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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div align=left>문학콘서트 기획자인 고형진 교수(왼쪽)와 문학평론가 강유정 교우의 대담.

高大 역사를 건축·문학·음악 문화사로 재조명하다
문학콘서트에서는 모교를 소재로한 문학작품들을 발굴하여 시, 소설, 수필로 분류해 진행했다. 학교를 소재로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다른 학교에서는 문학작품을 찾기 조차 어렵다. 그래서 더욱 뜻 깊은 이번 콘서트는 고형진(국교78) 모교 국어교육과 교수의 사회로 고대인의 정서가 담긴 작품들을 감상했다. 시 '고려대학교' 모교와 관련된 문학작품 중 오탁번(영문64) 교우의‘고려대학교’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이 시는 오탁번 교수가 정문에 문패가 없는것을 알게 되고 시상이 떠올라 짓게된 것이다. 문패가 없는 대학은 모교가 유일하다. 이는 문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뜻하며, 구태여 문패를 통해 알리기 보다는 내공을 쌓아 은은하게 빛나게 하겠다는 고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고려대학교 교가 1955년에 모교의 교가가 탄생한다. 매일 오전 9시마다 캠퍼스 내에 울려 퍼질 정도로 격조높은 교가는 가사 제작에 있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구절의 '북악산 기슭에', '안암의 언덕에'에서는 안암 교사의 구체성을 보여주며, ‘빛을 보라’에서는 석조 건물의 하얀 빛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 다음의 구절에는 ‘전당’과 ‘마음의 고향’이 등장한다. ‘전당’은 공적인 곳이고, ‘마음의 고향’은 따뜻하고 포근한 사적인 곳이다. 둘은 어울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당을 고향으로 치환시켰다. 이는 학교지만 집과 같은 곳임을 표명하며 단순히 지식만 주고받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2014-11-13](Hit:14355)

<div align=left>김세용 교수가 모교 건축역사와 미학을 설명하고 있다.

본관 한 동에서 110개 건물로
건축콘서트에서는 김세용(건축공84) 모교 건축학과 교수가 보성전문학교의 설립부터 미래의 마스터플랜까지, 과거에서 미래를 아우르는 모교 건물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정착하지 못했던 과거 모교는 1905년 보성전문학교의 설립부터 안암캠퍼스로의 이전 전까지 수송동, 낙원동 등을 전전했던 과거가 있다. 첫 캠퍼스는 수송동의 한옥교사였다.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하며 기존의 건물로는 모든 학생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1914년 구교사를 헐고 목조로 된 일본식 양옥으로 신교사가 지어졌다. 4년 후에는 낙원동의 서북학회 회관으로 쓰였던 건물에서, 1922년에는 송현동의 옛 천도교 본부에서 수업이 진행됐다. 안암캠퍼스로 행진하다 1932년에 인촌 김성수 선생이 보성전문을 인수하고 당시 서른이 갓 넘은 조선인 건축가 박동진과 기거하며 안암캠퍼스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년 만에 안암동 신교사가 건립된다. 마침내 1934년 9월, 보전 재학생들은 서울시내를 가로질러 안암캠퍼스로 행진한다. 모교 본관은 인촌선생의 요청으로 학생 900명 기준의 큰 규모와 양질의 재료로 호화롭게 지어졌다. 장안에 화제가 될 정도였던 본관은 지금 봐도 돌 마감이 뛰어날 정도로 야심차게 만들어진 건물이다. 올해초, 보수공사를 완료해 앞으로 80년 [2014-11-12](Hit:14135)

음대는 없지만 한국음악사의 명곡 만든 고대인들
이번 음악콘서트 악보집의 제목은 “고려대학 사람들이 만든 명곡을 찾아서”였다. 고대와 인연을 맺은 작사가·작곡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는 데에 목적을 둔 악보집이다. 여기에 소개된 고대인 작사·작곡가들을 살펴본다. ‘어린이날 노래’는 원래있던 선율에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김기전 교우가 가사를 붙인 곡이다. 또한 ‘형제별’은 우리나라 창작 동요의 효시라는 역사성을 가지는 곡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작사했다. 이 두 곡은 어린이 운동의 중심에 보성전문학교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이후에도 고대인들의 동요창작 활동은 계속 됐다. 한국전쟁 전후로 만들어진 창작 동요 ‘꽃밭에서’와‘과꽃’, ‘파란마음 하얀마음’은 어효선 작사인데, 한예종 민경찬 교수 연구에 따르면 어효선 선생은 모교 국어과 연구생 출신이다. 특히,‘꽃밭에서’는 전쟁 직후 아버지를 추억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정적 멜로디로 진행된다. 광복 직후 만들어진 애국가요에는 당시 모교 문과대학 영문과에 재직하던 임학수 교수가 작사한 ‘아침해 고을씨고’와‘축재해외조선군 개선가’가 있다. 작사자가 북으로 갔다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88년에 해금되었다. 이번 음악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복원해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14-11-12](Hit:14795)

<div align=left>11일 잠실운동장을 찾은 교우들이 교우회에서 나눠준 기념모자를 쓰고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전승 우승의 기운으로 모교의 대도약을!
지난 10월 10일(금)과 11일(토) 열린 2014년 정기고연전은 정기전 사상 첫 전승 우승 신화를 작성하면서 막을 내렸다. 첫날야구, 농구에 이어 아이스하키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일찌감치 금년도 정기전 종합우승을 예약했다. 전력상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 럭비와 축구를 남겨두었기에 조심스럽게 전승우승을 점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전력 외의 요소가 작용하는 고연전이기에“설마”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튿날 모교는 럭비에 이어 축구에서도 쾌승을 거뒀다. 1965년 5개 종목 경기로 정기전이 시작된 이래 50년만에 일어난 쾌거였다. 고연전의 역사는 일제하 보성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정구종목으로 보연전이 시작됐고, 1927년 축구, 1930년 농구 종목에서 보연전이열렸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누리며 축구와 농구 OB보연전이 열렸다. 1946년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로 교명을 바꾼 후 럭비 고연전이열렸다. 이후 6.25전쟁과 시대적 격랑 속에서 정기전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1965년에 현재와 같이 이틀 동안 야구, 농구, 빙구, 럭비, 축구 5종목을 치르는 정기전이 시작됐다. [2014-10-16](Hit:14092)

17년 만의 승리 - 아이스하키 생중계 후기
교육방송국 KUBS의 고연전 생중계를 통해 이번 빙구경기를 중계방송 했다. 해설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기록이 바로 ‘16년 정기전 무승’이었다. 정기전에서 빙구는 잘해야 비기는 종목으로 인식됐고, 교우들과 재학생들의 응원도 뜸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력이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몇차례 승리의 희망을 품었던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기전에서는 번번이 연세대에게 무너졌다. 빙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경기를 10여분 앞두고 생중계를 시작하면서 올해는 꼭 17년만의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근거는 많았다. 모교 아이스하키 팀은 올해 비정기전 맞대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린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연세대는 작년보다 전력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결과가 말해주듯 승리는 아직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 선수들은 상대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승리를 향한 의지가 느껴졌다. 공격수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상대 골문을 위협했고, 수비수들은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견고하게 진영을 지켜냈다. 김영훈 선수의 골을 시작으로 연달아 득점에 성공하며 1피리어드에만 3:0, 믿기 힘든 점수가 전광판에 적혀있었다. 득점 순간마다 마이크를 움켜진 오른손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우리선수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힘껏 호명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역전패한 2009년도 정기전 모습이 기억 한편에서 떠나지 않았다. [2014-10-16](Hit:14098)

<div align=left>이번 행사의 작품 전시회는 고대 건축과 50년을 회고하고 미래 50년을 전망하는 자리였다. 작품을 감상하는 참석자들.

50돌 맞은 건축과, 대한민국 건축을 세계의 반석 위로
1964년 첫 신입생을 받은 ‘건축공학과’는 50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현재는 건축학과(5년제) 및 건축사회환경공학부의 건축공학 전공(4년제)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번 50주년 기념행사는 건축학 및 건축공학전공이 만나 ‘건축과’라는 이름으로 진행됐으며, 건축과에서 50년간 배출된 2855명의 건축학도들은 국내외 건축계에서 건축가, 엔지니어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건축과 발전기금20억 약정 약 10억원 전달 건축과는 올해 1월 50주년을 맞이해 발전기금으로 20억 원을 약정했고, 현재 10억여 원이 모금됐다. 지난2일(화) 4시에 시작된 ‘고대건축 50주년 기념식’은 10억의 발전기금 전달식을 포함,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기념식이 진행된 모교 100주년기념관 컨퍼런스 홀은 마치 연회장처럼 건축과 교우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200명이 넘는 참석자 대부분은 건축과 교우 및 재학생이었다. 행사장 곳곳에서 교우들과 교수, 재학생이 격의없이 어울려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과에서 단기간에 기금을 모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대건축 50주년 기념회’의 최성남(건축64) 대회장은 기념사에서 “64학번부터 99학번까지 십시일반으로 발전기금을 모금해줬다”고 말하며, 어려운 여건에도 정성을 모아준 교우 및 건축과 교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원래 목표인 20억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향후 이뤄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14-09-11](Hit:14740)

<div align=left>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00회 고대미전 오프닝. 왼쪽 네 번째부터 서화회 회장 정수희, 호미회 고문 최종후 교우, 호 미회 회장인 차호승 교우.

제100회 고대미전, 선후배 융합과 소통의 장이 되다
서예와 서양화를 다루는 동아리서화회(회장=정수희·미디어13)와 서화회 출신 교우 모임인 호미회(회장=차호승·농화학75)가 1961년부터 올해까지의 작품을 모아 ‘제100회 고대미전’을 열었다. 지난 13일(수)부터 19일(화)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작품전시가 있었고, 16일(토)에는 특별강연까지 마련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였다. 행사 오프닝에서 차호승 회장은 “서화회 후배들이 잘돼야 호미회도 잘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서화회와 호미회가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 미전의 추진위원장인 최종후(통계74) 모교 정보통계학과 교수는 “오늘을 위해 작년부터 많은 구성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고 선후배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정수희 서화회 회장은 “제100회 고대미전을 위해 3월부터 방학을 반납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했다. 호미회 선배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색하는고대인 서화회와 호미회의 탄생 1950년대 후반 모교학생들의 젊은 혈기가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당시 故유진오 총장은 고연전 중지를 선언하고 사색하는 고대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1961년 서화회가 탄생했다. 서화회는 이듬해부터 매년 두차례씩 50여 년간 미전을 열어왔다. 1972년 서화회의 전통을 이어나가자는 취지로 서화회 출신교우들이 모여 호미회가 탄생했다. 서화회와 호미회는 합동으로 미전을 열거나 모교 서화회 동아리실을 위한 지원을 하는 등 꾸준히 교류를 이어왔다. [2014-09-11](Hit:14646)

<div align=left>지난해 5월 15일 학생들로부터 스승의 날 축하를 받으며 웃고 있는 전수영 교우.

“수영이가 사랑한 고대, 평생회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어요”
전수영 교우의 방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아한 정장차림의 전 교우의 사진 앞에는 제자와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들, 4월에 머물러 있는 탁상 달력,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 등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고대 마크가 선명한 교생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이는 고대에 대한 애정이 많았어요. 1학년 때는 과대표를 하면서 과티 맞춰 입고 다니고, 4년 내내 재즈동아리 활동 하면서 거리공연도 빼놓지 않았어요. 작년 고연전때도 생각나요. 무한도전팀 온다고 더 신나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응원하고 그렇게 학교를 좋아했는데… 수영이가 교직생활도 오래 하고 그랬으면 아마 선배로서 고대를 위한 활동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평생회원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어요. 아이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수영이가 다 못한 거, 우리가 해주고 싶다고요.” 따듯한성품 지닌, 모두의‘천사’ 전 교우는 평소 활발하고 상냥했다. 사람을 가리는 법 없이 주변의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도 강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동료들도, 학생들도 전교우를 ‘천사’라고 불렀다. 그런성품 탓에 사고 발생 후 혼자서는 살아나오지 않을 거라며 전 교우의 죽음을 예견한 친구도 있었다.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전 교우였으니까. “수영이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저도 선생님이었으니까 교사의 어려움을 잘 알거든요. 학생들이랑 상담하고 학생들 개개인 사연에 마음쓰는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말해도 수영이는 선생님이 적성에 맞는다고 하더군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도 선생님 설명보다 수영이 설명이 더 쉽게 이해된다고 많이 물어보고 그랬대요. 그런 걸 보면 천생 선생님은 맞나봐요.” 최 여사도 이태 전까지 중·고등학교 국사교사였다. 전 교우의 외할아버지 역시 교사로 정년퇴임했다. 전 ... [2014-08-11](Hit:14357)

<div align=left>고대 선배들은 후배들의 영원한 멘토이다. 지난 5월,‘ 선배, 후배의 나침반이 되다’라는 모토로 열 린 경제학과 진로간담회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교우들이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을 했다.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이자 축복의 고향
“4년간 학교에서 배우고 40년간 사회에서 어울려 다니는게 고려대학교 교우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1971년에 입학했으니까 입학 40주년도 훌쩍 넘긴 학번이다. 가정에는 가풍이 있고 회사에는 사풍이 있듯이 학교에는 학풍이있다. 고유한 조직문화가 있고 이것이 구성원들의 의식구조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른 대학에는없다 고대만의열린 학풍 고려대학교의 학풍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자유, 정의, 진리’그리고 ‘지성과 야성’일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지식인이면서도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호방함이 있고 요즘 우리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의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배어있다.,br> 고대 교우들은 째째한 것을 싫어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통큰 리더십을 발휘하는 성향이 있다. 고대 교우들이 다른 학교 동창들보다 잘 뭉치고 어울리는데는 이런 학풍이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학번과 학과를 뛰어넘어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학교 동창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열린 학풍일 것이다. 나는 지난 40여 년 동안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후배 교우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교류하면서 한분 한분이 멘토멘티가 되고 스승이 되고 동지가 되어 험한세월을 용감하게 도전하며 살아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를 졸업한 후 초반 20년은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풍이 용암처럼 솟구치던 세월이었고 그 후 20여 년은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의 격랑과 정면으로부딪치는 세월이었다. [2014-08-11](Hit:1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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