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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 황현산·노회찬 교우 1주기를 맞아
젊은 시인들과 함께한 평론가, 날마다 그립다    작년 여름은 참 더웠다. 그 폭염 속에 현산형은 우리 곁을 떠났다(8월 8일). 9월 28일 포천 지현리, 형의 작업실 뜰 소나무 밑에 수목장을 지내고 나자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고 10월에 들어서면서 나는 어느 선배님께 문자를 받았다. “참 더웠던 여름, 정 선생에게는 더 덥고 힘든 여름이었겠지.” 아마 그 문자가 무슨 말인지 내가 이내 알아챈 것을 보면 현산 형이 곁에 없다는 게 여전히 어색했던 듯싶다.다시 여름은 왔고 현산 형의 1주기가 지나간다. 내 책상 위에는 형이 마지막으로 낸 책,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가 있고 내 노트북에는 형이 내려고 준비하던 랭보의 《시 전집》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파일 형태로 들어있다. 나는 그 파일을 꺼내 보며 틈틈이 형을 만난다.현산 형은 보들레르, 말도로르, 말라르메, 랭보, 베를렌느, 아폴리네르, 브르통의《초현실주의 선언》의 제대로 된 한국어판본을 만드는 것을 불문학자로서의 일차적 소명으로 삼고 평생을 살았고 그 계획은 거의 실행됐다. 형의 말이다. “이 시인들의 제대로 된 한국어 판본이 있어야 한국에서도, 명실 공히, 현대시가 쓰이고 현대시를 읽을 줄 알게 된다.”(문제는 베를렌느이다. 음악성이 베를렌느 시의 진가인데, 그 음악성을 옮기기가 쉽지 않아, 그 번역은 다른 역자를 기대하는 듯했다).늦게 평론활동을 시작한 형은 문학상과는 별 인연이 없었는데 은퇴 뒤인 2012년 한꺼번에 ‘대산문학상’, ‘팔봉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한다. 형은 이 가운데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을 그렇게도 기뻐했는데 이 상이, ‘젊은 작가들이, 문학적 성과와 삶이 젊은 작가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선배 작가에게 주는 상’이었기 때문으로 나는 짐작했다.어느 젊... [2019-08-14] (Hit:37)

예고편은 끝났다, 올 11월엔 진짜 뜨거운 록페스티벌이 열린다
위에서부터 83T뺀, 크림슨84, 85락파로, 크림슨86, 87위험한 탄생.지난해 11월 16일 모교 인촌기념관에서 동기회 록밴드 페스티벌이 열렸다. 83, 84, 86, 87학번 밴드, 의대 교우밴드, 재학생 밴드까지 6개 팀이 참가했다. 행사를 마친 직후부터 각 동기회 록밴드는 새로운 무대를 비해 왔다. 바쁜 일상도, 무거운 스트레스도, 이번 여름의 무더위와 태풍도 이들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올해 11월에 다시 록밴드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엔 81학번, 82학번까지 가세한다. 80년대 학번 교우들이 교우회 록페스티벌의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들에게 지난해 행사는 예고편이자 프리퀄이었다. 이제 진짜 뜨거운 록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무대를 준비하는 동기회 록밴드 연습현장을 찾아갔다.83T뺀(Tiger Band)T뺀(리더=고광만·일문). 작년 공연에서는 가장 선배 학번으로 첫 무대를 장식했으나 이번 11월 공연에는 81학번과 82학번이 참석한다. 리더 고광만 교우는 “선배들의 참여로 진정한 80년대 학번들의 록페스티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겠다는 다짐도 전했다.T뺀은 7명의 교우들로 구성돼 있다. T뺀은 30주년 홈커밍 행사 다음해인 2014년, 홍대 앞 레코드 카페 모임에서 밴드를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해 3월에 결성하게 됐다. 작년 공연에서 관객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던 파워풀하고 프로페셔널한 무대가 올해도 교우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크림슨84밴드작년 ‘그대에게’, ‘Tears’ 등의 대중가요를 보였던 크림슨 84밴드(리더=김경수·법학). 올해는 80년대 학번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추억 속 노래들을 모던록 스타일로 편곡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펼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리더 김경수 교우는 “교우와 교우... [2019-08-12](Hit:44)

아동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 소파 방정환의 다양한 면모 재조명되길
아동문학가, 언론출판인, 교육사상가, 독립운동가였던 방정환의 전집 5권이 창비에서 간행됐다.올해는 방정환(1899~1931) 탄생 120주년이다. 한국방정환재단은 이를 기념하여 지난 5월 1일《정본 방정환전집》을 출간했다. 방정환 전집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방정환 사후 10년이 되는 1940년에 처음《 소파전집》(박문서관)이 나온 이후, 체제와 형식을 달리한 전집이 몇 차례 출판된 바 있다.그러나 1974년 문천사에서 나온《 소파방정환문학전집》 이후에는 기존 전집의 표지나 목차만 바꾼 짜깁기식 출판 행태가 반복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연구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도 방정환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믿고 읽을 만한 전집이 없어 불편함이 컸다. 이에 한국방정환재단은 문학, 교육, 역사학계의 연구자들로 편찬위원회(위원장 원종찬)를 꾸리고 4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 끝에 새로운 전집을 편찬하게 됐던 것이다.꼼꼼한 검토 거쳐 정본전집 5권 탄생방정환전집 편찬위원회에 첫 번째로 주어진 과제는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글들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새 전집에는 기존 전집에는 빠져있던 273편의 글이 수록됐을뿐만 아니라, 최근 새로 발굴된 54편의 글을 추가됐다. 이와는 반대로 기존 전집에는 수록됐으나 방정환의 글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삭제하게 된 글도 적지 않다.두 번째로는 그가 사용했던 수많은 필명들을 확정하는 일이었다. 잘 알려졌듯 방정환은 소파 외에도 ㅈㅎ생, 잔물, 몽중인, 몽견초, 목성, 북극성, 은파리, CW, SW생, SP생 등 수많은 필명을 돌려가며 썼다. 방정환 필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었으나 여전히 이견이 있는 부분도 남아 있어 이 문제를 숙고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셋째는 표기와 교열의 문제로, 거의 한세기 전에 발표된 오래... [2019-08-12](Hit:39)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승리의 석탑을 세워라
“올해는 기필코 승리하겠습니다. 필승, 전승, 압승!” 이날 ‘2019 정기고연전 후원의 날’ 행사에서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이날 식사는 이형수 건영 회장이 후원했다. 아래 사진은 행사가 끝나고 선수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격려하는 구자열 교우회장.    교우회(회장=구자열)와 모교(총장=정진택)는 이달 1일 ‘2019 정기고연전 후원의 날’ 행사를 열고 5개부 운동부 및 학생회와 응원단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건영의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정진택 모교 총장, 구자열 교우회장, 이형수 건영회장을 비롯 교우들과 5개 운동부 감독 및 선수등 220여 명이 참석했다.이날 교우회는 후원금 2500만원과 11개 단과대학교우회가 함께 조성한 후원금 2500만원을 합쳐 5개 운동부에 각각 1000만원씩 총 5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축구부는 의과대·간호대·보건과학대 교우회, 럭비부는 정경대·사범대 교우회, 야구부는 경영대·문과대 교우회, 농구부는 공과대·생과대 교우회, 아이스하키부는 법과대·이과대 교우회가 후원했다.이와는 별도로 교우회는 총학생회와 응원단에 각각 500만원과 3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고, 고우체육회(회장=오규 상·법학75)가 5개부 감독들에게 각각 200만원의 격려금과 총학생회에 100만원, 응원단에 2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이날 구자열 교우회장은 “승패를 떠나 뜨겁게 펼쳐지는 양교의 응원문화는, 학과와 학번을 떠나 양교 선후배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하면서, 일체감과 단결심을 갖게 했다. 이 아름다운 우정과 화합의 전통이 반드시 잘 계승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전달되는 선배들의 정성이 우리 선수들에게 힘찬 기운을 불러 일으켜, 고대가족 모두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리라 확신한다. 33만 교우들은 경기가 끝나는 마... [2019-07-11](Hit:86)

한국 근대지성사의 보고<寶庫> 《개벽》 편집인 차상찬, 전집으로 만나다
정현숙 전집편찬위원장(오른쪽)이 《차상찬 전집》 출판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왼쪽은 차상찬 선생의 종손(從孫) 차기태 교우.  《차상찬 전집》 1~3차상찬전집편찬위원회 편 / 청오차상찬기념사업회 / 비매품 “한 30여년 전이었던가, 대여섯 사람이 모여 방담(放談)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일제 때의 잡지인 중에서 한 사람을 내세운 다면 누구일까?’ 라는 화두를 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왈가왈부가 있게 마련인데, 좌중이 하나같이 ‘그야 차상찬이지…’하고 입을 모은 일이 있다. 차상찬의 이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한국 잡지계에는 언제부터인지 차상찬에 관한 이야기들이 단편적이나마 전설처럼 흘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최덕교 편저,《한국 잡지백년》(제2권), 현암사, 2004, 24쪽.한국 잡지계의 전설, 일제 강점기 최고 잡지인으로 추앙을 받는 차상찬(보전법 과6회, 1887-1946) 교우의 전집 1차분 전 3권이 간행됐다. 이번에 간행된 전집은 차상찬 교우가 1920년 창간 동인으로 참여해 이후 편집인, 발행인을 맡았던 종합 월간지《개벽》에 실린 글을 모았다. 전집은 차상찬 교우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의 학자, 언론인, 향토사학자 등이 결성한 청오 차상찬기념사업회(이사장=김중석 강원 도민일보 사장)에서 간행했다. 전집 편찬 위원장 정현숙 한림대 연구교수를 춘천에서 만나 편찬과정의 이야기를 들었다. 차상찬 교우의 종손(從孫)인 차기태(정외 77) 교우가 춘천 취재에 동행했다. 발로 뛰며 기록한 100년 전 한반도 풍속지리정현숙 교수는 현대문학 전공자로 잡지 연구를 수행했다. 일제강점기 잡지 중 가장 중요한《개벽》을 읽다보니 차상찬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하던 차에 춘천시에서 차상찬 선양사업을 하고... [2019-06-12](Hit:133)

웰컴 투 고대월드!
  ① 모교를 찾은 어린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에어풀장과 에어바운스.② 여자교우회에서 준비한 먹거리 부스에 모인 사람들. 어묵, 떡볶이, 순대, 메밀전병, 해물 파전, 슬러시 등의 음식을 판매했다. 초여름 같은 날씨 덕에 특히 슬러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③ 대학원(구 중앙도서관) 건물 앞에서는 추억의 졸업사진 촬영이 있었다. 학사모와 학위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는 이정호(법학98) 교우의 아들 이현서 군.④ 이날 아이스링크가 무료로 개방됐다. 무더운 날씨 탓에 아이스링크를 찾은 교우들도 많았다. 스케이팅이 서툴러 뒤뚱거리면서 아빠에게 안긴 딸이 미소짓고 있다.⑤ 작년 12월 제1회 교우연합밴드 합동공연에 참가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86학번 밴드 크림슨86이 고대인의 날 축하 공연에 참가해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더위를 날렸다.⑥ 본관 앞에 설치된 에어풀장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교우들의 모습. 긴 대기열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교우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⑦ 중앙광장 왼편에서 열린 KU 개척마을 메이커 프로그램에 참가해 열심히 페이퍼아트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⑧ 여자교우회에서 준비한 나눔 바자회. 여자교우회가 나눔 바자회와 직거래 장터, 먹거리 부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성북구 지역의 소외 이웃을 위한 기금과 재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⑨ 중앙광장에서 열린 어린이 스포츠 교실에서 럭비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⑩ 중앙광장 공연 무대에서 펼쳐진 88학번 응원단의 응원에 열광하고 있는 교우들.⑪ 충청도 당진시 고대면 주민들도 고성시 산불 이재민을 후원하고 모교와의 교류 증진을 위해 고대인의 날 행사에 참가했다. 부스에서는 지역 농산물 홍보를 위해 무료 시식 행사가 진행됐다. [2019-05-15](Hit:187)

민족변호사 허헌, 제국주의 사법체계를 뒤흔들다
‘독립선언사건 48인 공소불수리 판결’ 결과를 보도한 동아일보 1920년 8월 10일자 3면 보전법과 1회 졸업생 허헌 교우. 보전1회 허헌, 민족대표 48인 변론 맡다2019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독립운동사·사회문화사·국제정치사 등의 시각에서 3·1운동의 의미는 그야말로 묵직하다. 그 사건의 중심부에 보성전문 학교(이하 ‘보전’)가 있었다. 1910년 이래 보전 경영자 손병희는 민족대표 33인을 대표했고, 독립선언서는 보성사(보전 부속출판사)에서 인쇄했으며, 3월 1일 탑골 공원에서 시위를 주도한 학생대표 강기덕은 보전 법과 재학생이었고, 보전 교장 윤익선은 ‘조선독립신문’을 제작하여 3·1운 동의 뜻을 대중 속에 전파하였다.3·1운동 이후 수많은 재판들이 있었지 만, 민족대표를 포함하여 주도자 48명에 대한 재판(이하 ‘대상사안’)이 특히 국내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재판의 변호사 그룹에서도 보전이 돋보였다. 허헌(법과 제1회), 정구창(법과 제2회), 박승빈(후에 교 장 ) 이 그 들 이 다 . 그 중 허헌(許憲 : 1885~1951)은 그 재판 과정에서 스타로 이름을 떨쳤다. 사실 허헌은 그 전부터 이미 이름을 얻었지만 1919년 재판과정에서의 활약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었다. 3.1운동에 내란죄 적용하려던 일제1919년 재판 당시 법원구조는 지방법원 (전국 주요도시), 복심(覆審)법원(경성· 평양·대구), 고등법원(경성)으로 구성된 3심급 체계였다.검찰은 대상사안을 경성지방법원 예심에 회부했다. 예심판사는 해당 사안을 내란죄(형법 제77조)로 판단하여 (지방법원이 아닌) 고등법원으로 회부한다. 당시 법은 내란죄에 대한 신속·종국적 대처를 위하여 이를 최고법원의 전속관할로 규정하 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을 접수한 고등... [2019-05-15](Hit:200)

우국지사 이용익 삶 조명한 전시회
특별전에 걸린 이용익 초상화(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교우회(회장=구자열)는 모교 설립자인 이용익(1854-1907)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연다. 이달 3일부터 10월 3일 까지 6개월간 교우회관 1층 ‘역사라운지 1907’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이용익 선생의 ‘교육구국’ 정신을 주제로 그의 삶과 행적, 항일투쟁, 보성전문학교 설립 이야기를 소개한다.이 특별전은 교우회 기록자료 전시공간인 ‘역사라운지 1907’ 개관 1주년을 기념 하는 전시회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의 해에 열리는 이용익 특별전은 관람객에게 모교가 민족사학이며 겨레의 꿈과 정성이 담긴 대학임을 일깨워줄 것으로 보인다.교우회는 앞으로 다양한 특별전시회를 기획해 ‘역사라운지 1907’ 방문객에게 뜻 깊은 관람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이번 특별전은 이용익 선생이 대한제국의 관료로서 시행한 부국강병책, 중립국선 언으로 대표되는 외교정책, 교육구국의 이념으로 설립한 보성전문학교 이야기 등을 3개의 섹션으로 구성하고, 선생의 초상화와 사진, 훈장, 관련도서, 손자 이종호 자료 등을 모아 전시했다.경제침탈 맞서 부국강병책이용익 선생은 고종의 최측근으로서 외세 로부터 대한제국의 경제적 주도권을 지키 고자 다양한 상공업 진흥정책을 주도했다.황실 재정을 담당하는 대한제국 내장원경을 거쳐 탁지부 대신으로 활동하며 인삼의 황실 전매사업화, 외국인 광산채굴 금지등 대한제국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의 존립을 가장 우선시한 이용익 선생의 경세가적 식견과 가치관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주권 지키고자 중립국선언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이용익 선생과 함께 영국, 벨기에, 프랑스, 러시아 등의 다양한 국가와 연대하여 국외 중립을 세계에 선언 했다. 비록 일본에 의해 무력화됐지만 열강이 각축을 벌... [2019-04-15](Hit:241)

타이거바이크 임시정부 유적지 라이딩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독립을 꿈꾸며 일제에 맞서 싸웠던 투사들의 꿈은 아직도 우리를 감동케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자전거동호회 타이거바이크(회장=유동희·법학82) 교우들이 특별한 라이딩을 다녀왔다. 임시정부 유적지를 찾아 항주에서 상해까지 달린, 4박 5일 간의 장정 후기를 게재한다.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임시정부 유적지가 있는 중국 항주(杭州)-가흥(嘉兴)-상해(上海)를 자전거로 달린다.모교 졸업생들의 자전거동호회인 타이거바이크(Tiger Bike Club) 회원 15명이 이 자전거 장정에 참여했다. 난 중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자전거 라이딩팀의 대장을 맡게 됐다. 자전거 루트를 짜고 숙박,지원차량, 식당 등을 준비했다. 우리의 자전거루트는 항주임시정부 유적지를 시작으로 가흥 김구피난처, 상해 임시정부 유적지를 거쳐 상해 홍코우공원(虹口公园, 현재는 루쉰공원(鲁迅公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 매원 (梅园)까지로서 절강성(浙江省)의 명소인 오진(吴镇), 서당(西塘) 수향마을도 들러가는 총 240 km의 루트였다. 3·1절 항주 출발하던 날 비로 인한 난행항주에 도착한 2월 28일, 항주 임시정부유적지를 참관했다. 영상 10도 내외의 날씨였지만 부슬비를 뿌리는 중국 남방 특유의 습냉추위가 마치 영하권의 날씨인듯 모든 팀원들을 떨게 만들었다. 다음날인 삼일절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라이딩, 빗방울은 좀 더 굵어졌지만 달리기로 했다. 부슬비를 뚫고 달리는 데 방한, 방수 대비에 취약했던 팀원들의 옷이 모두 젖었고 무엇보다 신발이 젖어버려 더이상 달릴수가 없었다. ‘100년전의 독립투사들... [2019-03-15](Hit:264)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 새긴 교우들의 50년간 발자취
《반세기 뉴욕 고대》의 목차면 디자인 가안(위). 1970년 무렵 열린 뉴욕 축구 고연전(아래 왼쪽). 지난해 12월1일 열린 ‘고대인의 밤’ 행사 중 조종무 편찬위원장이 50년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일희 회장, 조종무 편찬위원장, 원로교우 윤선오, 백운철, 노정섭 교우.1969년 유진오 총장 환영회로 결성1966년, 뉴욕에서 최초로 태권도장을 열어 한국 태권도를 미국사회에 보급하고 있던 조시학(상학53) 교우를 중심으로 10여 명의 교우들이 모여 친목회 성격의 교우회가 탄생돼 지속되고 있었다.그러던 중, 뉴욕총영사관 상무관으로 활동하던 김옥(영문48) 교우가 1969년 말 당시 유진오 모교총장의 뉴욕방문 정보를 입수하고 주해천(행정52) 교우에게 정치적 집회가 아닌 동창회 성격의 환영행사 준비를 부탁했다. 이들은 뉴욕한인사회의 매체들을 이용해 교우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친목회를 주도하던 조 교우를 만나게 됐다. 유 총장 환영회 준비를 기존의 친목회와 함께 하기로 하고, 1969년 12월 맨해튼 소재 삼복식당에서 30여 명의 교우들이 모여 발기대회를 가진 것이 뉴욕교우회의 출발이다. 당시 뉴욕에 고교 동창회 등은 있었지만, 대학 동창회는 최초였다. 이후 뉴욕한인회가 주최한 야유회의 고연전 축구게임 참가 등 대외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명실상부한 뉴욕지역 최초의 대학동창회가 됐다.초창기 회고 담은 원로좌담회도 열려뉴욕교우회는 지난해 9월 17일 《반세기 뉴욕 고대》 편찬에 앞서 원로 교우들과 뉴욕교우회의 지난 50년을 회고하는 자리를 가졌다. 윤선오(영문49), 백운철(경제54), 노정섭(상학54) 교우가 참석했으며, 조종무(정외60) 교우가 사회를 맡았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에 걸쳐 후배 교우들을 보듬어 줬던 원로 교우들은 뉴욕교우회와 첫 산하단체... [2019-02-12](Hit: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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