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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리(국스23) 쇼트트랙 국가대표폭풍 질주, 지금은 김길리 시대“고대만의 끈끈한 의리로 보내주신 응원, 늘 감사합니다.”지난 2월 제25회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여자 계주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바로 열린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000m와1500m를 제패했다. 우리나라 쇼트트랙 간판 김길리(국제스포츠학부23·성남시청)가 3월 23일 모교를 찾았다. 글·사진. 최기영 주간2월 19일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길리는 특유의 스퍼트로 홈팀을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8년만에 되찾은 여자 3000m 계주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그는 주저 없이 계주 금메달을 꼽았다.“계주 1등 했을 때가 제일 짜릿했어요. 다 같이 기뻐할 수 있어서 행복이 두 배였죠. 계주만 준비한 언니들도 있었는데,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게 가장 좋았어요.”롤모델 최민정 & 라이벌 벨제부르김길리의 롤모델은 최민정 선수다. 어린 시절부터 “민정 언니를 바라보며 운동했다”는 그는 “운동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저도 예전보다 진심으로 운동에 임하게 되었고, 실력이 느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최대 라이벌로는 네덜란드의 잔드라 벨제부르를 꼽았다. “스피드가 빨라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라고 평가했다. 실제 세계선수권 여자1000m 결승에서는 벨제부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금메달을 따냈다. 불과 0.009초 차 1위였다.람보르길리 & 춤신춤왕별명 ‘람보르길리’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좋아하는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따온 이 별명은 ‘낮고 빠르다’는 이미지와 잘 맞는다.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그는 “자세가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낮고, 마지막에 폭발적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의 레이스를 설명했다.성격은 의외로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편이다.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고, 다음 경기에서 후회없이 경기를 치르자”는 다짐으로 스스로를 다잡는다.또 다른 별명 ‘춤신춤왕’은 타고난 흥에서 비롯됐다. “쉴 때나 운동할 때나 항상 흥이 넘치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춤추는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붙은 별명 같아요.”경기 후 손가락 세리머니는 우연히 탄생했다. “어느 날 1등을 하고 나와서 이 포즈를 했는데, 그 뒤로는 더 잘 타지는 기분이 들어 자연스럽게 제 시그니처가 됐어요.”합동응원제에서포기와 회의, 그리고 다시 스케이트화려한 금메달 뒤에는 ‘그만둘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고1이던 코로나 시기, 모든 대회가 사라지며 목표 의식이 흐려진 그는 “맨날 똑같은 것만 하는 일상에 질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가 “방에서 혼자 생각해보니, 스케이트 탈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걸 계속 해보자’ 하고 다시 시작했어요.”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단순하지만 깊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학교에서 보면 많이 말 걸어주세요”김길리는 3월 20일 입학 후 처음으로 고연합동응원제에 참여했다. “하키부 친구들과 함께 즐겼다”며 웃었다. 3월 23일에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신동민(국스24) 선수와 함께 모교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현재 성남시청 소속인 그는 올림픽 준비를 위해 잠시 휴학 중이지만, 2학기에 복학해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다.올림픽 이후 모교 공식 SNS에 자신의 소식이 올라온 것을 본 그는 “너무 놀랐고 감사했다”며 “내가 정말 고대생이구나, 실감했어요”라고 말했다.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아직 정복하지 못한 500m, 혼성 계주 종목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싶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한 번 올라선 정상에서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학교에서 마주치면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드릴 수 있으니까 많이 말 걸어주세요. 고대하면 끈끈한 의리잖아요. 그 의리로 응원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김길리 교우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을 배경으로올림픽 메달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모습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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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중훈(철학57)4·19혁명공로자회 특별위원회 위원장4·18의 함성! 대한민국 ‘정의’의 시작“고대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나서야 했다”독고중훈(철학57) 교우는 “1959년 10월부터 이승만 정권에 대한 항의 움직임이 있었다”며, “겁도 났지만 가만히있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글. 최기영 주간 사진. 정태서 기자“4·18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결과였습니다.”3·15 부정선거를 사흘 앞둔 3월 12일 밤, 독고교우의 남산 아래 후암동 자택에서 동료들과 함께 밤새 ‘공명선거 요구’, ‘민주주의 사수’ 등의 삐라 3,000장을 찍어냈다. 이튿날 낮 12시, 명동, 충무로, 미도파 백화점, 미국 대사관, 광화문 일대에 삐라가 뿌려졌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최초의 조직적 저항이었다.4월 18일 전날 밤, 고대신보 편집국장 박찬세(법학55)가 작성한 시국선언문을 이세기(정외57)가 본관 화장실에서 건네받았다. 독고 교우는 이기택(상학57)의 하숙방에서 밤을 새우며 학생 동원 계획을 짰다. 그날 밤, 최승자(정외56)가 자신의 금반지를 팔아 마련한 돈과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4·18 기념탑 앞에서 교정을 바라보고 있는 독고중훈 교우4월 18일, 울려 퍼진 ‘정의의 함성’18일 아침, 학교 측은 단과대 학생위원장들을 총장실로 불러 설득에 나섰다. 이세기(정외57)가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 숨겨둔 마이크를 꺼냈고, 그것을 넘겨받은 이가 독고 교우였다.“교실에서 나와라, 도서관에서 나와라, 본관 앞으로 모이자!”당시 학생처장이었던 현승종 교수가 달려와 마이크를 빼앗았지만, 이미 목소리는 온 캠퍼스로 퍼진 뒤였다. 오후 1시 경 운동장에만 1,000명이 넘는 고대생이 모였다. 이세기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이기택이 구호를 외치자 대열은 자연스럽게 교문 밖으로 흘러나갔다.행진 도중 지도부가 체포되는 등 하나둘 사라졌다. 선발대가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에 도착했을 때 남은 인원은 고작 이삼백 명. “이거 끝났구나 싶었죠.” 그런데 그 순간, 서울신문사 방향에서 고대 타올을 두른 학생들이 물밀 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500명이 됐다.김한중(경제57)의 구호 아래, 김중위(정외57)·박상원(경제57)이 마이크를 잡고 연설했다. 주석환(사학57)과 김영표(농예화56) 등 체육부 학생들은 시민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질서를 잡았다.“시민들 반응은 99.9%가 환호였어요. 깡패나 프락치가 섞일까 봐 일부러 막은 거예요.”귀굣길의 습격, 그리고 일어난 4·19의 불길배고프고 지친 학생들은 귀교를 결정했다. 을지로를 통해 돌아가던 대열이 청계천을 건너 종로 5가 근처에 이르렀을 때, 양쪽에서 괴한 100여 명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기습했다. 단 2~3분 만에 40여 명이 쓰러졌다. 독고 교우도 교복이 찢기고 온몸에 부상을 입은 채 간신히 집으로 돌아갔다.그리고 4월 19일, 시청 앞은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과 고등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경무대 쪽으로 달려갔던 복학생 김왈영(화학54)이 총에 맞아 숨졌다. 독고 교우는 안암캠퍼스에 그를 기념하는 작은 비석 하나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렇게 4·19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고대 아니면 그당시 먼저 나설 대학이 없었어요. 전부가 고대만 쳐다보고 있었다니까요.”‘고대답다’는 말은 가장 정의롭다는 뜻제대 후 드라마 PD를 했던 그는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을 드라마로 만들어 권력층의 부패를 비판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두 차례 불려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 4·19혁명공로자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4·19 혁명 66주년을 맞아 국제학술 포럼을 준비 중이다. “정의만 곧게 세우면 자유도 진리도, 인생의 모든 것이 저절로 따라옵니다.”독고중훈 교우에게 ‘고대’는 어떤 의미일까. “시작부터 중간 과정, 지금까지 고대는 가장 정의로운 대학입니다. ‘고대답다’는 건 곧 ‘정의롭다’는말이에요.” 독고중훈 교우가 모교 교우관련 통계를 적어 둔 메모장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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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르카노프 알리(경영06)오토콤 재팬 이사태권 소년,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가 되다키르기스스탄 1호 모교 졸업생 일본 요코하마를 거점으로 100여 개국에 중고차를 수출하며 글로벌 비즈니스의 최전선을 누비는 테미르카노프 알리(Temirkanov Aaly·경영06) 교우. 키르기스스탄 출신 최초 모교 학사 졸업생인 그가 낯선 땅 일본에서 중고차수출업체 ‘오토콤재팬’의 이사에 오르기까지, 16년의 여정을 들어봤다. 글. 김수린 기자Q. 교우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A. 반갑습니다. 자동차 수출이라는 한 우물만 16년째 파고 있는 알리입니다. 제가 2010년 오토콤 재팬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1년 수출 물량이 7,000대 정도, 직원도 고작 36명뿐인 작은 회사였어요. 지금은 매년 11만 대가 넘는 차를 전세계 100여 개국으로 보낼 만큼 덩치가 커졌죠. 저도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2017년 이사직을 맡게 됐고요. 지금은 경영진으로서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영업팀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깁니다.Q.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 유학을, 그것도 고려대학교로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A. 한국과의 첫 인연은 6살 무렵 시작한 ‘태권도’예요.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주니어 챔피언을 세 차례나 차지하고, 전국대회에서 은메달도 딸 만큼 태권도에 푹 빠져 살았거든요. 당시 한국인 사범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서, 그때부터 한국은 꼭 가보고 싶은 꿈의 나라가 됐습니다. 고교 졸업 후 한국행을 결심했고, 키르기스스탄 최초 고려대 석사 졸업생인 에밀 칼릴로프 선배의 추천으로 모교를 선택했습니다.글로벌한 위상과 각계각층의 리더를 배출해 내는 명성, 특유의 열정적인 학풍이 저를 끌어당겼던 것 같아요. 힘든만큼 보람찬 중고차 수출 현장고객 중 하나인 조지아 출신 스모선수 가가마루 마사루와 함께Q. 일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이사까지 올랐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요.A. 정말 ‘겸손’이라는 가치를 뼈저리게 배운 시기였어요. 한국 최고의 대학을 졸업했다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막상 일본에 가보니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그때 저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자존심만 세우며 버틸 것인가, 아니면 바닥부터 다시 배울 것인가.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화려한 대기업 명함 대신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찾아 밑바닥 영업부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고생이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금의 단단한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Q. 전 세계 100여 개국을 상대하시는데,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A.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과 끝은 ‘신뢰’입니다. 중고차 수출은 경매부터 선적 과정까지 단계가 아주 복잡하고, 사소한 실수 하나도 먼 타국 고객의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정직함과 투명성, 신속한 피드백이 생명일 수밖에 없죠. 또 하나는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유연함’입니다. 환율이나 규제가 하루아침에 바뀌기 때문에 변화에 맞춰 빠르게 적응해야 합니다. 요코하마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 강연을 하는 모습Q. 모교에서의 경험이 인생과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A. 경영대학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어요. 특히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배운 속도감과 효율성은 초단위로 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됐습니다. 또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안암의 기상’은 제 비즈니스 철학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끈끈한 고대정신을 나눌 수 있는 교우 네트워크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Q. 마지막으로, 더 넓은 무대를 꿈꾸며 정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세요.A. 글로벌 시장은 여러분의 학벌보다 실질적인 생존 능력을 먼저 시험할 것입니다. 그러니 첫 직장의 연봉이나 직함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진짜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게 흡수하고, 얼마나 꾸준하게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지금 겪는 시행착오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밑거름일 뿐입니다. 인내심을 갖고 도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세계라는 큰 무대가 여러분의 손안에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산간지역에서 자라 지금도 꾸준히 트레킹을 즐긴다. 사진은 후지산 정상(3,776m)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우후루 피크(5,895m)키르기스스탄 켈수 호수(3,600m)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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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경영78) 제21대 고려대학교 총장민족의 대학에서 인류의 대학으로김동원 총장이 그리는 ‘Next 120’급변하는 시대, 고려대학교가 또 한 번 중대한 전환점에 섰다. AI 시대를 맞아 ‘넥스트 인텔리전스(Next Intelligence)’라는 혁신을 예고한 김동원(경영78) 총장을 만나, 그가 그리는 모교의 다음 120년을 물었다. 글. 이현화 선임기자 사진. 최기영 주간‘상전벽해’, 세계가 감탄하는 캠퍼스김동원 총장이 새내기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죠.” 그는 2023년, 제21대 고려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해외 대학 총장들이 본교를 방문하면 아름다운 캠퍼스를 보고 늘 감탄합니다.”모교는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3년 완공한 메디컴플렉스 신관을 시작으로, 현재 18개의 건립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올해 완공 예정인 인문관과 2028년 마무리할 자연계 중앙광장 조성 등 약 4,500억 원 규모의 대형 사업을 완료하면 캠퍼스의 지형은 또 한번 큰 변화를 맞이한다.변화는 외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국인 학생 비율은 20%에 달하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글로벌 고대’는 일상이 됐다. “전 세계 우수학생을 꾸준히 유치한 결과, 외국인 학생 평균 성적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습니다. 앞으로 외국인학생 비율을 해외 명문 대학 수준인 30%까지 올려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김 총장은 이제 모교가 ‘민족 대학’을 넘어 ‘인류의 미래사회에 공헌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학은 이제 20대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3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평생교육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Vision 2040 & Next Intelligence University지난해 5월,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김 총장은 ‘비전 2040’을 발표했다. 2040년까지 연구 경쟁력 세계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글로벌 공동연구를 확대하고, 캠퍼스 내 주요 기업 연구소를 유치해 산학연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2조 원 기금을 조성해 연구와 교육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김 총장이 그리는 모교는 AI 시대를 선도하고 인류 미래 사회에 공헌하는 대학이다. 올해 신년회에서 2026년을 인공지능(AI)과 인간지성(HI)이 조화를 이루는 ‘넥스트 인텔리전스 유니버시티(Next Intelligence University)’ 혁신의 원년으로 꼽은 이유다. 앞으로 모교는 교육·연구·행정 전 분야에 AI를 도입해 혁신을 이끌고, 동시에 인문사회 분야 투자를 확대해 ‘인간 중심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인문학의 시간’이 다시 온다“일찍이 아인슈타인이 원자폭탄을 보고 우려했듯, 기술이 인간의 지혜를 앞질렀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첨단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익히면서도 ‘문사철(문학·역사·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적 토대가 단단한 인재가 주목받을 것입니다.” 현재 추진 중인 인문관 건립은 이러한 김 총장의 교육 철학을 상징한다. 국내 대학 중 20년 만에 처음으로 인문관을 신축하고, 100명에 가까운 인문사회 분야 교수를 선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기업 기부금을 바탕으로 우수 교수진을 초빙하는 ‘기금교수제’를 적극 도입해 지금까지 총 72명의 임용을 마쳤다. 이는 국내 대학 중 최대 규모다.모교와 교우회, 역대급 ‘케미’승명호 교우회장과 경영대학 4년 선후배 사이인 김 총장은 교우회와의 완벽한 호흡을 강조했다. “지난해 ‘하이입실렌티’와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 임명 등 완벽한 호흡으로 굵직한 행사를 함께 치렀습니다. 애교심과 목표가 일치하다 보니 큰 사업을 추진할 때 강력한 속도가 붙습니다.”이러한 협력의 성과는 기록적인 기부금으로 증명됐다. 김 총장 취임 이후 누적 기부금은 3,2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익명의 독지가가 630억 원이라는 거액을 쾌척하기도 했다. 그는 이 성과의 원동력이 ‘교우들의 변함없는 모교사랑’에 있다고 단언했다.마지막으로 그는 교우들에게도 따뜻한 당부를 전했다. “기부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모교와 교우회에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자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학교의 발전은 결국 사람, 즉 우리 교우들의 관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사진=정태서 기자]Since 2023…모교 4대 ‘퀀텀 점프’1. 3년간 3,200억 기부금 약정630억 원 쾌척한 익명의 후원자 포함, 한국 대학 역사상 최고 금액2. 4년 연속 정시 입결 사립대 1위최근 4년(’22∼’25), 인문·자연계열 정시 입결 사립대 1위3. 각종 국가 고시 최상위로스쿨 진학 1위(10년 누적)CPA 전국 1위(10년 연속)외무고시 1위(2년 연속)기술고시 1위(2024년)행정고시 2위(2025년)4. 미래 캠퍼스의 상징, 자연계 중앙광장 조성친환경·사용자 친화적인 창조와 혁신 공간,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캠퍼스의 핵심 거점 마련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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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서문18)EBC Financial Group 사업개발 매니저“국경 없는 고대교우회를 꿈꿔요”항저우에서 그리는 글로벌 교우 네트워크현재 중국 항저우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는 린이(林忆·서문18) 교우. 그가 국경과 인종의 경계를 허문 ‘항저우교우회 설립’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글. 유민경 기자Q. 중국인 유학생으로서 한국에서 서어서문을 전공한 이력이 독특하네요.A. 제가 자주 들었던 질문이에요. 처음 유학을 결정했을 때 스페인과 한국을 두고 많이 고민했어요. 세계 100위권 명문대인 고려대학교의 명성과 교육 수준에 매료돼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선택했고, 한국과 스페인 두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서어서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국제화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 모교에서 전세계 유학생과 함께 국제적인 시각을 넓힐 수 있었어요. 타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새내기 시절부터 KUISA(외국인 도우미 프로그램) 친구들과 학과 선배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줬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한국 특유의 음식 문화와 민속 문화를 체험시켜 줬어요. 그 시절 경험한 ‘안암의 정’은 제가 낯선 환경에서도 빠르게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입실렌티에서 친구들과 함께Q. 현재 항저우에서 활발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A. 제가 있는 항저우는 알리바바 같은 빅테크 기업부터 딥시크(DeepSeek), 유니트리(Unitree) 등 신흥 AI 기업들이 공존하는 중국 비즈니스의 최전선입니다. 현재 영국의 한 증권회사에서 시장의 세계화와 고객 관리를 담당하며 개인 비즈니스 설립을 준비 중이에요. 모교에서 쌓은 다국어 능력과 인문학적 소양은 국제 무역 업무를 수행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언어 학습은 단순히 표현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고 논리와 문화적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이니까요. 재학 시절 만난 한국·태국·모로코·브라질 등 다국적 친구들과의 네트워크 역시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데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Q. 항저우교우회를 설립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A. 상하이와 인접한 항저우는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산업 자원과 발전 잠재력을 갖춘 도시입니다. 베이징과 상하이가 중국의 전통적인 중심지라면, 항저우는 과학 기술과 문화가 다원적으로 융합된 신흥 성장판과 같아요. 저는 항저우가 교우들을 수용할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확신해요. 특히 절강대학교 등 지역 내 대학에 많은 한국 교환학생들이 재학 중이라 한중 문화 및 인재 교류의 최적지이기도 하죠.항저우교우회는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넘어, 교우들이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자원을 연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네트워크 허브가 될 것입니다.항저우 유학생 비즈니스 네트워킹 행사대형 언어모델 학습과 딥러닝 모델 구조 세미나Q. 교우뿐만 아니라 재학생도 함께 품을 계획이시군요.A. 저는 ‘국경 없는 교우회’를 꿈꿔요. 국적과 거주지의 한계를 초월한 플랫폼인 셈이죠. 모교는 강한 결속력과 응집력이라는 독특한 DNA가 있습니다. 정기고연전에서 느꼈던 뜨거운 자긍심,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증명된 모교의 실력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들을 ‘고대생’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연결고리죠. 최근 세계적으로 아시아가 부상하면서, 비(非)아시아계 교우들 중에서 중국과 한국에서 성장하길 희망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따라서 항저우교우회는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교우가 새로운 협력 기회를 발견하고 함께 상생하는 토대가 되고자 합니다. ‘고려대학교’라는 공통점만 있다면 누구나 이 경계 없는 네트워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Q. 현재 항저우교우회 결성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궁금해지는데요.A. 현재 7~8명의 핵심 멤버들과 긴밀히 소통 중이에요. 재학 시절 인연을 맺은 중국인 교우들로부터 긍정적인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제가 접촉할 수 있는 범위가 중국인 교우들에 집중돼 있어 아쉬움이 커요. 모교와 총교우회에서 항저우에 거주하거나 관심을 가진 다양한 교우들을 연결해 주신다면, 글로벌 교우회의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교우들의 성취가 곧 모교의 실력임을 믿기에, 저희가 글로벌 네트워크의 튼튼한 축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Q. 마지막으로 모교 유학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A. 고려대라는 최고의 배움터에 계신 여러분은 이미 큰 행운을 가졌습니다. 전공 분야의 내공을 쌓는 것은 기본이고, 캠퍼스의 다채로운 활동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줄 아는 ‘세계적인 지성인’으로 성장한다면, 졸업 후 여러분의 무대는 끝없이 넓어질 것입니다.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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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 인터뷰하는 사공정숙 교우 여자 이과대생도, 여교수도, 여학장도 당연하게 만든 사람1953년,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대구 임시 교정에 한 여학생이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고려대학교 첫 여성 이과대생이자, 수학과(당시 수물학과) 1회 입학생, 사공정숙(수학53) 교우였다. ‘과학의 시대’ 예견한 아버지의 고집사공 교우의 진로 선택 뒤에는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앞으로는 과학의 시대니 여자도 이공계에 진학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그는 물론 두 여동생까지 모두 수학과에 진학했다. 사공 교우는 “다른 과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버지가 수학과가 좋다고 하셨기에 나 역시 당연히 그 길을 택했다”고 회상했다.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중 발발한 전쟁으로 대구로 피난을 가 효성여고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그는 자연스럽게 대구에 자리 잡은 고려대학교 임시 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대가 부산으로 내려갔던 시절, 모교 진학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전교서 3명뿐이던 특대 장학생입학 후 그의 성적은 단연 돋보였다. 당시 이과대학에서 여학생은 극히 드물었고, 전교생 중 단 3명만 선발하던 ‘특대 장학생’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선발됐다는 게 좋았죠, 그 정도였어요”라며 담담히 말했다. 묵묵히 공부에 매진하던 고대생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그가 입학했던 1953년, 12월 15일자 고대신문에는 ‘동양의 퀴리가 되라’는 제하의 사공교우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기사를 본 소감을 묻자 “얼떨떨했다”고 짧게 답했다. 모두가 사랑했던 수학 천재…여성시대를 열다사공 전 교수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유진오 전 총장이다. 그는 교정을 걸어가는 사공 교우를 보면 늘 차를 세우고 “타라”고 권하며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총장님 댁에도 여러 번 갔다. 정말 예뻐해 주셨다”며 웃음을 지었다. 지도교수였던 김치영 교수와 한필하 교수 등 수학과 교수진도 그를 아꼈다.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여성이 교단에 서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모 교수는 “어디 여자가 교수를 하느냐”며 반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학교에서 길을 열어 주니 자연스럽게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1953년, 12월 15일자 고대신문과 사공정숙 교우의 졸업사진위상수학의 선구자 그리고 모교 첫 여교수졸업을 앞두고는 교생 실습 대신 수도여고에서 정식 수학 교사로 발탁됐다. 교장이 “교생으로 둘 게 아니라 아예 선생으로 가르치라”고 제안하면서, 4학년 때 이미 교단에 서기 시작했다. 이후 수도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학원에 다니는 등 학문과 직장생활을 병행했다.사공 교우는 초창기 우리나라 위상수학의 대가다. 그는 “그때 위상수학이 막 떠오르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내에 도입되던 현대 수학의 흐름을 몸소 따라간 선구자였다. 사범대·교육대학원에 새 길을 놓다1968년, 이과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창설 멤버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총장이 신설을 추진하면서 그를 데려온 것이다. 그는 학장과 교육대학원장으로서 교과과정 정비와 제도 개선에 힘썼다.특히 미술교육과의 교과과정을 바로잡고 입시 제도를 투명하게 개편했다. 교육대학원장으로서 커리큘럼을 전면 개편해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한 전국 교육대학원 평가에서 모교 교육대학원이 1등을 차지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여성 최초의 이공계 교수, 학장, 교육대학원장으로 이름을 남긴 그는 “여학생이라는 걸 의식할 필요 없다. 동등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면 된다”고 강조했다.여성 후배들에게는 “남자를 특별히 의식하지 말고, 자기 공부와 도리를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고대가 바로 나의 인생!', 3대째 이어진 '모교 사랑'사공 교우는 여자교우회 회장과 여자교수회 활 동을 통해 여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에도 힘 썼다. 후배들을 위한 여자교우회의 장학 사업은 지금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사공 교우는 8남매의 맏이로 모교에 입학한 뒤, 3 명의 동생과 자녀들 모두 모교와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첫째 송상호(경영79)는 경희대 교수, 둘째 송현옥(영문79)은 세종대 교수다. 배우자는 오세훈(법학79) 서울시장이다. 셋째 송현영(교육 82)의 딸 김혜인 씨는 경영학과 10학번이다. 넷 째 송상기(서문86)는 현재 모교 국제처장으로 재직 중이며 딸 송지인(영문16)도 교우다. 사공 교우는 “고대가 내 인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남편 고 송영수 작가의 대표작 ‘승화’를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한 것도 모교에 대한 깊은 애정에 서 비롯됐다. 그는 “모교에 대한 일생의 고마움 을 표하고 싶었고, 작품의 더 나은 보존과 공개 를 위해 기증했다”고 설명했다.인터뷰 말미, 그는 “고대가 더 발전하길 바란다” 고 전하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아이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자고 매일 다짐하 고 있다”고 말했다.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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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최찬희 교우 전쟁의 교정에서 오늘까지 지켜온 신념과 책임1951년, 포탄이 오가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모교 법률학과에 입학한 한 여학생이 있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여성 교우들의 화합’이라는 씨앗을 뿌린 최찬희 교우(법률51)가 그 주인공이다. 고대신문 1호 여기자이자 석난회 창립 회장으로서 그녀가 걸어온 길은 곧 모교 여성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용인 자택에서 만난 그는 구순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한 기억으로 그 시절을 회고했다.최찬희(법률51) 여자교우회 고문전쟁통에 피어난 학구열, 대구의 피난 교사 시절1932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최 교우는 독립 운동가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공부는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신념 속에서 자 랐다.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며 쌀장사로 위장해 인민군의 눈을 피해 다 니던 긴박한 순간들을 지나, 그녀는 1951년 부 산 초량동에서 고려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당시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일본을 이 기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 아래, 저는 여 자라는 이유로 학업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법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최 교우는 “아버지가 여러 차례 억울한 일을 겪으신 걸 보며 느꼈어요. 법을 알아야 억울한 사람들을 돕고 싸울 수 있다 는 생각에 법률학과를 택했죠.”라고 했다.최 교우의 부친 故 최인식 선생은 지난해 9월 3 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전쟁 중 모교의 대구 원대동 임시 교사 시절, 그 는 유진오 총장의 집 근처 초가집에 머물며 학업 을 이어갔다. “여학생이 나 혼자뿐이었지만 기죽 지 않았어요. 대구 경찰서장을 찾아가 아이들을 가르쳐줄 테니 밥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만큼 담대했죠.”고대 신문 1호 여기자, 그리고 ‘인싸’ 선배의 용기최 교우는 조지훈(본명 조동탁) 선생 과의 특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모교에 입학했더니 경기고녀 시절 담임이었던 조 지훈 선생이 교수로 있었다. 그리고 그가 최 교우 를 ‘제1호 여기자’로 발탁했다.“조지훈 선생님은 제 문학적 소양을 키워주신 분 이자, 피난 시절 영양실조로 얼굴이 노래진 저를 데리고 다니며 보약을 먹여주신 스승님이셨습니 다. 선생님의 권유로 신문에 어머니께 드리는 편 지를 쓰며 기자 활동을 시작했죠.”당시 교내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학생들 간의 패 싸움이 벌어졌을 때, 교수들도 말리지 못한 싸움 판 한가운데 뛰어든 일화는 유명하다. “너희들이 피난까지 와서 공부는 안 하고 싸움질이냐, 나를 죽이고 싸우라”며 호통을 쳤던 그의 기개는 남학 생들도 압도할 만큼 독보적이었다.공부도 잘했다. 어느날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갔 더니 자신이 써 냈던 시험 답안지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교수는 “사내 놈들이 이렇게 많은데 여자 하나 못 이기느냐”며 남학생들을 나무랐다.‘석난회’의 창립, 고대 여성 네트워크의 시작1967년, 최 교우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여성 교우들을 결집해 '석난회'를 창립했다. ‘석난’이라는 이름은 이은상 시인이 석탑의 ‘석’자를 따 지어준 이름이다.“당시 여학생들이 소수이다 보니 보호받지 못하 는 경우도 많았고, 졸업 후에도 그 힘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여성들이 뭉쳐야 고대 의 힘이 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확신 이 있었죠.”그러면서 최 교우는 “여자교우회는 남자들과 대 립하는 조직이 아니라, 모교를 더 튼튼하게 만드 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고 강조했다.2011년 5월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받고남성들과 화합하여 고대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어주길국내 최초 여성 법학 석사인 그는 노동법을 중심 으로 한 법률 실무와 공적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 며, 노동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썼다. 노동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는 신념은 최 교우의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기준이 됐다. “노동법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 최소한의 존 엄을 지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어요.”최 교우는 현재 모교의 최고령 교우 중 한 명이 다. 그에게 고려대학교는 어떤 의미일까.“고대는 내 인생의 모체입니다. 이제 여학생이 전 교생의 절반에 가깝다는 소식을 들으니 감개무량 하네요. 후배들이 남자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합하며, 고대가 대한민국 1위를 넘어 세 계로 뻗어나가는 데 튼튼한 밑거름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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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수(사회66) 서울시립대 명예교수“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자” 난세의 리더십, 삼국지에 묻다정년 퇴임 후 서울시민대학과 여러 문화원에서 20년 가까이 삼국지 인물론을 강의 중인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역사에 산다’는 그에게, 홍윤기(중문83) 고려대 중어중문과 교수가 이 시대에 삼국지를 다시 펼칠 이유를 물었다. 글. 이현화 선임기자사진. 최기영 주간 홍윤기 교수(사진 왼쪽)와 한형수 명예교수 81세에 낸 ‘삼국지 인물론’홍윤기 교수(이하 홍) ‘삼국지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에서 처음 선생님을 뵀던 기억이 납니다. 이 모임도 선생님께서 만드신 걸로 기억하는데, 언제부터 삼국지에 푹 빠지셨나요?한형수 교수(이하 한) 저는 장수군 천천면이라고, 덕유산 자락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중학생이 되면서 홀로 전주로 유학 갔는데, 외로움을 달래려고 도립도서관에서 닥치는대로 책을 읽다 삼국지를 처음 만났지요. 충의와 의협이 넘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설레던지!(웃음) 여러 판본 중에 정음사 판이 단연 으뜸이었죠.홍 밤잠도 설쳐가며 책을 읽는 소년이 그려집니다(웃음).한 고교 시절 잠깐 휴학하며 고향 서당에서 《통감절요》를 배울 때 알았어요. ‘아, 삼국지는 이야기면서 동시에 역사구나.’ 그때부터 삼국지는 제게 문학과 역사, 인간 이해가 만나는 지점이 됐습니다.홍 선생님께서 최근에 신간 두 권을 동시에 내시지 않았습니까. 2017년에 출간하신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과 마찬가지로 또 ‘인물론’인데요. 삼국지를 다룬 책들이 주로 ‘사건’에 집중하는 것에 비해 인물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한 역사를 만드는 것은 결국 한 인간의 선택입니다. 저는 삼국지를 영웅담이나 권모술수로 읽기보다, 인간의 성격과 의지가 역사적 분기점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이 삼국지 인물론의 서막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두 권, 《삼국지 조조 천하 꿈 펼친 모신 무장들》과 《삼국지 유비 한실 꿈 펼친 모신 무장들》은 그 본령에 해당합니다. 삼국의 축을 형성한 위·촉·오 가운데, 손권의 오나라는 천하 통일의 꿈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조조는 ‘평정’으로 천하의 꿈을 펼치려 했고, 유비는 ‘통합’을 통해 한실을 재흥하려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삼국지의 양 대척점에 서 있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영웅입니다.홍 주군뿐 아니라 모신(謀臣)과 무장에도 초점을 맞춘 것도 흥미롭습니다.한 조조와 유비, 그리고 그들을 보좌한 모신들은 냉철한 판단과 시대 통찰로 꿈의 밑그림을 그렸고, 무장들은 결단력과 헌신으로 전장을 장악했습니다. 저는 각기 다른 성격 유형의 인물들이 ‘의식적 능동성’을 조타수 삼아 어떤 정치적 선택과 전략적 판단을 내렸는지를 추적하며, 두 영웅이 어떻게 이상을 현실로 옮기려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홍 저 역시 중국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놀라운 부분이 있다면 ‘번역’입니다. 황건적의 난(184년)부터 진(晉)의 성립에 이르는, 2~3세기 전후의 기록을 현대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중국 학계에서도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실제로 참고할 현대어 번역이 거의 없는 《배송지주(裴松之注)》 등 방대한 주석과 번역을 정확하고도 폭넓게 소화해내셨어요.한 아이고, 중국 문학의 대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송구합니다(웃음). 청소년 시절 감동을 줬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흥미롭지만, 허황된 권모술수와 과장된 폭력이라는 한계를 지닙니다. 이번 저술은 정사 자료를 토대로 《삼국지연의》의 허구와 과장된 면을 걷어 내고자 했습니다. 역사는 천시(天時)가 아닌 인모(人謀)홍 개인적으로 조비의 황제 등극을 삼국지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보시는 삼국지의 주요 분기점은 무엇입니까?한 관도지전, 적벽지전, 한중지전, 이릉지전 이 네 가지 입니다. 관도지전의 승리로 조조는 중원과 하북을 평정해 위공·위왕으로 나아갔고, 적벽지전은 조조의 천하 통일을 좌절시키며 위·촉·오 삼국 정립의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한중지전은 유비가 조조와 대척점에 서게 된 기점이었고, 이릉지전은 오나라의 확장 속에서 삼국의 국경 질서가 굳어진 분기점이었습니다.홍 관도와 적벽은 이소승대(以小勝大)의 대표 사례이기도 합니다.한 맞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약자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전쟁이었습니다. 유물론자였던 마오쩌둥도 전쟁 국면에서는 ‘의식적 능동성’을 강조했습니다. 구조는 가능성의 범위를 정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니까요.홍 이러한 시각이 오늘의 국제 정세를 읽는 데도 유효할까요?한 삼국지를 현실에 기계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국면을 해석하는 지평을 제공합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구도에서도 결국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선택의 질입니다. 그래서 삼국지는 지금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통합의 리더십’을 구하라홍 ‘난세’라고 불릴 만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은데요. 지금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요?한 분단 현실 속에서 지역·세대·계층 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다른 세력을 품는 ‘통합의 리더십’이 더 절실합니다. 유비 같은 통합형 리더와 시대감각과 지혜를 갖춘 제갈량 같은 참모가 수어지교를 이룰 때 비로소 길이 열릴 것입니다.홍 선생님께서 사회학과 66학번이시죠? 제가 중문과 83학번인데, 모교에 있어서 그런지 종종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재학 중이실 때 모교는 어떤 분위기였나요? 한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민족대학’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상당했죠. Y대학의 모 석학이 저를 만나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고려대의 배려하는 풍토가 늘 부러웠다.”홍 하하,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고대정신’은 늘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한 맞습니다. 모교와 교우회의 ‘공동체 의식’은 소중한 전통이지만, 자칫 시야를 좁힐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계자서》에서 말했듯, 담박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멀리 내다보며 열린 자세로 세계와 통섭하려는 의식적 능동성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홍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실 한 말씀 청합니다.한 김준엽 총장님의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자.”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현실에만 매몰되지 말자는 뜻입니다. 역사에서 배울 것을 배우는 태도, 그것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이자 오늘을 사는 지혜입니다. 소년 한형수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정음사판 삼국지 한형수 교수가 최근 펴낸 《삼국지 조조 천하 꿈 펼친 모신 무장들》과 《삼국지 유비 한실 꿈 펼친 모신 무장들》 (박영사)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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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마 빈 하셈(언어18)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 프로토콜 팀“고려대학교 다녔어요?” 대통령이 먼저 알아본 자랑스러운 고대인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 화제가 된 주인공, 파트마 빈 하셈(언어18) 교우를 만났다. 글. 박국경 기자Q. 반갑습니다, 파트마 씨.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A. 안녕하세요, 교우 여러분. 저는 아랍에미리트(UAE) 출신 파트마 빈 하셈(Fatma Bin Hashem)입니다. 현재 아부다비에 위치한 셰이크 자이에드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 Center)에서 프로토콜 팀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부다비의 상징이다보니 귀빈들이 많이 방문하셔서 의전을 도맡고 있어요.Q. 지난 대한민국 대통령 순방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모교 출신임을 먼저 알아보고 질문하는 장면이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였어요.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A. 그땐 저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웃음). 준비 과정에서 제 이력서가 한국 외교부 측에 전달됐는데, 대통령께서 이를 직접 보셨나봐요. 공식 외교 석상에서 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모교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어 매우 뜻깊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죠.Q. 정부 장학금으로 유학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고려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A.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고등학교 성적이 좀 좋긴 했어요(웃음). ‘최고 대학’에서 공부하고픈 마음이 당연히 있었는데, 고려대학교가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 대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입학 전 모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며 캠퍼스를 직접 경험한 뒤, ‘꼭 이곳에서 학부 과정을 이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확고해졌습니다. 그 뒤로 7년간 한국어와 언어학을 깊이 탐구하며 전문성을 갈고 닦을 수 있었죠.Q. 재학 시절을 돌아보면, ‘고대생이었기에 가능했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A.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 세계에서 온 국제 학생들과 맺은 인연입니다. 고려대학교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을 소중한 관계들이었어요. 또 정기고연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때 느꼈던 긍정적인 에너지는 고대생이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Q. 이러한 대학 시절의 경험들이 현재의 커리어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교에서의 배움은 지금의 일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요?A. 전공인 언어학을 공부하며 언어를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큰 자산이 됐어요. 덕분에 의전 현장에서도 격식 있는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생활하며 익힌 ‘빨리빨리’ 문화가 의외로 큰 강점이 됐어요. 1분 1초가 중요한 의전 프로토콜 업무에서 이 점을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Q. 해외에서 ‘고대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체감되는 순간도 있나요?A. 고려대에서 공부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큰 관심을 보여주세요.학교 이름에 국가명인 ‘Korea’가 들어가 있다 보니, 그 자체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도 하죠. 현재 근무지에서도 제학문적 배경과 한국어 실력을 높게 평가해 주시는데, 그 바탕에는 ‘고대 출신’이라는 신뢰가 깔려 있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Q. 그렇다면 지금도 고려대학교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계신가요?A. 물론입니다. SNS를 통해 대학 시절 인연을 맺은 동료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있어요. 비록 아랍에미리트에 공식적인 교우회는 없지만,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나 제 경험을 나누곤 합니다. 모교 생활과 학업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에요.Q. 마지막으로, 지금의 파트마 씨에게 모교는 어떤 존재인가요?A. 저에게 고려대학교는 ‘회복탄력성, 결단력, 그리고 영감’입니다. 모교에서 보낸 시간은 제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소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 다녔어요?” 화제의 그 장면 (출처: 전주MBC 유튜브)1월 28일두바이에서 열린 ‘김밥흑백 마스터즈’에서 흑팀으로 우승했다. 가운데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왼쪽이 파트마 교우아부다비를 찾은 배우 정해인과 함께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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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얼굴들2026 신년회 수상자를 만나다인문사회부문·자연이공부문·보건의약부문 학술상부터 사회봉사상, 모범지부상, 고대가족상까지…. 2025년을 빛낸 신년회 수상자들을 만났다.[인문사회학술상]한국어 이해의 단위를 다시 묻다남기춘(심리81) 심리학부 교수학술상, 개인이 아닌 공동의 성취한국어 어절 정보처리를 중심으로 언어 인지와 뇌 기제를 규명해 온 남기춘 교수. 정년을 앞둔 그는 최근 한국어 음절·어휘 정보처리 이론을 보강하며, 좌우 뇌 반구가 언어 이해를 위해 어떻게 협응하는지를 밝히는 데 힘쓰고 있다.“오랜 시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해 온 동료 연구자들과 제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학문적 성찰을 더욱 깊게 하고, 연구의 사회적 의미를 확장해 나가겠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한국어에서 출발한 이론, 선례 없는 도전남 교수의 연구는 한국어의 구조적 특성에서 출발한다. 한국어가 영어 등 인도유럽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라는 점에 주목, 한국어 이해의 핵심 단위를 ‘어절’로 설정했다. 학문적 선진국의 이론을 한국어에 적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음절과 형태소로 구성된 어절이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한국어 특성에 맞게 설명하고자 했다. 보완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한국어 기반 언어 이해 이론의 토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선행 연구가 거의 없었던 만큼 연구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주제 발굴부터 실험 설계, 논문화까지 대부분 국내최초 시도였고, 기존 방법을 적용하기보다 새로운 연구 방법을 직접 개발해야 했다. 연구 환경과 재원 확보 역시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그는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 기반을 다지며 전문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 왔다.학문을 넘어 사회로, 그리고 다음 연구로남 교수는 한국어 정보처리 연구가 학문적 자존과 직결된다고 본다. 국어학과 국어교육학의 이론적 토대를 강화할 뿐 아니라, 언어장애 아동과 고령층의 언어 기능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진단하는 과학적 근거가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언어 정보처리 원리를 반영한 인공지능 연구에도 중요한 자산이다.앞으로 그는 어휘 정보처리 연구를 구형성과 문장 파싱(parsing) 과정으로 확장하고, 이를 아우르는 이론적 전망을 정립해 후학들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교우회학술상은 남 교수에게 지난 연구를 정리하는 이정표이자, 한국어에서 출발한 학문을 다음 세대로 잇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다.글. 송다연 기자 국제정치의 변화 속에서 ‘개인’을 찾다김성은(정외04) 정치외교학과 교수개인의 선택에서 읽는 세계 질서의 변화반세계화와 우파 포퓰리즘의 확산은 오늘날 국제정치의 가장 뚜렷한 변화다. 김성은 교수는 이 흐름을 국가나 구조가 아닌 ‘개인의 선택’에서 읽어낸다. 트럼프 등장 이후 흔들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분석해 온 그는,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언제 정치적 급진화로 이어지는지, 또 어떤 조건에서 그 흐름이 완화되는지 꾸준히 탐구해 왔다. 국제정치와 환경정치를 가로지르는 그의 연구는 세계 질서의 변화가 결국 유권자의 인식과 판단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 위에 서 있다.포퓰리즘, 기후 위기, 그리고 정책의 역할김 교수의 최근 연구는 반세계화와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에 집중돼 있다. 미국 유권자는 왜 트럼프를 지지했는가, 세계화의 경제적 충격은 어떤 경로를 거쳐 포퓰리즘 지지로 이어지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동시에 그는 우파 포퓰리즘의 확산이 기후 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도 주목해 왔다. 유권자가 언제 기후 문제를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기후 정책을 위해 비용을 감수할 의사를 갖는지를 분석한 연구는 국제정치와 환경정치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책의 역할에 대한 실증 분석으로 확장된다. 김 교수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트럼프 지지로 이어졌다는 기존 설명에서 나아가, 미국의 무역조정지원제도에 주목했다. 무역 피해 노동자에게 보조금과 직업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이 존재할 경우, 경제적 충격이 포퓰리즘 지지로 연결되는 경향이 완화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재분배 정책이 정치적 급진화를 완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함께 걷는 학문, 다음 질문을 향해김 교수는 이번 수상을 정치외교학과 교수진이 지난 80년간 축적해 온 학문적 성취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였다. 삶의 동반자인 국제대학 김동중(정외99)교수는 이번 수상의 또다른 공로자다. 김 교수는 “커리어의 공백 없이 연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임용 초기부터 연구와 육아를 함께 해준 남편 덕분”이라며 연구 뒤에 놓인 삶의 균형을 이야기했다.최근 그의 시선은 한국 사회로 향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높지만 정책 대응은 소극적인 한국을 분석하며, 개인의 인식과 선택이 어떻게 정책으로 이어지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교우회학술상은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일 것이다.글. 조영서 기자[자연이공학술상]에너지와 환경을 함께 묻는 엔지니어강용태 기계공학부 교수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향한 문제의식강용태 교수는 에너지와 열·냉동 시스템을 연구해 온 엔지니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와 환경 부담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그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연구의 핵심 목표로 삼아 왔다. 에너지 효율 향상과 환경 문제 해결을 함께 고려한 연구를 이어온 결과, 최근 압축기와 냉매가 없는 칼로릭 냉각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하고 이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에 발표했다. 그의 연구는 차세대 친환경 냉각 기술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에너지 분야의 주목을 받고 있다.냉매와 압축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냉각 패러다임현재 상용화된 냉각 시스템은 대부분 냉매와 압축기에 의존한다. 그러나 강 교수는 환경 규제의 대상이 되는 냉매와 소음·에너지 손실을 유발하는 압축기가 냉각 기술의 구조적 한계라고 본다. “우리가 잡은 두 가지 키워드는 냉매를 쓰지 않고, 압축기를 없애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해법은 액체 기반의 칼로릭 냉각 기술이다. 고체보다 열 전달이 효율적인 액체를 활용해 연속적인 냉각 사이클을 구현함으로써, 조용하고 효율적인 친환경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다. 이 기술은 향후 냉방을 넘어 히트펌프 기반 난방 기술로까지 확장될 잠재력을 지닌다.이론을 현실로, 그리고 세계 최고를 향해강 교수는 연구의 종착지를 실험실에 두지 않는다. “엔지니어의 목표는 이론을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신념 아래, 최근에는 연구 성과의 실용화를 위한 교원 창업에도 나섰다. 건물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남는 에너지를 공유하는 플러스에너지빌딩(PEB) 구현이 그의 다음 목표다.그는 연구자의 태도로 ‘세계 최고(No.1 in the world)’를 지향하는 동시에, 삶의 원칙으로는 ‘4대 6의 원리’를 강조한다. 내가 조금 덜 갖더라도 타인을 위해 내어줄 때, 그 신뢰가 더 큰 성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태도는 학생들과의 토론 문화와 학문 간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실의 기반이 되고 있다.글. 차제겸 기자세계를 겨냥하는 ‘가장 한국적인 LLM’ 임희석(컴퓨터88) 컴퓨터학과 교수한국어 AI 연구의 표준을 세우다임희석 교수는 자연어처리(NLP)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한국어 중심 언어모델과 의미표현 기술 연구를 선도해 왔다. 학계 최초 한국어 특화 대규모 언어모델 ‘KULLM(구름)’을 공개하며 국내 LLM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고, 임베딩 모델 ‘KURE’는 누적 다운로드 66만 회를 기록했다. 연구 성과를 산업 현장과 연결해 매년 약 10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을 이끌어 왔으며, 이러한 공로로 2025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과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정보·전자 분야)에 선정됐다.한국어 LLM의 전략적 가치고려대학교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수학한 임 교수는 이번 고대교우회 학술상 수상에 대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모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가 연구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은 것은 KULLM 공개다. “글로벌 빅테크의 AI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는 있어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연구자가 만든 ‘가장 한국적인 LLM’이야말로 문화와 산업을 세계로 확장하는 전략적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휴머니스틱 AI, 책임 있는 기술을 향해급변하는 AI 환경 속에서도 임 교수의 연구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그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닌 돕는 기술로서의 ‘휴머니스틱 AI’를 강조하며, 최근에는 공감형 LLM과 데이터 윤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품질·유해 데이터를 자동으로 걸러내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휴머니스틱 AI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앞으로는 KULLM의 성능 고도화와 함께 데이터 보안, 환각 현상 완화 등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실시간 자동 통역과 AI 에이전트 등 차세대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임 교수는 “연구의 목적은 사회에 실제 효용을 주는 데 있다”며, 책임 있는 기술이 결국 한국 AI 연구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글. 박국경 기자 [보건의약학술상]연구와 진료 사이, 미해결 과제에 도전하다김동식(의학89) 안암병원 간담췌의과 교수국제적 위상을 높인 간담췌외과 연구모교 의과대학 외과학교실의 김동식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간 이식과 간담췌외과 분야의 발전을 이끌어 온 연구자이자 임상의다.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간 이식 및 간 외과학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학술상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모교 교우로서 학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늘 자랑스러웠는데, 교우회에서 받는 상이라 더욱 뜻깊다”며 소감을 밝혔다.미해결 과제에 도전하는 연구와 진료의 접점김 교수의 연구는 간담췌외과 분야의 언멧니즈(Unmet Needs), 즉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핵심 과제에 초점을 맞춘다. 간 절제 후 기능 부전과 간 이식에서의 소이식편 합병증 극복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발생 기전과 치료법을 규명하기 위해 동물 실험과 임상 연구를 병행해 왔다. 국내에서는 연구 기반이 거의 없던 분야였지만, 국제 학회를 통한 콘센서스 연구와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하며 학문적 토대를 넓혀 왔다. 앞으로는 다기관 임상 연구와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진단과 치료에 대한 기준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김교수는 “진료와 연구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라며, 젊고 역량 있는 연구진과의 협업이 지금의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변화를 앞당기는 의사이자 연구자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장기 기증 활성화와 이식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장기 기증 감소로 대기 환자가 겪는 어려움을 언급하며, 장기 이식 발전에 기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인공 간이나 이종 간이식과 같은 미래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생명을 살리는 선택지가 크게 넓어질 것이라고 본다.“변화의 시점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말처럼, 김 교수의 연구는 오늘의 진료를 넘어 내일의 의학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교우와 후배들에게 “고려대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글. 유승민 기자데이터 너머 사람을 보는 연구안준용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유전체 데이터로 질환의 원인을 묻다“연구자로서 걸어온 길을 격려해 주는 상이라 생각돼 영광스럽습니다.”안준용 교수는 유전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원인을 규명해 온 연구자다. 호주와 미국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자폐 질환의 증상을 접한 그는, 환자마다 천차만별인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유전 정보의 체계적 정리가 필수적이라는 문제의식에 이르렀다. 최근 학계의 흐름인 인공지능 분석을 접목해 복잡한 유전체 데이터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환자와 가족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 바람이 지금의 연구로 이어졌다.정밀 의료 현장에서 증명되는 연구의 가치안 교수의 연구는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는 정밀 의료와 맞닿아 있다. 그는 “유전적 차이를 정확히 분석해 맞춤형 진단이 가능해진다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구실에서 발견한 유전 변이가 임상 현장에서 진단의 근거로 활용되고, 환자 가족에게 질환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쓰였을 때 그는 연구의 가치를 실감했다.이러한 태도는 교육 현장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인공지능도구를 활용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연구자로 성장하길 바란다. “정해진 답이 없는 학문 세계에서 질문하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한국형 정밀 의료의 미래를 향해이제 안 교수의 목표는 한국형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세계적 수준으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해외 시스템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환자에게 최적화된 분석 체계를 구축해 정밀 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연구자를 믿고 지지해 주는 모교라는 든든한 뿌리가 있었기에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묵묵히 연구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데이터 너머의 사람을 향한 그의 질문은, 한국 정밀 의료의 미래를 향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글. 유민경 기자[사회봉사상] 형식이 아닌 ‘진짜 도움’을 향해최경숙(의학68) 고대교우의료봉사회 단장봉사, 숙명을 넘어 ‘사명’“봉사는 자칫 형식적인 행위로 끝나기 쉬워요.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끝까지 들여다봐야, 진짜 필요한 도움이 보입니다.”50년 넘게 의료봉사를 이어온 최경숙 고대교우의료봉사회 단장. 그는 2025 교우회 사회봉사상 수상을 ‘영광’보다는 봉사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받아들인다.“의사는 평생 환자를 보잖아요. 봉사는 그 연장선에 있어요.”최 단장에게 의료봉사는 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그저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마음을 의료라는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전공의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봉사는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됐다. 그는 봉사를 ‘숙명’이라고 표현하다, 이내 웃으며 고쳐 말했다. “숙명 정도가 아니라 봉사에 미쳐 있었죠.”산부인과 전문의인 최 단장은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향애 고대교우회료봉사회 회장과 전공도, 삶의 궤적도 달랐지만 ‘봉사단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하나였다. 그렇게 함께 걸어온 시간이 오늘의 고대교우의료봉사회를 만들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믿음,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었다. 힐링 투게더, 해피 투게더과거보다 풍요로워진 만큼 봉사 현장 풍경도 달라졌다. 절대적 빈곤은 줄었지만, 외국인 노동자 등 보다 세분화된 취약계층이 새롭게 드러났다. 최 단장은 “이제는 봉사 대상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대교우회가 사회공헌봉사회 설립을 통해 의료봉사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는 환영하지만, 형식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와의 협력과 제도 안에서의 체계적 접근이 필수라는 지적이다.최 단장이 반복해 강조하는 원칙은 분명하다. “봉사를 위한 봉사는 안 된다.” 하루 진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관리와 안내까지 책임지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이상 소견이 나오면 추가 검사와 진료과에 안내하고, 환자 개개인에게 상세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다. 무료 봉사일수록 오히려 퀄리티가 담보돼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고대교우의료봉사회 활동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 됐다.최 단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힐링 투게더, 해피 투게더”에는 이러한 철학이 담겼다. “내 앞에 온 사람은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그의 말은 봉사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개인의 실천에서 교우회 사회공헌으로최 단장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대상은 ‘평등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조건 때문에 가능성을 펼치지 못한 이들을 볼 때,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것,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어요.”이번 사회봉사상 수상을 계기로 교우들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하다. 가난이나 외적 조건이 아닌, 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먼저 바라볼 것. 긍휼한 마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봉사는 형식이 아닌 진짜 실천이 된다. 최경숙 단장의 봉사는 그렇게 개인의 헌신을 넘어, 고대교우회 사회공헌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글. 이현화 선임기자2025년 10월, 서울 강동구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의료봉사 중인 최경숙 단장2025년 11월, 서울 양천구 밝은내어르신복지센터에서 봉사를 마친 고대교우의료봉사회[모범지부상]송년회에서 기념촬영하는 여수지부 교우들여수교우회곽동현(경영82) 여수교우회장은 이번 수상에 대해 예상치 못한 기쁨과 동시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구 30만 미만의 중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남 지역 최대 규모의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대 정신의 핵심인 ‘우호적인 선후배 관계’와 ‘자발적인 희생’에 있었다.지역색 녹여낸 활발한 교류와 소통 여수교우회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 산업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현재 등록된 150여 명의 교우 중 60여 명이 매우 활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20대부터 9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대다수 교우가 여수국가산단에 근무하거나 지역 기반 사업을 운영하며 밀접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맛의 도시 여수답게 제철 음식을 안주 삼아 수시로 ‘번개팅’이 열린다. 과거 선배들은 ‘고연정’이나 ‘고려식당’처럼 이름에 ‘고’자가 들어간 식당만 찾아다녔을 정도로 모교 사랑이 유별났다.활동이 어려운 원로 선배들을 위해 가급적 점심시간을 활용해 매월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산단 대기업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선배들을 모시는 자리를 주선하며 교우회만의 정서를 이어가고 있다.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해온 여수교우회특히 이번 상을 받기까지는 많은 교우의 헌신이 있었다. 김광현(법학59), 차석홍(경제61), 박용하(독문67), 임용택(사학70), 조순식(법학77), 조병만(화공82), 박명훈(정외83), 정민화(경영83), 정주완(경영84), 배향미(법학98) 교우 등 학번을 초월해 교우회 대소사에 앞장서 온 이들의 노고가 모범지부 선정의 밑거름이 됐다.여수교우회는 단순히 친목 도모를 넘어 지역 사회 발전에도 기여해 왔다. 매년 여수 지역 출신 모교 신입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후배 사랑을 실천했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EXPO) 당시 조직위에서 활동하는 교우들을 수개월간 응원하고 지원했다. 최근에는 2025년 고대 야구부의 동계 전지훈련 당시 식사를 지원하는 등 학교와 지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후배 사랑 장학금 부활하고파앞으로 여수교우회는 다시 세운 도약의 기회를 소중히 이어갈 계획이다. 가장 큰 목표는 아쉽게 중단됐던 ‘지역 출신 신입생 축하 장학금’을 부활시켜 후배 사랑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이에 대한 곽 회장의 생각은 확고하다. “만남의 목적을 간결히 하여 기존 교우 뿐 아니라 젊은 교우들의 참여도 이끌어내겠습니다. ‘대고대(大高大) 정신’으로 선후배 간의 순수함을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 교우회는 더 높게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글. 최기영 주간 여수·광양·순천 교우회 합동 체육대회 모습곽동현 여수교우회장이 전국대회 출전 중인 모교 야구부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곽동현 회장이 여수지부를 찾은 김동원 모교총장(사진 오른쪽)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고대가족상]고대가 이어준 특별한 인연이종민(사학81) 가족세상에는 노력으로 받을 수 없는 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출신 배우자를 만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다시 고대를 선택하고, 또 고대 출신의 반려자를 만난다는 건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주 실낱같은 확률과 운명 같은 행운이 겹쳐야 가능한 일이기에, 이번 가족상 수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기쁩니다.저는 사학과 81학번으로 방송계에서 평생을 보냈고, 아내는 일어일문학과 84학번입니다. 딸은 컴퓨터공학과 12학번, 아들은 산업경영공학과 14학번, 며느리는 산업경영공학과 16학번입니다. 아이들 모두 고대와 연대를 동시에 합격했지만, 망설임 없이 고대를 선택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유모차를 태우고 캠퍼스를 찾으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고대에 대한 애정 덕분이었을 겁니다.자유·정의·진리, 그리고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은 제가 평생 느껴온 고대의 힘입니다. 45년간 고대인으로 살아오며 고대여서 행복했고, 고대 가족 안에서 더 큰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인연에 감사드리며, 모교의 정이 앞으로도 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글. 송다연 기자대 이은 호랑이의 기상한지호(법학81) 가족돌이켜보면 고대를 선택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저희 삼남매는 안암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누나와 매형이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고 안암으로 오가던 시절 인연이 됐고, 딸이 박사 과정 중 지역교우회장이었던 남편을 만난 것처럼 우리 가족의 역사 곳곳에는 고대가 있습니다. 가끔 자문하곤 합니다. “내가 고대를 나오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성취를 이루고, 이런 리더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라고 말입니다.우리 가족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어진 일에 결코 회피하지 않고, 편법보다 올바름을 삶의 지표로 삼는 점입니다. 유혹이 있을 때마다 우리를 지탱해 준 것은 가슴 깊이 새긴 고대 정신이었습니다. “호랑이는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다”는 신념과 정의로움은 우리 가족의 흔들리지 않는 생활 방식이 됐습니다.고대 정신은 우리를 어디서나 당당한 리더로 만들었고, 교우 간의 끈끈한 정은 어떤 난관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고대인의 자긍심을 가슴에 품고, 사회 곳곳에서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글. 유민경 기자세대를 잇는 캠퍼스의 기억오화진(산업공20) 가족개인이 아닌 가족의 이름으로 받는 상인 만큼, 이 상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작고하신 할아버지, 아버지와 저는 각자의 시기와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캠퍼스에서 배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고려대학교는 학문적 배움의 공간을 넘어, 세대를 잇는 공통의 가치와 자부심이 담긴 곳입니다. 도전과 책임, 그리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태도는 모교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정신입니다.특히 최근 아버지께서 이공계 캠퍼스 중앙광장 신축 설계를 맡게 돼, 저희 가족에게 모교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가 되었습니다. 과거 배움의 공간이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데, 이에 공대 교우로서 깊은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고려대학교와의 인연은 졸업 이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학교의 이름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교우분들께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고려대학교가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잇는 장소로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글. 조영서 기자
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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