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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 소파 방정환의 다양한 면모 재조명되길

등록일 : 2019-08-12 조회 : 6

아동문학가, 언론출판인, 교육사상가, 독립운동가였던 방정환의 전집 5권이 창비에서 간행됐다.

올해는 방정환(1899~1931) 탄생 120주년이다. 한국방정환재단은 이를 기념하여 지난 5월 1일《정본 방정환전집》을 출간했다. 방정환 전집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방정환 사후 10년이 되는 1940년에 처음《 소파전집》(박문서관)이 나온 이후, 체제와 형식을 달리한 전집이 몇 차례 출판된 바 있다.
그러나 1974년 문천사에서 나온《 소파방정환문학전집》 이후에는 기존 전집의 표지나 목차만 바꾼 짜깁기식 출판 행태가 반복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연구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도 방정환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믿고 읽을 만한 전집이 없어 불편함이 컸다. 이에 한국방정환재단은 문학, 교육, 역사학계의 연구자들로 편찬위원회(위원장 원종찬)를 꾸리고 4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 끝에 새로운 전집을 편찬하게 됐던 것이다.

꼼꼼한 검토 거쳐 정본전집 5권 탄생
방정환전집 편찬위원회에 첫 번째로 주어진 과제는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글들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새 전집에는 기존 전집에는 빠져있던 273편의 글이 수록됐을뿐만 아니라, 최근 새로 발굴된 54편의 글을 추가됐다. 이와는 반대로 기존 전집에는 수록됐으나 방정환의 글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삭제하게 된 글도 적지 않다.

두 번째로는 그가 사용했던 수많은 필명들을 확정하는 일이었다. 잘 알려졌듯 방정환은 소파 외에도 ㅈㅎ생, 잔물, 몽중인, 몽견초, 목성, 북극성, 은파리, CW, SW생, SP생 등 수많은 필명을 돌려가며 썼다. 방정환 필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었으나 여전히 이견이 있는 부분도 남아 있어 이 문제를 숙고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셋째는 표기와 교열의 문제로, 거의 한세기 전에 발표된 오래된 글들을 어떻게 하면 원래의 글맛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와 미래의 독자도 큰 불편 없이 읽을 수 있게 다듬을 것인지 기준을 세워 검토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각권 700~900페이지가 넘는 5권짜리의 묵직한 전집이 탄생됐다. 전집 제1권에는 동화, 동요, 동극이 실렸고, 제2권에는 아동소설, 소설, 문학평론이 수록되었다. 제3,4, 5권에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학생》《, 별건곤》 등의 잡지나 신문에 발표되었던 각종 글이 나뉘어 실렸다.
방대한 그의 저술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보니, 소파가 그 짧은 생애 동안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했는지, 그의 활동 폭이 얼마나 넓었는지 확실히 체감됐다. 소파의 문화사적 위치를 간행위원장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원점’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방정환은 소년운동가, 아동문학가, 소설가, 언론출판인, 교육사상가, 동화구연가, 독립운동가의 삶을 동시에 살아내며 없던 길을 만들어냈던 정열적인 개척자였다.

“민중과 만나려면 각설이 타령도 필요하다”
이번 전집에 새로 묶은 글 중에는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CW라는 필명으로 번역한 ‘자유의 낙원’, ‘헌 자취가 사라지는곳’《( 신청년》, 1920.8)을 비롯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학교를 못가더라도 좋은 책과 잡지를 꾸준히 읽거나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지식과 생각을 넓혀갈 것을 권유한 ‘이번 봄에 학교를 졸업하는 이들께’(《어린이세상》,1926.3)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여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을 통해 고향에 내려가 생활 속에 살아있는 지식을 얻되, 만약 집에 내려가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사회제도나 구도덕의 불공평한 점을 고칠 수 있도록 연구에 힘쓰고 심신을 단련할 것을 조언하는 ‘하기방학으로 시골에 돌아간 여학생들에게-아울러 남아 있는 학생을 위하여’《( 신여성》, 1926.8)도 눈에 띈다.
이외에도 방정환이 창작하거나 번역한 탐정소설, 솜씨를 부려 그린 도안이나 만화도 들어 있어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그의 색다른 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방정환의 유연한 실천가로서의 면모다. 그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였지만 지식인의 언어와 사유 패턴에 갇혀 있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어린이인가 어른인가 등을 살펴 언어 표현이나 양식을 적절히 선택했다. 그가 청중을 사로잡는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중들에게 어려운 주제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연설가로도 유명했다.
그의 문학에 나타난 다양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은 문화계몽 운동의 현장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과 소통하며 다져진 실천 역량이었다. 소설가로서 민중과 악수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각설이 떼’의 타령조라도 채택하는 대담한 용단과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각설이 떼식으로’,《조선농민》, 1929.3)고 한 그의 전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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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숙(국교87)
춘천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