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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가 사랑한 고대, 평생회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어요”어머니가 들려주는 故전수영(국교08) 교우

등록일 : 2014-08-11 조회 : 14358
<div align=left>지난해 5월 15일 학생들로부터 스승의 날 축하를 받으며 웃고 있는 전수영 교우.
지난해 5월 15일 학생들로부터 스승의 날 축하를 받으며 웃고 있는 전수영 교우.

전수영 교우의 방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아한 정장차림의 전 교우의 사진 앞에는 제자와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들, 4월에 머물러 있는 탁상 달력,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 등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고대 마크가 선명한 교생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이는 고대에 대한 애정이 많았어요. 1학년 때는 과대표를 하면서 과티 맞춰 입고 다니고, 4년 내내 재즈동아리 활동 하면서 거리공연도 빼놓지 않았어요. 작년 고연전때도 생각나요. 무한도전팀 온다고 더 신나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응원하고 그렇게 학교를 좋아했는데… 수영이가 교직생활도 오래 하고 그랬으면 아마 선배로서 고대를 위한 활동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평생회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어요. 아이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수영이가 다 못한 거, 우리가 해주고 싶다고요.”

따듯한성품 지닌, 모두의‘천사’
전 교우는 평소 활발하고 상냥했다. 사람을 가리는 법 없이 주변의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도 강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동료들도, 학생들도 전교우를 ‘천사’라고 불렀다. 그런성품 탓에 사고 발생 후 혼자서는 살아나오지 않을 거라며 전 교우의 죽음을 예견한 친구도 있었다.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전 교우였으니까.

“수영이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저도 선생님이었으니까 교사의 어려움을 잘 알거든요. 학생들이랑 상담하고 학생들 개개인 사연에 마음쓰는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말해도 수영이는 선생님이 적성에 맞는다고 하더군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도 선생님 설명보다 수영이 설명이 더 쉽게 이해된다고 많이 물어보고 그랬대요. 그런 걸 보면 천생 선생님은 맞나봐요.”

최 여사도 이태 전까지 중·고등학교 국사교사였다. 전 교우의 외할아버지 역시 교사로 정년퇴임했다. 전 교우는 선생님 엄마에게 외할아버지의 교사 시절 추억들을 들으며 성장했다.

“수영이가 어렸을때 방과후에 교실에서 환경정리를 하고 있으면 수영이는 칠판에 글씨 쓰면서 놀곤 했어요. 좀 커서는 제가 집에서 교재연구하고 수업재료 예쁘게 만들면 옆에서 따라하기도했죠.

주말에 과천 놀이공원에 손잡고 가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제자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졸업해서 대학생 된 아이들이 선생님 왔다며 인사를 해요. 그리고는 범퍼카시간도 늘려 주고, 아이스크림도 높게 쌓아주거든요. 그러면 수영이가 ‘엄마가 선생님이라 그런거지?’라고 물으며 좋아했어요.

교사는 졸업한 학생들 만나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수영이는 너무 짧게 해서 그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딸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최 여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수영이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특히 수영은 전문가 수준이었죠. 과천시민회관 수영장에서 주말이면 수Km씩 헤엄을 쳤어요. 몸을 만져보면 군살 없이 근육이 딴딴했어요.”

전 교우는 평소 운동을, 특히 수영을 잘했다. 그래서 전 교우가 바다에 있을 때 더더욱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었고, 수영 실력에 희망을 걸었다. 전 교우가 배에서 헤엄쳐나와 무인도에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맹골수도의 바다는 차가웠다.

조문객들 안아준 전 교우 어머니
전 교우의 장례식 때 어머니 최 여사는 눈물 흘리는 조문객들을 위로하며 안아주었고 조문객들은 그 모습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 때 단원고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마치 우리 수영이가 오는 것 같았어요. 우리 딸이 처음가르친 너무 어리고 예쁜 아이들인데 누가 마음이 아프지 않겠어요. 어린 아이들이 너무나 큰 고생을 했잖아요. 그 순간 수영이 생각은 날아가고 학생들이 받은 상처가 걱정됐어요. 그래서 안아주고 싶었어요.”

영정 앞에서 조문객들이 말하는 전 교우와의 다양한 추억들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전 교우는 모두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다.

최 여사에게는 딸의 죽음이 현실 같지가 않다. 일기를 쓰면서 딸과 대화하고 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 속의 딸을 쓰다듬어 보지만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먹먹하기만하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 울었거든요. 지금은 울음이 줄기는 했는데 마음은 갈수록 심해져요. 저도 그렇지만 다른 유가족분들도 마음의 치료를 어떻게 해야할지…”

“아이들 구명조끼 입혀야 돼”
전 교우의 아버지 전제구(53)씨는 딸의 사고 소식 후에도 묵묵히 직장을 지켰다. 그는 국가공무원으로서 책임과 소명을 다하는 데에 신중했고 딸의 사고를 직장에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딸은 마지막까지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를 장악한 것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었다. 엄마에게 변변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전 교우는 “아이들 구명조끼 입혀야 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좁은 계단을 따라 깊은 바다로 내려가게 한 것은 소명의 식, 제자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두려움에 맞선 한 인간의 용기였다.

2001년에는 일본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경상무역93)교우가, 2002년에는 모교 정문 앞에서 소매치기를 쫓기 위해 길을 건너다 생을 마감한 장세환(행정94) 교우가 우리 가슴속의 별이 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전수영’이라는 반짝이는 별이 우리의 가슴속에 오롯이 새겨졌다.

이순호 기자

<div align=left>올해 5월, 전 교우의 어머니는 딸의 자취를 찾아 단원고를 방문했다. 스승의 무사귀환을 소망하는 학생들의 글이 가득한 칠판 앞에 딸의 사진을 올려 놓았다.
올해 5월, 전 교우의 어머니는 딸의 자취를 찾아 단원고를 방문했다. 스승의 무사귀환을 소망하는 학생들의 글이 가득한 칠판 앞에 딸의 사진을 올려 놓았다.

<div align=left>전 교우의 책장에 놓인 모교 졸업식 사진. V자를 그리며 사회로의 첫 발을 내 딛은 전 교우는 스승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전 교우의 책장에 놓인 모교 졸업식 사진. V자를 그리며 사회로의 첫 발을 내 딛은 전 교우는 스승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