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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18을 기억하는 우리만의 방식, 마라톤과 대장정
1969년 열린 제1회 ‘4·18마라톤’ 행사 참가자가 골인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990년 열린 ‘4·18대장정’에서 “고대 4·18의 후예임을 기억하는 총학생회”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교문을 나서 행진하는 학생들. 모교 총학생회는 매년 4월 18일 ‘4·18대장정’을 개최하고 모교의 자유·정의·진리 정신을 드높인 4·18의거를 기념한다. ‘4·18대장정’은 1969년 4·18의거 제9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처음 진행됐다. 당시 명칭은 ‘4·18마라톤’이었다. 1969년 총학생회장이었던 조춘구(경 제66) 교우는 2009년 한 인터뷰에서 “4·18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전체 학생이 참여하고,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해 낸 것이 마라톤이었다. 학교 4·18 기념탑 앞에서 묵념을 한 뒤 운동장을 출발해 수유리 4·19 묘역까지 다녀오는 코스 였는데, 여기에는 4·18이 4·19의 정신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행사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행사 초기에는 대회운영과 시민불편을 이유로 신청하지 않으면 뛸 수 없도록 참가자 수에 제한을 뒀으며 스포츠 행사의 성격이 강했다. 1986년부터 재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로이후 소수만 참가하는 스포츠 행사였던 마라톤 대회를 넘어 대중적 참여를 유도해 4·18정신을 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1986년부터는 행사 성격을 바꾸고 명칭도 ‘4·18대장정’으로 개칭했다. ‘4·18대장정’은 재학생 모두가 참가하는 행사다. 코스는 기존의 마라톤과 동일하다. 불의에 항거한 4·18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그 해에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문제에 대한 구호를 외쳤다. 시대에 따라 ‘평화통일’, ‘반미반전... [2020-04-14](Hit:122)

4·19 당시 고대생 희생자 60년 만에 밝혀져…화학과 54학번 김왈영
김왈영 학적부의 사진. 사상자 명단이 실린 1960년 4월 21일자 조선일보 호외에 ‘김일녕’으로 이름이 잘못 기재됐다. 아래는 4·19묘지에 있는 ‘김왈영 묘’.  4·19혁명 당시 고대생 희생자의 존재가 60년 만에 밝혀졌다. 그동안 4월혁명 기간 동안 고대생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4월 19일 사망한 고대생이 있었고 4·19유공자로서 4·19민주 묘지에 안장되어 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당사자는 당시 모교 문리대학 화학과 54학번 김왈영. 국가보훈처의 공적조서에 따르면 김왈영 유공자는 4월 19일 오후 1시경 경무대 입구 바리 케이트를 뚫으려고 하다가 경찰이 쏜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그런데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보도한 사상자 명단에 ‘김일녕’으로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다. 이름의 한자 ‘가로 왈(曰)’을 ‘날 일(日)’로 잘못 표기했고, 이로 인해 정확한 신원파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견은 모교 박물관 서명일(한국사97) 학예사가 4·18 60주년 전시회를 준비하며 관련자료를 검토하던 중에 이뤄졌다. ‘김일녕’ 이름 아래에 ‘고대문리대’로 표기된 것을 보고 모교 학적부를 찾아 김왈영 유공자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서 학예사는 국가보훈처를 통해 김왈영 유공자가 수유리 4·19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4·19 관련 역사기록에 고대생 희생자가 있었음이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모교는 올해 4·18 기념 행사에서 김왈영 유공자의 존재를 밝히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묘소참배 등 추모의식을 가질 예정이다.   [2020-04-14](Hit:198)

4·18 기록영상에서 그날의 생생한 역사를 느껴보세요
‘Korea Anti Government Riots’에는 4월 18일 고대생들의 행진(①)과 의사당 앞 연좌데모(②, ③), 유진오 총장(④), 현승종 학생처장(⑤) 등의 모습이 나오며, 이승만 하야와 4·19 희생자 장례식 관련 뉴스영화(⑥)도 들어있다.  허은(사학86) 모교 한국사학과 교수 올해는 한국현대사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4월혁명’이 60 주년이 되는 해이다. 고대생들에게 4월은 1960년 4·18의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수유리까지 함께 달리며 자유·정의·진리의 의미를 가슴에 담는 달이기도 하다. 60년이 흐르는 동안 4·18을 포함한 4월 혁명을 다룬 많은 논저가 발간되었고, 2010년에는 4월혁명과 관련한 주요 일차 자료를 방대하게 모은 사료집도 발간되었다. 이처럼 방대하고 풍부한 문헌자료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이를 통해 60년이란 시차를 넘어 역사의 현장감을 느끼는 것은 역사학자조차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림, 사진, 동영상이 ‘해석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동일화로서의 역사’를 위한 자료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미지, 영상자료에 관심을 쏟은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끼는 변화의 요인들을 규명하고 이해하는 ‘해석’과 함께 시공간을 뛰어넘는 희망, 기쁨, 분노 등의 ‘공감’이 역사학이 맡고 있는 주요한 역할이라 강조한다. 교우들이 학교를 방문해 4·18기념탑 앞에 모여 묵념하고 함께 마라톤을 달리기 쉽지 않은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상태까지 겹쳐있다. 그렇다고 4·18 과 4월혁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잠시 짬을 내서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http://kfilm.khistory.org)에 접속해 ‘고대생’을 검색어로 입력해 주길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은 ‘동일화로서의 역사’... [2020-04-14](Hit:156)

고려대학교여서 가능했던 4·18의거, 그날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 되었다
좌담회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4·18의거 당시 첫 집결지였던 본관 앞을 거쳐 4·18기념탑으로 이동했다. 기념탑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60년 전을 회상하는 교우들.  본보는 4·18의거 당시 주역으로 참여했던 교우들의 회고와 60주년 소감을 듣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3월 13일 교우회관 4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박찬세(법학55) 당시 고대신문 편집국장·4·18선언문 작성 강우정(법학57) 당시 법과대 학생위원장 김중위(정외57) 당시 4학년 독고중훈(철학57) 당시 극예술연구회장 윤용섭(생물57) 당시 문리대 학생위원장 이재환(정외57) 당시 정경대 학생위원회 총무 조남조(정외57) 당시 4학년 이성춘(정외58) 당시 3학년 박규직(상학59) 당시 2학년·4월혁명고대 회장 사회 : 전용호(국문86) 본보 편집국장행동하는 교풍이 4·18의거를 일으켰다박규직 : 4·18의거 60주년을 맞이해 당시 주역이셨던 교우님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갖게 됐습니다. 4·18의거 계기부터 기억 나는 일화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박찬세 : 4·18의거가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3·15부정선거겠죠.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 하려고 4선 개헌도 하고, 국가보 안법 만들어서 탄압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3·15 앞두고 부정선거 지령문서 만들고, 4·18 일주일 전에는 마산에서 김주열 친구가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단지 3·15 부정선거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불만이 가득차서 4·19든 5·19든 터졌을 겁니다.김중위 : 필연적인 일이었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가짜에 불과하다는 불만이 누적됐는데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니까 한꺼번에 폭발한 겁니다.강우정 : 고려... [2020-04-14](Hit:145)
당신이 다시 신입생이 된다면무엇을 하고 싶나요?
올해 개강은 미뤄졌지만, 신입생을 맞이하는 들뜬 마음을 보여주는 듯 모교 곳곳에는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 20학번 새내기들을 환영하고 모교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면서 교우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다시 고대 신입생이 된다면?”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면서 개강을 기다리고 있을 20학번 신입생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교우들이 가슴 설레는 이야기를 전한다. 천지개벽한 모교서 맘껏 공부하고 싶다전윤자(상학51)교우51학번 신입생인 나는 전쟁 중에 모교에 입학했다. 대구의 공장 창고 같은 곳에서 긴 의자를 두고 강의를 들었다. 그때는 공부할 환경도 아니었고 하숙집마저도 형편 없었다. 동아리 같은 것도 없었고, 여학생은 졸업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다시 신입생이 된다면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지금 학교는 달라진 정도를 넘어 천지가 개벽한 정도다.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전쟁 중 2학년 때 서울로 왔다. 동기생들도 전쟁에 많이 나가 있었고 공부할 환경도 아니었다. 상과의 김효록 교수님은 공부할 여건이 아니지만 영어공부 하나만은 해가지고 나가라고 하셨다. 전교에 여학생은 경제, 법과, 상과에 3명 뿐이었고 경영학과에서는 내가 1호였다. 여학생이 한 명이니 제일 앞에 앉았고 화장실도 없었다. 2학년 때 시골 남자아이들이 많았는데 여학생을 너무 놀려서 여자대학으로 전학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김순식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 시간에 1시간을 신사도에 대해 강의를 하셨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안 그러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 교수님께도 감사하다. 끝까지 졸업하기를 아주 잘했다.중국어 교수님은 유학도 가고 공부를 더 해보기를 권했지만 한국은행에 취업했다. 당시 직장을 들어가기 힘들었다. 고대를 나왔기 때문에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었고 모교에 고맙고 만족한다. 무사히 4년 졸업해서 좋은 직장을 가... [2020-03-18] (Hit:130)

구교가이든 신교가이든, 고대인은 언제나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한다
모교 홈페이지의 구교가 악보에 숫자보와 차이나는 부분을 굵은선으로 표시했다. ①은 리듬의 빔(beam, 음표 꼬리끼리 연결한 선)을 분리하고, ②는 두 음 머리에 이음줄을 표시하고, ③은 못갖춘마디 서식에 맞게 4분쉼표를 삭제하면 해결되는 단순한 기보법 오류이다.고 김덕은(보전상과27회) 교우의 아들 김고영 교우가 기증한 자료 중 하나인 숫자보 구교가 필사본(아래 사진)을 류경선 교수가 현대 악보로 복원했다. 지면상 가사는 1절만 게재.정치과 53학번 제재형 교우(왼쪽 사진), 법학과 54학번 오세윤(왼쪽부터), 김용선, 이원규, 이장섭 교우가 구교가를 부르고 있다. 두 사진 모두 동영상 캡처.류경선 모교 교수1955년,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모교는 당시 교색(校色), 교기(校旗), 교장(校章)을 제정하고 조지훈 작사와 윤이상 작곡으로 교가(校歌)도 새로 개정했다. 그때까지 모교는 이광수 작사 김영환 작곡의 보성전문학교 시절의 교가(이하 구교가)를 불러왔다. 구교가는 1923년 경 개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초고(礎稿)에 관련한 자료들은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교우회보 편집국이 숫자보로 기록된 구교가 악보를 입수하여 복원작업을 의뢰한 것에 감사를 표한다.숫자보의 현대 악보로의 복원에 관한 간단한 원리는 지난 1월호 5면에 밝혔기에 교우회로부터 받은 숫자보 구교가와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된 구교가의 차이점을 먼저 말하고 이어 이 구교가 악보가 만들어질 때 이미 가지고 있던 기보상의 오류를 언급하고자 한다. 좌측 상단 악보의 셋째와 넷째 단에 굵은 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숫자보를 복원하였을 때 음높이가 다른 부분이며 마지막 단의 굵은선 표시 부분은 음높이와 리듬이 모두 다른 부분이다. 확인을 위하여 숫자보도 함께 게재하였다. 같은 악보에 얇은 선으로 표시된 ①~③의 총 6개의 ... [2020-02-18](Hit:257)

이비인후과 분야 임상 및 기초학문 연구 선도
수상소감 부탁드린다연구자는 누구나 도전하는 정신을 갖고 연구에 임할 것입니다. 항상 연구테마와 방법을 경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노력과 이에 따른 역량도 필요합니다. 임상의사와 기초학문을 병행하면서 연구해온 저의 시간을 교우회 회장님, 학교 총장님 그리고 학장님이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아가 교우들에게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연구 주제에 대해 소개해 달라저는 이비인후과 환자 중 주로 코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축농증이라 알려진 만성 부비동염이나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많습니다. 이러한 질환의 근본적인 발생원인을 규명해나갈수록 매우 복잡한 인과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크게 면역알레르기의 병태생리입 니다. 임상의사로서 비염환자를 치료할 때, 증상의 경중 여부에 따라 치료의 방법이 달라집니다. 특히 항원에 대한 회피요법이나 약물치료로도 증상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면역체계가 원래 기능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이것이 제 연구분야입니다.임상의사이면서, 기초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임상의사로서 환자들의 치료를 돕고, 치료 과정에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또한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아가며 그동안 발표된 수많은 논문들을 참고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수십년 쌓이면서 자연스레 최신 연구동향과 지식들을 습득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다시 환자들 치료에 이용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모교 의과대학의 연구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처음 전임 강사로 일하게 됐을 당시, 연구환경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국내 대학 대부분의 사정이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교 의대를 돌아보면 2000년 초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이전에는 기초연구를 하려고 각 과별로 실험장비를... [2020-01-20](Hit:155)

폭 넓은 연구로 유기반도체소재 분야 개척
수상소감 부탁드린다교우회 학술상 제7회 수상자로 선정되어 영광으로 생각합 니다. 먼저 33만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결과는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불철주야 연구에 임한 모든 대학 원생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학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중점 연구 내용을 소개해 달라저는 화학을 기반으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1984년부터 고분자를 전기·전자 분야에 활용하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 특수 고분자 분야는 우리나라에서 연구 불모지였습니다.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최초로 압전성 소재를 개발했고 1990년도 초반부터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소재를 본격적으로 연구했습니다.초창기에는 LCD 관련 소재 연구를 진행했고, 최근에는 유기재료를 활용한 OLED 관련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특별히 고분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사람이 일어나서 잘 때까지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고분자 입니다. 의복부터 음식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아주 다양합니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질이라 느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교의 연구 환경과 연구 수준은 어떤가?학교에서는 연구 활동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교내 학술연구활동지원사업’을 통해 연구교원을 위한 인건비부터 부설 연구기관 지원사업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연구비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공동 실험실도 잘갖춰져 있습니다. 고가 기자재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환경적인 면에서 좋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있겠습니다.우수 연구인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몇 년간 매우 우수한 교수들이 모교에 초빙돼 많은 집단 연구를 수주하게 됐고, 그를 통해 우수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초과학 연구가 발전하려면?오랜 시간 동안 연구자가... [2020-01-20](Hit:194)

인적자본 연구로 세계 경제학 발전에 큰 기여
수상 소감을 부탁드린다좋은 상을 주신 33만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모교 경제학 과를 졸업하고 다시 모교 경제학과 교수로 와서 좋은 상을 받게 돼 감회가 남다릅니다. 연구와 교육에 충실하게 임해서 교우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어떤 분야를 연구했나저는 경제 성장에 있어서 인적자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생산성을 발휘해 경제성장에 기여를 한다는 점은 누구나 예측 가능합니다. 저는 이 기여도를 학술적인 방법으로 수치화해서 다른 요인들과 구체적으로 비교할수 있도록 했습니다.국내외에서 다양한 일들을 했는데 소개해달라아시아개발은행 수석경제학자로 있으면서 여러 나라의 경제를 예측하고 정책을 권고하는 일을 했습니다. 국제통화 기금과 유엔개발계획에서 근무할 때는 성장과 발전에 있어 각 국가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2011년부터 2년간 청와대에서 국제경제보좌관에 있을 때는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 측 정상대리인 으로 참가해 다른 나라들과 교섭하는 일을 수행했습니다.모교 아시아문제연구소장도 했었다아시아문제연구소장(이하 ‘아연’)으로 6년을 일했습니다.김병철 전 총장님께서 아연이 더 국제적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하시어, 새롭게 시작한 것이 북한연구센터를 만들고 북한과 관련된 국제회의도 많이 한 것입니다. 2017년이 아연 60주년이었는데 1년동안 아연에 대해 정리해《아연60년사》를 출간했습니다.2020년 경제전망은 어떻게 보나각 국가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대외 환경이 안 좋아지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많이 커졌습니다. 한국 경제는 한창 고속성장을 하던 예전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경제정책의 부작용이 과거 보다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따라서 방향성이 맞더... [2020-01-20](Hit:180)

교우·재학생, 음악으로 어우러져 화합의 장 열다
무대가 끝난 후 전 출연진이 어깨동무를 하고 ‘뱃노래’를 제창하고 있다(위). 구자열 교우회장과 크림슨86밴드 보컬 고유석 교우가 합동공연을 펼치고 있다(아래). 제1회 교우회장 초청 KU 록밴드 페스티벌(준비위원장=장치평·경영79)이 지난달 15일 모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작년 성공적으로 개최된 제1회 교우연합밴드 뮤직페스티벌에 이어 올해 제1회 KU 록밴드 페스티벌은 구자열 교우회장이 정식으로 교우들과 재학생을 초청해 새로이 탄생했다. 이날 행사의 음악, 무대 총감독은 최희선 감독이 맡았다. 81, 83, 84, 85, 86, 87, 의대 히포피언스, 재학생 18학번 크림슨밴드 등 교우·재학생이 무대에 올랐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학창 시절 캠퍼스에서의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무대에 오른 선후배를 응원하러 500여 명이 모교를 찾았다. 구자열 교우회장, 정진택 총장, 이홍식 의과대학장, 송혁기 대외협력처장, 장경호 교우회 사무총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제1회 교우회장 초청 KU 록밴드 페스티벌 장치평 준비위원장은 “개최에 도움을 주신 교우회장님과 각 지역 교우회, 단과대 교우회에 감사드린다”며 “모든 밴드가 열심히 준비했으니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첫 무대는 18학번 재학생으로 이루어진 크림슨밴드(리더=김진수·통계)가 장식했다. 크림슨밴드의 리더인 김진수 학생은 “멋진 선배님들의 멋진 공연을 축하드리고 함께 연주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하며 무대를 시작했다. 크림슨밴드는 ‘Carry on wayward son’, 넥스트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등을 열창해 분위기를 돋웠다.재학생이 살린 분위기를 이어 밴드 중 최고령자인 81학번 밴드 라이브 타이거 81(리더=박성융·경영)의 무대가 이어졌다. 세컨드 기타와 보컬을 맡은 박주(사회) 교우는... [2019-12-17](Hit: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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