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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고대의대, 민족과 박애의 거대한 뿌리

등록일 : 2019-08-12 조회 : 125

이헌정(의학89) 편집위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고려대학교가 교육구국의 민족애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고대의대 역시 ‘민족과 박애’의 자랑스런 전통을 간직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의대의 설립은 구한말 유교관습으로 여자가 남자의사에게 치료받지 못하던 시절, 민족에게 절실한 여의사 양성에의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소외된 자를 위한 박애의 전통은 산업화 시대 의료소외 지역이었던 구로, 안산 공단 병원 개설로 이어졌다. 고대의대의 역사에 민족과 박애의 정신을 품게 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로제타 홀은 1890년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홀은 여성의 의료소외의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직접 여의사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홀은 부인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을 책임지면서 여학생 5명에게 의학을 가르쳤다. 이중 김점동(박에스더)을 1896년에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대에 보내 한국인 최초 여의사가 되게 하였다. 박
에스더는 이땅에서 실제 의업을 행한 최초의 한국인 의사이기도 하다. 박에스더는 1900년부터 10년간 의사로서 여성 건강을 위해 헌신하다가 폐결핵으로 3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홀은 몹시 낙담했지만, 1916년에 세 명의 여학생을 총독부 부설의학강습소에 청강생으로 보내의사로 키워냈다. 그러나 남녀유별의 관습으로더 이상은 불허되었다. 홀은 세브란스의전에 여자의 입학을 간청하고,이화여전에도 의과의 신설을 청원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여의사 양성의 필요는절실했으나 관습의 벽이 너무 높았다.홀은 많은 민족선각자들을 만나 상의했다.
홀이 길정희,김탁원 의사부부와 함께 마침내1928년 9월 4일에 세운 최초의 여의학교가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이다. 김탁원은 경성의전 출신으로 학생때 3.1운동에 참가해 1년반의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다. 한성의사회 회장으로 활약했고, 한국인 최초의 정신과의사였다. 홀여사 퇴임후 강습소는 김탁원, 길정희 부부와 이들과 뜻을같이 하는 한국인 의사들의 무료강습에 의해 운영됐으며, 11명의 소중한 여의사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정식학교는 아니었기에 면허시험을 통과해야만 의사가 될 수 있었다. 1937년 5월 6일 우석(友石) 김종익이 임종직전 전재산 175만원을 여자의학교육을 비롯한 사회사업에 희사하는 유언을 남겼다. 우석의 기부액은 현재의 화폐가치로 천억원 이상으로 엄청난 금액이었으며,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심어준 장거였다.
이로써 1890년경에 홀로부터 시작되어 김탁원, 길정희, 김종익으로 이어지는 여의사 양성의 민족 숙원사업이 1938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개교로 결실을 맺었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현재의 고대의대이다. 고대의대는 민족애와 박애로 소외된 이를 위한 의료라는 거대한 전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이 전통을 이어가
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