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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div align=left>1965년 7월 13일 조선일보 7면 기사. 상단 왼쪽부터 안경희(국문 3학년), 오 상대(경영 3학년), 민영혜(국문 3학년). 정명훈(경영 2학년), 조화연(국문 3학 년), 윤복순(상과 3학년), 한춘자(독문 3학년), 이희임(국문 2학년), 김귀임(국문 2학년), 박하경(사회 2학년).

오대산 푸른 기운으로 남은 청년불자들의 구도정신
1965년 7월 5일. 고려대학교불교학생회(이하 고불회)가 모집한 재학생 53명은 강원도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로 10일 예정의 하계수련대회를 떠났다. (당시 언론기록은 고불회원 38명이 참석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교우들 전언에 따르면 고불회원이 아닌 15명의 학생이 수련회 모집공고를 보고 동참했다고 한다.) 김영두, 손명현 교수가 강사로 초빙되어 동행했고, 대학생 불교활성화에 앞장섰던 탄허 스님도 지도법사로 동참했다. 구도를 위해 수행 정진하는 승려들과 동일한 생활을 체험하며 불교를 깊게 이해하고자 마련된 수련회였다. 새벽 3시 기상으로 시작되는 일정은 예불, 좌선, 독송에 이어 동양철학, 역학, 대승불교 강의로 짜여졌다. 승려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7월 10일.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일행은 사흘 전 입적한 상원사 주지 원보산 스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월정사로부터 12km 떨어진 상원사로 향했다. 장례식을 마친 후 일부는 오대산 정봉인 비로봉으로 향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상원사 일대의 암자를 답사했다. 수련회남은 일정 위해 스크럼짜고 계곡 건너다희생 한낮이 되자 장대비가 두 시간 넘게 쏟아졌다. 골짜기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고 계곡 물은 급류로 돌변했다. 비에 젖은 일행은 월정사로의 귀로를 서둘렀다. 4시 10분경, 1진 10여 명은 무사히 월정사에 닿았다. 2진 13명은 이들보다 약 30분 늦게 상원사로부터 4km 떨어진 동피골 오대천에 이르렀다. 평소의 오대천은수심20cm, 폭8m 정도의 개울이지만 당시는 수심 80cm, 폭 20m의 사나운 모습이었다. 두 주먹보다 큰 돌들이 굴러다닐 정도의 물살이었다. [2015-07-17](Hit:14614)

<div align=left>입학 50주년 기념 케익 커팅식. 왼쪽부터 한의수 교우, 김규태 교우회 수석부회장, 유재우 동기회 장, 염재호 모교 총장, 권혜숙 교우, 이기수 전 모교 총장

모교에 대한 높은 자긍심으로 50년 우정을 함께 나눴다
6월 5일 열린 65동기회 행사는 크게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교우회관에서 열린 기념식. 유재우 동기회장의 인사말, 염재호 모교총장의 환영사, 김규태 교우회 수석부회장의 축사가 있었고, 65동기회 활동영상물 상영도했다. 이와함께 이번 행사를 위해 동기회에 거액을 기부한 강명주(축산) 교우에게 감사패, 초대 동기회장이었던 한의수(정외), 여자동기회장인 권혜숙(정외) 교우에게 공로패가 수여됐다. 강명주 교우는 재학시절과 졸업 후 고대신문과 교우회보에 만평을 그린 작가이다. 강 교우는 “타이거’가 바로 나다. 재학시절부터 졸업 후에도 고대신문에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8년간 시사만화를 200회 정도 그렸고, 정부의 언론 통제가 심했던 시절이라 잡혀가기도 했다. 위험한 고비가 몇번 있었지만 고대인이라는 자긍심으로 펜을 놓지 않았다. 그 자긍심 덕분인지 두 자녀 모두 고대 가족이 되었다”고 하였다. 강 교우는 1990년 3월부터1999년 2월까지 교우회보에 만평을 연재했다. 한의수 교우는 “65동기회 사무실이 서울 강남에 있는데 60주년 때는 교우회에 그 사무실을 기부하고자 한다”고 말했고, 권혜숙 교우는 “65학번 중 여대생은 80여명 정도다. 인원이 적었던 만큼 끈끈한 정이 있었고 입학30주년 행사 때 40명이나 참석했다”고 동기애를 자랑했다. [2015-06-15](Hit:13883)

<div align=left><호시탐탐전> 개막식 주요참석자들이 오방색띠를 손으로 자르고 있다.

개교 110주년, 모교를 찾아온 다채로운 호랑이들
모교 박물관(관장=조명철·사학78)과 (사)코아스페이스(이사장=주원상·농학78)가 공동기획한 개교 110주년 기념 특별전 ‘호시탐탐 - 호랑이 예술을 즐기다’전이 지난달 28일(화) 개막했다. 호랑이 주제 예술작품전인 이 전시회는 오는 6월 21일(일)까지 55일간 전시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 씨의 작품을 비롯해 총 105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국내작가 30여 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회 참가 작가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호랑이라는 민족적 소재를 다양한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이를 다채로운 작가 정신과 자기만의 색으로 표현했다. 전시회는 모교의 상징물인 호랑이를 바탕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3개 소주제로 구성된다.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의 4개 분야로 전시된 작품들은 다양한 재해석과 여러 가지 시도로 현대 사회의 호랑이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잘 나타내고 있다. 관람문의 02)3290-1514 정우식 기자 [2015-05-17](Hit:13867)

고대인이 치고 달리면 프로야구 재미와 감동이 더해진다
필드만큼 흥미로운 교우 감독들의 지략 대결 야구는 전략 전술의 스포츠다. 단 한 번의 작전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때로는 승패를 결정짓기도 한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더그아웃 속 감독의 역할도 중요하다. 모교 출신 감독들이 펼치는 지략 대결은 올해 프로야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10개 구단 감독 가운데 모교 출신 감독은 4명이다. SK 와이번스 김용희(행정74) 교우와 NC 다이노스 김경문(경영78) 교우, LG 트윈스 양상문(경영79) 교우, 마지막으로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법학87) 교우가 그 주인공이다. 명가 재건에 나서는 김용희 교우 지난 2007년,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는 프로야구 무대를 평정했다. 이후 6년 동안 우승과 준우승을 3차례씩 달성하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SK가 보여준 모습은 팬들의 기대 이하였다. 연이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날지 못하는 비룡이란 비아냥도 참아왔다. 그래서 팬들은 새로 감독으로 취임한 김용희 교우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김 교우는 2011년부터 SK 육성총괄감독과 2군 감독을 맡으면서 팀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올해 SK의 목표는 명가재건이다. 김 교우의 선수시절 경력은 화려하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했으며, 같은 해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다부진 체격으로 롯데 4번 타자로서 초창기 대표적인 강타자로 군림했다. [2015-04-14](Hit:14112)

<div align=left>인촌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제108회 학위수여식. 강당으로 진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졸업생들이 참석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6246명의 새내기 교우들
2015학년도 제108회 학위수여식이 지난달 25일(수) 오전 10시 30분 고려대 인촌기념관 강당에서 있었다. 이날 학위수여식에서 학부 4110명, 대학원 2136명 등 총 6246명이 학위를 받았다. 캠퍼스를 가득 메운 인파 이른 아침부터 캠퍼스는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한 인파로 들썩였다. 졸업생들은 재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여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선후배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중앙광장 앞을 비롯하여 인촌기념관강당 및 광장까지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끈끈한 선후배유대 이어가기를 이날 행사에는 주선회 교우회장, 김병철 총장, 김재호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주선회 교우회장은 “30만 교우들과 함께 신입 교우가 된 6천여 명의 졸업생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모교 개교 110주년과 함께 사회인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됐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고대인다운 패기와 열정으로 꿈을 반드시 이루기 바란다”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또한 “특히 여러분이 입학 20주년, 30주년에 맞이할 모교방문축제에서 재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화합과 친목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우회 전통이 신입 교우인 졸업생 여러분을 통해 더욱 훌륭히 계승되기를 바란다”며 당부의 말도 전했다. [2015-03-13](Hit:13970)

<div align=left>졸업식을 마친 후 김준엽 총장을 뒤따르며 퇴임 반대를 외치는 학생들.

제자 지키려 총장직 버린 김준엽 선생, 고대인의 영원한 총장이 되다
1984년의 이른바 ‘학원자율화’조치 이후, 모교는 학생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9월에 학생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출범한 총학생회는, 1980년 5·17 쿠데타 이후 전국 대학 최초의 총학생회였다. 같은 해 11월, 모교생을 주축으로 한 대학생들이 당시 집권당이던 민정당의 당사를 점거하는 사건이 있었고, 12월에는 법대생들이 민정당사 연행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며 기말고사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당시 문교부에서는 점거사건의 가담자는 물론 배후 조종자까지 제적 등 강력한 징계를 내리도록 해당 대학에 요구하였는데, 김 총장은 사법 처리 결과를 지켜본 뒤 학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지극히 상식적 응수로 요구를 거절하였다. 실제로 이듬해 있었던 징계에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조치를 접한 문교부는 보복에 착수했다. 정부 압력에맞서 총장직사임 1985년 2월 4일 급작스럽게 파견된 문교부의 감사반은 나흘 동안 모교의 행정을 샅샅이 감사한 뒤, 지적 사항을 전달하였다. 첫째 민정당사 관련자에 대한 징계가 극소화된 것, 둘째 법과대 시험거부자를 0점 처리하지 않고 재시험 등을 통해서 구제한 조치, 셋째 미등록자 결원에 대한 교직원 자녀의 특례입학 문제가 지적되었다. [2015-02-13](Hit:14373)

<div align=left>1985년 모교 졸업식을 다룬 지식채널e ‘총장의 辯’화면캡처.

우리는 모두 <장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준엽(1920. 8. 26~2011. 6. 7) 선생은 젊어서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광복군이었고, 광복 후엔 강직하면서도 경영능력을 발휘한 교육자였다. 우리시대의 위인이었던 김준엽 선생에 관한 대중적 기록물은 다양하게 축적되고 있다. 김준엽 선생이 총장에서 물러난 후 가장 먼저 공식석상에서 제자들과 만난 것은 1988년 4월 30일 당시 장덕진(법학56) 교우회장의 요청으로 졸업생들을 위한 특강을 하는 자리였다. 김준엽 선생은 회고록 집필에 몰두하던 중이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졸업생들을 위한 강연장에 나와 신입교우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사회인이 되는 길’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교우회보 1988년 5월호에 게재된 강의 전문은 1985년 졸업식사와 같은 맥락에서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가라”는 당부였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KBS는 특집 다큐멘터리 ‘김준엽 장정 50년’을 제작했고, 2005년 광복 60주년 각 언론방송매체에서도 김준엽 총장은 마지막 광복군으로서 특별대담에 참여했다. 김준엽 선생이 작고한 2011년 8월에 KBS는 다시 역사스페셜 ‘나는 대한민국 광복군이다’를 통해 김준엽 선생의 생애를 전면적으로 재조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김준엽 선생이 1987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는 표현을 넣도록한 것이 김준엽 선생의 마지막 장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이 영상물은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육자로서 김준엽 선생을 조명하는 기록자료도 다양하다. 2012년 EBS는 김준엽 선생의 1주기를 맞이해 지식채널e ‘총장의 辯’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30년 전 김준엽 총장 퇴임식이 된 졸업식을 다뤘다. 학생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무릎 꿇리면서도 퇴임을 반대한, 한국 대학사에서 ... [2015-02-12](Hit:13931)

<div align=left>1982년 7월 모교 제9대 총장에 취임한 김준엽 선생.

제자 지키려 총장직 버린 김준엽 선생, 고대인의 영원한 총장이 되다II
1985년 2월 25일 열린 제78회 학위수여식은 대운동장에서 열렸다. 그전까지는 주로 본관 앞 잔디밭에서 열렸지만 예년에 비해 약 1.5배 많은 4400여 명이 졸업을 하기 때문이었다. 1985년은 졸업정원제로 입학한 첫 세대인 81학번들이 졸업한 해였다. 故김준엽 총장의 퇴임식이 되어버린 졸업식 당사자였던 81학번들에게 30년 전 졸업식은 남다른 감회를 갖게한다. “총장님 힘내세요”외친 답사 당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했던 설진아(신방) 교우. 설 교우는 당시 예정된 원고 대신 “총장님, 힘을 내십시오!”라고 울먹이며 답사를 했다. “답사를 하기 위해 앉아있는데, 모여있던 학생 중 누군가가 저에게 메모지를 건네줬어요. 저는 원래 답사 대신 그 메모지를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김준엽 총장님은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기에 이런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해 총장님 힘내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설 교우는 김준엽 총장의 퇴임사에 담긴 “역사의 신을 믿어라”라는 말을 아직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김준엽 총장은 회고록《장정》에서 이날 졸업생들의 퇴임반대 시위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준 훈장이라고 기록했다. [2015-02-12](Hit: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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