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하는 고대교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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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div align=left>이번 행사의 작품 전시회는 고대 건축과 50년을 회고하고 미래 50년을 전망하는 자리였다. 작품을 감상하는 참석자들.

50돌 맞은 건축과, 대한민국 건축을 세계의 반석 위로
1964년 첫 신입생을 받은 ‘건축공학과’는 50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현재는 건축학과(5년제) 및 건축사회환경공학부의 건축공학 전공(4년제)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번 50주년 기념행사는 건축학 및 건축공학전공이 만나 ‘건축과’라는 이름으로 진행됐으며, 건축과에서 50년간 배출된 2855명의 건축학도들은 국내외 건축계에서 건축가, 엔지니어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건축과 발전기금20억 약정 약 10억원 전달 건축과는 올해 1월 50주년을 맞이해 발전기금으로 20억 원을 약정했고, 현재 10억여 원이 모금됐다. 지난2일(화) 4시에 시작된 ‘고대건축 50주년 기념식’은 10억의 발전기금 전달식을 포함,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기념식이 진행된 모교 100주년기념관 컨퍼런스 홀은 마치 연회장처럼 건축과 교우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200명이 넘는 참석자 대부분은 건축과 교우 및 재학생이었다. 행사장 곳곳에서 교우들과 교수, 재학생이 격의없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과에서 단기간에 기금을 모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대건축 50주년 기념회’의 최성남(건축64) 대회장은 기념사에서 “64학번부터 99학번까지 십시일반으로 발전기금을 모금해줬다”고 말하며, 어려운 여건에도 정성을 모아준 교우 및 건축과 교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원래 목표인 20억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향후 이뤄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14-09-11](Hit:14606)

<div align=left>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00회 고대미전 오프닝. 왼쪽 네 번째부터 서화회 회장 정수희, 호미회 고문 최종후 교우, 호 미회 회장인 차호승 교우.

제100회 고대미전, 선후배 융합과 소통의 장이 되다
서예와 서양화를 다루는 동아리서화회(회장=정수희·미디어13)와 서화회 출신 교우 모임인 호미회(회장=차호승·농화학75)가 1961년부터 올해까지의 작품을 모아 ‘제100회 고대미전’을 열었다. 지난 13일(수)부터 19일(화)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작품전시가 있었고, 16일(토)에는 특별강연까지 마련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였다. 행사 오프닝에서 차호승 회장은 “서화회 후배들이 잘돼야 호미회도 잘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서화회와 호미회가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 미전의 추진위원장인 최종후(통계74) 모교 정보통계학과 교수는 “오늘을 위해 작년부터 많은 구성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고 선후배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정수희 서화회 회장은 “제100회 고대미전을 위해 3월부터 방학을 반납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했다. 호미회 선배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색하는고대인 서화회와 호미회의 탄생 1950년대 후반 모교학생들의 젊은 혈기가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당시 故유진오 총장은 고연전 중지를 선언하고 사색하는 고대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1961년 서화회가 탄생했다. 서화회는 이듬해부터 매년 두차례씩 50여 년간 미전을 열어왔다. 1972년 서화회의 전통을 이어나가자는 취지로 서화회 출신교우들이 모여 호미회가 탄생했다. 서화회와 호미회는 합동으로 미전을 열거나 모교 서화회 동아리실을 위한 지원을 하는 등 꾸준히 교류를 이어왔다. [2014-09-11](Hit:14489)

<div align=left>지난해 5월 15일 학생들로부터 스승의 날 축하를 받으며 웃고 있는 전수영 교우.

“수영이가 사랑한 고대, 평생회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어요”
전수영 교우의 방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아한 정장차림의 전 교우의 사진 앞에는 제자와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들, 4월에 머물러 있는 탁상 달력,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 등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고대 마크가 선명한 교생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이는 고대에 대한 애정이 많았어요. 1학년 때는 과대표를 하면서 과티 맞춰 입고 다니고, 4년 내내 재즈동아리 활동 하면서 거리공연도 빼놓지 않았어요. 작년 고연전때도 생각나요. 무한도전팀 온다고 더 신나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응원하고 그렇게 학교를 좋아했는데… 수영이가 교직생활도 오래 하고 그랬으면 아마 선배로서 고대를 위한 활동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평생회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어요. 아이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수영이가 다 못한 거, 우리가 해주고 싶다고요.” 따듯한성품 지닌, 모두의‘천사’ 전 교우는 평소 활발하고 상냥했다. 사람을 가리는 법 없이 주변의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도 강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동료들도, 학생들도 전교우를 ‘천사’라고 불렀다. 그런성품 탓에 사고 발생 후 혼자서는 살아나오지 않을 거라며 전 교우의 죽음을 예견한 친구도 있었다.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전 교우였으니까. “수영이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저도 선생님이었으니까 교사의 어려움을 잘 알거든요. 학생들이랑 상담하고 학생들 개개인 사연에 마음쓰는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말해도 수영이는 선생님이 적성에 맞는다고 하더군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도 선생님 설명보다 수영이 설명이 더 쉽게 이해된다고 많이 물어보고 그랬대요. 그런 걸 보면 천생 선생님은 맞나봐요.” 최 여사도 이태 전까지 중·고등학교 국사교사였다. 전 교우의 외할아버지 역시 교사로 정년퇴임했다. 전 ... [2014-08-11](Hit:14231)

<div align=left>고대 선배들은 후배들의 영원한 멘토이다. 지난 5월,‘ 선배, 후배의 나침반이 되다’라는 모토로 열 린 경제학과 진로간담회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교우들이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을 했다.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이자 축복의 고향
“4년간 학교에서 배우고 40년간 사회에서 어울려 다니는게 고려대학교 교우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1971년에 입학했으니까 입학 40주년도 훌쩍 넘긴 학번이다. 가정에는 가풍이 있고 회사에는 사풍이 있듯이 학교에는 학풍이있다. 고유한 조직문화가 있고 이것이 구성원들의 의식구조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른 대학에는없다 고대만의열린 학풍 고려대학교의 학풍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자유, 정의, 진리’그리고 ‘지성과 야성’일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지식인이면서도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호방함이 있고 요즘 우리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의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배어있다.,br> 고대 교우들은 째째한 것을 싫어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통큰 리더십을 발휘하는 성향이 있다. 고대 교우들이 다른 학교 동창들보다 잘 뭉치고 어울리는데는 이런 학풍이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학번과 학과를 뛰어넘어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학교 동창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열린 학풍일 것이다. 나는 지난 40여 년 동안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후배 교우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교류하면서 한분 한분이 멘토멘티가 되고 스승이 되고 동지가 되어 험한세월을 용감하게 도전하며 살아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를 졸업한 후 초반 20년은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풍이 용암처럼 솟구치던 세월이었고 그 후 20여 년은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의 격랑과 정면으로부딪치는 세월이었다. [2014-08-11](Hit:14510)

<div align=left>L’DLSQ 디스크 치료기.

모교 산학협력단, 기업과 함께 국가 성장동력이 되겠습니다 - 2
L’DLSQ, 국내 최초 국제 인증 획득 기술이전-유앤아이(주) 1996년 모교는 사립대학 최초로 지식재산에 대한 관리개념을 도입했다. 지식재산의 핵심인 특허의 경우, 2013년 기준해외 포함 735건을 출원하였으며, 누적등록특허 건수도 해외 포함 2,473건에 달한다. 지식사회에서 산업경쟁력의 핵심은 IP(지식재산)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핵심 지식재산의 확보와 기술이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유앤아이(주)의 대표적인 기술이전 사례로는 2006년 보건복지부 바이오 산업화 기술개발 사업으로 모교 의학과 이상헌(의학83) 교수 연구팀과 유앤아이(주)가 공동 연구개발한 L’DISQ 디스크 치료기가 있다. 기술이전의 핵심은 기술 이전 이후 상용화 성공 여부에 있다. L’DISQ의경우, ISO 13485 품질시스템인증 및 미국의 FDA, 유럽 CE 마크 등 국내 최초로 국제 인증을 획득하였다. 또한 수술 없이 디스크 탈출증을 치료하는 제품으로 관련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본 기술의 경우 매년 1억이 넘는 경상로열티 수입이 발생하고 있어 산업체와 대학이 win-win하는 모델이 되고있다. [2014-07-14](Hit:13965)

<div align=left>모교 산학관 전경.

“모교 산학협력단, 기업과 함께 국가 성장동력이 되겠습니다” - 1
산학협력이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대학에 의뢰하고,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는 기업과 대학이 win-win하는 상호작용 프로세스다. 모교는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로 산학협력 KU가족회사(이하 가족회사) 제도를 만들었다. 지난달 1일 교무회의에서 가족회사에 대한 규정이 통과됐다. 가족회사는 기본적으로 중소·중견·벤처·창업 기업을 위한 제도로, 고대와 공동연구 및 기술개발, 기술이전, 산업자문, 경영자문, 창업, 현장실습, 취업, 산학연계 교육 프로그램 운영, 공동장비 이용, 법률과 세무 등 맞춤형 산학협력을 통해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고자 고대와 협약을 체결한 기업을 말한다. 기업요구에맞춤형 협력 교우기업들 참여 기대해 가족회사 자격 해당 기업은 교우기업을 비롯하여 이미 모교의 기술 이전을 받은 기업, 캠퍼스 입주기업, 기술지주회사 자회사, R&D 공동연구 기업 등이 포함되며 이들 중 300여 개의 기업을 가족회사라는 제도로 포용하여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산학협력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가족회사에 가입하고자 하는 기업은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여 산학협력단에 제출해야 한다. 가족회사는 다음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14-07-14](Hit:13957)

대한민국 지방행정의 새로운 미래 열 고대인
송하진(법학72) 전북도지사 한국 속의 한국, 생동하는 전라북도! 교우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전북도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34대 전북도지사로 취임했습니다. 영광스런 자리지만 막중한 책임감이 앞섭니다. 현재 전라북도는 열악한 재정자립도, 침체된 지역경제, 심각한 인구유출등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전라북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지역 경쟁력과 자존심을 높이는데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민선 6기 도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는 전라북도에 사람과 돈이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전라북도에는 대한민국을 책임질 최대의 국책사업인 새만금의 내부개발이 한창입니다. 이와 함께 농업·관광·탄소산업 등 3대 핵심전략으로 관광객 1억 명, 소득 2배, 전북 300만 시대의 꿈과 희망, 비전을 향해 가겠습니다.역사 재조명을 통해 자랑스런 전북의 역사와 문화를 전국에 알리고 사람과 돈이 모이는 전라북도를 만들어 과거 300만 도민시대의 노래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4-07-14](Hit:14039)

<div align=left>가나즈 히데미(金津日出美) 일어일문학과 교수

외국인 교수가 본 고려대학교
처음 고려대에 부임한 것은 2008년 3월로, 녹음 짙은 공원과 같이 아름다운 캠퍼스에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7년간의 고려대 생활을 되돌아보면, 새로운 건물들이 연이어 완공된 것만이 아니라 캠퍼스를 왕래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꽤 변한것 같다. 최근‘세계화의 도래, 그 후의 본격적인 전개’라는 말을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데, 역시 캠퍼스 안을 둘러보아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영어를 비롯한 각종 언어들을 들을 수 있으며, 대학도 그 파도의 한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학생시절을 보낸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의 일본은‘버블시대’라고 불리는 광란적 호경기 시대로, 그 후의‘잃어버린 20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현재일본은‘내향지향(內向志向)시대’로 학생들이 좀처럼 해외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장기간의 불황으로 침체시기인 현재의 일본은 점진적이긴 하지만 세계화에 대한 대응이 촉진되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영어강의, 해외 인턴십, 유학 장려등의 세계화 인재육성과 보다 효율적인 대학운영을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개혁 등 다양한 대책이 모색되고 있다. 영어강의, 해외인턴십 장려 고대는 세계인재양성에 앞장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대부분의 한국 대학, 특히 고려대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이미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빨리빨리”라는 성급한 국민성에 의한 것이라고. 물론 1997년 IMF위기가 직접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면 「국가의 소멸」(외부에서의 강제적인 힘에 의한)이라는 근대이후의 역사에, 그리고 중국과 일본 사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개인이 얼마... [2014-06-16](Hit:14040)

<div align=left>양희웅(생명과학부07) - <토론토夜>입실렌티 행사에 단체 참석한 쿠이사 학생들.

세계화의 물결, 그 선두에 고대가 있다 1
모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우수 인증대학으로 선정되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제(IEQAS)’는 2011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의 국제적 경쟁력과 신뢰도 제고를 위해 도입된 것으로 모교는 3년째 인증대학으로 선정되었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2011년 재학생 중 11%에 불과했던 외국인 학생의 비율은 2013년 기준 22%로 2배가량 늘어났다. 교정을 거닐다보면 외국인 학생들을 심심치않게 마주칠 수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지만 십여 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한국은 분명 낯선 환경일 것이다. 한국문화에 서툰 외국인학생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쿠이사(KUISA:Korea University International Student Assistant) 학생들이다. 2013년 가을, 고려대학교 국제처와 외국인 언어교류 도우미 학생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정규 학생들의 보다 수월한 학교생활과 한국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자는 취지아래 쿠이사는 활동을 시작했다. 쿠이사는 봉사 정신과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각기 다른 사고방식과 개성을 지닌 모교 재학생들의 단체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 5일, 쿠이사 주최로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교환학생 및 취업 선배들과의 만남’의 장이 열렸다. 교환학생, 인턴십, 취업등 3가지 주제로 진행된 이번 만남은 재학생인 테무르 Temur Soliev(경영05)의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세 명의 외국인 졸업생과 60여 명의 외국인 재학생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졸업생들이 각각 주제별로 자신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배들에게 강의 형태로 발표했다. 편... [2014-06-16](Hit:13999)

<div align=center>애나(건축13)

세계화의 물결, 그 선두에 고대가 있다 2
지하철 6호선 안암역, 고려대역, 캠퍼스 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외국인들과 마주칠 수 있다. 이들중에는 방문학생도 교환학생도 외국인 학생들도 있다. 이 학생들이 한국을, 모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기 다른이유로 고대인이 된 외국인 학생 세 명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이국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세 학생 모두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러시아에서 온 아나스타샤 아코블레바 Anastasia Iakovleva(건축13, 이하 애나), 중국에서 온 조철趙哲(미디어10, 이하 조철) 캐나다에서 온 다니엘 조이 알브라이트 브래드포드Daniel Joey Albright-Bradford(일문 12, 이하 조이), 이들이 한국에 온 지는 각각 2년, 5년, 6년이되었다.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된 이들 세 사람의 눈으로 본‘고대’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조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성격이 외국으로 나가서 비즈니스를 하기 적합하다는 생각에 여러나라를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 고민이 많았다. 한자를 사용한다는 점이나 유교 사상이 전반에 깔려있어 문화적으로 적응하기 쉬울 것 같았다. 가족에 조언을 얻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2014-06-16](Hit:1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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