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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회장 고태연(영문84) 교우오랜 시간 대한민국과 베트남 양국 간의 교두보 역할을 해온 고태연 교우는, 올해 1월부터 주베트남 한 국상공인연합회(KOCHAM) 제16대 회장을 맡고 있다. 전 MBC 아나운서국장이자 엠비씨플레이비·키 자니아 대표인 강재형(영문82) 교우가 그를 현지에서 직접 인터뷰했다. 베트남, 한국 기업의 새로운 무대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기업인들의 영향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고태연 교우는 “2024년 기준으로 약 1만 개의 한국 기업이 활동 중이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베트남 GDP의 약 19%를 차지하며, 한국의 누적 투자액은 874억 달러로 전체 FDI의 약 18%를 차지해 ‘넘버 1’이다. 삼성은 224억 달러, LG는 80억 달러를 투자해 총 300억 달러를 넘는다. GDP 비중으로 보면 약 6~7%에 해당한다. 수교한 지 33년이 됐으니, 매년 평균 300개 정도의 기업이 진출한 셈” 이라고 설명했다.베트남은 지역에 따라 경제권이 다르다. 남쪽의 호찌민은 경제 도시, 북 쪽의 하노이는 정치 도시로 구분된다. 고 교우는 “한국 기업의 약 60%는 호찌민 지역에, 35%는 북부 지역에, 나머지 5%는 다낭을 중심으로 중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초기에는 봉제 산업부터 진출했지만, 현재는 삼성과 LG를 중심으로 전기·전자 분야가 가 장 활발하다”고 말했다.이어 “현재 중점 협력 분야는 인프라와 친환경 에너지다. 인프라 분야에서는 남북 도시철도 사업이 진행 중이며,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한국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지 기업의 든든한 버팀목, 코참고 교우가 회장으로 있는 코참은 여섯 곳의 지역 거점을 두고 있다. 지역 코참은 주로 제조기업 중심이며, 회원사의 권익 보호와 불편 사항 해소, 대 정부 활동을 수행한다. 그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다양한 수익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층이 베트남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국 스타트업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네트워킹 강화 활동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베트남 정부와 한국 기업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했던 사례도 떠올렸다. “베트남 총리와 만나 한국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제기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문제는 해결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들이 많이 제조하는 전자담배에 대해 베트남 보건부가 생산을 금지했는데, 수출 전용 조건으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부가가치세 환급 지연 문제도 거론해 적시에 환급받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고 회상했다.해외시장, ‘아웃사이드 인’으로 공략하라현지에서 새로운 개척지를 일군 고 태연 교우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모교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전했다. 그는 “‘아웃사이드 인’은 고객의 니즈와 시장의 변화를 외부에서 바라보고 출발하는 방식이며, ‘인사이드 아웃’은 기업 내부의 역량과 강점을 바탕으로 시장에 기회를 만들어가는 접근”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안암의 정신’으로 미래를 설계할 때는 ‘인사이드 아웃’보다는 ‘아웃사이드 인’의 관점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해외에서 성공할 방법을 찾고, 한국 경제를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큰 꿈을 가진다면, 세상을 훨씬 넓게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확장하길 바란다. 꿈을 키우되, 그 꿈이 국내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영토를 확장하려면 피를 흘려야 하지만, 영역을 확장하려면 아이디어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고태연 교우는…1990년 LG전자(당시 금성사)에 입사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다. 수교 직후인 1994년부터 베트남에서 시장 개척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부터 2017년까지 LG전자 베트남 법인장을 역임했다. 2018년부터 희성전자 베트남 법인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리 정지은 선임기자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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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그룹 회장 조수연(농화학77) 교우개교 120주년이라는 한 번뿐인 타이밍, 촉박한 시간, 예측 불가의 날씨, 티켓 판매라는 현실의 벽… 그 모든 고비를 뚫고 첫 번째 교우 응원제 ‘하이입실렌티’를 성공적으로 이끈 조수연 FM그룹 회장을 만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열정의 원천을 물었다.응원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모교 교가 영상은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마무리된다. 정기고연전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장발의 응원단원, 그가 바로 조수연 회장이다. “응원 폼 을 보니 고대가 지고 있을 때네요. 선 배들이 꼭 그럴 때 나를 단상에 올리더라고(웃음).” 새내기 응원단 후배들에게 그는 말했다. “응원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 겨울방학에 텅텅 빈 대강당에서 홀로 땀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그를 본 故 곽충식(농학76) 교우가 혀를 내둘렀다. “야, 넌 꼭 응원단장 해야겠다.” 그 말대로 그는 1980년 응원단장이 됐다. “고대 응원은 전통이자 문화죠. 새 응원곡이 나오면 전국이 다 따라 불렀어요. 우리 응원단이 육사·해사·공사 체육제나 타 대학 축제에 가서 직접 동작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기업 체육대회나 프로야구 응원단에도 영향을 미쳤다니, 고려대와 연세대가 전국에 응원문화를 전파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교에 입학하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뭘 해요? 응원이잖아요. 응원을 통해서 ‘고대 정신’을 배워왔던 거예요.” 이처럼 응원에 살고 응원에 죽던 그가 ‘하이입실렌티’를 맡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연세대에는 ‘조수연’이 없다“졸업생 입실렌티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나왔어요. 모교 개교 120주년인데, 올해도 못 하면 영영 못하겠다 싶었죠.”그는 올해 6월, 단 석 달의 준비 기간으로 총대를 멨다. 시간도 촉박한데, 점찍어둔 녹지운동장마저 예약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승명호 교우회장의 도움으로 고연전 바로 다음 주에 겨우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그러자 초대 가수 섭외가 난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티켓 판매도 주춤했다. “첫날은 불티나게 팔리더니 만 명 언저리에서 멈춘 거예요. 행사 3주 전인데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때 또 한 번 교우회가 힘을 보탰다. “회장님이 직접 기업마다 연락해서 단체 예매를 도와주셨어요. 열흘 만에 4천 장이 추가로 팔렸습니다. 총 1만6천 명 정도 됐는데, 안전 문제까지 고려하면 딱 맞는 인원이었죠.” 그는 직원들에게 재차 강조했다. 돈 아끼지 말고, FM이 가진 모든 기술을 보여주자고.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으나 이번엔 날씨가 말썽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비 소식이 들려온 것. “비 오면 끝이거든요. 드론도, 불꽃 놀이도 못 하잖아요. 진짜 피가 마르더라고요.” 그렇게 노심초사하던 그에게, 승명호 교우회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보니 맑음이라네.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네.’“본인도 모르실 거예요. 그 메시지가 얼마나 감동을 줬는지. 나 혼자 힘든 줄 알았는데 같이 마음 졸이고 계셨단 걸 그때 알았어요. 진짜 ‘잘 해봐야 겠다’ 싶었습니다.”그간의 마음고생에 보답하듯, 9월 27일 모교 녹지운동장의 하늘은 새파랬다. 재학생과 교우가 어깨동무를 하고 시대를 뛰어넘어 하나가 됐다. 응원과 기술, 감동이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를 본 연대 응원단이 긴급회의를 소집했을 정도. 그러자 한 교우가 그러더란다. “해도 안 될 거다. 연대엔 조수연이 없으니까.”내년에도 열릴까?우리에게 남은 궁금증은 하나다. 내년에도 하이입실렌티가 열릴까? 조수연 회장이 빙긋 웃었다. “보는 사람마다 물어봐요. 적자 많이 봤겠다고. 아니라고 거짓말은 못 하겠고 ‘감당할 수준’이라고 정리하겠습니다. 내년에 또 열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누가 하든 하이입실렌티의 전통이 계속됐으면 합니다.” 조수연 교우는…모교 응원단장을 거쳐 해병대 특수수색대에서 복무한 뒤, 1989년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솔루션 기업 ‘에프엠커뮤니케이션즈’를 창업했다. 국선도를 수련하며 '멘탈 케어'에 관심을 갖고 콘텐츠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이현화 선임기자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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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우리아이들병원 성장내분비센터 교수이기형(의학79) 교우“모교에서 여러 보직을 맡았는데,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아직도 고대는 내 사랑.고대는 제 마음의 고향 같은존재입니다.아마 죽을 때까지 고려대와고려대병원은 제 정신적 지주이자고향으로 남을 겁니다.고려대는 ‘민족의 대학’이고,민족에 대한 박애 정신이 바로고려대 의대의 핵심입니다.애정에서 비롯된 따뜻한 진료,약자를 위한 치료가 그 정신입니다.”소아내분비’를 전공하신 이유가 있을까요?“수술이 필요한 진료과는 제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과나 정신과, 소아과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의료 봉사 중 소아 환자를 만나면서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더군요.소아청소년과에서 소아내분비는 가장 후발주자입니다. 과거에는 소아당뇨나 갑상선 질환이 흔하지 않았고, 성장 문제나 조기 사춘기 같은 질환 역시 큰 이슈가 아니었죠. 하지만 사회와 경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단기적인 생존 문제뿐 아니라 아이들의 장기적인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해졌습니다. 요즘은 소아내분비 분야가 각광받고 있어요.”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 것 같아요.“소아내분비 진료가 환자를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추적하다 보니 그 아이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될 때가 있어요. 소아당뇨를 앓았던 한 여자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발병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나, 중학생이었는데 처음엔 철이 없어서 말을 잘 안 들었어요(웃음). 그러다 점차 조절이 잘 되면서 아버님과도 친해졌고,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제가 그 환자의 결혼식 주례도 맡았습니다.”어린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으시겠어요.“아무래도 아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영아·유소아·학령기·청소년기까지 다양한 발달 단계가 있고, 단계별로 몸과 마음, 사고의 변화가 다르게 일어나요. 그래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다양한 발달 단계에 따른 아이들의 변화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또 같은 진단이나 설명이라도 나이에 따라, 특히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죠.”성장클리닉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은데, 가정에서 어떻게 관리해 주면 좋을까요?“소아 성장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인간에게 두 번의 급성장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생 후부터 2세까지, 그리고 사춘기 시기가 이에 해당하죠. 각자의 성장 곡선과 단계,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소아 성장 전문 의사의 주기적이고 정기적인 진료가 매우 중요합니다.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성장 과정이에요. 부모 모두 키가 작은데 아이만 키가 크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초반에 너무 빨리 성장하고 이후 성장이 멈춰 버리는 경우도 있거든요.”오랜 세월 의학계에 몸담으시면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다면요?“요즘은 인공지능(AI)의 시대입니다. 의학에서도 AI의 도입은 피할 수 없죠. 진단 검사나 엑스레이 판독은 AI가 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어요. ‘어떻게’ 활용해야 환자에게 이득이 될지는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또 원격진료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의사들이 많이 반대하지만, 경우에 따라 도입이 가능하고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병원에 가기 쉽지 않은 어르신이나 반복 처방이 필요한 동일 질환의 경우에는 원격진료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교우들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각 대학에서 의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모교에서는 의료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합니다. 모교 의대는 많이 발전했지만, 그에 비해 저평가된 부분이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우 여러분께서 모교 의료원이 얼마나 훌륭하게 자리매김했는지 알아 주시고,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관심을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기형 교우는…소아내분비학의 권위자로 2022년 국회의장 공로장을 수상했다. 제27대 고대안암병원장, 제14대 고려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북우리아이들병원 소아내분비센터에 재직 중이다.조영서 기자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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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가운데) 화우나노텍 대표이사가 직원들과 논의를 하고있다.화우나노텍 대표이사유영호(철학79) 교우기후변화 대응이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모교 출신 기업가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노버블 기술이 환경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유영호 화우나노텍 대표이사는 “7년간의 연구 끝에 세계 유일의 나노버블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며 “이기술로 이산화탄소 포집부터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말했다.나노미터 크기 초미세 기포로 화학반응 혁신나노버블은 물속에 존재하는 나노 크기(10⁻⁹미터)의 초미세 기포로, 일반 기포와 달리 물속에 오래 체류하여 화학적 촉매제 역할을 한다. 유 대표는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분자 크기의 표면적으로 기존 화학공정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전 세계적으로 나노버블 관련 논문이 수천 편 발표되고 관련 기업들도 상당수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나노버블보다 1,000배 큰 마이크로버블만 생산해왔다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었다.유 대표가 개발한 ‘표면마찰 원리’는 액체와 고체의 자연적 마찰을 이용해 물이 나노튜브를 통과할 때 나노버블을 실시간 대량 생성하는 기술이다. 화우나노텍의 나노버블은 지름 평균 150nm 이하, 1cc당 최대 56억 개까지 생산 가능하며 모든 산업 혁신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정용부터 산업용까지 광범위한 활용나노버블 기술의 활용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가정용으로는 샤워기와 세탁기에 적용되어 피부질환 개선과 세제 사용량 80% 절약 효과를 보이고 있다.특히 산업 분야에서는 '기후테크' 솔루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화우나노텍이 보유한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은 이산화탄소 포집 및 분리 비용을 기존 업체 대비 1/10~1/20로 줄였다. 또한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콘크리트 제조 기술로는 콘크리트 강도를 14% 높이면서 시멘트 사용량을 5% 이상 절감할 수 있다.유 대표는 "CCUS 관련 분야는 지구온난화 현상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탄소배출권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세계 최초 나노버블 대량생산 성공검도부에서 배운 정신력으로 사업 재건기복 많은 사업가 인생, 고대 검도부가 재기의 원동력유 대표의 사업가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1985년 ROTC 제대 후 대한교육보험에서 근무하다 1989년 화우기계를 창업, 국내 최초 CNC 조각기를 개발했다. 이후 LED 직접 조명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화우테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며 시가총액 7,000억원 기업으로 성장시켰다.하지만 2008년 리먼 사태로 사업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유 대표는 자신의 사업 철학과 추진력의 근원을 모교 검도부 시절로 돌렸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시작한 검도 수련이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며 “3학년 검도부 주장 시절 사범님과 상의해 부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도 제 사업 철학”이라고 말했다.당시 제정한 부훈은 '양진수정(養眞守正·진리를 배양하고 정의를 지킨다)'과 '검심일여(劍心一如·칼과 마음은 하나)'였다. 유 대표는 "대학 시절의 열정이 아직도 몸속에 흐르고 있어 사업에 열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회상했다.‘화우’라는 이름에 담긴 철학에 대해 묻자, 유 대표는 “‘화우’(和宇)는 ‘우주를 화애롭게 만들자’는 뜻이다. 좌우명이 ‘애민정신’이고, 이를 ‘화우’로 표현했고, 회사 이름을 ‘화우’로 작명하게 되었다”라며 “'애민 정신'을 가진 훌륭한 정치가를 배출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좌절하지 않고 2019년 나노버블 기술로 화우나노텍을 재창업했다”며 “올해를 전환점으로 내년부터 급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유영호 교우는 “전 세계 모든 산업이 화학공정에서 물이나 액체, 기체를 사용하는데, 이를 나노버블화하면 일대 혁신이 발생할 것”이라며 “나노버블이 모든 산업에 혁신을 불어넣을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유영호 교우는…1985년 ROTC 제대 후 CNC 조각기·LED 직접조명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국내 코스닥 상장을 이끈 기업가로, 화우나노텍을 창립해 나노버블 기술로 최근 CES 2025 혁신상을 수상했다.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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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코트에서 ‘에어본(Air-borne)’으로 불리며 농구대잔치 시절 고려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희철(신방92) 감독. SK 나이츠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이자 팀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는 이제 지도자로서 KBL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WHO 전희철, 52세, 농구대잔치 시절 고려대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이자, 현재 서울 SK 나이츠 감독NOW 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하고 싶은 농구 지도자NEXT 예전 운영팀장 경험을 살려 감독직 이후 농구 행정 분야에 기여하고자 하는 게 꿈KBL 명장이 그리는 ‘큰 그림’감독 데뷔 시즌에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며 농구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한 전희철 감독. 2024–2025 시즌에는 두 번째 감독상을 수상하며 지도력을 재차 입증했다. “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승패를 떠나 우리 경기를 보며 누군가 감동하고, 좋은 팀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감독으로서 오랜 시간 코트를 지키고 싶다는 그는, 미래에 대한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감독직을 내려놓게 되면 행정가로서 농구계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과거 SK 나이츠 운영팀장으로 일했던 경험 덕분에 행정 업무의 재미를 알게됐습니다. KBL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도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붉은 단상 위, 잊지 못할 고연전의 기억모교 사랑이 남다른 전 감독의 심장에는 여전히 고려대의 붉은 피가 뜨겁게 흐른다.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자, 그는 뼈아픈 패배를 먼저 떠올렸다. 1995년 2월 1일,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최종전.“터치아웃 오심 때문에 연세대에 패했던 경기예요. 경기 종료 직전, 분명 연대 선수를 맞고 나간 공이었는데 심판의 오심으로 공격권이 연대로 넘어갔죠. 곧이어 서장훈 선수가 버저비터를 넣어 경기를 내줬습니다.”그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담담히 말했지만, 당시 느꼈던 분함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정기전에 대해선 “정규리그와 달리 승패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기”라고 표현했다.“이기면 교우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응원가를 부르며 환호를 받고 뒤풀이에서 학우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지면 합숙소에 숨어 있어야 했어요. 당시 합숙소 앞에서 술 취한 학생들이 지나가며 욕을 하거나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그럼에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역시 정기전. “4학년 때 마지막 정기전에서 승리했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주장으로서 단상에 올라 교우들과 함께 응원가를 불렀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후배들이 흘린 땀과 깨달음, 밝은 미래의 빛“고려대는 원래 전통적으로 정신력이 강한 팀입니다. 이제는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선수들이 많죠.”고연전 100주년을 맞은 지금, 후배들에게 그는 이렇게 당부한다.“정기전은 이기기 위해 나가는 경기입니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승패에 연연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어 ‘준비 과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지나온 시간이 헛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준비했던 과정에서 흘린 땀과 노력, 그리고 얻은 깨달음이 여러분의 미래를 밝힐 겁니다.”그러면서 전 감독은 당장의 경기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워가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을 남겼다.“고연전 100주년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뜻깊은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고대인들과 함께 성장하며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더 큰 의미를 지닌 존재로 우뚝 서길 바랍니다.”선수 경력1996~2002 동양제과 농구단- 대구 동양 오리온스2002~2003 전주 KCC 이지스2003~2008 서울 SK 나이츠지도자 경력2008~2009 서울 SK 나이츠 2군 코치2009~2010 서울 SK 나이츠2011~2021 서울 SK 나이츠 수석 코치2021~현재 서울 SK 나이츠박국경 기자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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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의 별에서, 그라운드를 읽는 눈으로. 축구에 미치지 않고서는 닿을 수 없는 길 위에서, 박주영은 또 다른 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WHO 박주영, 39세, 전 국가대표 스트라이커·현 울산 HD 코치NOW 선수들에게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코치 1년 차NEXT 코치로서의 성장,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함께 완성해 나가는 여정. 당장은 이번 시즌 울산 HD의 성공에 집중하는 중.박주영, 냉탕과 온탕 사이“MBTI 테스트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MBTI 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순 ‘시크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떠올랐지만, 기실 박주영의 커리어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따뜻한 태도로 채워져 있다. 경기장에서 끝까지 남아 팬서비스를 하고, 후배들에게는 ‘선수로서는 아이돌, 인간으로서는 닮고픈 사람’이라 칭송받는 남자. 정작 본인은 “함께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과 경기장까지 응원 오시는 분들께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일축하며, 자신만 특별히 주목받는 게 쑥스럽다고 웃었다. 애틋한 그 이름, 고려대학교‘박주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04년 잠실벌, 새내기였던 나의 첫 고연전을 붉은 승리로 물들인 영웅. 당시 1학년이 선발로 나선 것도 대단했지만,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된 터라 고연전 출전은 상당한 부담이었으리라. 모두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지켜보는 상황에서 그는 문자 그대로 ‘클래스가 다름’을 증명했다. “그렇게 큰 라이벌리를 느낀 건 인생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축구에서 2-0으로 이기면서 종합 전적 3-2로 최종 승리한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그가 2004년 고연전을 유달리 아끼는 이유는 또 있다. “무엇보다 제 인생을 바꾼 날이기도 했죠. 그날 경기가 끝나고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모교 1년 선배와 7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고3 시절, 우연히 TV에서 본 고대 새내기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고대 입학을 결심했고 거짓말처럼 그 여인을 만났다. 그라운드의 승리가 인생의 사랑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정기 고연전 시기가 다가오면 지금도 설레고, 강한 승부욕이 떠오릅니다.” 그는 모교 선후배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2023년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모교에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은사님들, 동료 선후배, 학교가 저를 품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불광불급(不狂不及), 선수부터 코치까지국가대표 68경기 24골, 프로 입단 첫 해 32경기 18골,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바꾼 톱 스트라이커가 되기까지, 박주영은 그야말로 축구에 살고 죽는 소년이었다. 고교 시절 해트트릭을 하고도 패배가 쓰라려 훈련장에서 밤을 새운 일화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로 요약된다.“지금보다 더 축구에 미쳐 있었을 거예요. 세 골을 넣고도 졌다면 네 골을 넣어야죠. 그게 원동력이었습니다.”우리는 박주영을 대한민국 축구 고질병인 ‘골 결정력’의 오랜 갈증을 해갈한 영웅으로 기억한다.“골대 앞에서 침착해야 하는 건 공격수라면 기본입니다. 개인적으로 박스에 머물기보다는 다양한 유형의 플레이를 하고자 했고, 그러다 보니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육각형 플레이어’가 되고자 했기에, 선수 시절 ‘감독 입장에서 전술적으로 편안한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게 아닐까.박주영의 두 번째 하프타임지난해 선수로서 은퇴한 박주영은 현재 울산 HD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기술과 실력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것이지만, 태도는 인생 전체를 바꿉니다.”20대로 돌아간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을까. 그는 잠시 생각 끝에 말했다.“땀과 시간으로 기회를 만들라. 나머지는 운과 하늘의 뜻이다.” 이말은 모교 후배들에게도 건네는 메시지였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길. ‘승리를 위한 기회’를 만들고, 그날의 운까지 쟁취하십시오.”마지막으로 팬과 교우들에게는 담백한 인사를 남겼다. “어떤 방식으로든 저를 기억해 주신다면 행복합니다. 가능하다면, 축구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세요.”그라운드 위 천재에서 지도자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박주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선수 경력2005~2008 FC 서울2008~2011 AS 모나코 FC2011~2014 아스널 FC2014~2015 알샤바브 FC2015~2021 FC 서울2022~2024 울산 HD FC국가대표 경력 (68경기 24골)2003 FIFA U-20 월드컵 16강2004 AFC U-19 챔피언십 우승2006 독일월드컵 17위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2010 남아공월드컵 15위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이현화 선임기자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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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월례강좌 회장·운영위원장 윤은기(심리71) 교우40년 이어온 원동력은 자긍심과 애교심다양한 강좌로 세대별·지역별 협업 고취배움의 길에 끝이 있으랴. 매월 교우들에게 특별한 배움을 선사해 온 ‘고대월례강좌’가 올해로 벌써 40주년을 맞았다. 평생 교육계에 종사한 윤은기 고대월례강좌 회장은 ‘고대월례강좌야말로 평생교육의 세계적 모델’이라며 당당하게 자부심을 드러냈다.- 고대월례강좌는 어떻게 시작됐나요?“1985년 당시 장덕진 교우회장님의 백년대계였지요. 모교가 발전하려면 교우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단결해야 하는데, 고대월례강좌만큼 좋은 모델은 없습니다. 교우도 성장하고 모교도 발전하며 그 힘으로 사회에도 기여하는 창조적 아카데미입니다.또한 여성 교우들의 참여가 대폭 늘어난 것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자유·정의·진리의 정신에 입각해 이기수 전임회장님께서 여성 교우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셨고, 그 결과 월례강좌가 더욱 활성화됐으며 분위기도 한층 유쾌해졌습니다.”- 고대월례강좌를 ‘평생교육의 세계적 모델’이라고 강조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저는 평생 교육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대학 총장 경험도 있고, 중앙공무원교육원장도 역임했습니다.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습니다. 인간은 학습하고 교육을 받는 동안 계속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도 다 교육 덕분입니다. 평균수명이 늘고 있는 이 시대에 평생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겠습니까? 젊어서는 학교에서 배우고, 나이 들어서는 교우회가 개설한 월례강좌에서 공부하고…. 이렇게 활성화된 교우회 강좌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만의 독보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4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첫째, 교우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입니다. 매달 참석자들에게 오찬을 제공하고 지역 방문 행사도 교우회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교우회관이 새롭게 리모델링되면서 환경이 더욱 쾌적해졌습니다.둘째, 애교심입니다. ‘자랑스러운 고대인’이란 자긍심으로 많은 교우들이 궂은 날씨에도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고 계십니다. 함께 교가를 부르고 학교 발전상을 듣고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매월 큰 기쁨입니다.셋째, 최고의 연사 선정입니다. 매번 대한민국에서 각 분야 최고의 연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실제 강의를 듣는 모습을 보시면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젊은이들의 축제가 부럽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를 위해 회장단, 운영위원, 집행부가 힘을 모아 봉사하고 있습니다.”- 정치·경제 중심이었던 강연 주제가 최근에는 문화예술로 확대됐다고 들었습니다.“정치와 경제는 거대담론입니다. 큰 그림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다양성이 커지면서 새로운 학습 요구가 생기고 있습니다. 인문학·문화예술·건강·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명사를 초청하니 교우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주제를 발굴해 나가려 합니다.”- 그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강연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한승수 전 국무총리, 김황식 전 국무총리, 모교 총장, 연세대 총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진 전 외교부 장관 등 국가 지도자들의 강의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감동했던 김형석 교수님의 강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허영만 화백, 이상봉 디자이너, 윤형주 가수의 강의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 고대월례강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인가요?“제4차산업혁명도 막을 내렸습니다. 인공지능혁명, 인간과 로봇의 공존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기회와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월례강좌는 새로운 실용 기술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려 합니다.세대별 협업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재 월례강좌를 듣는 교우 중에는 부모자식 정도의 나이 차가 나는 사례도 많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며 공감할 수 있는 강좌를 꾸리고, 소통을 활성화해 세대 협업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이 밖에도 지방 방문행사 시 지역교우회와 더욱 긴밀하게 협업할 계획입니다.” 이현화 선임기자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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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문제연구원 일본연구센터장 이형식(동양사91) 교수 역사 문제, 세대 교류, 국제 질서 속 선택의 갈림길냉전의 유산 위에서 다시 쓰는 한일관계의 미래광복 80주년·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을 맞은 올해, 한일관계는 중대한 전환 점에 와 있다. 일본사 전문가 이형식 교 수와 함께 국제 질서의 재편 속에서 한 일 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었다.- 광복 80주년·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이 갖는 역사적 함의는?“한일협정으로 구축된 1965년 체제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새로운 한일관계 를 수립할 차례입니다. 사실 한일관계는 미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 독도 문제도 그렇습니다. 한일협정 체결 막바지에 독도를 두고 협정이 파탄날 만큼 격렬한 대립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미국이 개입했었죠.이전의 샌프란시스코 체제부터, 결국 국제 질서는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점점 냉전이 공고해지면서 일본에게 유리하게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맺었죠. 그러면서 영토 문제도 양국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치된 것입니다. 이제는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도 힘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고 있고, 이 속에서 한일 양국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는?“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누락된 세 가지 문제가 바로 위안부, 사할린 한인 교포 그리고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인데, 이 중 위안부 문제가 아직 남았습니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계실 때 해결하는 것이 좋지만, 대법원 판례 등으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개인 청구권 문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인데, 이전 정권에서는 외교와 타협 없이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이제는 정치적인 해결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일 간 역사 문제는? “주목받는 현안으로는 장생 탄광 사건 이 있습니다. 1942년에 우베시의 해저 탄광이 붕괴되며 생매장된 183명의 희생자 중 조선인이 136명입니다. 탄광 입구를 봉쇄한 채 80년이 넘게 방치됐 고, 사망자가 136명에 달하니 군함도보다도 심각하죠. 사망자 명부도 확인 된 만큼 위령과 피해 보상, 입구 개방 문제 등을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1945년 우키시마 선이 침몰하며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 수백 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니가타의 사도 광산 등 아픈 역사와, 아직 해결 되지 않은 지뢰 같은 문제들이 정말 많습니다. 2023년은 관동대지진·대학살 100주기였지만, 일본의 공식적 사과도 없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세대별 인식은?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한국 의 높아진 위상’과 수평적·대칭적으로 변화된 한일 관계와 관련이 깊습니다. 1인당 국가 예산 투입 규모, 임금, 생활 수준 등에서 한국은 지난 6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일본은 ‘잃어버린 20~30년’을 거치며 상대적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또 G7 초청 등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일본 기성 세대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기 도 합니다. 반면 일본 청년들은 한국을 문화적 선진국으로 인식하는 만큼 세대가 교체되며 긍정적인 한일 교류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한국 문화의 발전의 두 축인 ‘눈부신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바탕으로 전망을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역시 고도성장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양국의 정권 변화가 미래에 미칠 영향은? “현재 일본은 확고한 지지를 얻을 지도자가 등장하기 어렵고, 앞으로도 정치적 혼란이 반복될 것입니다. 앞날이 불투명하지만, 실용적인 지도자라면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여주겠죠. 또 현재 국제 질서 자체가 한일이 역사 문제로 갈등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합니다. 양국이 동아시아 바깥의 다양한 국제 문제들에 함께 대응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로 나아갈 여지도 많습니다.- 교우분들께 전할 말이 있다면.“일본인의 한국관과 한국인의 일본관 모두 일방적이고 경직된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역사의 지나친 정치화를 경계하고,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볼 줄 알 아야 합니다. 일본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며 여유 있는 시선으로 일본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영서 기자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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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박물관장송완범(사학85) 교우모교 개교 120주년 고려대 박물관 특별전은 단순한 소장품 전시를 넘어 미래 지성의 성장 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하며, 모교 구성원은 물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개방돼 더욱 뜻깊다. 전시를 총괄한 송완범(사학 85) 박물관장을 만나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의미, 그리고 누구도 몰랐던 준비 과정과 박물관이 품을 깊은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 다른 대학 박물관과 고려대박물관을 비교한다면, 우리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고려대박물관의 가장 큰 강점은 단순히 오래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출발 자체에 담긴 정신적 기반에 있습니다. 1934년 국내 대학 최초로 문을 연 우리 박물관은, 전북 고창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평생 모은 재산을 보성전문학교에 기부한 안함평 여사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민속자료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민족의 대학’ 고려대에 기부한 그 뜻은, 박물관이 ‘서민의 삶’과 ‘우리 민족의 뿌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서울대박물관은 국가 기관유물에 많이 의존하고, 연세대는 구석기 유물, 동아대는 전쟁기 부산 집결로 소장품을 형성해 왔습니다. 물론 각 박물관마다 고유의 강점이 있지만, 고려대박물관처럼 ‘민족’과 ‘교육’이라는 정신적 토대를 바탕으로 출발한 경우는 보기 드물어요.또 인촌 김성수 선생의 심미안과 역사적 안목으로 수집된 귀중한 유물들과, 고고학·민속·서화·현대미술·과학기술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소장 자산은 종합문화유산기관으로서 우리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유명 현대 화가들의 귀중한 자료들이 많습니다.“박물관 근현대미술실은 1973년에 개설되었는데요, 1967년 개설된 홍익대 현대미술관(현 홍익대학교박물관)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현대미술 전시실 중 하나입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미술 전공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작품 수집에 큰 역할을 했던 분이 고려대학교박물관 학예사로 재직했던 이규호 선생님이셨어요. 당시 이규호 선생님은 작가들과 직접 소통하며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작품 수집을 하셨어요. 학교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서, 대부분 정가 대신 사례금 수준의 비용만 드리고 기증 형식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었죠. 그 덕분에 김환기의 <월광>, 이중섭의 <꽃과 노란 어린이>, 박수근의 <복숭아> 등 오늘날에도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중심에 있는 대표작들을 박물관에 들여올 수 있었어요.또 당시 박물관 직원으로 근무하다 이후 박물관 과장을 역임한 윤세영 교수님도 큰 역할을 해주셨어요. 작가들도 작품이 의미 있게 보존되기를 바랐고, 고려대라는 교육기관에 대한 신뢰도 있었던 거죠.지금 고려대박물관은 1,000점이 넘는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리움미술관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와 수준이에요.” - 전시 기간이 끝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나요. “대부분 그렇죠. 이번 특별전은 올해 12월 20일까지 진행되고, 이후 유물들은 보존을 위해 다시 수장고로 들어가게 돼요. 특히 종이, 비단과 같은 작품들은 빛과 습도에 민감해 장기 전시가 어렵고, 일정 기간 노출 후 반드시 휴지기를 가져야 하기에 상설 전시로는 보기 어려워요.특히 <동궐도>는 세로로 긴 비단 그림이라 한 번에 전부 펼쳐 전시하기 어렵고,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현재 원본 일부와 레플리카를 교차 전시하고 있어요. 전체를 감상하려면 전시 기간 중 최소 6번은 방문해야 하죠.- 앞으로 고려대박물관이 나아갈 방향은. “우리 박물관은 단순한 유물 보관소가 아니에요.앞으로 이곳이 단순한 ‘기록의 공간’을 넘어서, 미래 세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우리가 가진 유물의 가치만 잘 구현해도 대학 박물관 중에선 손꼽힐 만한 자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결국 중요한 건, 뭘 보여줄 건지, 어떻게 전달할 건지, 그리고 젊은 세대와 어떻게 연결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에요. 박물관이 변해야 관람객도 다시 찾아오니까요.그런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가려면, 학교와 교우 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응원이 꼭 필요합니다. 유민경 기자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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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작가강용수(철학86) 교우행복은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있어인생의 궤도 위에서 춤추는 별처럼 살아야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원영적 사고’가 유행이다. 아이돌 스타 ‘장원영’의 남다른 긍정적 사고를 말한다. 긍정의 아이콘인 이 아이돌이 최근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어 화제다. 낙관주의 아이돌 스타가 책의 어떤 매력에 염세주의 쇼펜하우어에 빠지게 됐을까. 이 책의 저자 강용수 작가를 만났다.- 아이돌 스타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언급해 인기입니다.“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모 연예인이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추천해 대중들에게 소개됐고, 이후 아이돌 스타가 인기를 띄웠죠. 책은 235쇄까지 찍었고, 46만부가 나갔습니다. 또 중국·대만·베트남·일본 등지에 수출하게 됐죠. 덕분에 어린 학생들까지 철학을 알게 되고, 인문학의 지평이 넓어진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인기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마흔’이라는 어감이 대중에게 꽂힌 듯 합니다. 마흔은 인생의 변곡점입니다. 30대엔 직장도 잡고, 돈도 좀 벌고, 관계도 정립되지만 40대가 되면 방황이 시작됩니다. ‘화산대 위에 집을 짓는다’고 하죠. 외로움이 끝난 것 같았지만 친구, 배우자 등 관계에서 위기가 옵니다.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권태가 시작되죠.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 방황합니다.”- 마흔 즈음에 방황하는 이유는.“‘권태’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결핍-충족-과잉충족 사이의 시계추’라고 했습니다. 20대 때는 결핍이 있죠. 돈과 직장을 원합니다. 40대는 막상 가지면 지겨워지는, ‘과잉충족’ 상태입니다. 목 마를 때 물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마시는 순간 짧게 행복하고, 너무 많이 마시면 토하죠. 영원한 행복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 방황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해답은.“90%는 건강, 10%는 개성입니다. 쇼펜하우어는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보다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결핍이 충족되는 짧은 시간이 행복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모르고 지나갑니다. 반대로 고통은 강하게 느끼죠. 그래서 고통 없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또, 쇼펜하우어는 각자의 개성을 중시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함을 강조했죠.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이미 본인이 알고 있습니다.”- 신작 ‘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를 읽었는데요,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제가 20대 때는 학생운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 ‘인생이 왜 고통일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쇼펜하우어의 ‘잠언록’과 니체의 책을 봤는데, 내용이 와 닿더군요.삶의 이유를 쇼펜하우어는 ‘Wille zum Leben(생존의지)’, 니체는 ‘Wille zur Macht(권력의지)’라고 말했습니다. 둘이 비슷하고 또 매력적이죠. 삶의 의지를 갖고자 하고, 명예와 명성을 얻고자 하는 인간 본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각 나이대별 교우들에게 추천하는 철학서가 있다면.“20대 때는 전공과 관계없이 세계적인 문학·철학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원서로 읽으면 제일 좋겠죠. 개인적으로는 알베르 카뮈를 추천합니다. 30대는 사회에 관심이 많은 시기이기에 롤스의 정의론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40대는 서양철학을, 50대는 동양철학을 추천합니다. 동양철학, 특히 주역에서 이야기하는 운과 운명이 쇼펜하우어 주장과 매우 유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동양철학의 깊이를 느낄 것입니다.” ‘별과 함께 춤을’ 추는 작가이메일 아이디로 ‘Sternentanz’(춤추는 별)을 사용하는 강용수 작가.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따온 단어다. 인간은 혼돈(Chaos)을 간직한 별이 되어야 하지만, 별의 궤도를 이탈할 수는 없는 모순을 담았다. 작가는 “우리도 시계추와 같은 궤도 속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자기만의 개성, 즉 ‘춤추는 별’을 탄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각자의 개성을 찾아, 이번 달엔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해린 기자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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