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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 황현산·노회찬 교우 1주기를 맞아

등록일 : 2019-08-12 조회 : 17

젊은 시인들과 함께한 평론가, 날마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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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은 참 더웠다. 그 폭염 속에 현산형은 우리 곁을 떠났다(8월 8일). 9월 28일 포천 지현리, 형의 작업실 뜰 소나무 밑에 수목장을 지내고 나자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고 10월에 들어서면서 나는 어느 선배님께 문자를 받았다. “참 더웠던 여름, 정 선생에게는 더 덥고 힘든 여름이었겠지.” 아마 그 문자가 무슨 말인지 내가 이내 알아챈 것을 보면 현산 형이 곁에 없다는 게 여전히 어색했던 듯싶다.

다시 여름은 왔고 현산 형의 1주기가 지나간다. 내 책상 위에는 형이 마지막으로 낸 책,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가 있고 내 노트북에는 형이 내려고 준비하던 랭보의 《시 전집》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파일 형태로 들어있다. 나는 그 파일을 꺼내 보며 틈틈이 형을 만난다.

현산 형은 보들레르, 말도로르, 말라르메, 랭보, 베를렌느, 아폴리네르, 브르통의《초현실주의 선언》의 제대로 된 한국어판본을 만드는 것을 불문학자로서의 일차적 소명으로 삼고 평생을 살았고 그 계획은 거의 실행됐다. 형의 말이다. “이 시인들의 제대로 된 한국어 판본이 있어야 한국에서도, 명실 공히, 현대시가 쓰이고 현대시를 읽을 줄 알게 된다.”(문제는 베를렌느이다. 음악성이 베를렌느 시의 진가인데, 그 음악성을 옮기기가 쉽지 않아, 그 번역은 다른 역자를 기대하는 듯했다).

늦게 평론활동을 시작한 형은 문학상과는 별 인연이 없었는데 은퇴 뒤인 2012년 한꺼번에 ‘대산문학상’, ‘팔봉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한다. 형은 이 가운데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을 그렇게도 기뻐했는데 이 상이, ‘젊은 작가들이, 문학적 성과와 삶이 젊은 작가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선배 작가에게 주는 상’이었기 때문으로 나는 짐작했다.

어느 젊은 평론가의 말이다. “60이 넘은 평론가들 중 젊은 시인들의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분은 황 선생님뿐입니다.”

이 말을 내가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21세기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새로운 코드로 무장하고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을 공개적으로, 격하게 지지한 원로 평론가로 현산 형이 유난했던 것은 사실이다. 현산 형의 말이다. “끝까지 몰고 가는 실험 정신, 이게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이런 정신이 없으면 창조성도 없다.

내가 극단으로 치닫는 젊은 시인들을 지지하는 까닭이다.”

현산 형도, 나도 좋아했던 영화 <동사서독>의 마지막 대사로 형에 대한 일 년 치 ‘그리움’을 대신한다. “만날 수는 없어도 잊지는 말아야지.”

정승옥(불문69) 강원대 명예교수


척박한 사회, 뜨겁게 살았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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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의원과의 인연이 20년이 됐습니다. 2000년 한국사회 진보정당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하여 노 의원은 당시 민주노동당 부대표로, 나는 민주노동당 성북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함께 활동했습니다.
이후 그와는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해서 진보신당, 정의당까지 꾸준히 함께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게는 선배였고, 동지였고, 큰형님이었습니다. 그가 떠난 1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현실로 와 닿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김위원장, 어디 음식점이 좋은데 같이 갑시다. 소주 한 잔해야지” 할 것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개척자였습니다. 그 누구도 한국사회 진보정당의 성장과 성공을 믿지 않았을 때 그는 확신 가득한 어조로 동지들과 후배들에게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빛과 소금’같은 역할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또한 철저한 서민의 대변자였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과 후가 전혀 다름없이 항상 노동자, 서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의 마지막 정치적 발언은 삼성 백혈병 사망 사건 관련 및 KTX 해고 승무원 복직과 관련된 메시지였습니다. 노 의원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고, “KTX승무원들 역시 10여 년의 복직 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고 하며 12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싸워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렇듯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도 소외받은 노동자들을 생각했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은 그 누구보다 세상의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사람이었고, 그 누구보다 노동자, 서민을 위해 한 몸을 헌신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입니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의 꿈을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 척박한 한국사회에서 옳은 길을 위해 뜨겁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매일 ‘지식을담다’에 출근할 때마다 고 노회찬 의원의 사진을 바라봅니다. 사진속에서 그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와의 많은 추억들이 지나갑니다. 아직 그를 보내기 쉽지 않지만, 부디 평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
김준수(사회90) 인문학서점 ‘지식을담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