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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속의 고대인] A Day in EUROPE
커버스토리·특집 편집국 2026-06-11 조회수 : 1050


A Day in Europe


런던의 주방, 마드리드의 오피스, 파리의 골목, 제네바의 국제기구…. 다른 도시, 다른 삶, 그러나 ‘고대인’이란 이름으로 하나 되는 교우들의 하루를 들여다

봤다. 

글. 이현화 선임기자·조영서 기자


 


음식은 가장 따뜻한 언어였다

박혜원(경영95)

영국 런던 | 셰프


런던의 주방은 늘 분주하다. 영국, 프랑스, 남미 출신 셰프들이 좁은 공간을 오가며 영어로 지시를 주고받는다.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접시의 음식을 위해 움직이는 곳.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 공간에서 나는 음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배웠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요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집밥의 소중함을 늦게 알았지만,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음식이 가진 힘을 깊이 느끼게 됐다. 결국 그 마음이 나를 셰프의 길로 이끌었다.

영국과의 인연은 2000년대 중반. 오래전부터 비틀스와 브릿팝을 좋아했고, 영국 특유의 흐린 하늘마저 좋았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문화도 매력적이었다. 한때 내셔널 갤러리를 거의 매주 찾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를 위해 건너온 영국은 어느새 삶의 터전이 됐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인종과 국적, 성별이라는 벽과 마주해야 했다. 다른 남성 셰프들은 ‘셰프’나 ‘보스’라 하면서 나에게만 ‘달링’이라는 호칭을 쓰던 한 동료. 불편함을 토로하자 한동안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요리를 맛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일을 계기로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때 깨달았다. 좋은 음식은 말보다 더 빠르게 마음의 벽을 허물기도 한다는 사실을.

영국 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 20년 전만 해도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한국인이라고 답하면 의외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셰프들이 먼저 김치를 이야기하고, 직접 만들어 봤다고 말한다. 한식은 더 이상 낯선 음식이 아니다. 주방에서 일하며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있다.

일을 마친 뒤에는 종종 테이트 모던(현대미술관)을 찾는다. 밀레니엄 브리지 너머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런던이라는 도시가 가진 오래된 시간과 현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영국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공존에 있는지 모른다.

오랜 해외 생활 끝에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우리는 결국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중요한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감 있게 현지 사회 속으로 스며드는 일이다. 나 역시 셰프로서 한식을 더 널리 알리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다. 오늘도 런던의 주방에서 음식을 나누며, 가장 따뜻한 언어를 배운다.




 


화면 밖의 낭만을 기획하다

이규섭(법학00)

스페인 마드리드 | Fever 변호사


마드리드의 태양은 뜨겁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컴퍼니 피버(Fever)의 오피스는 전 세계에서 모인 다채로운 에너지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나는 아시아태평양 법무 담당으로서 한국과 일본시장을 맡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캔들라이트’ 공연부터 워너·디즈니·넷플릭스 등 글로벌 IP 기업과의 계약을 세세히 조율하고 협상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임무. 요즘 피버 법무팀은 ‘마드링(Madring)’에서 최초로 개최될 F1 그랑프리의 공식 파트너로서 전반적인 법률 자문을 총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공연을 보고 전시를 즐기는 ‘현장 체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BTS 월드투어에 인파가 몰리듯,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실제를 오감으로 느끼고 싶은 인간의 본질적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어도 해외여행 수요가 끊이지 않듯, 오프라인 콘텐츠의 가치는 앞으로도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낯선 무대에서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결국 ‘커뮤니케이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한·일 팀과 각국의 언어로 소통한 내용을 영어로 보고하는 과정에서, 결국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태도는 필수적이다. 일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에, 퇴근 후 동료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하며 ‘진짜 친구’가 되는 노력 또한 이곳에서는 업무만큼 중요함을 느낀다.

낯선 타향에서 ‘고대인’이라는 유대감은 큰 힘이 됐다. 스페인에 한국인이 많지 않아 교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새롭게 스페인교우회장을 맡게 된 만큼, 현지 교우와 유학생은 물론 모교를 거쳐 간 스페인 현지인까지 아우르는 다정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나아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이웃 국가 교우회와 손잡고 유럽 전체를 잇는 교류의 장을 다져갈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어떤 분야든 ‘업무의 본질’은 같다. 사람과 협업하는 태도와 기본기를 단단히 다져 둔다면 기회는 분명히 찾아온다.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F1 그랑프리가 개최된다면 내 손으로 직접 성공시킬 수 있기를. 오늘도 마드리드의 눈부신 햇살 아래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생생한 삶을 경험 중이다.





삶은 동그라미야

최장민(경영11)

프랑스 파리 | 푸드마케터


파리의 아침은 조용하다. 늘 빵집 앞에 줄을 서고, 카페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런 속도가 조금 답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그 리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프랑스에서 한국 식문화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소개하는 마케터다. 예전에는 김치와 고추장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이제 파리지앵들은 한식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요즘은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디자인, 플레이리스트 같은 감성까지 함께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교환학생 시절이었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프랑스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현지 스타트업 프로젝트와 한식 브랜드 마케팅을 수행하다 결국 HEC Paris 석사 과정까지 왔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만난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루아르 지방의 작은 와인 마을들을 사랑한다. 석사 시절, 내추럴 와이너리를 방문했다가 띠에리(Thierry) 아저씨를 만났다. 이후 함께 포도나무를 자르고, 수확하고, 병입 작업까지 도우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와인밭에서 그가 말했다.

“삶은 동그라미야. 태양도, 포도도, 사람의 눈도 모두 둥글지. 그런데 자본주의는 사람과 자연을 네모난 틀 안에 가두려고 해.”

그 말은 내 심장에 남았다. 아마 프랑스의 자연과 지방 문화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테다. 지금도 힘들고 생각이 많아질 때면 종종 루아르를 찾는다.

해외에서는 교우회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그저 학연이라기보다 삶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버텨주는 공동체에 가깝다. 유학 초기 학비와 집 문제로 막막했던 시절, 선배들은 현실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 불러주시고, 집 계약 보증을 도와주시고, 생활을 함께 걱정해 주시던 기억들은 지금도 큰 버팀목이다. 나 역시 프랑스교우회 총무로 활동하며, 새로 오는 후배들에게 작은 연결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삶은 와인 숙성과 비슷하다. 긴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자기만의 향이 만들어진다. 언젠가는 나만의 ‘밀레짐(millésime)’ 같은 순간이 오지 않을까 믿으며 오늘도 파리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물은 국경을 가르지 않는다

김휘린(토목공碩03)

스위스 제네바 | WMO 수문예보·수자원국장


호수와 산을 품은 제네바의 아침은 차분하다. 나는 이곳에서 전세계의 물 문제를 다루는 세계기상기구(WMO)에 출근한다. 193개 회원국이 활용할 수문·수자원 분야 기술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총괄하고 있다. 전임자들이 대부분 북미와 유럽 출신 백인 남성이었던 탓에 처음에는 신뢰를 얻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회의와 프로젝트를 하나씩 이끌어가며 지금은 중요한 논의의 중심에 서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국제 협력 사업에 참여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이 함께한 수자원 협력 프로젝트다. 정치적 갈등으로 쉽지 않은 사업이었지만, 각국 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하며 참여를 이끌어냈다. 결국 세 나라는 데이터와 기술을 공유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홍수와 가뭄 같은 재해 대응은 정치가 아닌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 팀에는 우루과이, 그리스, 세네갈, 핀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이 함께한다. 처음에는 회의 중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문화가 낯설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한복 체험 행사를 열고, 새해 전통 빵을 나누며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유창한 언어보다 상대방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다. 회의실 밖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쌓는 신뢰가 때로는 공식 회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문득 안암동 연구실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밤샘 연구를 하고, 유량 측정을 위해 현장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들던 날들. 다리 위에서 깜빡 잠이 들거나 연구실 회의 책상에서 자다가 아침에 교수님과 마주쳐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과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해외에서 만나는 고대 교우들 역시 낯선 환경 속에서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국제기구를 꿈꾼다면 외국어보다 먼저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단단히 다지길. 공직과 연구,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쌓아온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언젠가는 그 경험들을 책으로 남기고, 한국에 WMO 수자원 교육훈련센터를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용기만 있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온 모든 시간은 미래에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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