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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행복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마을공동체 꿈꾼다
집이자 일터인 마을연구소 앞에 선 정기석 교우. 전북 무주군 초리넝쿨마을에 있다.치열한 경쟁에 지친 도시인들은 푸념하곤 한다.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 도시 생활의 고단함과 농촌에 대한 로망이 담긴 말이다. 지친 도시인들에게 농촌은 탈출구처럼 여겨진다. 2002년에 귀농한 14년 차 농촌 주민 정 교우에게 귀농을 고민하는 교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정 교우는 단호한 어조로 “귀농을 말리고 싶다”고 했다. 전라북도 무주군 초리넝쿨마을에서 살아가는 정 교우가 귀농을 말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의 월급쟁이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에 귀농을 고민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귀농을 해도 행복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농촌에 와서 먹고 살만한 게 많지 않거든요. 직업 농부로 먹고 사는 것은 특별한 조건과 능력 없이는 어렵습니다.”정 교우의 설명에는 현재의 농촌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농’촌보다는 생활하는 농‘촌’을 꿈꾸며한 명의 농부가 1년에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평균 1000만 원 내외다. 농업 이외의 기타 소득이 없다면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다. 귀농인이 농사를 지을 경우에는 이 정도의 소득도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시인에게는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 도시의 삶과는 다른 생활방식이 필요하고, 많은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올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귀농을 막는 장벽이 있어요. 농촌으로 내려오면 농부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그것이죠. 농사가 멋있어 보이고 숭고해 보이지만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농사로 돈을 버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돈 버는 농... [2016-09-21](Hit:13818)

<div align=left>김창수 교우 제7대 회장, 주해천 교우 제13,14대 회장, 오정환	교우 제37대 회장, 이상훈 교우 제42대 회장, 편찬위원장, 임정숙 교우 현 회장, 문지현	교우 제45대 회장, 오석환 교우 현	수석부회장, 이재호 교우 편집장, 김용하 교우 현 사무총장(좌측상단부터)

우리는 디아스포라, 그러나 고대라는 구심점이 있어 행복하다
첫 발의부터 발간까지 임정숙 지난해 우리 남가주교우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발간한 《50년 발자취》 편찬위원 좌담회를 갖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분 한분의 정성이 모이고 특히 여러 히스토리를 알고 계신 선배님들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훈 50주년이라는 뜻 깊은 기회에 책자를 발간할 수 있게 되어 편찬위원장으로 일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결과도 좋게 나와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김창수 선배님, 주해천 선배님이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시면서 우리가 몰랐던 초창기 이야기를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공돌이'라 처음엔 많이 사양했지만 우리 교우회의 가장 원로인 김창수 선배님이 역동적으로 활동하실 수 있는 시간 내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특히 이 분야 전문가인 이재호 편집장을 소개 받아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오정환 발의 자체는 40주년이었던 2005년에 시작됐던 것으로 압니다. 그때 40년사 발간 얘기가 나왔다가 흐지부지 됐는데 작년에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정식으로 시작하게 됐지요. 그때 김창수 선배님이 큰 힘이 됐지요. 그래서 50주년 책자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조직을 현직 회장한테 맡기느냐 아니면 별도 조직을 만드느냐 논의하다가 편찬위원회를 만든 겁니다. 위원장을 누굴 시킬 것이냐 하다가, 이상훈 위원장 같은 ‘탱크’를 모시고 온 겁니다. 김창수 2015년 신년총회를 할 때 제안을 했지요.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우리 중에 전문가가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양승현(경제80) LA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이재호 교우(중앙일보 빅토밸리지국장)를 이야기하더라구요. 나도 이 교우를 한 15년 전부터 알고 있는데 그 실력을 아니까 잘 되었다 생각했고, 실제로 이재호 교우가 우리하고 9월경에 조인한 후에 일이 방향을 잡고 ... [2016-08-11](Hit:14126)

모교, 각종 국제평가 순위상승
모교가2016 QS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사립대학 1위, 아시아 대학 16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16일 발표된 영국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모교는 2012년 21위에 이어 꾸준히 순위가 상승해 아시아 대학 16위에 올랐다. 이는 카이스트 6위, 서울대 10위, 포스텍 12위에 이은 성적이다. 연세대는 18위, 성균관대는 19위를 기록했다. 또한 영국 세계대학평가기관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아시아 대학평가에서도 모교는 지난해보다 9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2016-07-08](Hit:14065)

<div align=left>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결승점에 들어오는 손기정 교우.

손기정, 한국 스포츠 역사의 위대한 출발
1936년 8월 9일, 손기정(보전상과28회) 교우는 2시간 29분 19초 2라는 당시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아시아인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손기정 교우의 우승은 식민지 한국인들의 가슴에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으나,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만 했던 그로서는 우승의 기쁨과 함께 나라 잃은 국민의 설움 또한 컸다. 식민지 설움 이겨낸 영웅의 생애 손기정 교우는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냈으나 가정형편으로 인해 꿈을 펼치지 못하다가 양정고보에 입학하면서 선수로서 활약하게 된다. 이후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일본인들의 수많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베를린 올림픽에서 승리하였다. 그는 사인요청을 받을 때마다 ‘손긔졍’이라는 한글 이름과 함께 한반도 지도를 그려주며 자신이 한국인임을 끊임없이 알리려 노력했다. 또한 마라톤 우승 축하연을 빠져나와,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봉근을 만나는 등 애국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마라톤 지도자로 변신,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상과48) 교우가 우승을 이끌었다. 후학 양성을 위한 손기정 교우의 노력은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1위 함기용(상과51),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후에도 손 교우는 한평생을 한국 마라톤의 중흥을 위해 힘쓰다, 2002년 11월 15일에 타계했다. 손기정과 황영조, 세계를 제패한 두 교우 손기정 교우를 영웅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그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다. 88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주자로 등장했을 때, 기쁨의 춤을 추며 트랙을 달리던 그의 모습은 메달을 땄던 베를린 올림픽 수상식 때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30여 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한국마라... [2016-07-08](Hit:13711)

윤이상 원본 확인해 기존 오류 바로잡은 교가 정본
지난 해, 고려대 법학연구원에서 출간한 명순구·고형진·류경선 공저《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은 1955년에 진행된 학칙의 정비와 당시 새로이 제정된 신교가에 대한 문학적·음악적 의미의 재발견과 분석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명순구 교수의 기획과 의뢰로 진행된 교가에 대한 연구와 고찰 과정속에서 현재 고려대의 공식행사에서 쓰이거나 홈페이지에 게재된 악보에 대해 재고해 봐야할 사안이 세 가지 발견 되었다. 첫 번째는 교가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시기의 초본과 비교하여 볼 때 주요 선율 중의 한 음이 다르게 기재되어 불리는 점, 두 번째는 교가의 선율 혹은 4성부 합창 전체가 아닌 상2성부만 발췌되어 사용되는 점, 마지막으로는 기보법상의 단순한 오류가 여러개 발견된 점이다. ‘전당이’부분, 47년간 잘못 기재 첫 번째 해당 부분은 후렴구 직전‘전당이 있다’부분의 선율이다. 교가가 새로 작곡되어 처음으로 배포되어 불려진 1955년 5월 5일 개교50주년 기념행사 자료집에 가사‘전당이’부분의 선율은 음‘레-미-미’로 기재되어 있으나, 학교 홈페이지와 주요 행사자료집에 실린 악보의 같은 부분은 음‘레-미-레’로 기재되어 불리고 있었다. 단 한 개 음의 변화이지만 교가는 학교의 상징이므로 그 변화의 이유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고, 이 차이점이 작곡가의 원래 의도인지 혹은 오기인지 면밀한 확인이 필요했다. 1955년 이후 교가가 기재된 학교의 공식 행사자료들의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어떤 음이 맞는것인지를 찾고, 어느해에 어떤 이유로 다르게 기보되어 내려오게 된 것인지를 조사해 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1955년 이후 학교 일람의 모든 기록자료를 조사했고, 그 결과 1969년도부터 인쇄시의 오류로 교가가 다르게 기재된 흔적을 찾게 되었다. 14년동안 원래 악보대로 교가가 보급되고 이후... [2016-06-13](Hit:13822)

<div align=left>111년의 경영대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경영대 역사기록관 현대자동차경영관. 1층에 있으며 작년 10월에 개관했다.

지나온 시간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은 미래를 위한 준비
경영대학 역사기록관 KUBS STORY 경영대 역사기록관 KUBS Story는 작년 10월 현대자동차 경영관 1층에 개관한 경영대학 111년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경영대학의 역사와 경영대학 출신 교우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줘 교우들과 재학생은 자부심을 느끼고 외부 손님은 경외감을 느끼는 장소다. 6개 코너로 구성 다양한 성과와 기록들 전시 현대자동차경영관 1층에 위치해있던 남촌라운지가 다시 재구성된 경영대학 역사관은 경영대학의 △역사 △성과 △비전이 담긴 곳이다. 이 역사관에는 히스토리 월(110 years and Beyond KUBS History)을 비롯해 △KUBS: World-Class Faculty, Programs and Facilities △KUBS Alumni Associations △KUBS: The First&The Best △KUBS: Global Leaders △KUBS:The Leaders △KUBS: Professors Emeriti 6개 코너로 구성됐다. 역사관 입구 전면에는 110 years and Beyond KUBS History라는 타이틀 아래 경영대학 110년 연표가 전시돼있다. 연표에는 △ 보성전문학과 상과(1905~1945)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상과대학(1945~1977) △고려대학교 경영대학(1977~) 세개로 나뉜 연표와 함께 국내 최초 상업교과서, 기업경영연구소의 학술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KUBS, Associatio ns alumni 코너와 이어지는 KUBS: The Leaders에서는 최고의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경영대학 교우회와 경영대학을 이끌어온 교우들을 볼 수 있다. 최근 활약중인 경영대학 출신 CEO와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역사를 움직이는 교우들의 면면이 새겨져 있다. [2016-06-13](Hit:13738)

90명의 교우 국회의원,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짊어지다
지난달 13일(수)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90명의 교우가 당선됐다. 학부 출신 37명, 대학원(특수·전문대학원 포함) 출신 53명이며, 지역구 85석, 비례대표 5석을 차지했다. 이는 총 300개의 의석 중 약 30%에 달하는 숫자로 국회의원 3명 중 1명이 교우인 셈이다. 또한 18대 총선 72명, 19대 79명에 이어 역대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정외79동기 정진석·노회찬 교우 각 소속당 원내대표로 각 당별 교우 당선자는 새누리당 46명, 더불어민주당 32명, 국민의당 7명, 정의당 1명, 무소속 4명이다. 총선 이후 이달초 4선인 정진석(정외79) 교우가 새누리당 원내대표, 3선인 노회찬 교우(정외79)가 정의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정외과 79학번 동기인 두 교우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박지원(고언13회) 교우는 국민의당 원내대표이다. 이와 함께 8선인 서청원(고언5회), 6선인 정세균(법학71), 김무성(고정36회), 이석현(고정26회), 천정배(글로벌리더28회), 5선인 원유철(철학82), 원혜영(고정27회), 이종걸(디지털4회), 정병국(고정통16회), 추미애(고정25회) 교우 등 3선이상 중진의원급 교우 수는 41명이다. [2016-05-13](Hit:17166)

<div align=left>지난달 14일 모교 박물관에서 열린〈유방백세〉展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오정 김재철 변호사.

3대에 걸친 문화재 기증 - 아름다운 향기는 백세에 흐른다
중국 동진의 실권자였던 환온(312~ 373)은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자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하는 마음이 싹텄다. 하루는 “꽃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더러운 이름인들 만세에 남길수 있겠는가(不能流芳後世, 不足復遺臭萬載邪)?”하고 탄식하였다고 전한다. ‘향기가 백세에 흐른다’라는 뜻을 지닌 ‘유방백세’는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유방백세(遺芳百世) : 오정 김재철 컬렉션〉展이 모교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달 14일(월)부터 시작된 이번 특별전에는 회화 100여점, 공예 20여 점 등이 전시된다. ‘유방백세’라는 제목은 오랜 전시작들이 우리에게 풍기는 오랜 향기를 뜻한다고 생각했을 때 적절한 표현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떻게 이번 전시가 열리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보다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3월, 김주현 씨는 부친인 오정 김재철 변호사의 뜻에 따라 그가 평생 수집해온 컬렉션을 모교에 기증했다. 이번 기증을 통해 모교가 전달받은 물품은 고서화 334점과 현대미술품, 공예품 200여 점 등으로 평가액은 총 9억원 상당에 이른다. 김재철 변호사 역시 부친인 만송 김완섭 선생의 유지를 이은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대에 걸친 ‘기증 릴레이’의 결실에 왜 ‘유방백세’라는 제목이 붙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75년 시작된 문화재 기증 만송문고, 만송장학금 조성 이들의 기증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만송 김완섭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50여 년간 법조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모은 돈을 일본으로 반출 위기에 처한 고서들을 매입하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모교에 출강하며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1975년, 모교에 이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같은 해 만송 선생이 별세하자 아들인 김재철 변호사가 그 유지를 이어 고서 1만 9... [2016-04-12](Hit:14330)

<div align=left>지난해 4월, 김경은 교우(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는 회사가 있는 강릉 주문진에 장학금 수혜자 가족을 초청했다. ‘인장 모’(인봉장학회 졸업생 모임) 회원들은 이제 인봉장학회의 기부자가 되었다.

30년 역사 잇는 인봉장학회 - 605명이 20억 원 수혜 … 기금고갈 위기에 후원의 손길 모아
세월이 지나도 모교를 모교답게 지탱하는 건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일 터이다. 릴레이 장학금은 선후배 간의 두터운 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았던 교우가 재학생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어 후배를 위해 장학금을 마련한다. 과거 간절함을 장학금으로 달랠 수 있었던 선배가 훗날 후배의 열정에 이를 되갚는 것이다. 1985년에 설립된 인봉장학금은 모교 릴레이장학금의 초석이 됐다. 선친 뜻 따라 장학금 기탁 인봉장학금은 1985년 김경은(식품공69) 금한산업 회장이 선친의 유훈을 받들어 시작됐다. 1982년 지병을 앓던 김 교우의 선친은 병상에서 자녀들에게 ‘장학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넨다. “선친께서는 일평생 신식교육에 대한 갈증과 응어리가 있으셨지요. 특히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 꼭 기부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친의 부탁에 김 교우는 본인 사재를 보태 모교에 6280만원을 기부한다. 1985년 장학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장학회 이름을 선친의 아호를 따 인봉(仁峰)이라 짓는다. 이것이 30여 년간 이어져온 인봉장학회다. 인봉장학회는 1985년 1학기부터 매학기 10명의 학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급해왔다. 지급 대상은 평점 3.0 이상에 형편이 어려운 학부생으로, 안암캠퍼스와 의과대학 소속 10개 단과대별 한명씩을 뽑았다.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졸업할 때까지 받을 수 있다. 2016년 1학기 3179만원이 지급됐고 현재까지 교우와 재학생을 비롯해 총 605명이 20억 원 상당의 혜택을 받았다. 후배 꿈 지켜준 김경은 교우 인봉장학회는 각 단과대 별로 학과장이 학부생 한 명을 추천한다. 형편은 어려워도 누구보다 꿈의 크기가 큰 ‘밀알’들을 선발했다. 80년대와 90년대 당시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고학(苦學)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일년에 한 번 장학증서... [2016-04-12](Hit:14022)

<div align=left>책의 집필자인 명순구(왼쪽부터), 고형진, 류경선 교수가 교가 제정을 비롯해 1955년 무렵 있었던 모교의 제도 정비에 대해 토론하 고 있다.

고대 교가는 조지훈의 격조 높은 시, 윤이상의 장중한 선율이 어우러진 명곡
《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 저자들에게 직접 책 집필의 계기와 주요내용,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따로 발언순서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논의는 주로 교가(校歌)의 제작과정과 아름다움, 전승문제 등에 집중됐다. 1955년에 있었던 일들 명순구(이하명) 2015년은 고대 설립 11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광복 70주년으로 상징되는 여러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10년 단위 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속한 법과대학 110주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역사적 의미를 찾는 작업을 해보고자 자료를 보다가 1955년 개교50주년 기념행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당시 유진오 총장은 이 행사를 큰 의욕을 갖고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이 시기에 ‘자유, 정의, 진리’를 교훈으로 제정했고, 교기(校旗)와 교장(校章)을 새로 디자인 했고, 교색(校色)으로 크림슨을 확정했습니다. 또 학칙을 재정비해 2014년 개정될 때까지 거의 그대로 사용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1955년 5월 5일, 개교50주년 기념식에서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고려대학교 교가가 처음 연주됐습니다. 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의 우리 교가는 정말 좋은 노래이고, 그날 이후 고대정신의 진수가 담긴 대표적인 표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고형진(이하고) 2014년에 안암동 이전 80주년 기념으로 고려대학교의 건축과 문학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교무처장이었던 명순구 교수님 요청으로 문학쪽을 맡아 고려대학교와 관련된 시와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윤이상 선생이 교가를 만든 후 고대신문에 직접 작곡자로서 해설을 해놓은 것을 읽어보곤, 윤이상 선생이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을 아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사와 멜로디가 깊은 연관성을... [2016-03-11](Hit:1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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