달 기획안을 논의하며, 편집위원 칼럼 ‘자명고’를 집필한다. 동인회 총회는 2000년 교우회보 창간 30주년 행사 이후 18년만에 열렸다.손주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교우회보는 단순한 대학 동창 동문 간의 소식지로서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언론의 독립된 한 영역을 구축하는 데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으며, 이는 우리 편집위원 모두의 자랑이며 보람”이라고 밝혔다. 안건심의에서는 회칙 개정에 이어 임원 선출이 진행돼, 동인회 신임회장에 정윤석(국문76) 교우를 선임했다. 정윤석 신임회장은 취임사에서 “교우회보 편집위원 동인회의 위상에 걸맞게, 그리고 2020년 교우회보 창간 50주년 기념행사가 잘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현재 본보 편집위원장과 고대신문동인회장을 맡고 있다.이날 ... [2018-04-16](Hit:46)

5월엔 58학번, 6월엔 68학번 … 가을엔 78, 88, 98들이 돌아온다
지난달 16일 교우회관에서 발대식을 가진 88학번들은 동기 간 결속을 넘어선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여민수 교우 88학번 축제, 10월 27일88학번 교우들의 입학 30주년 행사는 10월 27일로 계획되어 있다. 지난 3월 치러진 모교방문축제발대식에서 여민수(신방, 카카오 공동대표) 교우가 준비위원장에 선임됐다. 준비위원회는 오는 13일부터 이틀간 MT를 계획하는 등 교우들 간 화합과 단결을 끌어올리기 한창이다. 올해 8월 8일 ‘쌍팔절’ 행사와 10월의 고연전 관련 행사 등 모교방문축제에 앞서 많은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1988 인연에서 2018 운명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88학번은 동기간의 결속뿐만 아니라, 집 지어주기, 연탄배달 등의 봉사활동 추진, 모교 발전과 후배 양성을 위한 활동 및 지원을 모색 중이다. 또다른 40, 50주년을 준비하는 88학번 교우들의 움직임은 활기 넘친다.68학번 축제, 6월 30일신동원 동기회장(맨 오른쪽), 김영일 준비위원장(맨 왼쪽)등 준비위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준비위구성으로 결속력 높아져68동기회(회장=신동원·경영) 입학50주년 행사는 6월 30일에 열린다. 교우회장 초청으로 열리는 입학50주년 행사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68학번 교우들은 6월 30일 오후 5시 30분 본 행사에 앞서 오후 4시경부터 모교 캠퍼스 투어를 진행한다. 본 행사에서는 68동기회 장학금을 교우회에 전달하고, 동기회 발전에 기여한 교우들에게 공로패와 감사패를 증정하는 시간을 가진다. 만찬과 함께 교우들의 다양한 축하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현재 68학번 교우들은 이번 행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회의를 갖고 있다. 행사 준비위원장에 선임된 김영일(독문) 교우는 “교우회장 초청 행사의 취지를 살리고 68학번 동기들의... [2018-04-16](Hit:59)

소설 많이 읽지만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관심 보여
1995년 이후 중앙도서관 대출도서 상위 50권 중 분야별 대표작을 골랐다. 왼쪽 위에서 지그재그로 역사, 경제/경영, 소설, 과학, 철학, 예술, 심리/자기계발, 에세이 분야 대출 상위 도서. 배경 사진은 중앙도서관 로비.모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 검색을 하면 도서명 옆에 대출횟수가 공개된다. 이는 1995년 전산화 이후 해당 도서의 대출횟수이다. 1995년 이전에는 대출카드를 이용했다. 대출카드에서 아는 이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사라졌지만, 1995년 전산화 이후 재학생들이 어떤 책을 많이 대출했는지 24년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중앙도서관 대출순위 상위 50권의 책(지면사정으로 30위까지 게재)을 통해 고대생들의 독서 취향을 살펴본다.1995년 이후 중앙도서관 대출도서 상위 50권 중 분야별 대표작을 골랐다. 왼쪽 위에서 지그재그로 역사, 경제/경영, 소설, 과학, 철학, 예술, 심리/자기계발, 에세이 분야 대출 상위 도서. 배경 사진은 중앙도서관 로비.1,2,3위는 역사서, 경제서, 소설199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모교 학생들의 대출도서 1위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2위는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3위는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가 차지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모교에서뿐만 아니라 1990년대 역사 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이다. 총 15권으로 이루어져 로마 건국기부터 멸망까지를 다룬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는 광범위한 경제학 이론과 경제 사상사를 어려운 경제 용어가 아닌 쉽고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한 책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두 남녀의 사랑을 남녀 두 작가가 교대 연재형식으로 쓴 책으로 발매 당시 50만 부 이상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다.&nbs... [2018-03-14](Hit:63)

힘찬 포효를 시작한 아기 호랑이들, 안암골을 흔들다
18학번 새내기들이 어깨에 어깨를 걸고 뱃노래를 함께하고 있다. 처음 불러보는 교가.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신입생을 대표해 장학증서를 수여받은 김지유 학생.2018학년도 입학식이 지난달 28일 모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렸다. 올해 모교 신입생은 5448명이며 남학생 2964명(54%), 여학생 2484명(46%) 이다. 이날 입학식에는 축하객 포함 7000여 명이 참석했다. 신입생들은 행사에 앞서 응원가와 교호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화정체육관은 새내기 학생들의 뜨거운 응원열기로 가득찼다.본격적인 행사는 미디어학부 김지유 학생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염 총장은 입학식사에서 “고려대는 신입생 여러분에게 미래의 어떤 도전과 어려움에도 더불어 사는 지혜를 키워줄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더불어 “고려대는 이를 위해 문제해결형 강의와 생각을 강조하는 디자인싱킹이 가능한 인재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베어베터 대표 김정호(무역85) 교우가 후배들을 위한 격려사를 낭독했다.김 교우는 네이버 창업의 일원으로 시작해 현재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인 베어베터를 운영중이다. 김 교우는 지난 10여 년간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해오기도 했다. 김 교우는 격려사에서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격려사가 이어지는 동안 학생들은 30년 가까이 차이나는 선배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이후 신입생 대표에게 배지를 증정하고 교가를 제창하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이날 입학식을 함께한 18학번 이현수(건축사회환경공학부) 학생은 “고려대만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고 오늘 친구들과 응원을 함께하며 벌써 애교심이많이 생긴 것 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신유경 기자 [2018-03-14](Hit:101)

민족의 운명을 밝혀온 정의의 성화, 이젠 법전원으로
법과대학 명칭은 사라져도 ‘고대 법학’의 위대한 역사는 법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된다. 사진 오른쪽 건물은 법전원학생들이 공부하는 신법관, 왼쪽 건물은 해송법학도서관.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은 1905년 모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개교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충숙공 이용익 선생이 교육구국의 신념으로 설립한 보성전문학교는 법률전문과(현재의 법학과)와 이재학전문과(현재의 경영학 및 경제학)의 두 학과로 출발했다. 두 학과 모두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보성전문학교 졸업생들은 민족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민족사의 위기에서 근대 법학을 꽃피우다보성전문학교 법률과는 민족 최초의 법학 고등교육기관이었고, ‘고대 법학’의 역사는 곧 한국 근대 법학의 역사이다. 보전 이전에 있었던 법관양성소는 3개월 내지 6개월의 단기 속성과정으로 기술자 양성기관의 성격을 지녔다. 보성전문은 처음에는 2년제인 법률전문과로 출범했으나 1907년 1월 3년제인 법학과로 개칭됐다.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44년 3월에는 학교가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강제 개명당하고 법률과도 척식과(농학계)로 전환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보전 복원 작업이 즉각 시행돼 1945년 9월 25일 재단이사회 결의로 교명이 다시 보성전문학교로 환원됐다. 이어서 1945년 10월 5일부터 보성전문학교의 종합대학 승격 준비 작업이 진행돼 1946년 8월 15일부터 각각 60명 정원의 법률학과와 정치학과를 포괄하는 정법대학이 설립됐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성전문은 1946년 9월 12일 종합대학교 고려대학교로 승격됐다.1955년부터 법과대학 명칭으로1950년 6월 25일 6·25 전쟁 발발과 함께 서울이 함락되자 모교는 초대 총장 현상윤 선생이 납북... [2018-02-14](Hit:151)
‘법과대학’과 작별하며
"변화의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올라탈 것인가?" 전병현(법학71) 법대교우회장. 모교 대학원과 하버드 로스쿨 졸업 후 M&A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기업경영에 뛰어들어 현재 ㈜윌비스 회장을 맡고 있다.자타가 공인하는 고려대학교의 아이콘 법과대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 대한 우리 법대 교우들의 아쉬움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그러나 법대교우회는 ‘고대 법학’의 전통이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에, 법대교우회의 진정한 핵심역량은, 우리 법대시절 교우는 물론 법전원 졸업교우, 나아가 고대 전체 교우들의 역량을 잘 엮고 섞는 역할을 해내는 능력이라고 믿는다."고대 법학’의 역사와 전통 법전원이 자랑스럽게 승계할 것"명순구(법학81) 모교 법과대학장 겸 법학전문대학원장.1995년 모교 교수로 임용돼 교무처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7월 법전원장이자 모교의 마지막 법대학장에 임명됐다.사람이 죽으면 상속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이 폐지되면 그 모든 역사와 전통은 누가, 어떤 수준으로 승계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이 법과대학을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법과대학을 포괄승계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의 가장 큰 과제는 법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연구하고 교육할 학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로스쿨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직업인으로서의 법률가뿐만 아니라 후속 학문 세대로서의 법학인도 양성해야 한다."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다"Dr. Seuss - 미국 소설가손수호(법학97·법전원1기) 교우. 모교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을 모두 졸업하고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며, CBS 김현정의 뉴스쇼 ‘탐정 손수호’ 코너에... [2018-02-14] (Hit: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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