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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로에 선 고려대학교
신현석(교육79) 편집위원모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구국의 염원을 담아 구한말 외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립된 고려대학교는 어언 100년을 지나 14년을 더한 성상의 세월을 통해 QS세계대학랭킹 85위의 명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대학이라 칭하기도 힘들었던 일제 식민통치의 암울한 시기를 지나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지난한 세월을 견디면서 세계 고등교육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궁금증은 서구의 유명 사립대학들이 성장·발전해온 틀인 ‘아카데미즘의 지속적인 축적과 도전을 통한 혁신의 수범적 실행’과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증폭된다.오늘날 대학은 그 명칭처럼 단일의 집합체(uni-versity)이면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multi-versity)이다. 학자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복잡한 대학을 이해하는 관점은 대체로 교수중심의 공동체적 접근, 관리중심의 구조적 접근, 갈등 해소를 위한 협의가 중요한 정치적 접근 등 세 가지이다. 세 접근을 통해 대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특정 접근이 대학을 이해하는데 유력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1990년대 초반까지는 공동체적 접근이 대세였다면, 그 이후에는 경영과 효율을 중시하는 구조적 접근이 우세하였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교내외 이해와 관심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에 따라 정치적 접근이 중요해졌는데도 말이다.대학의 리더십은 총장에 의해 대변되고 대학을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적합한 총장상이 그려진다. 공동체적 접근에서는 대학을 대표하는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지사(志士)형 총장이, 구조적 접근에서는 경영 중심의 CEO형 총장이, 이해집단 간 정쟁과 갈등이 복잡하게 나타나는 정치적 상황에서는... [2019-10-17](Hit:137)

자유전공학부 특강 ‘일본의 문화, 국민성, 개국과 메이지 유신
조명철(사학78)모교 사학과 교수과거 동아시아는 중화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정치구조에 차이가 있었다. 한국과 중국은 중앙집권적 사회가 성립됐다. 이 중앙집권적 사회는 한국과 중국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은 지금도 대통령 중심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중화문화권에 있으면서도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자신의 영토를 다스리는 지방분권적 사회를 유지해 왔다. 이런 영향으로 일본은 지금도 정치구조가 내각제다. 이것이 바로 천년 넘게 이어온 한국과 일본의 본질적인 구조적 차이다.이런 차이는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고정변수인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유년기 지형이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다. 산과 강이 인간의 이동을 막는다. 결국 지역과 지역이 단절된다. 일본의 경우 한 지역이 다른 지역을 복속시키더라도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사실을 지배자뿐만 아니라 피지배자도 잘 알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노년기 지형이다. 산이 완만하고 골짜기도 없다. 일찍부터 발달한 조운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조상들은 산과 강을 장애물이 아니라 교통의 통로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때문에 정복활동이 비교적 용이했다. 이런 환경의 차이는 갈등과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 지역에 위기가 발생하면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위기에 굉장히 민감하다. 일본 사람들이 청결한 이유도 습한 기후에서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마을 하나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어 생긴 습관이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가 발생해도 외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위기가 닥쳐도 상대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이런 자연... [2019-10-16](Hit:152)

교우맛집기행 [34] - 김성훈 교우의 ‘포피나’
<포피나>는 라틴어로 ‘음식’을 의미한다. 성수동 서울숲 근처 예쁜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 한 모퉁이에 자리한 식당 포피나는 그 직관적 상호 만큼이나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고 소박하게 정리된 실내, 작은 스피커에서 흐르는 조용한 실내악, 오픈 주방, 심플하고 산뜻한 메뉴, 그리고 음식에 대한 장황하지 않으면서 세련된 스탭의 설명이 먹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보기 좋은 음식에 맛을 더해준다. 이 아름다운 식당을 경영하는 김성훈(사회99) 교우는 감각적인 식당만큼이나 감성과 끼가 넘친다. 함께 인터뷰 하는 시간이 행복할 만큼 밝은 미소도 한 몫 하지만, 아재랩이라는 마케팅 사이트 운영 경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대화거리들, 그리고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이자 사내 밴드 보컬인 어여쁜 아내와 함께 만들어낸 자살 방지 송(song)까지, 대체 그 능력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안 된다. UCLA를 졸업하고 금융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음식을 만드는 주현근 셰프와 함께 그는 매일 메뉴를 연구한다. 이태리, 스페인, 북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유러피언 식단이 주 메뉴이지만 정통성보다는 재미있는 식단에 중심을 둔다. 그래서인지 물잔과 식기 하나까지도 만져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잘게 썬 영양부추를 얹은 신선하고 짭조름한 관자와 로메스코 소스를 곁들인 어린잎 샐러드와 함께 부드러운 화이트 와인 한잔을 곁들여본다. 마음과 몸이 편안하게 풀어진다. 또, 포피나의 감자 양송이 스프는 정말 일품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 향이 깊고 그윽하면서도 따끈한 이 스프 한 그릇을 먹으면 가라앉던 기분이 저절로 회복될 것 같은 그런 맛이다. 신선한 루꼴라와 함께 먹는 포르치니 버섯의 향이 풍성한 리조또까지 제법 많은 양을 먹었는데도 속이 불편하지 않다. 간이 약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내추럴한... [2019-10-16](Hit:235)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8] 김인승 ‘비원 반도지의 추경’ (1965년)
창덕궁 안에 위치한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인 창덕궁 후원은 조선왕조실록에 북원, 금원, 비원이란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 존덕정과 관람정 일대에 한반도 모형을 닮았다는 연못, 반도지가 있다. ‘비원 반도지의 풍경’은 가을이 어느새 그 짙음을 더하는 때의 풍광을 담고 있다. 초록빛 나무, 빨갛고 노란 단풍이 빈 정자와 고요한 연못과 어울려서 화사함과 고요함이라는 상반되는 정감을 한 화면에 담았다. 창덕궁 안 비밀스러운 정원의 적막함과 자연의 내밀한 술렁거림이 함께 공존하는 풍경이 화폭 속에서 그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듯하다. 김인승(1910-2001)은 한국 1세대 서양화가이다. 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19-10-16](Hit:166)

교우갤러리 - 최지은(심리96) 교우의 <파도이불이 제일 좋아>
심리학과교우회(회장=황택순·심리84)는 제1회 고심 여름 사진전을 열었다. 대상은 최지은(심리96) 교우가 차지했다. 최 교우는 “파도마저 무색할 만큼 열정이 넘치던 아이들의 여름을 기억한다. 까무해진 얼굴로 반짝반짝 즐거움으로 빛나던 순수한 모습에 아들 둘도 마냥 예뻐진다”며 사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2019-10-16](Hit:175)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전용호(국문86) 편집국장 올해 정기고연전이 끝났다. 결과는 1승 2패. 첫날 야구, 아이스하키에서 패한 후 마지막 경기인 농구에서 쾌승을 거뒀다. 분위기 반전을 이뤘지만 초강력 태풍 링링이 둘째 날 경기 승리의 기대를 앗아갔다. 정기전에서 우천으로 일부 종목이 취소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하루 일정이 통째로 취소된 건 사상 처음이다. 둘째 날 한반도 곳곳에 피해를 입힌 태풍 링링의 위력을 생각하면 경기 취소는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정기전을 기다려온 양교 구성원에겐 아쉬움이 남는다.첫날 경기가 잠실보다 좁은 목동경기장과 장충 체육관에서 열린 것도 아쉽다. 2만7000명을 수 용하는 잠실야구장에 비해 목동야구장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만2500명을 수용한다. 농구 경기가 열린 장충체육관 수용인원은 4500명으로 잠실체육관의 1/3 수준이다. 정기고연전에 대한 양교 재학생과 졸업생의 응원 열기를 담아내기엔 경기장 규모가 부족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경기장 규모가 축소되고 둘째 날 일정 취소로 반토막이 났지만, 정기전은 정기전이었다. 예년에 비해 양교 응원 학생 수는 줄어들었지만 뜨거운 열기는 그대로였다. 야구 경기가 시작하자 양교 재학생들은 드높은 함성과 힘찬 몸짓으로 응원전을 펼쳤다. 비가 내려 1시간 정도 경기가 중단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이어지는 응원의 몸짓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다. 실내 경기장인 아이스링크와 장충체육 관에 울리는 응원 함성은 고스란히 온몸을 뚫고 들어온다. 고대생과 연대생이 아니라면 세계 어느 대학생이 이토록 뜨거워질 수 있을 것인가. 실로 광기에 가까운 열정이 아름답게 발산되는 현장이 정기고연전이다.그뿐인가. 재학생들 표현으로 ‘고뽕’, ‘연뽕’에 취해 4년을 보낸 양교생은 졸업 후에도 정기전 현장을 찾는다. 단... [2019-09-23](Hit:186)

교우맛집기행[33] - 최재원 교우의 '건강한 밥상'
남한산성 로터리에서 경기도 광주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에 식당 '건강한 밥상'의 정원이 보인다. 너른 주차장과 개울이 흐르는 쉼터가 있는 마당을 지나 '여느 유원지 식당 같겠지.'하고 들어선 식당에는 좀 특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선 벽에 걸린 그림들, 작은 화분, 그리고 천정의 조명까지 대충 채워 놓은 것이 아니라 신경을 많이 쓴 주인의 센스가 돋보인다. 또, 매우 더운 한 여름날 평일 점심시간, 식당을 가득 메운 테이블 손님 전원이 닭, 또는 오리 백숙을 끓여 먹고 있었다. 신기했다. 연잎밥이나 녹두전, 떡갈비 등 다른 메뉴도 있건만, 다들 백숙을 먹는 풍경이 참 특이했다고나 할까. 백숙이 다 그렇지 대체 어떤 맛이길래…. 이 식당이 오픈을 한 지는 7,8년쯤 되었지만 체교과 95학번 최재원 교우는 작년부터 이 곳을 운영하고 있다. 광고 일을 하던 친구의 식당을 작년에 넘겨받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해 요리와 맛을 재구성했다. 그가 준비한느 백숙은 엄나무를 오래 우린 육수를 베이스로 맛을 낸다. 그래서인지 물에 빠진 닭이나 오리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 기름기 없는 담백한 국물이 좋아서 백숙을 주문한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이 또 특별하다. 샐러드의 재료가 하도 아삭아삭하고 특이해서 뭐냐고 물어보니 무를 밤 새 우려 매운 맛을 빼서 만든 것이란다. 짠맛을 빼고 꼭 짠 백김치, 그리고 간장에 깻잎을 담가서 한 장 한 장 무 쌈을 중산에 곁들인 깻잎 장 까지 손이 많이 가는 밑반찬과 함께 백숙을 먹다보면, 장모님 집에서 씨암탉을 잡아 사위를 대접했다면 바로 이런 밥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녹두전은 느끼한 고기보다 숙주를 가득 넣어 아삭하면서도 고소한 맛 덕분에 자꾸 젓가락이 간다.아이들과 함께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 [2019-09-19](Hit:171)

고대박물관 소장 걸작선[7] 천경자 '전설' (1962년)
20세기 한국화단 최고의 여성화가로 손꼽히며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 천경자(1924~2015)는 한국화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 화풍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경자의 '전설'은 낙엽 위에 천진스럽게 누워 있는 한 쌍의 소년과 소녀, 상단에는 아름다운 부엉이, 올빼미가 그려져 있다. 주황색, 갈색, 보라색 등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화면의 중앙을 파스텔톤의 청록색이 가로지르고 있다. 푸르스름한 피부의 소년, 소녀의 모습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현실이 아닌 몽환적이고 환상적으로 이끌어 준다. 박유민(한국사98) 모교 박물관 학예사  [2019-09-19](Hit:162)

<자명고> 고대의대, 민족과 박애의 거대한 뿌리
이헌정(의학89) 편집위원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고려대학교가 교육구국의 민족애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고대의대 역시 ‘민족과 박애’의 자랑스런 전통을 간직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의대의 설립은 구한말 유교관습으로 여자가 남자의사에게 치료받지 못하던 시절, 민족에게 절실한 여의사 양성에의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소외된 자를 위한 박애의 전통은 산업화 시대 의료소외 지역이었던 구로, 안산 공단 병원 개설로 이어졌다. 고대의대의 역사에 민족과 박애의 정신을 품게 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로제타 홀은 1890년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홀은 여성의 의료소외의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직접 여의사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홀은 부인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을 책임지면서 여학생 5명에게 의학을 가르쳤다. 이중 김점동(박에스더)을 1896년에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대에 보내 한국인 최초 여의사가 되게 하였다. 박에스더는 이땅에서 실제 의업을 행한 최초의 한국인 의사이기도 하다. 박에스더는 1900년부터 10년간 의사로서 여성 건강을 위해 헌신하다가 폐결핵으로 3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홀은 몹시 낙담했지만, 1916년에 세 명의 여학생을 총독부 부설의학강습소에 청강생으로 보내의사로 키워냈다. 그러나 남녀유별의 관습으로더 이상은 불허되었다. 홀은 세브란스의전에 여자의 입학을 간청하고,이화여전에도 의과의 신설을 청원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여의사 양성의 필요는절실했으나 관습의 벽이 너무 높았다.홀은 많은 민족선각자들을 만나 상의했다.홀이 길정희,김탁원 의사부부와 함께 마침내1928년 9월 4일에 세운 최초의 여의학교가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이다. 김탁원은 경성의전 출신으로 학생때 3.1운동에 참가해 1년반의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였다. 한성의사회 회장으로 활약했고, 한국... [2019-08-12](Hit: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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