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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우회 110년 주요 장면 20
01. 한국 최초의 대학 동창회 보전교우회 (1907.3.24) 보성전문학교 첫 졸업생이 나온 지 110년이다. 1907년 3월에 결성된 보전교우회는 1947년 지금의 고려대학교 교우회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고대교우회는 고대인 특유의 단결력을 바탕으로 모교의 건학이념을 구현하고 모교의 존재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진은 보전 제1회 졸업식.02. 교우회보 전신 <親睦> 창간 (1907.3.15) 1907년 3월 15일 고대교우회의 전신인 보전친목회가 교우회보의 전신인 <親睦>을 창간했다. <親睦>은 대학동창회보의 효시로서 동창신문의 새롭고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하는 시발점이 됐다. <親睦>은 단순히 교우들의 친목도모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정세와 동향을 해설하고 계몽적인 글을 실어 국민 일반을 계도하는 목적 또한 가지고 있었다.03. 3.1운동과 민족정신의 발현 모교는 3.1독립선언의 진원(震源)이었다. 주익(보전법과11회)은 학생단의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내정됐다. 강기덕(보전법과12회)은 학생단의 가장 강력한 동원역량을 조직했으며, 보전의 학생 동원책을 맡았다. 모교 교장 윤익선은 스스로 사장이 되어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했고 운동 참여를 유도했다. 또한 3.1운동의 조직과 주도의 구심체인 천교도단은 모교의 경영 주체였다. 33인의 상징적 존재인 모교 경영자 손병희는 독립선언의 최고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04.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배출 (1948) 1948년, 김성집(보전상학37회) 교우가 런던 올림픽에서 역도 동메달을 땄다. 김 교우는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전병관(체교88), 장미란(체교05) 교우 등 올림픽 역도 ... [2017-02-15] (Hit:7)
이학수 회장 취임 제32대 교우회 출범…모교, 세계 100대 대학 진입
신년인사회 및 제3회 교우회 학술상 시상식교우회의 한 해 시작을 알리는 행사는 신년인사회와 교우회 학술상 시상식이다. 1월 5일에 열린 신년인사회는 개교 111주년을 맞이해 학교 발전과 교우 친목을 다짐하는 자리였고, 천 명이 넘는 교우들이 모여들며 성황리에 치러졌다.2014년에 제정돼 올해로 세 돌을 맞은 교우회 학술상은 공과대학 이종흔 교수와 의과대학 이경미 교수에게 돌아갔다.모교, 개교 111주년 비전선포식개교 111주년 비전선포식이 1월 11일 열렸다. 모교의 혁신과제와 발전구상,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금 조성에 관한 발표가 진행됐다. 모교는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과 청년창업센터, 미래융합대학 건립계획 등에 대한 계획을 밝히며 핵심사업기금 조성에 교우들의 협조를 당부했다.제109회 학위수여식제109회 학위수여식이 2월 25일 열렸다.이날 6410명이 학위를 수여받고 교우회의 신입 회원이 됐다. 졸업가운을 입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새내기 교우들의 모습이 교정 곳곳에서 눈부셨다.2012년에 신설된 정보보호학부는 이번에 첫 졸업생을 28명 배출했다.이학수 제32대 교우회장 취임이학수 제32대 교우회장이 3월 31일부로 취임했다. 이날 교우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400여 명의 대의원들은 회장 후보인준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이 회장은 앞으로 3년간 열정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교우회를 운영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4.18 의거 56주년 기념식4.18의거 56주년 기념 헌화식이 열렸다.학교와 교우회 인사들 뿐 아니라 김면중(철학57) 교우를 비롯한 의거 당시의 주역들이 참석했다.또한 일반인이 함께하는 4.18 마라톤, 재학생들의 4.18 구국대장정 행사가 진행됐다. 일련의 행사들을 통해 고대가족 모두는 민주주의와 혁명고대의 정신을 되새겼다.개교 111주년 기념식 및 고대인의 날개교... [2016-12-15] (Hit:4333)

동기들과 함께 걸어온 길, 더 먼 길도 함께 가자 다짐한 축제
지난 10월 한 달 동안 76학번, 86학번, 96학번 모교방문축제가 이어졌다. 이제 입학 40, 30, 20주년을 맞이한 동기들의 모교방문축제는 고려대학교의 전통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특히 1986년 시작해 올해로 30년째를 맞이한 입학30주년 모교방문축제, 1997년 시작해 내년에 20년째가 되는 입학40주년 모교방문축제는 동기회 활성화와 학교발전기금 조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86학번 30주년, 76학번 40주년 행사에서도 깊은 우정, 뜨거운 모교애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화보 중심으로 두 행사의 다채로운 풍경을 담아본다.사진 : 전소미 기자① 86학번 축제 김영배 준비위원장이 30주년기를 힘차게 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은 87학번 대표로 참석한 백혜련(사회87) 교우에게 전달했다.② 86학번의 가수 손병휘(산업공) 교우가 자신의 노래 ‘나란히 가지 않아도’를 부르고 있다. 손 교우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교우들에게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라고 노래했다.③ 행사장을 가득 채운 86학번들은 학과별 테이블에서 30년 동안 이어온 우정을 나눴다. 사진은 임학과 교우들.④ “반갑다, 친구야!”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어 고대 졸업생은 결코 외롭지 않다.⑤ 76학번 입학40주년 축제에서 ‘7642합창단’(단장=정윤석·국문)이 공연을 하고 있다. ‘7642’는 ‘76학번 사이’라는 뜻과 ‘76학번 42명 합창단’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42명이 다 모이진 않았지만 수준 높은노래실력을 선보였다.⑥ 졸업가운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76여자동기들. 모교는 언제나 교우들의 아름답고 든든한 배경이다.⑦ 행운의 추첨으로 경품을 받은 76학번 교우들이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있다.⑧ 76학번 교우들은 이날 4000만 원의 발전기금을 전달했을 뿐만 아... [2016-11-15](Hit:7137)

치열한 승부, 하나되는 함성 … 환희와 열정 가득한 축제의 무대
1. “즐거운 고연전 날에 연대생 우는소리~” 2016년도 정기전에서 2승 2무 1패로 승리한 뒤 뱃노래로 가득 채운 목동 경기장.2. 한동수(문창98)교우와 갓난아기를 안은 석보경(정보통계00)교우가 함께 경기를 보고 있다. 매년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는다는 부부 교우. 가족 모두와 즐기는 고연전의 열기, 좋지 아니한가!3. 김진백(경제81)교우의 신명나는 응원 모습, 보는 사람까지 절로 들썩이게 만든다.4. 국적은 달라도 우리는 고대인! 외국인 학생들이 붉은 옷을 맞춰입고 고대를 연호하며 응원하고 있다. 두 학교의 불꽃튀는 응원대결이 펼쳐지는 정기전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5. ‘올해도 고대는 히트다 히트’. 또 한번의 승리를 일궈낸 지난 24일 밤의 참살이길. 뜨거운 열기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6. 호랑이 옷을 맞춰 입은 한 커플이 손을 맞잡고 참살이길을 걸어가고 있다.7. 파란 옷을 입은 연대생들의 기차놀이 모습. 경기가 끝난 뒤, 참살이길에서는 고대생과 연대생 너나할것 없이 하나가 됐다.8. 이학수 교우회장이 참살이길 뒤풀이 현장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이학수 교우회장과 염재호 모교 총장은 참살이길 무료주점 14곳을 함께 방문해 교우 및 재학생들과 어울렸다.9. “우리 때에는 정기전이 끝난 후 명동에 모여 뒷풀이를 했었지” 김태우(금속76) ROTC교우회장(오른쪽 네 번째)을 비롯한 ROTC 교우회와 재학생들이 힘차게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10. 여자교우회 무료주점에서 모교 여자축구부 김예진(국제스포츠15) 주장이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남명화(의학72) 여자교우회장에게 선물했다. 모교 여자축구부는 최근 국내대회에서 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올해도 어김없이 양교 선수들은 자신의 모교 명예를 걸고 경기장에 나섰고, 한치의 물러섬 없는 명승부를 ... [2016-10-14](Hit:11279)

산나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산나물 공원, 산채원 촌장김규환(한문87) 교우밥상에 올라 온 나물을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다. 냉이와 달래를 보면 봄이 왔구나 싶고, 씁쓰레한 참나물 무침을 먹으며 여름이 지나간다.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 편의점에서 과자와 라면을 사먹는 아이들이 철마다 바뀌는 나물의 쌉싸름한 맛을 알까. 아이들에게 나물의 맛보다 생소한 것은 그 이름일 것이다. 곰취, 곤달비, 엄두릅, 딱주, 어수리, 쑥부쟁이, 지취같은 이름을 듣고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산나물에서 생활혁명의 씨앗을 발견하다전남 화순 백아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산채원에서는 매년 5월 산나물 축제를 연다. 한 시간 반 남짓, 산으로 난 산책길을 돌고 오면 등허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숨을 돌리고 나면 산채원 주인이 큼직한 냉면 그릇에 밥과 나물을 담아 내준다. 툇마루 너머로 보이는 백아산 정상을 바라보며 먹는 산나물 비빔밥은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는 별미다. “사람들 몸이 너무 망가졌어요. 약을 먹어서 잠깐 치료는 가능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산나물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만 있는 게 많아요. 그걸 먹다보면 자연스레 몸이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한식의 세계화 같은건 너무 거창한 계획이고, 당장 우리 몸이 망가진 것부터 고쳐야죠.” 김규환(한문87) 교우는 산나물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바뀌기를 기원한다. 몸이 바뀌어야 생활이 바뀌는 것이고, 거기에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운동가에서 산채원 촌장이 되기까지생활도서관 운동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민박집 주인, 산채원 촌장 등 김규환 교우의 이력은 다양하다. 6개월 남짓했던 직장 생활을 제외하고는... [2016-09-21](Hit:12922)

행복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마을공동체 꿈꾼다
집이자 일터인 마을연구소 앞에 선 정기석 교우. 전북 무주군 초리넝쿨마을에 있다.치열한 경쟁에 지친 도시인들은 푸념하곤 한다.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 도시 생활의 고단함과 농촌에 대한 로망이 담긴 말이다. 지친 도시인들에게 농촌은 탈출구처럼 여겨진다. 2002년에 귀농한 14년 차 농촌 주민 정 교우에게 귀농을 고민하는 교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정 교우는 단호한 어조로 “귀농을 말리고 싶다”고 했다. 전라북도 무주군 초리넝쿨마을에서 살아가는 정 교우가 귀농을 말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의 월급쟁이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에 귀농을 고민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귀농을 해도 행복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농촌에 와서 먹고 살만한 게 많지 않거든요. 직업 농부로 먹고 사는 것은 특별한 조건과 능력 없이는 어렵습니다.”정 교우의 설명에는 현재의 농촌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농’촌보다는 생활하는 농‘촌’을 꿈꾸며한 명의 농부가 1년에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평균 1000만 원 내외다. 농업 이외의 기타 소득이 없다면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다. 귀농인이 농사를 지을 경우에는 이 정도의 소득도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시인에게는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 도시의 삶과는 다른 생활방식이 필요하고, 많은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올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귀농을 막는 장벽이 있어요. 농촌으로 내려오면 농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그것이죠. 농사가 멋있어 보이고 숭고해 보이지만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농사로 돈을 버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돈 버는 농... [2016-09-21](Hit:13041)

<div align=left>김창수 교우 제7대 회장, 주해천 교우 제13,14대 회장, 오정환	교우 제37대 회장, 이상훈 교우 제42대 회장, 편찬위원장, 임정숙 교우 현 회장, 문지현	교우 제45대 회장, 오석환 교우 현	수석부회장, 이재호 교우 편집장, 김용하 교우 현 사무총장(좌측상단부터)

우리는 디아스포라, 그러나 고대라는 구심점이 있어 행복하다
첫 발의부터 발간까지 임정숙 지난해 우리 남가주교우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발간한 《50년 발자취》 편찬위원 좌담회를 갖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분 한분의 정성이 모이고 특히 여러 히스토리를 알고 계신 선배님들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훈 50주년이라는 뜻 깊은 기회에 책자를 발간할 수 있게 되어 편찬위원장으로 일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결과도 좋게 나와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김창수 선배님, 주해천 선배님이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시면서 우리가 몰랐던 초창기 이야기를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공돌이'라 처음엔 많이 사양했지만 우리 교우회의 가장 원로인 김창수 선배님이 역동적으로 활동하실 수 있는 시간 내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특히 이 분야 전문가인 이재호 편집장을 소개 받아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오정환 발의 자체는 40주년이었던 2005년에 시작됐던 것으로 압니다. 그때 40년사 발간 얘기가 나왔다가 흐지부지 됐는데 작년에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정식으로 시작하게 됐지요. 그때 김창수 선배님이 큰 힘이 됐지요. 그래서 50주년 책자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조직을 현직 회장한테 맡기느냐 아니면 별도 조직을 만드느냐 논의하다가 편찬위원회를 만든 겁니다. 위원장을 누굴 시킬 것이냐 하다가, 이상훈 위원장 같은 ‘탱크’를 모시고 온 겁니다. 김창수 2015년 신년총회를 할 때 제안을 했지요.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우리 중에 전문가가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양승현(경제80) LA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이재호 교우(중앙일보 빅토밸리지국장)를 이야기하더라구요. 나도 이 교우를 한 15년 전부터 알고 있는데 그 실력을 아니까 잘 되었다 생각했고, 실제로 이재호 교우가 우리하고 9월경에 조인한 후에 일이 방향을 잡고 ... [2016-08-11](Hit:13376)

모교, 각종 국제평가 순위상승
모교가2016 QS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사립대학 1위, 아시아 대학 16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16일 발표된 영국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모교는 2012년 21위에 이어 꾸준히 순위가 상승해 아시아 대학 16위에 올랐다. 이는 카이스트 6위, 서울대 10위, 포스텍 12위에 이은 성적이다. 연세대는 18위, 성균관대는 19위를 기록했다. 또한 영국 세계대학평가기관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아시아 대학평가에서도 모교는 지난해보다 9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2016-07-08](Hit:13428)

<div align=left>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결승점에 들어오는 손기정 교우.

손기정, 한국 스포츠 역사의 위대한 출발
1936년 8월 9일, 손기정(보전상과28회) 교우는 2시간 29분 19초 2라는 당시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아시아인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손기정 교우의 우승은 식민지 한국인들의 가슴에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으나,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만 했던 그로서는 우승의 기쁨과 함께 나라 잃은 국민의 설움 또한 컸다. 식민지 설움 이겨낸 영웅의 생애 손기정 교우는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냈으나 가정형편으로 인해 꿈을 펼치지 못하다가 양정고보에 입학하면서 선수로서 활약하게 된다. 이후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일본인들의 수많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베를린 올림픽에서 승리하였다. 그는 사인요청을 받을 때마다 ‘손긔졍’이라는 한글 이름과 함께 한반도 지도를 그려주며 자신이 한국인임을 끊임없이 알리려 노력했다. 또한 마라톤 우승 축하연을 빠져나와,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봉근을 만나는 등 애국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마라톤 지도자로 변신,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상과48) 교우가 우승을 이끌었다. 후학 양성을 위한 손기정 교우의 노력은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1위 함기용(상과51),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후에도 손 교우는 한평생을 한국 마라톤의 중흥을 위해 힘쓰다, 2002년 11월 15일에 타계했다. 손기정과 황영조, 세계를 제패한 두 교우 손기정 교우를 영웅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그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다. 88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주자로 등장했을 때, 기쁨의 춤을 추며 트랙을 달리던 그의 모습은 메달을 땄던 베를린 올림픽 수상식 때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30여 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한국마라... [2016-07-08](Hit:13125)

윤이상 원본 확인해 기존 오류 바로잡은 교가 정본
지난 해, 고려대 법학연구원에서 출간한 명순구·고형진·류경선 공저《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은 1955년에 진행된 학칙의 정비와 당시 새로이 제정된 신교가에 대한 문학적·음악적 의미의 재발견과 분석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명순구 교수의 기획과 의뢰로 진행된 교가에 대한 연구와 고찰 과정속에서 현재 고려대의 공식행사에서 쓰이거나 홈페이지에 게재된 악보에 대해 재고해 봐야할 사안이 세 가지 발견 되었다. 첫 번째는 교가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시기의 초본과 비교하여 볼 때 주요 선율 중의 한 음이 다르게 기재되어 불리는 점, 두 번째는 교가의 선율 혹은 4성부 합창 전체가 아닌 상2성부만 발췌되어 사용되는 점, 마지막으로는 기보법상의 단순한 오류가 여러개 발견된 점이다. ‘전당이’부분, 47년간 잘못 기재 첫 번째 해당 부분은 후렴구 직전‘전당이 있다’부분의 선율이다. 교가가 새로 작곡되어 처음으로 배포되어 불려진 1955년 5월 5일 개교50주년 기념행사 자료집에 가사‘전당이’부분의 선율은 음‘레-미-미’로 기재되어 있으나, 학교 홈페이지와 주요 행사자료집에 실린 악보의 같은 부분은 음‘레-미-레’로 기재되어 불리고 있었다. 단 한 개 음의 변화이지만 교가는 학교의 상징이므로 그 변화의 이유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고, 이 차이점이 작곡가의 원래 의도인지 혹은 오기인지 면밀한 확인이 필요했다. 1955년 이후 교가가 기재된 학교의 공식 행사자료들의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어떤 음이 맞는것인지를 찾고, 어느해에 어떤 이유로 다르게 기보되어 내려오게 된 것인지를 조사해 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1955년 이후 학교 일람의 모든 기록자료를 조사했고, 그 결과 1969년도부터 인쇄시의 오류로 교가가 다르게 기재된 흔적을 찾게 되었다. 14년동안 원래 악보대로 교가가 보급되고 이후... [2016-06-13](Hit:1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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