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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명고> 4·18 60년, 지훈 100년
김상덕(역교84) 편집위원모교 박물관 학예부·기록자료실 부장본교 교사자료 담당으로서 지훈 선생의 자료와 인연을 맺은 것은 개교 100주년을 몇 년 앞둔 2002년이다. 당시 박물관은 100년사전시실 설치를 추진하고 있었다. 또한 고려대의 주요인물에 대한 자료 수집과 전시 계획도 세웠다. 민족고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인 지훈 선생의 원고 등 각종 유품을 수집하기 위해 유족과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2002년 6월 15일 민족문화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제2회 지훈상 시상식 행사에서 처음으로 지훈 선생의 부인인 김난희 여사를 뵈었다. 지훈 선생의 육필원고와 유품을 기증해 주었으면 하는 뜻도 전달했다. 여사님은 선생의 제자인 인권환 교수와 상의하라고 하셨다. 인권환 교수는 선생의 유품을 우리 고대에서 보존한다는 결정에 누구보다도 기뻐했고 기증 교섭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이후 2003년 8월 박물관장 최광식 교수와 함께 김난희 여사님 댁을 방문하여 선생의 모든 자료를 기증받기로 약속받았다. 당시 유족은 선생의 자료를 경북 영양군에 세워지는 지훈문학관에 기증하기로 이미 약속한 상태였다. 유족은 뒤늦게 뛰어든 우리 고대에 기증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최근 지훈 탄생 100주년기념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만난 선생의 3남 조태열 전(前) 유엔대사는 “평생을 살면서 몇 가지 중요 결정을 했는데 부친의 유품을 고려대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하면서 잊지 않고 전시회를 마련한 고대에 고마움을 표하였다.11월 9일부터 열리는 지훈 탄생 100주년 특별전은 선생의 시문학과 민족문화 연구에 남긴 업적을 되돌아보는 전시회이다. 친필 원고를 비롯해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의류, 안경, 만년필 등 유품을 볼 수 있다.전시 자료 중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자료가 있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라는 ... [2020-11-20](Hit:8)

캠퍼스 동편과 서편 오가는 고려대의 명품 실크로드
본관 3층과 나란한 눈높이의 다람쥐길. 걷는 이의 머리 위로 숲이 우거지고, 바람이 동행한다. 사진 : 김호영(기계공68) 명예교수 태초에 길이 있었다. 본관 뒷길, 서관 시계탑 건물을 돌아 동편 대도관 쪽으로 가는 그 길은 ‘다람쥐길’이다. 본관 3층과 나란한 눈높이로, 구름다리 외길 하나가 산허리에 걸쳐있었다. 건물 뒤쪽에 있으니까 뒤안길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테지만 뒤안길은 따로 있고, 아마 산책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원래는 산책로가 아니었다. 다람쥐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래서 그런지, 길을 가면서도 나는 지금 다람쥐길을 걷고 있다고, 낭만에 젖어 가지 않는다. 대부분 중도관 대도관이거나, 아니면 법학관 경영관을 가느라고 가고 있을 테지만, 멀리서 보기에 그렇게 산책하는 것처럼 예뻐 보였을 것이다. 서관 시계탑과 도서관을 잇는 길코스가 그다지 길지는 않다. 가면서 보면 본관 건물의 한쪽 날개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가 전부인데, 그래도 분위기는 제법 그럴싸하다. 머리 위로 숲이 우거지고, 내 곁에 바람이 동행하고, 주변 건물들이 영국식으로 고풍스럽고, 호젓하지만 저 앞에 누군가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보이고, 게다가 바닥이 황토흙길이었다. 비탈져 미끄럽지 않느냐고? 염려마라. 날다람쥐,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것 봤냐? 쉬었다 갈 벤치 같은 거라도 하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근사한 걸! 하고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길은 벌써 끝나버리고 만다.숨겨진 에피소드라도 하나쯤 갖추고 있을 법한데 그마저도 없다. 그윽한 맛이 그만큼 낭만적일 것 같지만 실상은 대단히 업무적이라는 말이다. 각자 제 볼일을 보러가는 바쁜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길을 애용한다.캠퍼스 동편에서 서편... [2020-11-17](Hit:12)

대중문화계 고대인을 찾아서 [11] - 석탑·독수리·엘파소…, 나를 키운 건 음악다방이었다
학교 근처도 못 가보셨던 어머니는 늘 “똑똑한 사람은 앞을 보고 걷고, 배운 사람은 옆을 보고 걷지만, 정말 좋은 사람은 뒤를보고 걸을 줄을 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어머니 아래 자란 임진모(사회78) 교우는 7080 세대라면 다 알만한 한국의 대표적 대중음악 평론가다. 음악 프로그램 최장수 게스트로서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도 25년째 출연하고 있다. 많은 진행자에의 유혹이 있었지만 끝까지 마다했던 이유는 언제나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평론가다움을 잃게 되는 게 두려워서였다.  음악과 사회 연관성 배우고자 사회학과로역시 무학이셨던 아버지는 다른 형제와는 달리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며 음악에 미쳐있는 아들에게 “너는 너답게 살아”라고 늘 말씀하셨다. 남대문 도깨비시장 뒷골목을 누비며 접하게 된 음악 잡지들과 하루 종일 끼고 살았던 라디오로 락과 팝송을 들으며 살았던 시간들 덕택에 그는 고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란에 ‘음악 평론가’ 이외의 다른 직업을 한번도 적어본 일이 없었다. 사회학과도 음악과 사회 현실과 연관성이 있을 거 같아서 선택했단다. 대학 시절 내내 그는 학교 교정보다는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다니던 안암동, 신촌, 종로 일대의 음악다방의 이름을 줄줄이 읊기 시작한다. 석탑다방, 고려다방, 연대 독수리, 명동 꽃다방, 엘파소 등등…. 그 이름들이 마치 오선지의 음표처럼 허공을 둥둥 떠서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추억에 담겨 있는 뜨거운 열정의 불씨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일까. 당시 적어 놓은 몇 박스나 되는 평론들을 군 제대 후 유치하다는 생각에 다 태워 버렸다니 아쉽기 짝이 없다. 날 것인 아마추어 임진모의 평론을 읽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문화부 기자 거쳐 대중음악 평론가로공부는 싫었지만 오로지 음악 자료를... [2020-11-17](Hit:9)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21] - 정종미 ‘종이부인’ (2007년)
정종미(鄭鍾美, 1957~ ) 모교 디자인조형학부 교수는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정종미 교수는 한국의 미, 한국의 색, 한국의 여성에서 기반한 독자적인 방법과 이미지로 작품세계를 구성한다.‘종이부인’은 수제종이에다 들기름, 황토, 돌가루, 콩즙, 감물, 지료 먹 등의 재료를 가미한 것으로 종이와 다른 재료들이 어우러지면서 나타나는 독특한 화학 반응을 그대로 조형화시켰다. 전신상 크기로 직립된 여인상은 조선시대 초상화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며, 영정의 형태로 격상된 여인상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다시 기념하고자 했다.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20-11-17](Hit:21)

<자명고> 브랜드 고대인, 영원히 빛나라!
김정응(신방81) 편집위원FN 퍼스널브랜딩연구소장 올 추석을 맞는 심정은 착잡했다. 처음으로 고향에 가질 못했다. 코로나도 그랬고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것이다. 서울에서 5일간의 명절을 보낸다는 것이 답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연휴 시작과 함께 나훈아 열풍이 불어서 오히려 궁둥이를 들썩였다. 오랜만에 만난 나훈아는 예전보다 매력이 더 빛나는 것 같았다. 매력의 본질은 무엇일까? 퍼스널브랜딩을 연구하는 나에게는 이런 매력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야말로 귀인이다. 퍼스널브랜딩은 자신만의 특별한 가치를 만드는 기술인 것이기에 그렇다. 가황(歌皇)이라는 수식어처럼 변함없는 가창력으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여기서도 나훈아 저기서도 나훈아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73세의 나이에 세 시간 가까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스럽다.”퍼스널브랜딩의 관점으로 볼 때 나훈아 매력의 근원은 ‘강력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에 있다. “나는 가수다”라고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뿌리깊게 박아놓고 자유자재로 색다른 변화의 꽃을 피운다. 사실 그는 핵심은 유지하면서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이상적인 자기브랜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경력직 인재를 매칭해주는 헤드헌팅 일도 하고 있다. 후보자들과 사전 미팅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많은 고대인을 만난다. 그런데 일을 진행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만나는 고대인들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그 유형과 최종 합격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고대 아이덴티티가 너무 치우친 경우다. 막걸리, 호랑이가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이들은 불합격하는 경우가 많다. 진부함이 그 이유다. 둘째, 고대 아이덴티티가 전혀 없는 경우다. 고대 선배라고 나를 소개해도 멀뚱멀뚱해 한다. 이런 ... [2020-10-23](Hit:25)

전설이 과학이 되는 경이<驚異>의 현장, 자연계캠퍼스
모교 애기능캠퍼스의 봄은 유난히 아름답고 화려하다.                               사진 : 김호영(기계공68) 명예교수 그곳에 가면 애기능이 있다. 아니다, 애기능은 원래 없었다. 나는 지금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 ‘있고도 없는’ 전설 하나를 떠올리며 자연계캠퍼스를 소요한다. 안암동 로터리에서 고대병원 쪽으로, 개운사길을 따라 곧바로 가다 보면, 길 오른편이 인문사회계캠퍼스, 왼편이 자연계캠퍼스, 그 위쪽으로 의과대학 녹지캠퍼스가 마치 근대와 현대를 가름하듯, 한쪽은 서구식 전통양식의 중후한 석조 건물로, 다른 한쪽은 최첨단 과학주의의 현대식 건물로 획연한 것이 눈길을 끈다.첨단의 빌딩숲, 저 안에 ‘애기능’이 있었다. 애기능이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자연계캠퍼스는 그냥 처음부터 애기능캠퍼스였다. 캠퍼스가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애기능이었다고 한다. ‘애기능에 세우기로 한 의대 신축계획’이라든가, ‘그것이 안 되는 경우에는 공대 또는 이공대로 전용할 생각’이었다든가, 하는 기록이 《양호기》에 나오는 걸 보면, 애기능전설은 그 오래전부터 학교 주변일대를 길조처럼 떠다녔고, 훗날 공학부와 교양학부가 그곳에 터를 잡자 자연스럽게 자연계캠퍼스의 애칭으로 굳어졌던 것 같다.수물학, 화학, 생물학의 이학부는 그 당시 국, 영, 철, 사의 문학부와 함께 인문사회계캠퍼스 안에 깃들어 있었다. 실험실이 필요했으므로 캠퍼스 서쪽 끝에 3층짜리 건물을 지어 한창 발전을 도모하던 판인데, 그때가 마침 애기능 터에 공학부가 들어서던 참이었고, 그러자 서관에 있던 이학부와 애기... [2020-10-22](Hit:31)

대중문화계 고대인을 찾아서 [10] - 지금도 나는 관객과 함께 울고 웃는 무대를 꿈꾼다
고금석 교우는 2008년 서천으로 이주해 지역 시니어극단을 이끌며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 : 김영숙(서문83) 교우‘대가’ 라는 이름으로 한 분야에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의 눈빛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쇠락하여 뒷방에 물러나 있어도 그들의 힘은 그 어느 대왕대비의 수렴청정보다 강하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만난 고금석(독문 70) 교우의 눈빛은 사뭇 달랐다. ‘어라? 이렇게 소년처럼 해맑고 곱단 말이야?’1977년, 국내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던 페터 한트케 작 <관객모독>. 이전까지의 연극 메커니즘을 뒤집어엎는 일종의 반역극으로 대 히트를 기록한 그 작품을 국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연출가가 바로 고금석 교우이다. 작은 키에, 마르고 왜소한, 그래서 보호본능까지 일으키는 그가 시뻘건 무대를 배경으로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시종일관 욕과 비난을 퍼붓는 거친 상황극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1977년 <관객모독> 국내 초연 연출자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서너 명의 여자 분들이 들어선다. 현재 서천 지역의 시니어 극단인 ‘장항선’에서 활동하는 희곡 작가와 배우들이다. 고금석 연출가가 인터뷰 한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돼서 달려 왔단다. 수줍고, 말이 느려 어떻게 보면 어눌하기까지 한 연출가를 배우들이 오히려 보호하는 모양새다. 2008년 아내의 암투병을 위해 서천으로 이주했고, 사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이곳에 눌러 앉아 지역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니어극단의 연출을 시작했다. 모교 독문과에 입학, 외무고시를 준비하다 우연히 독일어를 공부하러 찾아간 독일문화원의 ‘프라이에 뷔네(Freie Bühne)’라는 극단과의 인연은 그의 삶을 180도로 바꿔버렸다. 부끄러움이 많아 사람들 앞에서 질문도 잘 ... [2020-10-22](Hit:41)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20] 이종구 ‘명환 아저씨’ (1987년)
이종구(李鐘九, 1955 ~ )는 충남 서산 출생으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그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자신의 고향인 서산 오지리와 그 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진행해왔다. 캔버스가 아니라 거칠고 후줄근한 양곡부대를 바탕화면으로 선택하여 오지리의 농부를 가감 없이 그려낸 ‘명환 아저씨’는 농민화가로 발돋움한 1980년대의 전형적 화풍을 보여준다. 그는 캔버스나 고급종이 대신 쌀부대를 화폭으로 사용한것은 농부의 삶과 유기적인 재료이며, 현대미술의 개념인 오브제가 가지는 상징성과 현실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함이라고 했다.‘명환 아저씨’ 또한 양곡부대 위에 찍힌 글씨들, 농부의 어깨 부위에 크게 찍힌 ‘찐눌린 밀쌀’, 가슴 부위의 ‘50kg’이 농부의 현실을 은유하며 주제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았다.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20-10-22](Hit:40)

포토 뉴스 - ‘파이빌99’ 공간문화대상 장관상 수상
모교 창업공간 ‘파이빌99’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문화대상’에서 두레나눔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재학생 창업공간으로 기획된 ‘파이빌99’는 2016년 8월 준공됐다.36개의 컨테이너 박스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아이디어카페, 3D프린터 오픈랩, 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됐다. [2020-10-22](Hit: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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