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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겠다”《결정적 순간들》 펴낸 40년 현장기자 - 박보균(정외73) 중앙일보 대기자

등록일 : 2020-03-18 조회 : 41

식민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 이집트 카이로 회담 현장에 선 박보균 교우.


기자 생활 30년 동안 수많은 기사를 썼지만 이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 언론계 대선배 스토리를 쓰는 일이어서 그랬다.
중앙일보 대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박보균 교우는 열정적이고 치열하다. 끊임없이 탐구하며 촉을 세운다. 편집국장 시절 편집국은 역동적이었다. 편집국은 하루 두 차례 국장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 차가우면서 소란스런 긴장감이 감돈다. 각 부 부장들이 내놓은 정보들에 대한 가치와 상품성의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여타 신문들이 아침에 중앙일보부터 집어들던 시절이었다.
박 교우는 영원한 현장기자이자 팩트파인더다. “현장이 없는 기사는 팩트 생동감이 없는 죽은 기사다. 기자는 운명적으로 현장을 지켜야 한다.” 박보균식 저널리즘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태함에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40년 현장기자인 박 교우는 얼마 전 책《결정적 순간들》을 펴냈다.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결정적 장소를 직접 찾아가 결정적 순간을 재현한 역사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담았다.
《결정적 순간들》에서 현장 저널리즘의 진면목이 느껴집니다.
“나에겐 운명적인 평생 원칙이 있어요.
‘현장에 가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대기자로 글을 쓰면서 다시 현장을 찾기 시작했어요. 20세기 세계 정치사에 이름을 남긴 처칠·루스벨트·드골·히틀러·무솔리니·스탈린·레닌·마오쩌뚱·호찌민의 장소를 찾아갔죠. 카이로·테헤란·얄타 회담 등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식민지 한국의 운명과 관련된 ‘기억의 장소’에서도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했어요.
기자적 본능이지요.”
20세기 최고 지도자들의 숨결이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나의 기자적 열망은 ‘좋은 리더십’과 ‘유능한 권력 찾기’입니다. 현장에서 낚아챈 지도력의 요체는 이렇게 응축됩니다. 통찰력과 비전, 도덕성과 헌신, 원칙과 일관성, 권력의지와 카리스마, 결단력과 도전, 통합과 소통, 비전과 시대정신 창출, 열정과 투지입니다. 어떤 게 최고냐고 따지는건 쉽지 않아요. 시대 상황과 대중이 원하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론 상상력과 용기의 리더십을 꼽고 싶어요.
둘이 결합하면 위기 돌파와 지혜의 추진력이 발동됩니다.”
박 교우는 윈스턴 처칠의 지도력을 으뜸으로 쳤다. 상상력으로 무장된 처칠은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란 촌철살인으로 스탈린의 야욕을 폭로하며 20세기 냉전의 습격을 알렸다. 그런 역사의 현장탐색 기록과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책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드골의 시골 고향인 ‘콜롱베 레 되 제글리즈’, 무솔리니의 고향 ‘프레다피오’, 링컨의 ‘게티즈버그’, 마오쩌둥의 활동무대 ‘난창’ 등 기억의 장소를 오가는 긴긴 여정. 때로는 셀프 운전하며 역사와 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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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곳곳에 마키아벨리의 향이 납니다.
“마키아벨리는 나의 장기 탐사 대상입니다.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 그의 시골집이 남아있더군요. 거기서 ‘군주론’ 글귀를 만났어요. 현장은 그런 쾌감을 줍니다. 군주는 경멸받는 것을 피해야 해요. 지도자의 세계는 결단입니다. 500년 전의 군주론이 통치자들에게 주는 영감이지요.”
중앙일보에 <박보균 칼럼>을 쓰는 그의 문체는 단문이다. 문장 하나가 한 줄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다른 박보균식 저널리즘이다. “단문은 어떤 현상, 스토리에 진액만 뽑아 정곡을 찌르는 겁니다. 단문훈련을 하면 팩트를 추적하는 열정과 집념이 단단해져요. 문장마다 승부를 걸어야 해요. 간결하지만 악몽 같은 단문의 정수는 헤밍웨이죠.” 그는 헤밍웨이를 찾아 세계를 누볐다. 시카고(탄생), 아이다호선밸리(사망), 플로리다 키웨스트와 쿠바 아바나까지. 감수성의 폭발이다. 그런 집념은 미국 워싱턴 ‘대한제국 공사관’ 재매입 공적으로 이어졌다. 그 공로로 2013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언론인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국가 존망의 위기였어요. 고종은 외교에 승부수를 걸었죠. 가난한 나라에서 2만5000달러(현재 가치 최소 127만 달러)를 들여 워싱턴DC의 조선공사관 건물을 샀어요.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죠. 을사늑약으로 건물은 일본에 빼앗겼고, 공사관도 잊혔어요. 망국의 비운이 서려있는 이 건물에 주목해 1990년대 말부터 재매입 운동을 벌였어요. 기사와 책, 강연을 통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알리자 마침내 2012년에 정부가 매입(39억5000만원)했어요. 지금도 뭉클합니다.”
박 교우의 탐구 정신과 집념은 기자 시절에도 독보적이었다. 사람 중심 취재와 신뢰, 그리고 검증을 중시했다. 그런 열정으로 ‘내각제 합의각서 보도’ 특종으로 한국기자상·관훈언론상(1991)을, ‘청와대 비서실 시리즈’로 한국기자상(1995)을 수상했다. 모교 정치외교학과 재학시절 고대신문 기자로 맹활약 한 게 대한민국 대표 언론인이 되는 자양이 됐다. ‘영원한 현 장기자’인 박보균 교우는 언론인교우회 장한언론인상(2006년)과 정경대학교우회 자랑스러운 정경인상(2015년)을 받은 ‘영원한 호랑이’다.
양영유(영교83) 편집위원·중앙일보 기자

박보균 교우는…

모교 졸업 후 중앙일보에 들어가 정치부장·논

설위원·편집국장·편집인 등을 두루 거쳤다.

기자 생활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일했다.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과 한국신문윤리위

원회 이사를 지냈다. 저서로 《청와대 비서실

Ⅲ》, 《살아 숨 쉬는 미국 역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