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Home > 교우회보 > 특집

특집

우국지사 이용익 삶 조명한 전시회교우회관 1층 ‘역사라운지 1907’에서 10월 3일까지

등록일 : 2019-04-15 조회 : 240

특별전에 걸린 이용익 초상화(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첨부이미지
교우회(회장=구자열)는 모교 설립자인 이용익(1854-1907)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연다. 이달 3일부터 10월 3일 까지 6개월간 교우회관 1층 ‘역사라운지 1907’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이용익 선생의 ‘교육구국’ 정신을 주제로 그의 삶과 행적, 항일투쟁, 보성전문학교 설립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특별전은 교우회 기록자료 전시공간인 ‘역사라운지 1907’ 개관 1주년을 기념 하는 전시회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의 해에 열리는 이용익 특별전은 관람객에게 모교가 민족사학이며 겨레의 꿈과 정성이 담긴 대학임을 일깨워줄 것으로 보인다.
교우회는 앞으로 다양한 특별전시회를 기획해 ‘역사라운지 1907’ 방문객에게 뜻 깊은 관람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번 특별전은 이용익 선생이 대한제국의 관료로서 시행한 부국강병책, 중립국선 언으로 대표되는 외교정책, 교육구국의 이념으로 설립한 보성전문학교 이야기 등을 3개의 섹션으로 구성하고, 선생의 초상화와 사진, 훈장, 관련도서, 손자 이종호 자료 등을 모아 전시했다.

경제침탈 맞서 부국강병책
이용익 선생은 고종의 최측근으로서 외세 로부터 대한제국의 경제적 주도권을 지키 고자 다양한 상공업 진흥정책을 주도했다.
황실 재정을 담당하는 대한제국 내장원경을 거쳐 탁지부 대신으로 활동하며 인삼의 황실 전매사업화, 외국인 광산채굴 금지등 대한제국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의 존립을 가장 우선시한 이용익 선생의 경세가적 식견과 가치관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주권 지키고자 중립국선언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이용익 선생과 함께 영국, 벨기에, 프랑스, 러시아 등의 다양한 국가와 연대하여 국외 중립을 세계에 선언 했다. 비록 일본에 의해 무력화됐지만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당시 정세에서 중립국 선언은 이용익 선생이 나라의 주권을 지키 고자 고심한 산물이었다.

교육구국 이념으로 보전 설립
이용익 선생은 1904년 한일의정서 서명 반대로 일본에 압송돼 1년 여를 강제 체류 했다. 이 기간에 선생은 교육을 통해 나라를 지키고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판단 했다. 1904년 12월 귀국 후 교육구국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자신의 전 재산과 고종의 황실 후원금으로 1905년 4월, 우리 역사상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 학교를 설립했다. 보전은 1907년 첫 졸업 생을 배출하여, 독립투사들의 변호사 허헌 (보전법학1회)을 비롯한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 52명을 탄생시켰다.

구국에 생명 바친 우국지사
이용익 선생은 육군부장이 되어 일제 세력의 축출을 위하여 프랑스·러시아와 제휴를 꾀하라는 고종황제의 밀령을 받고 중국 으로 갔다. 프랑스로 가던 도중 풍랑으로 중국 산둥성에 기항했다가 현지 일본관헌 에게 발각됐는데, 책임추궁을 두려워한 정부에 의해 모든 권한을 박탈당했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구국활동을 펼쳤으나 여의치 않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갔 으며 이때 친일세력이 파견한 자객에게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 크로 이동해 치료와 구국운동을 계속하다가 1907년 1월 사망했다. 
문경희 기자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