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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 캠퍼스, 첨단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으로 고려대 건축의 새 상징 만들길”특집 좌담 - 고려대학교 건축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등록일 : 2015-12-13 조회 : 14570
<div align=left>왼쪽부터 이기현 부장, 김현섭 교수, 최광식 교수, 정진택 교수.
왼쪽부터 이기현 부장, 김현섭 교수, 최광식 교수, 정진택 교수.

정진택(이하 정) 김현섭 교수님의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교우회보 편집위원들이 의견을 나눈 결과 필자와 함께 좌담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김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연재를 하는 동안 최광식 교수님이 관심과 조언을 해주셨다며 좌담회에 모셔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기현 모교 시설부 부장님은 실제 건축과정과 유지관리에 대한 말씀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럼 먼저 기획연재 필자인 김현섭 교수님께 ‘고려대학교의 건축물과 역사’연재를 마치는 소감을 듣겠습니다.

김현섭(이하 김) 먼저 학교 건축에 관한 역사를 기록할 기회를 준 교우회보에 감사합니다. 1회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연재를 시작할 당시 <고려대학교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고대출판부에서 단행본 출간이 준비된 상황이었습니다. 교우회보 편집국에서 고대출판부와 협의 후에 다시 원고집필을 청탁해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준비된 내용이라 쉬울거라 생각했는데 단행본과는 달리 매월 연재하는 방식은 별도의 논리가 필요했습니다. 연재하면서 새로 리서치한 것도 있고 단행본에서 미비했던 것을 보완하는 소득도 있었습니다.

고대 건축물과고대정신
교우회보에서 고대 건축에 관한 기획연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가 모교의 안암동 이전 80년이되는 해였고, 올해가 개교 110주년을 맞이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고대건축물과 그 역사에 대한 이해가 고대 구성원들에게 어떤의미를 갖는지, 최광식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광식(이하 최) 학생시절부터 안암동의 여러 공간을 사용해 왔습니다. 저는 이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고대 건축물은 투박하면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것 같은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고대생들에게 순박함과 뚝심, 우직함과 꿋꿋함을 갖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섭 교수님의 연재에도 있었지만, 인촌 선생이 화강암으로 학교 건물을 지은 것이라든가, 본관에서 대운동장, 정문에 이르는 중심축을 유지해온 것, 중앙광장을 조성해 ‘열린 대학’을 만든 것도 고대인의 삶과 행동양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섭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데 고려대학교의 건축이 우리나라의 다른 대학 건축과 구별되는 특징이랄까 상징성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석탑 이미지가 일차적인 상징이라고 해야겠지요. 본관, 중앙도서관이었던 대학원, 서관을 중심으로 동질성을 갖는 캠퍼스 스케이프(campus-scape)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 외 건물들도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학교 교수들이 고대는 뭔가 질서가 있는 캠퍼스라고 말하는데 국내 다른 대학들이 다소 혼잡스러운 느낌을 준다면, 고대 캠퍼스는 정문을 들어섰을 때 펼쳐지는 석탑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징성으로 남는것 같습니다.

대학건축의 고급화 경향
아까 최 교수님도 말씀하셨듯이 화강암과 석탑이 고대인의 기질과 어떤 지향성에 영향을 주는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고대 영문지 이름이 Granite Tower인것도 그런 영향일 것입니다. 이제 이기현 부장님께 여쭙고 싶은데, 아마도 개교 100주년을 즈음해서 우리 고려대학교가 가장 앞서 시작했다고 보는데, 요즘 대학 건축물들이 고급화되고 일면 호화스럽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건축비용도 많이 들지만 유지관리 비용도 그만큼 늘어날 텐데, 이런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기현(이하 이)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본관 화장실과 3층의 제2회의실이 무척 낡은 상태였습니다. 화장실과 2회의실 리모델링을 했는데 돈 쓸 데도 많은데 그것부터 하느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그 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운동장 자리에 중앙광장을 만들 때도 참 반대가 많았지요. 그래도 지하에 주차장과 학생편의시설을 만들어 지상공간을 공원화해서 활용할 수 있게 됐고, 차량 통행으로 인한 위험요소도 사라졌습니다. 아시는것처럼 이화여대 총장이 우리 중앙광장을 벤치마킹해서 ECC를 만들었습니다. 캠퍼스 지하화의 효시가 우리였습니다. 엘지포스코관을 만들 때도 계속 설계변형을 통해 아이디어를 내면서 우리나라 대학 강의실로는 처음으로 말굽형 강의실을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수업집중도도 높아지고 토론식 수업이 가능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 투입된 고가의 장비를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중앙광장과 같은 새로운 건축물은 역사가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시대정신에 얼마나 충실하냐가 중요하겠지요.

중앙광장건축 뒷이야기
중앙광장 개발 뒷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김병관 이사장, 김정배 총장님 시절인데 학생, 교수, 교우들까지 반대가 정말 많았지요. 교우들로서는 신입생 시절부터 추억의 장소였는데 그게 사라진다는 아쉬움도 컸겠지요. 김병관 이사장님까지 유보로 돌아서서 김정배 총장을 설득해보라고 했습니다. 근데 김정배 총장님을 찾아 뵙고 말씀을 나누는데 이분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꼭 해야겠다며 일주일 동안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설득하러갔다가 제가 오히려 설득을 당하고 나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 시설을 살펴보니 대부분 가운데에 운동장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미션스쿨만 운동장이 건물 옆이나 뒤에 있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게 이게 군국주의의 영향이구나, 운동장을 군사훈련을 위한 연병장으로 쓰던 관행 때문이니까, 대운동장이 일제 잔재라고 하면 반대여론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사실 그때 대운동장이 있던 시절, 우리가 본관에 가려면 대운동장 주변 울타리를 따라서 길게 돌아서 가야 했어요. 크렘린으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체육부학생들이 운동장에 텐트도 치면서 반대가 제일 심했는데, 그래서 화정체육관을 짓기로 한 겁니다. 결국 중앙광장으로 변화하면서 소통이 원활한 열린 대학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교우회보 연재에서도 서술했지만 장단점도 있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억과 추억의 공간을 소중히 가꿔가야 할 의미도 있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본관에 이르는 먼 길을 없애고 외부 주민들에게도 개방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 것이겠지요. 아쉬움도 있습니다. 캠퍼스 지하개발을 우리가 선도했고 자체로 의미가 크지만, 이화여대 ECC가 판을 더 크게 벌인 까닭에 우리 중앙광장보다 세간의 주목을 더 받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빙해 디자인하기도 했구요. 재정적 뒷받침이 탄탄했기에 가능했겠지요. 대학 건물이 최근 고급화되고 있다고 앞서 언급하셨는데, 사실 안암캠퍼스는 시작부터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고급화를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본관, 도서관, 서관을 화강암으로 미려하게 지은 것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더욱 가치를 발할 것입니다.

백주년기념관과기숙사 건립이야기
미래를 위해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동안 건축을하는 실제 과정에서 있었던 어려움이나 주민들과의 마찰, 그리고 건축공법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습니다.

학기 단위로 결정되는 대학 행정의 특성으로 건설시간이 일반 건축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실무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곽지역 건축에서는 소음 문제 등으로 주민들과도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건축과정에서 최신 공법을 사용하면서 비용을 줄이는 방법도 찾습니다만, 미래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고민합니다. 해송법학도서관을 지을 때 구조적 가치를 살리기 위해 고민하면서 캔틸레버 공법을 사용한 것이나, 엘지포스코관 지을 때 학생들이 쉬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적절하게 배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해송법학도서관은 사적(史蹟)인 도서관 인근에 있어 문화재청 심의를 거쳐야 했습니다. 운초우선교육관을 지은 이래건축에서 지은 건물인데 과감한 금속외장에 울음현상을 통해 화강암의 현대적 재현을 이루어냈어요.

백주년기념관을 지을 때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싶네요. 고대박물관장을 하고 있을 땐데, 김병관 이사장님이 100주년 기념 건축물로 박물관과 컨벤션센터를 짓자는 의견을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고대 30주년, 70주년때도 도서관 지었으니, 100주년에도 도서관을 짓자고 말씀드렸지요. 도서관이 있는데 더 필요하냐고 해서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지요. 우리나라엔 박물관과 도서관이 같이있는 건물이 없어서 일본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NHK를 다녀왔습니다. 우리 백기관의 천창, 아트리움은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중앙광장 건축에 200억 들었는데 백기관 건물에 450억, 내부시설에 250억 합쳐서 700억이 들었으니 어찌 보면 비효율적 건물일 수도 있지요. 대부분 박물관을 먼저 짓고 거기에 유물을 넣는데, 우리는 유물을 고려해서 건축을 했어요. 몇몇 대학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와서 보고 우리처럼 하고 싶어도 비용문제로 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건축 뒷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2009년 당시 학생 기숙사인 프론티어홀을 건축할 때 개운사에서 민원이 들어와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워낙 개운사의 반대가 완강해 시공사도 설득을 포기하고 공사중단이 장기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당시 관리처장님이 개운사 주지스님을 면담하고 설득 작업을 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다보니 절실한 기독교신자인 관리처장님과 주지스님이 나중에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었고, 총장님이 그해 부처님 오신 날 법회에도 참석해 결국 공사재개를 했습니다. 아마도 건축과정에서 해당부서가 겪은 알려지지 않았던 어려움도 많았을 겁니다.

고대 건축의지향성
이제 마지막으로 고려대학교 건축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아마 앞으로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에너지 문제일 것입니다. 가용공간은 부족하고 신축보다는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이 많아질텐데, 친환경공법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관리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고려대학교 건축역사를 공부하면서 든 아쉬움은, 1930년대 석탑은 분명 우리 근대건축사 속에서 도드라졌었는데, 그 이후 고려대학교 건축이 현대건축사를 이끌어가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중앙광장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아쉬운면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인문사회 캠퍼스는 석탑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고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있으니 그대로 가더라도, 재정이 허락한다는 전제 하에 말씀드린다면, 자연계 캠퍼스는 거기에서 자유롭게, 그야말로 사이언스 캠퍼스로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와 디자인, 아방가르드 담론까지 포함하는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건축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사적 관점에서 볼 때, 아마도 이게 앞으로 고려대학교 건축의 중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첨단친환경공법의 에너지 세이빙 건축도 그 예일 것입니다.

건축물 자체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대학과 사회가 상호 소통 가능한 건축이 필요합니다. 신촌에는 세 개의 대학이 있어서인지 대학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학로라고 부르는 곳에 이젠 대학문화는 없습니다. 저는 우리 고대 주변의 주민들과 잘 소통하면서 안암역과 종암역 일대를 대학문화가 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쪽엔 신촌, 동쪽엔 고대가 대학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지요. 와세다대학이 그렇게 했듯이, 고대도 주민들과 소통하는 열린대학, 문화가 숨쉬는 캠퍼스타운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먼 미래를 보고, 제로에너지와 지능형 건물이 들어선 최첨단의 사이언스 캠퍼스를 만들어 고려대학교 건축의 새로운 상징도 만들고, 민족의 통일을 준비하듯, 사회와 소통하는 새로운 고대정신을 구축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