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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명호 교우회장 1억 쾌척, 1인당 3만원 필승모금캠페인 시동*6월은 보훈의 달, 모교 교우 6·25 참전자 482명으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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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기금 모금캠페인] 고연전 100년 전쟁 필승기금 낼 수 있는 기회는 일생에 단 한번!
[보훈의 달] 6·25 참전 고려대 교우 482명 명단
개교 120주년 맞은 모교 <캠퍼스 곳곳 새 단장>
INTERVIEW
6·25 전쟁 참전 유공자에게 수여되는 호국영웅기장을 목에 걸고 있는 이용만 교우.전 재무부 장관이용만(행정55) 교우17살에 6·25 발발 … 죽을 고비 넘겨6월이면 어머니의 마지막 음식 생각나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교우회는 교우 출신 참전용사 명단을 입수했다. 국가보훈부에 직접 요청해 받은 명단에는 482명의 참전용사 교우들이 있었고, 이 중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이용만’교우. 전 재무부 장관, 아직 몸에 6·25전쟁의 총탄을 지니고 있고, 현재 92세의 나이에 유튜버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이 교우를 수소문해 만났다.- 6·25전쟁 총알이 아직도 몸에 있다고 들었습니다.“1951년, 춘천 가리산에서 전투를 하다가 왼쪽 어깨, 척추에 실탄 두 발을 맞았어요. 난 총에 맞으면 죽는 걸로 알았지 다시 살 줄은 몰랐지. 그래서 ‘난 죽었으니 다들 피신하라’고 소리를 질렀죠. 그때 김창조 소대장이 팔을 둘러메고 바위 뒤에 숨겨 줘서 살아났어요. 이 외에도 죽을 고비가 더 있었는데, 전우가 장난으로 제게 탄창 뺀 권총을 겨눈 적 있어요. 기분 나쁘니까 ‘저리 치워’ 하고 팔을 미는 순간 쐈는데, 권총 내 탄약고에 실탄이 한 발 들어있던 거죠. 불길이 제 귓가를 스치고 ‘죽었구나’ 했는데 다행히 옆 담요에 실탄 자국만이 남아 있더라고요.”- 총탄 부상 당시, 미군들이 도와주었다고요.“김창조 소대장이 저를 숨겨 주고, 미군 4명이 들것에 들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산 밑으로 데리고 나왔어요. 살려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백방으로 찾아다녔죠. 전 미 8군 사령관인 조셉 필(Joseph F. Fill) 장군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하자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저의 부상 3일 후에 중공군의 기습 공격으로 저를 도와준 병사들도 전사자에 포함된 것 같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죠. 이후 그래도 감사의 의미로 2014년, 2015년 미 8군 사령관을 비롯해서 미군 병사 150여 명을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전쟁 당시 가족들은 어떻게 됐나요.“1950년 10월 어느 날, 대낮에 인민군이 시내를 덮쳤어요. 그래서 전부 피난 가라고 방송하는데, 하필 내가 그날 아침 집에 들러서 ‘엄마, 나 오늘 학도대 활동으로 금성 쪽으로 간다’ 하니 ‘배고프겠구나’ 하시며 찹쌀떡 3개를 주셔서 그걸 먹고 간 게 어머니가 주신 마지막 음식이에요. ‘저녁에 올게’ 하고 나갔는데, 75년이 되도록 못 만나고 있어요. 시내에 미군들이 폭격을 해 어머니, 형, 동생 모두 없어졌죠. ‘용만이 혼자 여기 놔 두고 우리만 떠날 수 없다’며 피난길에 나서지 않은 게 저 때문인 것 같아, ‘그날 아침에 집에 들르지 말 걸’ 아직도 생각해요.”- 6·25 이전 교우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강원도 평강군 중농의 아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8·15 해방이 되자 갑자기 김일성의 세상이 되어버렸죠. 무상몰수, 무상분배식 토지개혁이 진행됐어요. 본명은 이승만이었으나 ‘이승만과 김구 타도’, ‘스탈린 대원수 만세’ 라는 구호가 난무하자 이용만으로 급히 개명했죠. 평강고급중학에 입학했을 때 제 부친은 ‘자식 공부 제대로 시키려면 남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김화로 이사, 김화고급중학으로 전학했어요. 그때 6·25가 터졌죠.- 어떻게 참전하시게 되었나요.“1951년 중공군 참전으로 전선이 밀리면서 청량리로 이동해 제2국민병 모집에 지원, 대구 육군훈련소에서 정식 군번을 받았어요. 중학생 이상 학력자라는 이유로 미군 2사단 38연대 락 레인저(Rock Ranger) 중대에 배치됐죠. 수색대였던 레인저 중대는 중공군의 5월 공세에 대비해 홍천군으로 이동, 춘천 가리산(해발 1,051m) 중턱에 잠복 배치됐다가 적 수색대와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 전투에 지원사격을 나섰다가 총상을 입은 것이죠. 이때 저를 도와준 소대장 김창조 중위는 나중에 중령으로 전역해 한국주택은행 차장으로 근무했고, 저는 재무부 이재국장에 올랐어요. 저는 1953년 1월 육군하사로 명예 제대했습니다.”사선(死線)을 넘어 명예 제대한 이용만 교우. 가족을 잃은 전쟁고아나 다름없었지만, 이후 성균관대 법대에 정식으로 입학해 다니다가 고대 법대 행정학과에 편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재무부 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 이 교우는 모교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제2법학관(신법학관)과 고시동 리모델링, SK미래관에도 기부해 스터디룸을 마련, 재학생에게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해린 기자
세계적 종자학자강병화(농학65)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평생 연구업적을 제자들과 함께 7권의 저서로 출간첫 제자 김태완 교수 “모교의 자랑이자 학술적 업적으로 남을 것”세계적인 종자학자인 모교 강병화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가 제자 5명과 함께 총 7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 중 첫 번째 작업으로 《주변잡초와 외래식물(상·중·하)》 3권을 e-Book 형태로 출간했다. 이 책은 한경국립대학교출판부를 통해 지난달 16일부터 배포됐다.이번 집필에 참여한 5명의 제자 김태완(농학81), 오영주(대학원98), 홍선희(식자94), 이용호(환생공00), 나채선(환생공01) 교우는 모두 모교에서 학부 또는 석박사 과정을 수학한 강병화 명예교수의 제자들이다.《주변잡초와 외래식물》 3권에는 우리나라 자생 자원식물과 외래식물 총 12,688종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담겼다. 주요 내용은 각 식물의 라틴어 학명, 영어명, 정확한 국명, 약효, 생태적 특성 등을 아우른다.첫 제자인 김태완 한경국립대 대외부총장은 “이번 저서는 평생의 학문적 작업을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완성해 가는 계승적 학문의 역작이다. 팔만대장경과 같은 식물학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며 출간의 의미를 밝혔다.- 우리나라 자원식물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1979년 독일로 유학을 가면서, 효과적인 잡초 방제를 위해 어린 잡초를 알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종자의 중요성을 공부하게 됐어요. 귀국 후에는 모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작물재배학과 잡초방제학을 강의했고, 어린 식물을 구별하기 위해 종자를 수집했죠. 이후 야외조사를 시작하며 ‘세상에 쓸모없는 식물은 없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매진하게 됐어요.”- 조사를 나가시는 시기가 정해져 있나.“강의를 하며 생태 사진을 직접 촬영했고, 사진마다 식물명, 촬영 일시, 촬영 지역을 모두 표기했어요. 특히 기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식물 표찰이 정확한 유럽의 식물원들을 계절별로 조사했어요. 지금까지 42년 동안 총 5,326일간 국내외에서 현장 조사를 진행했죠.” - 제자들과 함께 저술한 의미는.“함께한 5명의 공저자들은 모두 제 연구실에서 공부한 제자들이고, 이번 백과의 편집 과정에서도 큰 도움을 줬어요. 특히 김태완 교수는 한경국립대 부총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주말마다 서울에서 만나 편집에 대해 논의했지요. 한경국립대 총장님의 배려로 출판부에서 순차적으로 출간할 수 있었어요.”- 이번 저술에 한경국립대 김태완, 홍선희 교수님께서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첫 제자인 김태완 교수는 연구 시설이 부족한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했어요. 이후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에서 식물생리학을 전공하고 한경대에 재직하면서 저와 함께 외래 자원식물 관련 원고를 작성했죠. 김 교수는 영어, 독일어, 라틴어 모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요. 홍선희 교수는 생태계 위해식물, 특히 가시박에 대한 연구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어요.”- 자료들을 정리하여 보급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우리나라 식물 이름은 남북한은 물론 지역별로도 다르게 불리고 있고, 외래 식물의 표기도 아직 통일되지 않은 실정이에요. 그래서 생태 사진들을 정리해 도서관이나 수목원에서 동영상이나 액자 형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하려 해요.” - 우리나라 국공립수목원 관리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전 국토가 외래 꽃 축제장처럼 되고 있고, 여러 지역에서 국가정원을 계획하고 있어요. 국공립 수목원은 규모는 크지만 예산 운영이 경직돼 있고, 전문가 인사 이동이 잦아 식물 관리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반면 사립 수목원이나 개인 정원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지만, 식물 이름 표찰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문제이죠.” - 평소 가르침의 원칙이나 교육철학은.“식물 연구는 현장 조사가 많기 때문에 항상 제자들의 안전이 걱정되죠. 저는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제자들이 농촌과 자연 현장을 소중히 여기며 안전하게 연구 활동을 이어가길 바라요.”- 모교 교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모교 작물 재배 관련 과목이 폐지되고 있고, 덕소의 모교 부속농장도 농촌 소멸과 함께 쇠락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하지만 교우 여러분만큼은 자원식물과 농촌, 자연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기원해요.” 송다연 기자
석란회 초대 회장 최찬희(법학51) 교우국내 여성 최초의 노동법 석사 학위 소지자모교 역사상 최초의 장학사업을 추진한 석난장학회 발족1951년 법학과 51학번 내 홍일점 시절부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받은 연금을 고이 모아 1억원을 기부한 2025년에 이르기까지. 현 여자교우회의 전신인 석란회와 석난장학회를 설립해 모교에 최초로 장학금 제도를 마련한 업적을 가진 최찬희(법학51) 교우.최 교우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내 여성 최초로 노동법을 전공하고, 근로에도 기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 노동법을 알리는 일에 눈부신 활약을 했다.지난 1월 29일, 전현주(가교78) 고대여자교우회장은 최찬희 초대 여자교우회장을 방문해 모교와 여자교우회의 현황들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전 회장은 ‘모교 개교 120주년을 맞아, 역대 여자교우회장들이 힘을 합쳐 발전기금을 모아 공헌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건넸고, 이에 최 교우는 흔쾌히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시 최 교우는 “평소에도 고려대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라며, 더불어 여자교우회가 모교의 발전을 위한 기부와 봉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최 교우의 댁 곳곳에 자리한 ‘독립유공자 후손의 집’ 현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녀의 선친은 1919년 양양 만세삼창의 대표자로 섰던 독립유공자 최인식. 최 교우는 유족으로서 그간 빼곡히 모은 연금으로 모교 개교 120주년을 기념한 1억 원의 기부를 약정했고, 이는 올해 2월 여자교우회의 이름으로 4억원의 기부금이 모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그를 만나 모교와 함께한 75년의 세월 위에 쓰인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학내 여학생이 극소수이던 시절부터 앞장서 여성계몽과 노동권익 향상을 위해 힘써온 무수한 날들이 거름된 깊은 긍지와 흐뭇함이 묻어났다.- 여성 권익 향상의 선각자로서 겪은 고충은.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기억이 선명하다는 최 교우. 나라의 허가가 없으면 출국이 어려웠던 그 시절, 최 교우는 노동법의 권위자로서 해외 곳곳을 누볐다.“당시 남재 김상협 씨의 아내분이 여학사협회의 회장이었어요. 4년마다 한 번씩 세계여학사대회가 열렸고,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여학사대회에 참석할 비용으로 내 앞으로 400만원이 왔어요. 나라의 허락이 있어야지만 외국에 나갈 수 있었던 시절에 그렇게 세계여학사대회와 노사관계를 다루는 단기코스에도 참석하며 유럽일주를 할 수 있었죠. 또 국내에서도 전국 곳곳으로 노동법 강연을 하러 다니고, 여공들이 일하는 방직공장 같은 일터마다 가서 노동법이라는 게 있고, 부당하게 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느라 무척이나 바빴었지요.” - 삶의 이정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젊은 시절을 노동법을 배우고 가르치며 세상에 알리는 데에 바쳤죠. 중앙노동위원회가 처음 신설됐을 때, 유진오 총장이 김학묵 차관(제3대 보건복지부 차관)한테 노동법을 전공한 나를 전문위원으로 발탁하길 원한다고 편지를 보냈대요. 그렇게 중앙노동위원회의 노동법 전문위원이 됐죠. 또 국회법사위원회에서도 조사위원이 돼서 전국을 누비면서 노동법 강연을 하고, 아침 TV 프로그램에도 나가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같은 노동법 강의를 했죠.” - 여학생과 여교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사회에 쓸모 있는 여성이 돼야죠.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여성 리더가 필요한 사회예요. 특히 남성 중심의 문화와 분위기가 강했던 모교와 교우회에서 우리 여성들은 남성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섬세한 영역을 발견하고 그런 분야에서도 두각을 발휘할 수 있어요. 더 나아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참신하고 실력 있는, 사회에 모범이 되는 여성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기부금의 출처…쓰였으면 하는 곳은.“학교 발전 기금으로 쓰이면 좋겠어요. 내가 우리 학교에 장학제도를 처음으로 만들었을 때는 초기니까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별로 없었어요. 그때 연세대학에서도 우리 여자교우회가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러도 왔었죠. 장학생 중 한 명 이름은 기억도 나요. 정양숙(사회68). 하지만 그 이후로 요즘은 장학 사업이 많이 활성화됐잖아요. 이제는 장학금도 좋지만, 우리 고려대학이 더욱 발전하는 데에 그 기금으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조영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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