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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다시 만날 그날까지 고연전의 열기 잠시만 안녕
고연전은 ‘고대가 연전연승한다’는 뜻이다. 연대에서는 이를 연고전이라 부르는데 ‘연대가 고전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 올해 고연전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24년 만에 전면 취소됐다. 매년 가을 고대인과 연세인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축제의 무산이 아쉽기만 하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고연전의 역사와 흥미로웠던 종목별 경기 장면들을 되짚어봤다. 지난달부터 모교와 관련된 추억을 연재하기 시작한 송하춘(국문68) 명예교수도 때마침 ‘가을의 전설, 고연전’을 주제로 글을 보내왔다. [2020-09-14](Hit:16)

90여 년 이어온 승부의 역사 … 스포츠 넘어 양교 문화에 큰 영향 끼쳐
1930년 전조선축구대회 보연전을 알리는 동아일보 광고(왼쪽). 경기 결과는 연장전 끝에 보전이 2대3으로 패했다. 정기전 5전 전승 기록을 세운 2014년 농구 경기 후 승리의 폭죽에 기뻐하는 선수들(오른쪽 위). 선배가 후배들에게 맘껏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참살이길 뒤풀이축제에서 학생들이 뱃노래를 부르고 있다(오른쪽 아래).모교와 연대가 맞붙은 최초의 경기 기록은 1925년 5월 31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조선체육회 주최 제5회 조선정구대회 소식을 전한 당시 기사에는 “경성전문학교의 양웅인 연희전문학교 대 보성전문학교의 대전이 시작되야 서로 선전한 결과 보전에는 우퇴조(優退組)까지 남은 결과 보전이 쾌승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연전악전석패(延專惡戰惜敗)’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이 경기는 1회전에서 만나 대결한 것이라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장안의 화제였던 양교 응원전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첫 경기는 1927년 11월 3일. 조선체육회 주최로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제8회 전조선축구대회 청년부 준결승전이다. 보전은 연전에 0 대 3으로 패했다.이후 축구와 농구를 중심으로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1942년까지 축구는 28차례 결승에서 맞붙어 14승 14패의 전적을 기록했고 농구는 56차례를 맞붙어 28승 28패의 전적을 기록했다.해가 거듭되며 모교와 연희전문학교의 대결은 장안의 화젯거리가 돼 동아일보는 양교의 경기가 있을 때 특별히 광고를 내기도 했다. 경기뿐 아니라 양교의 응원전도 큰 관심거리였다. 보성전문 학생들은 꽹과리, 장구, 날라리 등의 민속악기를 두드리고 불며 교가와 민요를 불렀고 연희전문 학생들은 양악대를 앞세우고 개선행진을 벌였다.보연전은 1943년 일제가 조선에 징병제를 도입하고 학교 체육을 금지시키며 체육활동을 총검술로 대신하게 하면서 막을 내렸다.한국 체육 ... [2020-09-14](Hit:16)

‘고연민족해방제’에서 ‘사이버고연전’까지, 시대별 다양한 모습
2013년 정기전에는 MBC ‘무한도전’ 출연진이 양교 응원단으로 참가했다(왼쪽). 오른쪽은 2016년 사이버고연전으로 양교생은 2011년부터 게임전을 펼치고 있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연전도 다양한 변화를 맞이했다. 대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고연전 명칭이 ‘고연민족해방제’로 바뀌어 경기 후 시위로 이어졌다. 1996년에는 고연전 후 뒤풀이 과정에서 이화여대 학생이 부상을 당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2003년에는 고연전이 지나친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소외시킨다는 이유로 안티고연전 운동이 벌어졌다. 지금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고연전을 위해 장애인 전용 관람석도 설치된다. 2013년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고연전에 참가했다. 모교 응원단에는 유재석, 박명수, 하하, 정준하가 연대 응원단에는 노홍철, 정형돈, 길이 참가해 열띤 응원을 펼쳐 큰 화제가 됐다. 21세기에 들어서 양교의 대결은 온라인 공간까지 확대됐다. 2011년 모교 게임동아리 ‘디럭스’가 정기고연전 기간동안 사이버고연전을 개최했다. 이후 지금까지 매년 다양한 게임 종목으로 경기를 펼친다. 정기전이 취소된 올해 양교생은 11월 7일 사이버고연전을 연다. [2020-09-14](Hit:15)
고연전, 뜨거웠던 그 순간을기억하나요?
고연전은 1965년부터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럭비, 축구 5개 종목 경기가 펼쳐지는 정기전으로 정착했다. 양교 선수들이 펼치는 투혼의 경기는 매 경기 명승부를 연출한다. 뜨거운 응원전이 함께하는 정기전은 그 자체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여기에 뜨겁거나 흥미로웠던종목별 경기 한 장면씩을 제시한다. 이 사진들을 실마리로 삼아, 교우 저마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명경기 명장면을 떠올려보길…. 김동은 기자고연전 사상 최대 스코어 차 11:0압승을 거둔 선수들이 승리호를 외치고 있다.1987년 야구고연전 첫 경기였던 야구는 막상막하일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11대 0이라는 큰 스코어차로 압승을 거뒀다. 모교는 5회말 공격에서 2번 정영진(경영84) 선수의 땅볼을 연대 유격수 최해명 선수가 잡아 2루에 던진 볼이 빠지는 사이 2, 3루 주자가 모두 홈인. 2점을 선취했다. 계속된 2사 1, 3루 찬스에서 3번 김경기(법학86) 선수가 라이트쪽으로 적시타를 때려 내 다시 1점을 보태면서 3대 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6회초 무사 1, 2루의 위기를 잘 넘긴 모교는 7회말 타자 일순하면서 대거 5점을 뽑아내 승부를 완전히 판가름냈다. 이날 경기의 히어로 김경기 선수는 연대 응원석에 떨어지는 3점 홈런포를 작렬함으로써 연대를 완전히 침몰시켰다. 다른 히어로 박동희(체교86) 선수는 삼진 7개를 빼앗고 단 3안타만 내주며 호투, 완투완봉승을 거뒀다.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고연전 야구 사상 최대 스코어 차로 기록되고 있다.16년 무승의 한을 전승으로 풀다17년 만의 승리에 환호하는 선수들.2014년 빙구모교는 2014년 정기전 역사상 최초 전 종목 승리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첫날 빙구 경기는 16년간의 무승을 끊고 더욱 값진 승리를 거뒀다. 경기 시작부터 주장 오세안(체교11... [2020-09-14] (Hit:17)

신문이 신문 했다 - 《고대교우회보》 창간 50주년에 부쳐
《고대교우회보》 창간 50주년 축시를 쓰려고2020년 7월 10일 자, 지령 제600호를 펼쳐보았다.“군인은 고대에 왔다. 짓밟았다.그리고 학교 문을 닫았다. 「10월 15일」”이렇게 적은 1971년 11월 5일자 《고우회보》 제16호 1면이,600호 신문의 1면에 문득, 들어가 있었다.또, 그날의 14면은 오늘의 3면에서이렇게 피 흘리고 있었다.“캠퍼스 삼킨 최루탄 세례”“곤봉과 군화의 난무 속에 비명과 통곡 가득”“피 흘리며 잡혀가는 학생에 교수들 흐느껴”“흥분과 분노 속에 투석으로 맞서기도”“총구 앞에 가슴 내민 남학생 「쏠 테면 쏴라」”“도서관엔 주인 잃은 책가방 어지럽고”모든 것이 마흔아홉 해 만에 뜨겁게, 돌아와 있었다.우물 밑에서 깊이 올려다보는 얼굴처럼큰 바다에 떠오른 큰 배처럼,제자리에 처음 놓여 있었다.600호 가운데 딱 한 번 이 16호를 발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러니,위수령의 총칼에 신문을 통째 빼앗겼다는 말이 아니다.편집국장은 초교지를 편집인에게,편집인의 유족들은 그걸 다시 모교 박물관에,빼돌리고 전달하고 깊이 숨겨서 피 묻은 단 한 부를,역사에 발송했다는 뜻이다.지옥에서 돌아온 ‘레버넌트’같이교정에 그렁그렁한 꽃나무와 꽃 귀신들같이지령 제600호 1면에 비로소 모셔진,지령 제16호의 1면을 오래 들여다본다.그리고 이렇게 고쳐 읽는다.“군인은 고대에 오지 마라. 짓밟지 마라.그리고 학교 문을 열어라. 「10월 15일」”고대는 살았고독재는 죽었고신문은 적었다.물이 아래로 흐르듯 구름이 하늘에 떠가듯자연스럽게,아니, 물이 거꾸로 흐르듯구름 하늘에 로켓을 쏘아 올리듯 자연스럽게,그러므로 반역처럼 자연스럽게,적어온 펜과 종이와인간의 굳은 손.《고대교우회보》 50년이여,경하하리로세.1971년 11월 5일의 제 16호 《고우회보》여 단 한 부여,경하하리로세.고려대학교가 고려대... [2020-08-13](Hit:62)

교우회보 제16호, 49년 만에 전합니다
1971년 11월호 1면본보 지령 600호 발간1970년 8월 제1호부터 50년 동안 매달 한 번도 쉬지 않고 제작·발행한 유일한 대학동창회보1971년 10월 15일 무장군인 교내 진입 다룬 1971년 11월호는 인쇄중단으로 발송 못해이번 7월, 본보는 지령 제600호를 발간한다. 교우회보는 1970년 8월 5일 월간지로 창간했다. 제1호부터 600호까지, 50년, 600개월 동안 매달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발행됐다. 국내 대학동창회보로는 유일하며 최다 발행 횟수 기록이다. 다만 1971년 11월 5일자 제 16호는 독자에게 발송하지 못했다. 제16호는 위수령 선포와 무장군인이 교내에 진입해 학생들을 강제 연행했던 ‘10·15 사태’를 1면과 14면에 상세히 보도했다. 당국은 이를 문제 삼아 박춘길(정외57) 당시 편집국장을 연행하고 인쇄 중이던 회보를 압수했다. 박 국장은 인쇄 초교지를 빼돌려 당시 편집인이었던 김덕은(보전상과27회) 교우회 이사장에게 전했다. 이 회보는 2007년 교우회 창립 100주년 무렵 모교 박물관에 기증됐다. 지령 600호를 발간하며, 회보 제16호를 49년 만에 독자들에게 전한다. 특히 제16호 1면과 14면은 당시 지면 형태 그대로 게재한다. 세로편집에 작은 활자가 읽기 불편하지만 지령 600호에 이르기까지 교우회보가 걸어온 역사의 한 대목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관련기사 2-4면> [2020-07-14](Hit:110)

제2, 제3의 이호왕 박사를 기다리며
방약도 없고 치료제도 없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감염이 되면 꼼짝없이 생사를 하늘에 맡겨야 한다. 내로라하는 제약회사들이 예방약과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약 70년 전, 한반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부터 1954년 사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중부전선에 주둔한 UN군 병사들을 덮쳤다. 병에 걸린 군인들은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가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혼수상태에 빠져 죽어갔다. 초기 사망률은 10%에 달했다. 미국은 이 괴질에 ‘한국형출혈열’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200여 명의 과학자를 동원해 연구에 나섰다. 그러나 전파경로는 물론 병원체도 밝히지 못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1976년. 모교 미생물학교실의 이호왕 주임교수가 세계 최초로 한국형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하고 ‘한탄바이러스’라 이름 붙였다. ‘한탄바이러스’라는 명칭은 병원체가 발견된 한탄강에서 따왔다. 1990년에는 ‘한탄바이러스’ 예방약인 ‘한타박스’까지 개발했다.병원체 발견에서 진단법, 백신개발까지 혼자서 완료한 세계 최초의 과학자 이호왕 모교 명예교수를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만났다.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호왕 교수는 9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기억도 또렷하고 발음도 분명하며 막힘없이 답변했다.살아있는 과학기술계 위인, 한국의 파스퇴르, 한탄강의 기적…. 이호왕 교수를 수식하는 말들이다.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에서 언론과 학계는 이호왕 교수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그에게 지혜를 구하고 있다. 모교에서 ‘제2, 제3의 이호왕 교수’가 나오기를 바라며 한탄바이러스 발견 이야기를 전한다. [2020-06-22](Hit:158)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최고 인재를 개방적으로 영입해야”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최근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한탄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결하기도 하덥니다. 물론 한탄 바이러스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모두 호흡기로 감염됩니다. 폐렴도 일으키죠. 그런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그래도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방송사에서 찾아와 이런 저런 것도 물어보고 하지요.의학도의 꿈은 어떻게 가지게 되셨습니까?외할아버지께서 한의사를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의학에 관심이 있었죠. 또 그 당시 의사에 대한 처우가 좋아서 어머니께서도 의대에 진학하기를 많이 권했지. 그래서 내과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쟁중에 피난 생활을 하면서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 환자들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그런 전염병의 원인이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미생물 이라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게 됐죠.1973년에 모교 의과대학에 부임하셨습니다. 모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내가 고려대학교에 온 건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주임교수로 온 거에요. 당시에 그자리가 비어있었거든. 주임교수라는 위치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이 있었고. 또 서울대학에는 동물실험실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 한탄바이러스가 동물에 의해서 전염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실험실을 같이 사용하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고려대 의과대학장이었던 이수종 교수가 따로 독립된 동물실험실을 만들어 준다고 했거든. 그것이 나한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었죠. 물론 고려대학이 최고의 사립 대학이었기 때문에 봉급이 아주 후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죠, 허허.1976년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하셨습니다. 등줄쥐가 매개체란 것은 어떻게 착안하셨나요?일단 한국형출혈열이라는 병이 6·25전쟁 기간 ... [2020-06-22](Hit:192)

한국의 한탄바이러스, 바이러스학의 빛나는 역사가 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젊은 시절의 이호왕 교수, 한탄바이러스 발견 사실이 보도된 1976년 4월 29일 동아일보, 한탄바이러스 백신 한타박스, 간접면역형광항체법으로 관찰한 한탄바이러스의 모습, 한탄바이러스 전자현미경 사진.지구상의 모든 바이러스의 생화학적 성분과 유전자를 비교검토한 후 2017년부터 바이러스들을 재분류하기 시작해 2019년 2월에 새로 명명된 바이러스들을 전부 합쳐 새로운 바이러스 분류표를 발표했다. 새 분류방법에 의해 작성된 분류표에는 한탄바이러스가 새로운 과(Family)가 되었다. 1976년 한탄바이러스(Hantaanvirus)가 새로운 종(Species)이 되었고, 10년 후에 8개의 유사한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라는 새로운 속(Genus)이 생기고, 그 후에 신종 한타바이러스들이 식충목 동물, 박쥐, 파충류 그리고 물고기에서 발견되어 2019년에 마침내 한타비리데(Hantaviridae)라는 새로운 과(Family)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사망률 10% 신증후출혈열 백신 개발이호왕 교수님은 195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55년에 미국무성이 한국의 재건을 돕기 위해 미국 미네소타의대로 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 첫 대상자로 선발되어 일본뇌염바이러스의 면역기전을 밝히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1-72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1973-94년 고려대 의대 교수 및 학장 등 여러 보직을 거쳐 정년퇴직을 하신 후 1994-2000년까지 아산생명과학연구소소장, 2000-04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을 지내셨다. 이호왕 선생님의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은 신증후출혈열(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의 발견(1976년)과 한탄바이러스 예방백신 개발(1988년)이라 할 수 있다. 유행성출혈열은 만주와 한국에서 유... [2020-06-22](Hit:187)

한국 대학교육의 길 개척해온 모교 개교 115주년
지난 5월 5일, 모교는 개교 115주년을 맞이했다. 115주년 기념식과 고대인의 날 행사는 코로나19로 간소하게 열렸지만, 115년 역사를 넘어 모교의 더 큰 발전을 염원하는 고대인의 의지는 드높았다.정진택 모교 총장은 기념사에서 창의적 미래 인재 양성,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변화와 혁신, 시대적 가치에 부응하는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사회를 대비해 모교에 ‘넥스트 노멀 위원회’를 설치해 미래에 필요한 대학의 역할을 정립하겠다고 밝혔다.구자열 교우회장은 5년 후로 다가온 개교 120주년을 언급하며 모교의 학문적 위상 제고와 35만 고대인의 단합을 당부했다. 모교 본관으로 통하는 길은 큰 대(大)자 모양으로 나있다. 모교가걸어가는 길이 한국 나아가 세계 대학교육의 표준이자 미래가 될 것이다.  [2020-05-25](Hit: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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