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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div align=left>졸업식을 마친 후 김준엽 총장을 뒤따르며 퇴임 반대를 외치는 학생들.

제자 지키려 총장직 버린 김준엽 선생, 고대인의 영원한 총장이 되다
1984년의 이른바 ‘학원자율화’조치 이후, 모교는 학생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9월에 학생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출범한 총학생회는, 1980년 5·17 쿠데타 이후 전국 대학 최초의 총학생회였다. 같은 해 11월, 모교생을 주축으로 한 대학생들이 당시 집권당이던 민정당의 당사를 점거하는 사건이 있었고, 12월에는 법대생들이 민정당사 연행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기말고사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당시 문교부에서는 점거사건의 가담자는 물론 배후 조종자까지 제적 등 강력한 징계를 내리도록 해당 대학에 요구하였는데, 김 총장은 사법 처리 결과를 지켜본 뒤 학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지극히 상식적 응수로 요구를 거절하였다. 실제로 이듬해 있었던 징계에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조치를 접한 문교부는 보복에 착수했다. 정부 압력에맞서 총장직사임 1985년 2월 4일 급작스럽게 파견된 문교부의 감사반은 나흘 동안 모교의 행정을 샅샅이 감사한 뒤, 지적 사항을 전달하였다. 첫째 민정당사 관련자에 대한 징계가 극소화된 것, 둘째 법과대 시험거부자를 0점 처리하지 않고 재시험 등을 통해서 구제한 조치, 셋째 미등록자 결원에 대한 교직원 자녀의 특례입학 문제가 지적되었다. [2015-02-13](Hit:14421)

<div align=left>1985년 모교 졸업식을 다룬 지식채널e ‘총장의 辯’화면캡처.

우리는 모두 <장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준엽(1920. 8. 26~2011. 6. 7) 선생은 젊어서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광복군이었고, 광복 후엔 강직하면서도 경영능력을 발휘한 교육자였다. 우리시대의 위인이었던 김준엽 선생에 관한 대중적 기록물은 다양하게 축적되고 있다. 김준엽 선생이 총장에서 물러난 후 가장 먼저 공식석상에서 제자들과 만난 것은 1988년 4월 30일 당시 장덕진(법학56) 교우회장의 요청으로 졸업생들을 위한 특강을 하는 자리였다. 김준엽 선생은 회고록 집필에 몰두하던 중이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졸업생들을 위한 강연장에 나와 신입교우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사회인이 되는 길’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교우회보 1988년 5월호에 게재된 강의 전문은 1985년 졸업식사와 같은 맥락에서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가라”는 당부였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KBS는 특집 다큐멘터리 ‘김준엽 장정 50년’을 제작했고, 2005년 광복 60주년 각 언론방송매체에서도 김준엽 총장은 마지막 광복군으로서 특별대담에 참여했다. 김준엽 선생이 작고한 2011년 8월에 KBS는 다시 역사스페셜 ‘나는 대한민국 광복군이다’를 통해 김준엽 선생의 생애를 전면적으로 재조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김준엽 선생이 1987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표현을 넣도록한 것이 김준엽 선생의 마지막 장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이 영상물은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육자로서 김준엽 선생을 조명하는 기록자료도 다양하다. 2012년 EBS는 김준엽 선생의 1주기를 맞이해 지식채널e ‘총장의 辯’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30년 전 김준엽 총장 퇴임식이 된 졸업식을 다뤘다. 학생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무릎 꿇리면서도 퇴임을 반대한, 한국 대학사에서 ... [2015-02-12](Hit:13958)

<div align=left>1982년 7월 모교 제9대 총장에 취임한 김준엽 선생.

제자 지키려 총장직 버린 김준엽 선생, 고대인의 영원한 총장이 되다II
1985년 2월 25일 열린 제78회 학위수여식은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그전까지는 주로 본관 앞 잔디밭에서 열렸지만 예년에 비해 약 1.5배 많은 4400여 명이 졸업을 하기 때문이었다. 1985년은 졸업정원제로 입학한 첫 세대인 81학번들이 졸업한 해였다. 故김준엽 총장의 퇴임식이 되어버린 졸업식 당사자였던 81학번들에게 30년 전 졸업식은 남다른 감회를 갖게한다. “총장님 힘내세요”외친 답사 당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했던 설진아(신방) 교우. 설 교우는 당시 예정된 원고 대신 “총장님, 힘을 내십시오!”라고 울먹이며 답사를 했다. “답사를 하기 위해 앉아있는데, 모여있던 학생 중 누군가가 저에게 메모지를 건네줬어요. 저는 원래 답사 대신 그 메모지를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김준엽 총장님은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기에 이런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해 총장님 힘내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설 교우는 김준엽 총장의 퇴임사에 담긴 “역사의 신을 믿어라”라는 말을 아직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김준엽 총장은 회고록《장정》에서 이날 졸업생들의 퇴임반대 시위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준 훈장이라고 기록했다. [2015-02-12](Hit:14271)

고대인의 자부심, 고대의 영원함 느끼는 한 해 되길
주철환(국문74)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고 심지어 100살까지 산다는 말들을 공공연히 한다. 올해엔 그동안 내가 쓴 책들과 발표한 음악들을 모아서 세계에 흩어져 사는 친한 벗들을 직접 찾아가서 들려줄 계획이다. (가제)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울산, 제주, LA,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등 무대가 준비되는 곳부터 순차적으로 열 예정이다. ② 새로 취임하는 염재호 총장에게 큰 기대를 건다. 절차탁마, 심기일전하여 고대가 새롭게 출발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신입생 선발도 획기적인 방법으로 추진하여 국내외의 다양한 최고인재가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다각도로 개발하기 바란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학생이 미리 고대를 약정으로 지원하여 고3, 1년 동안 고대인이 되기 위해 치밀하게 실력과 인성을 다듬는 제도를 시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 중 일정비율의 우수자원들을 입도선매하는 방식도 고려해 봄직하다. [2015-01-14](Hit:13995)

되돌아본 교우회·모교 2014년
모교 개교 제109주년을 기념하고 교우들의 화합을 다지는‘고대인의 날’행사가 5월 9일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연아(체교09) 교우가 그동안의 빛나는 활약으로 모교와 교우회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고대가족상, 모범지부·분회표창, 특별공로상, 사회봉사상 등 시상식이 이어졌다. 교우 덕소주말농장개장 교우들을 위한 덕소주말농장이 4월 12일 개장했다. 덕소주말농장은 교우들의 건강한 여가생활을 위해 마련한 교우회 사업으로 올해에는 86명의 교우들이 1인당 5평의 경작지를 배정받았다. 이날 참석한 교우가족들은 직접 상추 및 삼채류 모종을 파종했다. 4·18의거 제54주년 기념 헌화식 4·18의거 54돌을 맞아 4월혁명고대(회장=김면중·철학57) 등4·18 주역들과 재학생들이 헌화식을 거행했다. 앞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행사는 어느 때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선발대는 검은 티셔츠를 갖추어 입고 세월호의 슬픔을 함께 나눴다. [2014-12-15](Hit:14127)

<div align=left>고우체육회 수석부회장인 박한 교우(왼쪽)가 5개부 감독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우경하, 서동원, 김희우, 이민형, 김성남 감독.

모교 5개부 감독들이 말하는 5전 전승 뒷이야기
지난달 10일(금)과 11일(토) 열린 2014 정기고연전 5전 전승 기록은 모교 역사에서 잊혀지지않을 불멸의 신화로 남게됐다. 1965년 5개종목으로 이틀간 치러지는 정기전이 시작된 이래 실로 50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교우들이 모이는 곳마다 정기전 전승 우승의 기쁨을 음미하는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잠실운동장과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경기를 직관하며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교우들은 미처 경기장에 가지 못한 교우들의 부러움을 샀다. 지난 5일(수), 고우체육회(회장=한영관·행정67)는 모교 5개 운동부 감독과 코치를 초청해 격려했다. 고된 훈련과정을 거쳐 값진 승리의 보람을 거둔 감독들에게 전승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수인 교우가 전한 사진 한 장 정기전 첫 종목은 야구. 첫 단추를 잘 꿰야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야구부 [2014-11-13](Hit:14560)

<div align=left>문학콘서트 기획자인 고형진 교수(왼쪽)와 문학평론가 강유정 교우의 대담.

高大 역사를 건축·문학·음악 문화사로 재조명하다
문학콘서트에서는 모교를 소재로한 문학작품들을 발굴하여 시, 소설, 수필로 분류해 진행했다. 학교를 소재로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다른 학교에서는 문학작품을 찾기 조차 어렵다. 그래서 더욱 뜻 깊은 이번 콘서트는 고형진(국교78) 모교 국어교육과 교수의 사회로 고대인의 정서가 담긴 작품들을 감상했다. 시 '고려대학교' 모교와 관련된 문학작품 중 오탁번(영문64) 교우의‘고려대학교’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이 시는 오탁번 교수가 정문에 문패가 없는것을 알게 되고 시상이 떠올라 짓게된 것이다. 문패가 없는 대학은 모교가 유일하다. 이는 문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뜻하며, 구태여 문패를 통해 알리기 보다는 내공을 쌓아 은은하게 빛나게 하겠다는 고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고려대학교 교가 1955년에 모교의 교가가 탄생한다. 매일 오전 9시마다 캠퍼스 내에 울려 퍼질 정도로 격조높은 교가는 가사 제작에 있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구절의 '북악산 기슭에', '안암의 언덕에'에서는 안암 교사의 구체성을 보여주며, ‘빛을 보라’에서는 석조 건물의 하얀 빛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 다음의 구절에는 ‘전당’과 ‘마음의 고향’이 등장한다. ‘전당’은 공적인 곳이고, ‘마음의 고향’은 따뜻하고 포근한 사적인 곳이다. 둘은 어울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당을 고향으로 치환시켰다. 이는 학교지만 집과 같은 곳임을 표명하며 단순히 지식만 주고받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2014-11-13](Hit:14267)

<div align=left>김세용 교수가 모교 건축역사와 미학을 설명하고 있다.

본관 한 동에서 110개 건물로
건축콘서트에서는 김세용(건축공84) 모교 건축학과 교수가 보성전문학교의 설립부터 미래의 마스터플랜까지, 과거에서 미래를 아우르는 모교 건물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정착하지 못했던 과거 모교는 1905년 보성전문학교의 설립부터 안암캠퍼스로의 이전 전까지 수송동, 낙원동 등을 전전했던 과거가 있다. 첫 캠퍼스는 수송동의 한옥교사였다.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하며 기존의 건물로는 모든 학생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1914년 구교사를 헐고 목조로 된 일본식 양옥으로 신교사가 지어졌다. 4년 후에는 낙원동의 서북학회 회관으로 쓰였던 건물에서, 1922년에는 송현동의 옛 천도교 본부에서 수업이 진행됐다. 안암캠퍼스로 행진하다 1932년에 인촌 김성수 선생이 보성전문을 인수하고 당시 서른이 갓 넘은 조선인 건축가 박동진과 기거하며 안암캠퍼스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년 만에 안암동 신교사가 건립된다. 마침내 1934년 9월, 보전 재학생들은 서울시내를 가로질러 안암캠퍼스로 행진한다. 모교 본관은 인촌선생의 요청으로 학생 900명 기준의 큰 규모와 양질의 재료로 호화롭게 지어졌다. 장안에 화제가 될 정도였던 본관은 지금 봐도 돌 마감이 뛰어날 정도로 야심차게 만들어진 건물이다. 올해초, 보수공사를 완료해 앞으로 80년 [2014-11-12](Hit:14083)

음대는 없지만 한국음악사의 명곡 만든 고대인들
이번 음악콘서트 악보집의 제목은 “고려대학 사람들이 만든 명곡을 찾아서”였다. 고대와 인연을 맺은 작사가·작곡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는 데에 목적을 둔 악보집이다. 여기에 소개된 고대인 작사·작곡가들을 살펴본다. ‘어린이날 노래’는 원래있던 선율에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김기전 교우가 가사를 붙인 곡이다. 또한 ‘형제별’은 우리나라 창작 동요의 효시라는 역사성을 가지는 곡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작사했다. 이 두 곡은 어린이 운동의 중심에 보성전문학교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이후에도 고대인들의 동요창작 활동은 계속 됐다. 한국전쟁 전후로 만들어진 창작 동요 ‘꽃밭에서’와‘과꽃’, ‘파란마음 하얀마음’은 어효선 작사인데, 한예종 민경찬 교수 연구에 따르면 어효선 선생은 모교 국어과 연구생 출신이다. 특히,‘꽃밭에서’는 전쟁 직후 아버지를 추억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정적 멜로디로 진행된다. 광복 직후 만들어진 애국가요에는 당시 모교 문과대학 영문과에 재직하던 임학수 교수가 작사한 ‘아침해 고을씨고’와‘축재해외조선군 개선가’가 있다. 작사자가 북으로 갔다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88년에 해금되었다. 이번 음악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복원해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14-11-12](Hit:1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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