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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고대 정신 83학번인 나는 올해 사람들로부터 원치 않는 인사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올해 회갑이라면서요? 축하해요.”아니! 이렇게 젊고 에너지 넘치고 마음은 청년인데 회갑이라니? 하지만 거부한다고 해서 온 회갑이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니 이렇게 된 바에야 태어나서 두 번째 맞는 갑진년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다. “외쳐라 고대정신, 태양을 향해!” 라는 응원가 가사가 있다. 고대정신은 뭘까? 싸움에 나가 이기는 것만이 능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기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다. 경제적인 자립, 가정의 유지, 자식 농사와 세상 출세를 위해 적과 싸우기도 하고 때론 나를 이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꾸려온 시간들이 나의 ‘인생정신’이었다. 그렇다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할까.사업을 일궈서 큰돈을 번 내 친구 하나는 문득 후손들이 포털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했을 때 “우리 할머니는 돈만 잘 번 사람이었구나”로 손자들에게 인식되고 싶지 않았단다. 그녀는 사단법인 ‘세이브더얼스’를 만들었고 그동안 모은 재산을 투자해서 자연과 인간의 균형 있는 공존을 추구하자는 뜻으로 작은 활동들을 시작했다. 회갑의 나이에 고통받는 지구를 위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것이다.올여름에 열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집행 위원장도 회갑을 맞았다. 여성 감독이 진출하기 어려운 영화산업의 현실을 주목하고, 그들에게 창작의 힘을 실어주기 위해 소박하지만 힘있게 26회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시사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영화 ‘정돌이’는 가정 폭력과 가난을 피해 가출한 어린 소년을 고대생들이 학교로 데리고 와 정경대에서 먹이고 재우며 어른으로 성장시킨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우한 소년을 함께 돌보며 당시의 고대생들은 주머닛돈을 털어 안경도 사 주고, 장구도 가르치고 하면서 키워낸 것이다.한 친구는 주변의 지인들과 기금을 모아 작은 집을 마련, 18세에 보육원을 나가야 하는 여자 아이들에게 황량한 세상으로 나가기 직전의 정거장으로 내어 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만 잘 쓰고, 잘 먹고, 잘 놀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안 가본데 가봐야 하고, 안 먹은 거 먹어 봐야 하고, 안 해본 걸 해 봐야 한다면 그 버킷 리스트에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적어볼 때인 것 같다. 김훈 선생님의 책 ‘남한산성’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특별한 올해, 내게는 고대정신이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가 아니라 ‘나누자!’로 다시 정의되는 의미 있는 갑진년 회갑 생일이 될 거 같다.김미경(독문83) 편집위원방송작가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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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사회87) 편집위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50대 중반에 이른 주변 친구들과의 술자리 대화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아들과 대화하는 법이다.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카톡을 보내면 ‘읽씹’이나 ‘안읽씹’ 둘 중에 하나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한자가 ‘아들 자’라는 아재개그도 있다. 둘째, 전화를 받아도 아들이나 아버지나 할 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엄마 어디 갔니?”라는 말도 있다. 셋째, 가족모임처럼 꼭 할 말이 있을 때는 개인톡보다는 가족 단톡방을 이용한다. 이런 식으로 아들과 대화하기 어려운 이유를 모두 꼽자면 매달 ‘자명고’ 칼럼을 시리즈로 써도 부족하다. 대략 나의 아들 세대인 15학번 이후 교우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정반대의 견해를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첫째, 아버지가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은 보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밥은 먹었냐’, ‘공부는 잘 돼 가냐’, 아니면 ‘회사는 다닐 만하냐’. 둘째,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대화한 기억은 없는데, 요즘 아버지의 잔소리는 엄마를 추월할 기세이다. 여성 호르몬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셋째, 저녁 먹고 게임 좀 하면서 중간고사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아버지는 소맥을 만다. 핑계는 ‘대화’다. 사실 아버지와 대화가 어려운 이유를 모두 꼽자면 나도 ‘자명고’ 칼럼을 쓰고 싶다. 고대를 앞세운 이런저런 모임에서 재학생들과 마주앉을 때가 있다. 분명 아들과 같은 나이뻘인데도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다르다. ‘하느님과 동기동창’인 선배의 ‘라떼’ 시리즈를 경청하려는 자세가 충만하다. 다음날 ‘앞으로도 자주 뵙고 좋은 말씀 어쩌구 저쩌구’하는 카톡을 보내오는 것도 기특하다.교우회에서도 10년 간격의 선후배 소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87학번인 필자가 졸업 학과나 동아리, 동문회의 97학번과 07학번들을 한 자리에 초대해 보는 것이다. 과거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 부모자식 관계 같은 일상다반사들을 나누다 보면 아들과 대화하는 법이나 아버지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긴급조치와 6‧10항쟁. IMF 위기와 리먼 브러더스 사태, 코로나19와 비대면 수업 등, 당대의 역사적 편린들이 서로 다른 세대의 삶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고대판 사회학 연구 프로젝트가 탄생할 것이다. 74학번 승명호 교우회장님께서 솔선수범하시는 방식으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을바람 부는 좋은 날을 골라 84학번, 94학번들을 불러 막걸리 한잔씩 따라주시면 어떨까. 04학번들이 이를 본받아 14학번들을 부르면 새내기 24학번까지도 따라올 수 있겠다. 물론 64학번과 54학번 선배님이라고 해서 굳이 빼어놓을 필요는 없겠다. 사실 10년까지는 ‘맞다이’로 들어와도 충분히 얘기가 통한다는 게 고대 선후배들의 자랑 아니던가.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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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영(산자97) 편집위원과학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색상은 ‘크림슨’, 동물은 ‘호랑이’, 교목은 ‘잣나무’다. 교정 어디서든 크림슨 색상을 만날 수 있다. 본교 정문은 1965년 고대교우회가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헌정했는데, 양쪽 아치에는 호랑이 얼굴이 조각돼 있다. 1968년 5월 19일에는 재단이사회와 교무위원회가 잣나무를 교목으로 선정했다. 잣나무는 고소한 맛의 열매를 지녔기 때문에 씨를 뜻하는 한자의 ‘자(子)’에 사이시옷이 덧붙여져 유래한 이름이다. 바늘 모양의 잎은 5개가 한 다발로 모여 자란다. 비슷하게 생긴 소나무는 2개의 잎이 한 다발로 모여 자라기 때문에 모여 자라는 잎의 개수를 확인하면 두 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 잣나무는 소나무과 소나무속(Pinus)에 속하는데, 소나무속은 소나무와 잣나무, 백송, 곰솔, 스트로브잣나무 등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100여 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소나무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Pine으로 통칭된다.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Japanese Red Pine으로 ‘일본 붉은 소나무’이란 뜻이다. 반면 교목인 잣나무의 영어 이름은 Korean Pine으로 ‘한국 소나무’로 불린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잣나무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라고 알고 있다. 잣나무의 학명은 Pinus koraiensis로서 한국 특산종이란 의미를 지녔다. 소나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웃한 일본과 중국과 북한의 국경 인근, 러시아 연해주 지역까지 자란다. 이와 달리 잣나무는 추운 곳을 선호해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의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랴오닝성까지도 자라며, 러시아의 시호테알린산맥과 우수리강 유역에서 천연림을 이루고 있다. 이들 지역은 옛 고구려의 영토이자 시베리아호랑이의 서식지와도 포개진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인 ‘수렵도’에는 말에 탄 채 호랑이를 쫓아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고구려인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해마다 9월 23일이면 세계자연기금(WWF)에서 ‘세계 호랑이의 날’을 맞아 시베리아호랑이의 서식지인 잣나무숲에서 불법 벌목을 막아달라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시베리아호랑이는 잣나무숲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구려, 호랑이, 잣나무는 혼연일체의 관계이다. 1946년 4월 모교는 고구려의 기상과 자주 불패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교명을 고려(高麗)로 바꿨다. 대한민국의 국호인 KOREA는 ‘고려’의 음을 표기한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대학교(KOREA UNIVERSITY)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임을 선언한 것이다. 흔히 바위틈에서 굽어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잣나무는 줄기가 곧게 뻗어 자란다. 잣나무가 숲을 이루었을 때 그 꼿꼿한 기상은 더욱 돋보인다. 잣나무는 세계적으로 한국의 나무로 인정된 종이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나무이자 가장 고대다운 나무다.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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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서른 전에 졸업은 할 수 있을까?”3학년이 되면서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이중전공과 교직이수를 동시에 진입하면서 벌어진 사달이다. 소식을 들은 선배들이 둘 중 하나는 포기하라고 말렸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런데 이대로면 5학년까지 다니고 졸업하게 생겼다는 걸, 호기롭게 개강을 맞이하고 나서야 알았다. 어쩌면 남들보다 한참 뒤처질 수 있겠단 생각에 마음이 꽤 심란했다.원래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가 남들보다 한 박자씩 느리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도 한 번 떨어지고 다음 해에 겨우 붙었고, 모교도 한 번 떨어지고 재수 끝에 입학했으니까. 대학생이 됐으니 남들이 말하는 적정 속도로 살고 싶었다. 남들은 고등학교 때 하고 다신 안 한다는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학점도 열심히 챙기면서, 졸업까지의 계획도 착실히 세워뒀다. 그러니 지금도 내 인생이 남들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가 벌써 군대까지 다녀왔다. 동기들은 학회에 들어가거나, 인턴을 하거나,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여전히 학교 활동에서 손을 못 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졸업까지의 계획만 계속 뒤엎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내 삶의 적정 속도를 잃어버린 듯했다.동아리라든지, 학생회라든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교환학생이라든지, 교생실습이라든지. 하지만 “졸업은 언제 할 거냐”며, “취업은 언제 할 거냐”며, 남들이 말하는 속도로 살아가려면,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 또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인생에는 각자의 속도가 있는데, 그동안 나는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내 삶을 꿰맞추며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결심했다. 무리하게 남의 속도를 따라가기보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내 속도를 따라가면서 살겠다고. 방향만 옳다면 천천히 가도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먼 훗날 “그땐 왜 그렇게 살았냐”고 후회하기보다, “그래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젊고,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니까.하늘빛(국문22) 기자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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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주(법학04) 편집위원법무법인(유)동인 변호사최근 온라인 상에서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 서울 번화가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이 몰라보게 달라진 서울의 모습에도 놀랐지만,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어느 지하철 역 앞 사람들이 일행을 기다리는 사진에서 사람들이 그야말로 누군가를 기다리고만 있어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때는 핸드폰은 있었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았기에 이동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심심하다거나 지루한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하루종일 그 단조로운 하루를 어떻게 살았나 싶다.요즘은 지하철이나 버스에 탄 모두가 자신의 핸드폰을, 동영상을 시청하기에 바쁘다. 나 역시도 조금의 시간적 공백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검색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뿐인가, 요즘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키오스크가 반겨준다. 식당 예약은 예약어플로, 배달은 배달어플로, 식재료 주문도 새벽배송 어플로 주문을 한다. 최근 한 종로의 술집은 주문을 카카오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받는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너무나 편리한 세상인데, 막상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핸드폰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또 단체 대화방을 통해 수백명의 사람과 연락을 할 수도 있지만, 직접 사람을 대면하고 대화하는 시간은 적어지고,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은 선호도가 떨어진다. 나도 온라인상으로 가능한 일을 직접 대면하여 처리해야 할 때, 통상하게 되는 인사치레나 스몰토크가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학창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을 코로나 시대에 보낸 10, 20대 들은 나보다 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사람 만나는게 불편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작년 미국의 한 의사가 연구한 결과 Z세대가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이 노년층의 두배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단골로 다니던 가게에서 주인이 아는 척을 하는 순간 그 가게에 가지 않는다는 Z세대지만, 누군가와 친밀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 것 같다. 쉽지만 어려운 사람과의 만남. 편집위원 활동을 하며, 선배님들로부터 받는 위안이 크다보니 앞으로 교우활동이 어떻게 변해갈지, 매월 교우회보를 살펴보며 생각해보곤 한다. 점차 온라인을 통해, SNS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지게 될까, 혹시 화상으로 각자 집앞의 산을 오르는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될까. 분명한 것은 모습은 변화해가겠지만 그 안에서 동기들, 선후배들과 나누고자 하는 따스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란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우회가 외로움을 덜어줄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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